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글쟁이S의 글을 처음 접한건 '나를 위해 살겠다' 에서 였습니다.
글의 제목도 제목인데다가, 소개에서부터 갑질,사이다,폭력,회귀 등등의 태그를 잔뜩 달아놓고, 위악을 뒤집어 썼다고는 해도 은근히 보수적인 문피아에서 강간까지 서슴치 않는 주인공을 보고는 그냥 흔한 소재에서 수위를 올려서 노이즈마케팅을 한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던 글입니다.
그 이후로는 이 작가의 글은 딱히 신경쓴적도 없이 그냥 잊고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글쟁이S 작품인 '그래도 설원입니다'를 찾아서 읽어보게된 이유는 이 작품의 연재중에 올렸다는 다음과 같은 후기를 우연히 발견해서입니다.
ㅎㅎ…
나는 세태와 야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젠더사회 폭력성을 부르짖던 나는 결국 마초이즘과 남성우월주의에 편승한 갑질물을 문피아에 연재하고 있다.
그리고… 연재 2주만에 선작 9천을 넘기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씨발… 나는 더러운 놈이야 인간관이고 문학관이고 개나주라고해 히히히히히
내게 돌을 던져라 다 피해주마
솔직히 저는 작가들이 자신의 독자들을 비하하는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그건 어떤 독자들이나 마찬가지겠죠. 특히 '좆집'발언을 하면서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을 병신취급한 모 작가를 정말 싫어하지요.
그래서 이 후기를 읽고는 처음에는 또 작가병걸린 사람 한명 더 추가됐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틀린말도 아니라고 생각되긴 했습니다.
독자들을 간접적으로 비하한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나를 위해 살겠다.'의 주인공이 위화감을 들정도로 극단적인 주인공이었고, 또 그런 캐릭터들을 좋아하던 댓글들을 보면서 솔직히 저 역시 한숨쉬긴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TS물을 싫어하던 저였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래도 설원입니다'를 읽어보게 되었고,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가였기에 저런 자조적인 후기를 남겼구나 하고 어느정도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꽤나 질척하고 우울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발단이 되는 소재이자 전개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치는 TS바이러스는 매우 악질입니다.
뜬금없이 사람의 성별을 바꿔놓는데다가, 만약 TS당한 사람이 자살하게 되면 가까이 있던 사람에게 옮겨가게 됩니다. 그래서 만약 가족이 자살을 목격하게 된다면 목격자 가족마저 TS 시켜 버립니다.
더더욱 질이 나쁜점은 그 사람의 정신마저 바꿔놓는다는 점입니다. 남자가 여자로 변하게되면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특히나 작품 초중반에는 이러한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치명적입니다.
TS당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들 자신을 원래 성별로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강제적으로 정신적 무장을 해제당하고, 얼마전까지 자신과 동성이었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점은 특히 남성이 여성으로 변했을때 심각해서 수많은 사람이 강간 혹은 반쯤은 자신이 원한 관계로 기존의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원치않는 임신을 하고,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가게 됩니다.
게다가 이러한 설정은 아주 똥같은 주인공의 환경과 만나면서 시궁창의 하모니를 이루죠.
피해망상과 애정결핍으로 인한 집착으로 가득한 주인공,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일찍 깨달아서 매우 불편해진 가족관계, 솔직히 전혀 이해가 되지않는 아주 똥같은 동생과 마찬가지로 개또라이 같은 고향친구. 거기에 처음에는 로맨스 주인공의 장점만 모아놓은 듯하다가, 결국 마치 단점만 가지고있던것 같이 파탄을 드러내는 남주인공.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죠.
하지만 작위적이라고까지 생각되는 이런 질척거리는 환경 때문에 설원의 고뇌가, 그리고 그 감정들이 더더욱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남자에서 순식간에 여자가 되어버린 남자의 고뇌. 주위의 시선. 친구들이라고 믿었던 남자들의 변화와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운 그 자신의 변화.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성적인 폭력들.
150화정도 되는 분량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수 없을만큼 주인공은 원치않게 여자의 몸이 되고 그리고 마음조차 여자로 변해가면서 고뇌하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또 사랑합니다.
분명히 무리수다 싶을 정도의 전개도 존재하고, 이상하리만큼 절망적인 상황들만 부각되는 TS바이러스 감염자들의 상황도 그렇고, 장르적인 한계도 존재하는 분명히 많은 단점들이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저에게 감동을 선사해준 정말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지금도 분명 저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독자를 비하하는 행위는 절대 하면 안되고, 그런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떠나서 언젠가는 세태와 타협하는게 아닌 자신에게 당당한 작품으로 대중에게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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