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법조계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장르문학을 즐겨보는데 최근에는 변호사나 검사가 주인공인 소설들도 나오고 판사가 주인공인 소설도 있더군요.
물론 앞에만 조금씩 보다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고 오글거려서 못보고 접었습니다.
내용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더라도 소설에서까지 법 이야기를 보면서 현실과 취미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도 싫었구요.
어쩌다보니 오늘 문피아의 판사 이한영을 1화부터 40화까지 쭉 봤습니다.
법조계를 소재로 한 소설을 제대로 본 것은 이게 처음이라 다른 작품이랑 비교할 수가 없지만,
판사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형사나 검사가 주인공인 수사물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중에서 묘사하는 법원은 실제 법원이 아니라 검찰청에 더 가깝습니다.
작중 묘사되는 법원장과 수석부장과 평판사인 주인공의 관계는 마치 현실의 지검장과 부장검사와 평검사의 관계에 더 가깝거든요.
작중 배경인 충남지방법원과 충남지방검찰청은 극적 허용이니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몇가지 설정상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주인공 이한영은 처음에는 단독재판부에 있다가, 어떤 사건에서는 합의부로 갔다가, 다시 다른 사건에서는 단독재판부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현실의 법원은 사건별로 재판부가 구성되지 않고 판사가 재판부를 이렇게 옮겨다니지 않습니다.
1년마다 있는 정기인사가 아니면 재판부의 인원은 변동이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형사재판부에 있다가 민사재판부로 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법관 정기인사 때 다 함께 이동하는 것이 아니면 혼자 달랑 이동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법원의 모든 재판은 컴퓨터를 통해 무작위로 담당재판부가 결정됩니다.
법원장이나 부장판사가 사건 골라서 판사한테 넘겨줄 수도 없고, 판사들끼리 서로 넘겨주고받고 할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검찰청에서는 윗선에서 수사 담당 검사를 지정할 수 있는 것과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그런데 작중에서는 법원장이 이한영에게 사건을 맡으라고 던져주는 것으로 묘사되니, 아무리 봐도 법원보다 검찰청에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한편 단독이든 합의부든 재판부에는 고유 숫자가 매겨져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반 이한영이 속한 재판부는 충남지방법원 형사3단독, 김윤혁이 속한 재판부는 형사5단독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합의부는 제4형사부, 제12형사부 이렇게 표시합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디테일은 놓쳤더군요.
수석부장판사는 서울 포함 5대 광역시의 지방법원에만 있는 특수보직인데 충남지방법원에도 있는건 좀 이상합니다.
제일 중요한 디테일 중 하나인데, 형사소송법상 증인신문을 포함한 모든 증거조사가 종료된 다음에야 피고인신문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작중에서는 피고인신문과 증인신문을 뒤죽박죽 섞어서 진행하더군요.
물론 판사가 현장으로 수사를 나간다던가, 증거를 잡았다고 검사한테 넘겨준다던가, 뒤로 몰래 수사를 지휘한다는건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전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은 사실 다 현직자 입장에서 보는 디테일한 설정오류고, 사실 수사물이나 추리물로 보면 시원시원한 맛이 어느정도 느껴지긴 합니다.
유사 패턴이 반복되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마냥 갑질하는 현대판타지도 아니고, 초반의 회귀를 제외하고는 다른 판타지적 요소가 적어서 차후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한 요소도 있습니다.
결론은 생각보다 읽을만 하다는 점에서 순수한 장르물로만 즐길 수 있다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상 야근하다가 머리식히고자 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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