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글 [12/16] (감동) 어제자 KBS동행 열아홉 여고생 조은혜 (52)  
검색
홈으로 |로그인 | 무료회원가입 | 포인트출석 | 포인트적립방법 및 계급정책 
자동
회원가입 | 아이디 · 비밀번호 찾기
   
[자작]

[SF] Children's Back Syndrome

 
글쓴이 : 아파트 날짜 : 2018-05-17 (목) 20:48 조회 : 629   
@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진짜 싫어." 

"아니, 얘가? 오늘따라 자꾸 짜증 나게 할래, 엄마 오늘 중요한 발표날인 거 알아, 몰라?" 

교육의 종말은 세상의 종말이다. 이 진술은 수천 년에 걸쳐 성인들과 무수한 현자들의 동의를 얻은 말이다. 즉, 믿어도 좋다. 아니, 믿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란 없다. 당신이 관심을 갖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아무런 상관없이. 

"시험만 본단 말이야, 엄마 아빠가 기다리는 건 그거뿐이잖아..." 

"얘가, 오늘 대체 왜 이래? 그럼 시험을 봐야 공부 열심히 하는지, 놀기만 하는지 알지? 너 요즘 아빠랑 게임만 하는 거 다 알아, 빨리 이빨이나 닦고 학교 갈 준비 해!" 

인간은 진화 앞에서는 불가항력이다. 자신 혹은 집단의 의지만으로 진화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진화를 멈추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어떤 생명체도 자발적인 진화를 고대하며 살아가진 않는다. 이를 설명하고 해석하기 위해 과학의 힘을 빌릴 뿐, 진화학 자체는 응용할 수 없는 영역의 과학이다. 

"당신이 먼저 욕했잖아! 어디서 손가락질이야? 그러는 당신네 부모는, 그렇게 잘나서 챙겨준 게 뭔데?" 

"내가 미쳤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랑 결혼한 내가 미쳤지." 

"오냐, 너 말 잘했다. 아들, 넌 방에 들어가 있어. 얼른!" 

"으애앵, 싸우지 마, 싸우지 말라고 아빠." 

"넌 왜 울어, 뭐가 잘났다고!" 

"아니, 이 여자가? 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집안 꼬락서니 아주 잘 돌아간다."

교육이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정의되곤 한다. 세상 모든 것들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 적용할 곳을 정해 놓은 것이다. 머리가 좋고 나쁨도 교육의 목적 중 하나이다. 미리 정해놓은 방식으로, 정해놓은 길 안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길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적당히 쉴 곳과, 적당한 음식과, 적당히 걸칠 것을 주겠노라고, 그곳으로부터 시작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보다 좋은 것들을 얻고 누릴 수 있다며 사례집조차 던져준다. 

"하이겐슈타인과 같은 훌륭한 사업가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책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닥쳐온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일어나 수많은 신화를 일궈내고 마침내 전 세계 최고의 갑부이자, 자선가이며 위대한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한 생명체는 세대를 거치며 진화해 가는 것일까, 혹은 단 한 번의 라이프 사이클 안에서 이루어진 어떤 것을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것일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진화란, 모든 생명체가 지닌 DNA 레벨을 포함한 의식 전체의 혁명을 의미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의식의 측면에서라면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식이 가능하다면 충분히 생물학적으로도 가능하다. 

"교수님께서 이미 수차례 언급하신 바와 같이, '생물체란 의식의 그림자이다'라는 진술은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죠. 하지만 이러한 초월 현상들은 여전히 과학과 의식학이 겹쳐있는 이 세대에서라면 절반만 증명된 학문의 영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엊그제 발생한 사건을 알고 계실 테죠? 그 사건이야말로 우리에게, 세상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믿음을 심어주는데 부족함이 없지 않나요? 학계로부터의 가설이나 반론이 아무리 난무하더라도 일단 우리는, 이 세대는, 기적과도 같은 사건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비과학적이라 부르더라도 말이죠."

"교수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과학이란 반드시 명확한 증명을 필요로 한다는 측면과 더불어, 반복해 재생산할 수 없다면 그건 예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조건 아래 특정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건 과학의 범주가 아닌 것이죠. 삼 일 전 발생한..." 

"실례지만, 진행자께는 자녀가 있으신가요?" 

"네?... 교수님, 지금 방송 중입니다만." 

"몇이시죠?" 

"..." 

"지금의 아이들이 과학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생각하시나요?" 

"... 있... 었죠." 

"생물학적 그리고 진화학적으로는 엄청난 과학의 시대일지 몰라도 의식학적으로는 과연 그럴까요? 그리고 의식이란, 과학이라는 것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정녕 받아들이실 수는 없는 건가요? 본질적으로, 의식에는 실존을 증명할만한 방법이 없어요, 결코. 진화란 방향성을 띈 선택적 축적 현상일 뿐입니다."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은 교육이 아닌, 배움의 원천이자 대상이다. 현재의 시대에 있어 교육과 배움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교육이 정해진 틀에 인간을 구겨 넣는 것이라고 한다면, 배움이란 교육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이란 단방향, 한쪽에서 한쪽으로의 전달 과정이며 순서가 존재하지만, 배움은 상호 혹은 무방향으로 동작하고 움직인다. 교육이 꽃밭에 물을 주는 것이라면, 배움이란 활짝 피어난 꽃에서 우러나는 향기이다. 교육의 나쁜 점이란, 방향을 정해놓았다는 점이다, 자라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밥을 짓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아니며 비를 피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도 아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교육일 수는 있으나, 어떻게 해야 안전하고 즐겁게 이동할 수 있느냐는 교육의 범주로부터 생략되어 버렸다. 남을 설득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교육이 아니며 오히려 무릎을 꿇히고 강요하는 기술이야말로 교육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교과서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시 말해, 훌륭하고 순종적인 인간형이 되기 위해 배우는 것들 전부가 교육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저 한쪽 방향으로만 전달되는 순차적 복제와 누적형 붙여 넣기가 교육의 본질이 되고 말았다.

이 모든 일들은 배움이라는 영역 안에서, 기록과 전파의 수단으로써 언어를 자리매김시킨 그 시절로부터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언어를 기록에 사용한 그때부터 교육과 배움은 분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육은 언어로 구성될 분이고, 반면 배움은 이해 작용 이후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교육의 범주 안에서 성장해 왔을 뿐, 제대로 된 배움이라는 것은 맛본 적 없는 밋밋한 열매일 뿐이다. 

"선생님, 이건 어떻게 작동시키면 되죠? 아무리 봐도 기기 사용법을 알 수가 없네요. 보고할 건 많고 할 일은 넘쳐만 나고... 시사토론 방송이 곧 시작할 텐데, 휴."

"아, 젊은 사람이 그런 것도 몰라? 쯧쯧, 나이 헛먹었구만. 이리 줘 봐, 내가 하는 걸 잘 보라고. 이 버튼은 말이지... 근데 방송에 이런 게 필요하긴 한 거야?" 

"그러게요, 윗선에서는 왜 굳이 패널들 학력까지 알고 싶어 하는 걸까요? 높은 양반들이란 참...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야말로 엉뚱한 곳에서 엄한 일을 도와주고 계시네요, 경비일도 힘드실 텐데." 

"아냐, 아냐. 자네를 보면 생각나는 애가 있어서 그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사회라는 것을 배우며 커 나간다. 사회란 인간들 간의 관계이다. 따라서 아이는 부모로부터 관계를 배우는 것이다. 이 진술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와 닿는다면 당신은 이미 교육의 틀 안으로 구겨져 넣어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물을 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여길뿐 아니라 당연한 것 아니냐며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정말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하늘을 봐야만 한다. '사회란 인간들 간의 관계이며 아이는 부모로부터 그것을 배운다'라는 진술이 틀리거나 맞거나를 떠나, 그것에 대해 스스로 의심조차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들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세상'이다. 세상이란 사회이며 사회란 인간들 간의 관계이다. 우리들이 서로 엮이고 엮여가며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 둘은 똑같다. 우리는 하나였으며 분리되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누군였든 혹은 다수였든, 나누어지는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 우리는 분리를 이어받았다. 전통이라는 이름이든 관습이라는 이름이든, 뭐가 되었든 간에. 

"오늘 심야토론에서는 일 년 전 발생한 <리베리 메르제르, Liberi Merger>, 현상학적으로 명명되기로는 <의식의 합병>이라 불리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을 모시고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 년 전,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맞이할 뻔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끔찍한 사건이었어요. 어떠한 과학 분야에서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화성의 토질 중 일부 성분들과 유로파에 존재하는 얼음과의 관계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이 위대한 우주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그때의 사건이 던져준 충격이란, 마치 크로마뇽인이 성냥을 처음 그었을 때 받을 만한 쇼크와도 같았습니다." 

"매우 적절한 비유로군요, 박사님. 게다가 그로 인해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과정과 결과들은, 목격하는 것조차도 쉽지만은 않은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특히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예상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여파였다고 생각합니다만." 

"에... 어디 보자, 오늘 날짜로 이억.... 에... 그리고 이억이라. 이억 삼천 오백 십만... 그렇죠, 이게 오늘 아침 아홉 시 기준으로 발표된 지구 상 인류 중, 8~18세까지 아이들의 숫자죠. 단 일 년 만에 육 분의 일로 줄었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소 추세는 크게 줄었지만, 그렇다고 증가세가 높아진 것도 아닙니다. 향후, 지금보다 더 많은 <의식의 합병>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하지만 지금도 세계 어디선가 아이들은 사라지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내일, 형과 동생이 하나가 되고, 옆집 아이와 당신의 아이가 하나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리베리 메르제르> 현상, 자녀에게 너무나 소홀한 나머지 얼굴마저 잊게 되었을 때 가까운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합병>은 곧바로 <신체적 합병>까지 이어지고 마는데요, 즉 아이 하나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마는 거죠. 이로 인해 2288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미래라는 게 있을는지조차 의문이 들고 마는군요."

"사라진다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합병 현상 이후 남은 아이는, 두 아이의 기억을 모두 지니고 있고 게다가 정체성에도 큰 혼란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어디서 잠을 청해야 할까 정도를 제외하고는 크게 부모들에게 애정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모들 측이 적지 않게 아노미 상태에 빠지지 않습니까?" 

"음, 그 의견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군요. 1+1은 고작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관심을 버리고 나면 시들어 가다 결국에는 사라지는 거죠. 즉, 부모들은 뿌린 것만큼 거두는 농부와도 같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자 부모들 역시 현실과 결과를 담담히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어느 쪽에서 자녀로서 아이를 거둘지는 주로 변호사들에게 맡겨졌고요." 

'자라나는 다음 세대가 인류의 미래이며 그들의 어깨에 달려있다.'라는 말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미래란, 이렇듯 쉽게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아이들에게 있을 리도, 맡겨질 리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한 치라도 벗어나지 않도록 교육받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의 아이 역시 다음 세대를 그렇게 가르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전쟁도, 혁명도, 신조차도 바꿀 수 없는 일종의 사라지지 않는 죄의식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란 어디에 달려있는 것일까. 

언어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나 문법이 아닌 관념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써의 언어를, 다음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남겨두느냐가 관건일지도 모른다. 언어의 본질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한 세대가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찾아오면서 그것의 원래 의도했던 기능은 변질되기 시작했다. 인류는 문화에 다양한 언어적 유행을 만들어가며 결코 그 본질이 잊히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해왔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변화와 변질을 거듭했다. 의식에 대한 것들은 잊히기 시작했고, 과학이 본질의 자리를 꿰차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훨씬 더 쉬운 일이었으니까.

지금도 충분히 인간의 수명은 백세를 넘겼고, 8년마다 반의 반세기씩 증가하고 있다. 마치 수백 년 전, 반도체의 저장 용량이 몇 년마다 일정한 비율로 증가하기 시작했듯이. 그에 반해, 아이들의 뒷모습을 제외한 눈, 코, 미소, 웃음과 울음 등은 이미 꽤 잊혀 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한 시대는 찾아왔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죽어있지만 살아있는 것들에 열광한다. 일만여 개의 단어로 대답하는 개(Speakable Dog), 천 개 이상의 표정이 가능한 고양이(Lookable Cat), 그리고 노래하는 이동 가능한 새(Singing & Vehicle Bird) 등에. 

행여 아이들을 기술의 발전과 문화, 전통을 위한 전달 매개체로써 여긴다면 앞으로 더욱 신기하고 슬픈 사건들은 넘쳐날 수밖에 없을 것이며, 혹은 위인과 학자를 만들기 위한 초석으로써 남겨둔다면 다다음 세대쯤에는 물고기를 잡는 법이 필수가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신을 숭배하고 전파하는 도구로써 남겨둔다면 이 땅은 다시 붉은 피와 허연 살점들로 물들게 될 것이다. 

"엄마, 엄마.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응, 그러니까 제발." 

"상관없어, 넌 학교에 가고 난 직장에 가는 것뿐이야. 내가 언제 우리 집 전통 지키라고 했었니? 난 네게 자유를 주는 거라고, 자유를. 어서 학교나 가렴." 

"엄마, 그러지 말고 딱 한 번만, 응? 딱 한 번만 내 얼굴 좀 보고 이야기하면 안 돼?" 

"그럼 엄마 먼저 출근한다. 내일 보자."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재앙 중 재앙이다. 우리의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맡기기 위해서라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든 감소하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교육이 아닌 배움에 대해 부모가 될 세대가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똑똑하든 지식이 많든 혹은 지닌 것들이 많든, 그 따위 것들은 전혀 상관없다. 교육에만 관심을 집중했던 세대들의 역할이란 지금까지의 기나긴 인류 역사에 있어 단지 늘어진 고무줄 정도의 의미밖에 지니지 못했다. 그들의 욕심을 자신의 세대에 미처 채우지 못했더라면 전통과 권위라는 이름으로 대물림하기 위해 씨앗을 뿌려 댔을 뿐이며, 운 좋게 배불리 먹었다 치더라도 변화나 반성은커녕 더욱더 처먹으려고만 했을 뿐이니까. 몇 백 년 전, 세 번에 걸친 세계 대전에 이은 자본주의의 맹극화가 바로 그 증거이다. 자본이라는 괴물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그 토사물을 계속해서 내뱉는 중이다. 집어삼킨 그 입이 바로 교육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인정하려 들지 않은 채 말이다.

이전 세대의 강요나 의무 혹은 국가적 차원의 충분한 지원과 정책에 따라 자녀를 가지는 이들 역시 교육에만 흥미를 둔다. 가난을 뿌리치는 수단으로, 또는 신분 상승을 통한 사회적 자아실현 도구로써. 왜냐하면 그들 역시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양질의 교육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봉이 높고 살대가 넓은 우산 속에서라면 손잡이를 더욱 꽉 쥐려 할 뿐이고, 헐벗은 우산 속의 이들이라면 끊임없이 싸구려 새 우산만을 바랄 뿐이다. 이 둘 사이에 차이점은 없다. 그들 모두 가능하다면,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비자발적인 임무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새빨간 자유를 혼자서만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이건 모두 우리들의 이야기이지 밤하늘에 보이는 달나라 시민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 선생님. 우... 우리, 우리 아이가..."

"네, 저희도 수업 중이라 미처 손 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준비를 했다 해도 사진이나 영상 정도를 찍어둘 뿐이라요. 이건 입학 증서의 조건에도 잘 명시되어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학부모님." 

"어, 어디죠? 어디에 있죠, 우리... 아이는?" 

"이쪽으로 오세요." 

"저기, 선생님. 야단 났어요. 방금 <합병>된 다른 학생의 부모님이 난리를 치고 있다고요." 

"뭐예요? 아이 참, 이거 곤란한데. 아, 죄송합니다. 우선 이곳에 잠시만 더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돌아올게요." 

"..." 

"얼른 가요, 가드 선생님. 원래 어떤 선생님이 담당이었죠? 무슨 반이에요? 어휴, 교감인 내가 이런 것까지 일일이..." 

학생, 아이, 선생, 어른. 우리들에게 나이차란 순서일 뿐이다. 단지 누군가, 이 세상이라는 장소에 조금 앞서 온 것 혹은 앞서 가진 것이다. 먼저 손댔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만의 것이고 영원히 지닐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며 세상을 너무나 단순하고 순진하게 보는 시각이다. 이런 류의 생각은 동물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자신 이외의 생명을 섭취함으로써 개체와 집단을 지배하고 유지하는 곤충, 파충류, 동물들조차도 필요 이상의 것들을, 필요 이상의 시간에 걸쳐 보관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것들에는 소유와 독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지 않은가.

먼저 도착해 작은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이들은 주름살을 내세워 자신들의 유년 시절을 감추곤 한다. 감추어진 유년 시절과 적당한 욕망은 잘 뒤섞여 사람들을 요리하는데 필요한 조미료로 쓰인다. 어리석은 이들은 고민 없이 그들의 주름살과 불편한 다리에 경의를 표하며, 좀 더 똑똑한 이들은 다른 구석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은근슬쩍 마련한다. 꽃 목걸이를 두를 자리를 찾는 것이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르거나 나름 독보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먼저 도착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무한한 경의와 존경심, 그리고 고기와 기름을 그들 앞에 바치고는 그 대가로 만족을 구매한다. 

"너니... <합병>된 아이가? 흑..." 

"엄마... 아빠..." 

"안돼, 아니야... 이건 아니잖아, 안돼! 빨리 우리 애를 내놔, 내놓으라고!" 

"학부모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주변 아이들도 생각하셔야죠, 제 입장도 있고..." 

"뭐야, 당신이 우리 애 선생이었어? 왜, 왜... 왜! 왜 우리 애가 이렇게 된 거야, 왜 사라진 거냐고!" 

"사, 사라진 건 아니죠. 지금 눈 앞의 아이가 바로 학부모님 아이라고요. 그 아이를 잊어버린 건 학부모님이시라고요. 그러니 제발 진정..." 

"으아악, 으아아악!" 

"이, 이봐! 양호, 양호 선생 어딨어! 빠, 빨리 이 분을 의무실로 모셔!"

자신의 기억을 뒤져보며 슬퍼질 때가 있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먹고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어쩔 수 없는 사회라는 핑계로, 아이가 커갈 동안 놓쳐버린 시간들을 기억 속에서 바라볼 때 우리는 슬퍼지곤 한다. 

기억 속의 아이가 우유를 엎지른다.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살핀다. 앞 뒤가 맞지 않는 뗑깡을 부린다. 반찬 투정을 한다. 감기에 걸려 수백 번도 넘게 잠을 설친다. 그곳에 있는 나는 힘에 겨워 아내를, 남편을 탓하고 푸념하며 아이를 채근질한다. 하지만 짧다, 너무나 짧다. 그것조차 돌아볼 수 있는 기억들이 너무나 짧다. 아이의 웃음소리에 위안 삼을 수 있는 기억은 너무나도 적다. 그래서 슬프다. 기억 속,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아이와의 추억이 점점 짧아져만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아이의 어렸을 적 얼굴도, 함께 웃던 웃음소리도, 첫걸음을 떼었을 때의 박수갈채도, 어느 늦은 밤의 기침 소리와 간절한 기도도, 부딪히고 넘어져 아파 우는 소리도, 장난감을 사달라며 뗑깡 부리던 모습도, 그 무엇도 기억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때, 비로소 내가 가진 전부를 잃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당신이 원했던 건,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사주거나 더 훌륭한 미래를 선사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힘에 겨운 생활에서, 그곳으로부터 잠시나마 피해 있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가. 세상의 모든 후회란 그 이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되풀이할 뿐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단 한 가지만은 그렇지 않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굳이 딱 한 가지가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시험도, 대학도, 취업도, 진급도, 결혼도, 재산도, 심지어 신도 아닐 것이다. 단 한 가지, 딱 한 가지만은 되풀이하지 않고, 온몸의 모든 힘을 다해 언제까지나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말 것은, 바로 당신이 자녀와 보낼 시간이다. 그것만큼은 결코 똑같이 되풀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당신이 자녀를 두고 있다면 아이의 뒷모습을 더 많이 보는지 스스로를 살펴야만 한다. 아이가 울건 웃건, 짜증을 내든 행복해 하든 상관없다. 당신이 반드시 보고, 듣고 또 귀를 기울여야만 할 곳은 아이의 뒷모습이 아니다.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꼭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이 두 번째 기회를 부디, 제발 부디 놓치지 말기를.


   

도서게시판  주간추천순 | 월간추천순 | 월간조회순 | 월간댓글순 | 반기추천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공지]  ※ 도서 게시판 이용안내  eToLAND 09-11 21
22918 [일반]  몰아보니 또 볼 만 하네요... <소설 속 엑스트라>  무명암 22:04 0 12
22917 [기타]  장르물 보다 현자타임/내상 온적 있으신가요?  (15) 밤하늘달별 15:56 0 400
22916 [일반]  정구의 블랙헌터  (15) addkfj 12:10 2 788
22915 [일반]  하면서 써야 할 곳에 하면이라고 하는 놈들 왜 이렇게 많아졌죠?  (24) 진옥 11:54 3 547
22914 [일반]  사상 최강의 만담가  (13) Marilyn 09:20 0 991
22913 [일반]  노인의 전쟁 봤습니다.  (10) 까탈린그리드 03:50 0 623
22912 [일반]  예전에 나왔던 게임소설인데 제목좀 알려주세요..  (4) 오루크 00:16 0 496
22911 [리뷰]  구매한 문피아 유료작품 25편 간단리뷰(1-25)  (17) 루카루스s 12-15 14 1395
22910 [정보]  문피아 리뉴얼 퀴즈 500골드 이벤트  (5) 루카루스s 12-15 6 661
22909 [리뷰]  해골병사는 탑을 오른다..상당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5) 이득이여 12-15 0 1022
22908 [일반]  박스오피스 작가 신작 [갬블링 1945] 좋네요.  (3) 브레이니악 12-15 1 832
22907 [일반]  저도 문피아 무료 소개  (6) 물거품 12-15 3 945
22906 [리뷰]  문피아 무료 리뷰  (4) Rudera 12-15 3 980
22905 [정보]  최근에 수입된 선협물 <선역仙逆> 및 작가에 대한 잡다한 정보  (10) 무명암 12-15 5 793
22904 [정보]  디씨에 올라온 웹소설 작가의 팁  (6) 무면허라이더 12-15 4 1446
22903 [일반]  소설 제목 찾아요  적생화 12-15 0 178
22902 [일반]  미궁물 추천해주실수 있나요?  (8) 하얀동심 12-15 0 434
22901 [정보]  킬더 히어로 리디 포인트 백 대여  에그드랍 12-15 0 243
22900 [추천]  기적의 소환사 볼만하네요~[카카오페이지]  (1) 경훈이다 12-15 0 595
22899 [기타]  디다트는 웹소설 최적화 작가가 아닐까요?  (17) 아침에바나나 12-15 6 1138
22898 [추천]  (문피아무료)쉽게 잡히지 않는 구울이야  (9) 이슬처럼 12-15 0 704
22897 [추천]  위탁요원 위신호  (1) 스샷첨부 에운담위 12-15 3 663
22896 [일반]  Bj대마도사 볼수록 짜증나네요.  (20) 이이장님 12-15 3 1870
22895 [기타]  문1위, 카카오 1위 극찬 받는 게시판 있나요?  (7) 아침에바나나 12-15 0 1316
22894 [일반]  위자드 스톤을 보다가 느낀건데  (5) 동급생 12-14 0 763
22893 [일반]  재밌게 보시는 소설 있으시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2) 힘세고강한 12-14 0 432
22892 [일반]  메인빌런이 하나인 작품은 지루하네요  (12) 무명암 12-14 0 732
22891 [일반]  문피아 유료 하차하거나 하차 고민 중인 작품들  (5) Tzan 12-14 0 1023
22890 [추천]  환생 표사 추천합니다.  (7) 도도한병아리 12-14 3 697
22889 [기타]  작가라는 양반들도 맞추다/맞히다를 모르네요  (12) 불고기와퍼 12-14 2 724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