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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끝나지 않는 이야기(평가부탁드립니다.)

rank 구워먹은감자 2018-11-24 (토) 10:26 조회 : 1180 추천 : 1  

소설은 처음입니다.

문피아, 조아라에는 14화 까지 올린 상태입니다.

소설이 처음이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보태어 주시길 바랍니다.

많은 비평 부탁 드리겠습니다.

장르는 이 세계 판타지이며 기억을 잃은 소녀와 이세계에 간 청년 등 서로 도와가며 각자 원하는 바를 이루어 가는 내용입니다.


제 1 장

 

1. 전이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

 

나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 여느 때와 같이 이어폰을 꼽은 채 지하철을 타고 사람이 북적 거리는 숨 막히는 대학로를 지나 a204 건물로 들어섰다 .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202 호 실험실로 향했다 . 사방이 면으로 둘러싸인 좁은 엘리베이터 보단 탁 트인 계단이 좋았다 . 202 호 실험실에 들어서자 알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 했다 . 먼저 온 몇몇의 학생들은 테이블에 앉아 실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구석 자리 테이블에 가방을 벗어 올려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 3 월 중순 , 창 너머엔 매화가 피고 있었다 .

 

“ 하나야 !”

 

누군가 차가운 캔음료를 볼에다 대면서 나를 불렀다 . 내가 동경하는 지수 선배 . 살짝 쳐진 눈꼬리에 웃는 미소가 너무나도 귀엽고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사람 . 과에서 겉돌던 , 자퇴하려던 나에게 목적과 의지를 준 대상 .

선배가 옆으로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피가 몰려 고개를 돌렸다 . 얼굴과 귀가 화끈 거렸다 . 그거야 좋아하는 대상이 앞에 갑자기 너무 가까이 와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 선배는 붉게 타오르는 내 얼굴을 보고 당황한 듯 다급히 양손바닥을 내보이며 한걸음 물러섰다 .

 

“ 미안 미안 ” 선배는 갸우뚱하게 고개를 돌리곤 ‘ 헤헤 ’ 라며 웃었다 .

또 천진난만한 웃음 . 난 평생 선배에겐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

 

실험이 끝나고 오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의미 없이 폰을 쳐다본다 . 전공수업과 교양수업을 들은 후 잠시 도서관에 들러 책을 몇 권 빌렸다 . 자리가 있을리 없는 만원 지하철에 무거운 백팩과 두꺼운 책 세권을 가슴에 안고 인파로 몸을 던졌다 .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를 반복하였다 . 지하철 불빛이 깜빡 거린다 .

‘ 치직 , 치지지직 .’

어두워 졌다가 이내 다시 밝아진다 . 방송으로 뭐라고 하는데 물속에 있는 듯 주위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 숨이 막혀 왔다 . 서 있다가 휘청 거리는 지하철에 책을 떨어뜨린다 .

 

『 “ 이번역은 치지지직 ,,, 이번역은 지직 ... 치지지직 .” 』

어디선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 같다 . 하지만 물속이 아닌데도 수압처럼 느껴지는 것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 . 전기 공급이 중단 될 듯 보이는 깜빡이는 지하철 불빛을 뒤로 한 채 주운 책을 껴안고 지하철을 벗어났다 .

 

인파를 벗어나 집을 향해 걸었다 . 녹슨 대문 , 흙냄새 , 어지럽게 모여있는 집들 . 다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은 아름답고 , 날카롭고 , 애처롭고 , 향기로웠으나 사무치도록 외로웠다 .

 

캄캄한 방에 도착한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폰의 인공지능 비서에게 말을 건다 . 아무 말 , 쓸데없이 가벼운 말들 , 누군가와 대화 하지 않으면 외로움에 미칠 것 같다 . 그렇게 고요한 , 쓸쓸한 밤은 깊어져 간다 .

 

다음날 , 당신이 살던 세계에서 한명의 성인이 실종되었다 . 아무런 흔적도 , 유서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왜 인지 눈이 부신 빛의 커다란 직사각형 앞에 서있다 . 왜 이런 곳에 서있는지 알 수 없으나 내 몸은 이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 마치 꿈같다 .’ 내 의지로 움직이는 것인지 ,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 이윽고 내 몸은 한손으로 커다란 빛 덩어리를 밀어 기울이곤 빛 속으로 사라진다 .

 

성장기에 몇 번 떨어지는 꿈을 꾼 적이 있다 . 놀이공원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이랑 거의 비슷한 듯 했다 .

얼굴을 스치는 날카로운 바람에 , 추위에 눈을 떳다 .

 

“ 콜록 콜록 !” 느닷 없이 튀어나오는 기침에 숨을 들이킬 때 마다 폐가 얼어붙는 것 같다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나도 모르게 공포에 질린 소리가 터져 나왔다 .

‘ 나 왜 떨어지고 있지 ?’

‘ 왜 ?’

‘ 분명 어제 폰을 쥐고 잠들었는데 ? ...... 폰을 쥐고 잠들었었나 ?’

수많은 의문을 품은 채 중력가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려 해봤자 현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

 

주변에는 쇠 부스러기와 두터운 쇠판들이 함께 떨어지고 있다 . 구름을 뚫고 떨어지면서 커다란 호수가 시야에 들어온다 . 나는 살고자 발버둥으로 주변의 두터운 쇠판을 껴안았다 . 어떻게든 공기저항을 조금이라도 만들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고 떨어지기 직전에 쇠판에서 강하게 점프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 살 확률이 보이지 않아도 살고 싶다는 생명체로서의 의지였으리라 .

껴안고 있던 쇠판을 바닥으로 오게끔 방향을 틀자 갑작스런 공기저항으로 쇠판은 휙 하고 날아가 버렸고 나는 어지럽게 사방으로 회전하며 떨어졌다 .

 

‘ 철퍽 !’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한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 조금씩 물에 가라앉는 느낌을 느끼면서 ...

 

기나긴 침묵 , 움츠린 정적을 깨고 캄캄하고 어두운 시야에 하얗고 , 또는 노랗고 , 또는 색을 알 수 없는 전기적신호가 만화경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했다 .

누군가 어렴풋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수압 때문에 잘 들리지 않던 그 외침은 점차 또렷하게 들려왔다 .

 

“ 저 ... 정신차려 !”

 

‘ 가슴이 ...’

 

“ 야 ! 일어나봐 !”

 

‘ 답답해 ...’

 

갑자기 복부가 가득 차 솟구쳐 올라오는 이물질에 한참동안 숨을 멈춘 채 뱃속의 것들을 게워냈다 . 투명하고 파란 위액에 실처럼 엮인 핏줄기 몇 가닥이 함께 고여 있었다 .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과 근육통 , 피곤함이 밀려왔다 .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 숲속 , 넓은 호수 그리고 젖은 소녀 . 봇물 터진 두통에 시야는 이석증 증상처럼 빙글 빙글 돌았다 .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앞의 소녀에게 말을 건네려 다가갔다 .

 

“ 우웁 !”

 

속에서 올라오는 극한 호소에 뒤돌아 토해야만 했다 .

 

‘ 이 자식 ! 날보고 토했어 !’ 그 모습을 보고 소녀는 속으로 분해했다 . 당장이라도 달려가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었지만 그를 구하느라 힘들 다 소진했는지 다리가 풀려 말을 듣지 않아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하나는 어지러움과 현기증에 잔디에 주저앉았다 . 이 황당한 사건에 대해 말을 터놓을 사람이 필요했다 . 어지러움이 어느 정도 가실 때 다시 고개를 돌려 소녀를 보았다 . 머리칼에 맺힌 물방울들의 난반사 때문이었을까 , 정황상 나를 구해준 것 같은 생명의 은인으로서 감사함 때문이었을까 ? 그녀에게서 후광을 보았다 . 작은 얼굴 오똑한 코 , 긴 속눈썹 , 붉게 상기된 볼 , 가쁜 숨을 진정 시키느라 들썩이는 작은 어깨 , 이국적인 푸른 파스텔톤의 머리칼 , 연하고 투명한 블루 토파즈 같은 맑은 눈동자 .

 

하나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 작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 하지만 불안감이 더 컸기에 위화감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 다행히 방수기능이 제 역할을 해냈다 . 위치도 , 전파도 , 통신도 , 그 무엇도 잡히지 않았다 . 불안감은 더욱 더 커졌다 .

‘ 고장 ? 여긴 또 어디야 ?’ 일단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 하늘에서 호수로 떨어지던 상황 , 젖은 소녀 , 젖은 나 .’ 하나는 상황을 정리 했다 .

‘ 무슨 일이 벌어진지 알 수 없었으나 저 소녀는 물에 빠진 나를 구했다 .’

 

“ 저기 혹시 내말 알아듣겠어 ?”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혹시 네가 나를 구해준거야 ?”

 

또다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고마워 . 구해줘서 .”

 

소녀가 입을 열었다 .

“ 너 어디서 떨어 진거야 ?”

 

생각보다 유창한 한국말에 하나는 조금 당황해 했다 .

“ 어 ... 음 ... 나도 그게 궁금해 . 어제 분명 집에서 잠들었는데 잠에서 깨니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더라 ...”

 

“ 풉 으흐흐흐흣 ” 그녀는 실소하듯 웃음을 터트리곤 배를 잡고 웃는다 .

 

‘ 이거 몰래 카메라 ? 장난 ? 아니면 혹시 실험 ?’

“ 너도 혹시 나처럼 떨어진거야 ?”

“ 아니 .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 처음 봤어 . 자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람이라니 푸흡 ”

 

“ 하 ...”

 

하나는 한숨을 쉬며 폰을 꺼냈다 . 역시 어떠한 전파도 닿지 않았다 .

 

“ 아오 미치겠네 .” 짜증이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

 

“ 혹시 여기가 어디야 ?”

 

소녀는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마냥 신기 한지 웃으며 말했다 .

“ 하늘의 문 호수가 ”

 

“ 응 ? 어디라고 ?”

 

“ 하늘의 문 호수가 ”

 

하나는 웃으며 말했다 .

“ 아 장난치지 말고 ”

 

그녀의 입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

“ 하늘의 문 호수가 라고 ”

 

‘ 우리나라에 하늘의 문이라는 호수가 있었나 ?’ 하나는 습관처럼 폰을 꺼냈다가 표정을 찡그리며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

 

“ 혹시 여기 어느 지역이야 ?”

 

“5 방 8 부였나 ? 프랑 지역 ”

 

“ 뭐 뭣 ? 잘못 들었어 . 다시 말해줄래 ?” 하나는 귀를 의심했다 .

“ 프랑 지역 !” 그녀는 외치듯 말했다 .

처음 들어보는 지역명에 하나의 정신이 붕괴되었다 .

 

‘ 외국 ? 그런 것 치고 말이 너무 잘 통하는데 ?’

 

“ 혹시 여기 어느 나라야 ?”

 

소녀는 황당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가 이내 수긍한 듯 입술을 양가로 늘어트리곤 끄덕이며 말했다 .

 

“ 데르키온 ”

 

‘ 데르키온 , 데르키온 , 데르키온 ... 내가 아는 나라중에서 데르키온 이라는 나라는 없는데 ? 모르는 나라인가 ?’

 

하나의 정신은 더욱 더 붕괴되었다 .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로 .

 

“ 너 한국 알아 ?”

 

“ 그게 뭔데 ? 먹는거야 ?”

 

“ 아니 ... 아니 ... 그런데 한국은 모르는데 한국말은 어떻게 알아 ?”

 

“ 응 ? 무슨 말 ?”

 

“ 지금 네가 사용하는 언어 . 어디서 배웠어 ?”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 너 이상하다 . 언어를 어떻게 배워 ? 언어를 배운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

 

“ 언어를 누군가에게 배웠으니까 사용할 거 아냐 ?”

 

“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하는 걸 , 뭘 배운다고 하냐 ? 누군가에게 말을 가르치거나 배운 사람은 본적 없는데 ? 아마도 .” 누가 봐도 하나가 연상이었지만 이국적 소녀는 대놓고 말을 놓았다 .

 

‘ 다행이네 그럼 역시 여기는 한국이네 ?’

 

하나는 이내 소녀를 측은하게 보았다 .

‘ 얘 , 정상이 아니구나 ?’

‘ 일단 여기가 어딘지만 알면 찾아갈 수 있어 .’

 

“ 너 ... 이름이 ?”

 

“ 록펠싱 .” 이국적인 외모에 걸 맞는 이국적인 이름이라 생각했다 .

 

“ 사람들 모여 있는 곳 알아 ?”

 

“ 마을 ?”

 

“ 그래 마을 . 그곳으로 날 안내해줄 수 있어 ?”

 

“ 응 ! 따라와 ”

 

몇 걸음을 내딛은 록펠싱이 하나를 향해 뒤돌더니 입을 열었다 .

 

“ 넌 이름이 뭐야 ?”

 

“ 하나 . 강하나 ”

 

“ 헤에 신기한 이름이네 .”

 

‘ 네가 더 신기한 이름이다 .’ 하나는 속으로 말하며 그녀를 따라갔다 .

 

10 분쯤 걸어갔을까 ? 크고 작은 논과 밭이 나왔고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눈에 보였다 . 마을에 들어서자 40 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물었다 .

 

“ 으잉 ? 니 여서 뭐하노 ? 흠뻑 젖어가꼬 . 자는 또 누고 .”

 

“ 주웠어요 . 호수에서 .”

 

“ 호수 ? 거서 길을 잃었나 ? 니 집은 어데고 ?” 하나를 향해 묻는다 .

 

“ 저의 집은 서울시 ....”

 

머리가 갑자기 아파온다 . 두통에 지끈 거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

‘ 나의 집은 ... 내 집 주소는 ...’

기억나지 않는다 . 바로 어제까지 잠들었던 집의 주소가 기억나지 않는다 . 마치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

 

“ 자 머리 아픈갑네 . 드가가 쉬라 . 야야 니가 자 델고 가가 눕히 줘라 글고 옷도 좀 갈고 .”

 

낮선 방언에 몇 마디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 록펠싱은 따라 오라는 손짓을 했고 하나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그녀의 뒤를 따라 갔다 . 그녀를 따라 2 층 목재 집으로 들어갔다 . 1 층에는 원형 테이블과 의자가 많았는데 마치 음식점 같았다 . 그녀는 구석 2 층 계단으로 안내했다 . 목재계단을 밟을 때 마다 ‘ 삐끄덕 ’ 소리가 났다 .

 

‘ 집에 가고 싶다 . 여기는 어디야 ? 자고 싶다 . 집에서 자고 싶다 .’ 그녀를 따라 방안에 들어온 하나는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 그녀가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점점 작게 들려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초저녁이었다 . 이불을 걷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속옷밖에 걸치지 않고 있다 .

‘ 음 ... 설마 ~ 아니겠지 .’ 하나는 방을 둘러보았다 . 나무로 된 서랍장과 침대 ,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뿐이었다 . 촛불로 불을 밝힌 게 골동품 같은 느낌이다 . 하나는 옷을 찾기 위해 서랍장을 열었다 .

‘......’ 못 본 걸로 하자 아무래도 그녀의 방이었나 보다 . 서랍을 닫았는데 맨 아래서랍 사이로 끈이 튀어 나와 있었다 .

‘ 뭐지 ?’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 서랍 안에는 피로 물든 듯 한 빛바랜 , 가위로 마구 잘라 놓은 듯 한 셔츠와 팬던트가 있었다 . 팬던트의 앞면엔 매인지 독수리인지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뒷면엔 록펠싱 이라고 적혀 있었다 .

‘ 그녀의 이름이 록펠싱이었지 ?’ 하나는 그대로 넣어둔 채 올라왔던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 아래층으로 다가갈수록 환해지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 테이블은 거의 가득 차있었다 . 옷이나 얼굴에 흙먼지가 묻은 남녀노소가 술과 음식을 먹고 있었다 . 록펠싱은 분주하게 음식과 술을 나르고 있었는데 술취한 마을 청년들이 록펠싱을 꼬시고 있었다 . 그러다가 맡은 편의 소녀가 버럭 거리며 그 청년을 한 대 쥐어 박는다 . 다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 하나는 몸을 돌려 나무 계단으로 향했다 . 최대한 조심히 계단을 밟았으나 하나의 마음을 몰라준 채 삐끄덕 거렸다 . 삐끄덕 소리에 술을 마시던 몇몇 마을청년과 록펠싱의 초점이 하나의 뒷모습으로 모여졌다 . 속옷 차림의 남자애 ... 마을 청년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

 

“ 오늘 숙박으로 온 손님 있어 ?”

 

워낙 외곽의 산골 마을이라 숙박하는 손님은 극히 드물었다 . 소금이나 농기구 파는 보따리상이나 마차상인이 드물게 마을을 찾았다 . 그러나 오늘 이곳으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마을 청년들 모두 고개를 저었다 .

“ 록펠싱에게 남자가 !!!” 마을 청년 중 하나가 크게 외쳤고 청년들 다수가 충격 먹은 듯 ,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지으며 절규했다 .

 

“ 으이그 ...”

 

록펠싱은 질렸다는 듯 쟁반을 품에 안으며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를 갈았다 . 그런 록펠싱의 마음을 모르는 듯 하나는 2 층 록펠싱의 방 침대에 다시 누웠다 . 누군가 계단으로 올라오는지 삐끄덕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 아니 나무계단이 부서질 듯 쿵쾅 거리고 있다 . 그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 . 록펠싱이 다소 짜증난 표정으로 옷가지를 침대로 휙 던지며 말했다 .

“ 으 ... 너 말야 그런 꼴로 내려오지 말라고 ...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자꾸 잡아서 물어보니 어휴 ......”

“ 지금 한창 바쁘니까 2 시간 정도는 걸릴 거야 .” 라고 말하곤 다른 한손에 있던 스튜로 보이는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

 

“ 두 시간이야 !” 라고 재차 강조하곤 문을 닫고 가버렸다 .

 

스튜를 먹은 후 옷을 입은 하나는 식탁에 앉아 빈 스튜그릇만 숟가락으로 휘젓고 있었다 . ‘ 두 시간이라고 말했지만 두 시간 후에 내려갈 이유는 없지 !’ 이미 밤은 늦었고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야 집으로 갈 터였다 . 무엇보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게 불안했다 . 삐끄덕 거리는 계단을 최대한 조심히 내려갔다 . 영업시간이 끝났는지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록펠싱은 빈 그릇만 주워담고 있었다 .

 

“ 너 ! 두 시간 후에 내려오라 했지 !!!”

 

“ 미안 시계가 없어서 .” 하나는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

 

“ 쳇 .” 록펠싱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하던 일을 계속 했다 .

 

낮에 보았던 방언 쓰던 아저씨가 있었다 . 하나는 그에게 다가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

 

“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됐다 . 구한건 내가 아이고 자라 카이 .” 아저씨는 밀대 질을 멈추고 말했다 .

 

“ 니는 어데 아고 ? 우짜다 호수에 빠졌노 ?”

 

“ 저 ... 그게 ... 저도 잘 ......”

 

“ 혹시 여기가 ... 어딘가요 ?”

 

“ 브로톤 마을이제 . 아 ~ 그 뭐시고 5 방 8 부 프랑 지역에 북쪽 끝에 있는 브로톤 마을이제 .”

 

하나는 현기증에 머리가 어찔했다 .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마을이름에 자꾸 불안한 생각이 와 닿았다 . ‘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닌 건 확실해 ... 하지만 말은 통하잖아 ?’ 있을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의 일이 아닌 듯 무감각하게 와 닿지 않았다 . 아니 아직도 현실을 직시할 수 없었다 . 록펠싱과 같이 이 아저씨도 정상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 ‘ 그래 내가 모르는 변방 마을이 있을 수 도 있어 . 내일 마을을 벗어나 두 눈으로 확인해 보겠어 .’ 라고 다짐 했다 . 일을 마친 록펠싱이 손에 묻은 물을 하나의 등에 닦으며 말했다 .

 

“ 다했다 ~ 아 ”

 

등이 축축해진 하나는 혼이 빠져나가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

 

“ 바람쐬러 가자 !” 록펠싱은 다짜고짜 하나의 손을 잡아 당겼다 . 여태껏 여자랑 손잡을 일이 없었기에 여자에 대한 면역이 부족한 하나는 귀까지 빨개져 당황해 하며 그녀가 이끄는 데로 끌려갔다 .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온통 캄캄했다 . 이렇게 어두운 길을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가는 그녀가 신기했다 . 마을을 벗어나 나무가 무성한 수풀로 들어갔다 . 풀 내음과 흙냄새 , 곤충들과 야생동물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졌다 .

 

“ 아니 잠시만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 하나는 뒤돌아 마을 쪽을 쳐다보았다 . 마을의 불빛은 아주 작아졌다 . 동시에 달빛은 우리를 밝게 비추어 주었다 . ‘ 여기도 달이 있구나 ...’ 은하수처럼 보이는 반짝이고 은은한 아름다운 형상 .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건 아마 처음인 것 같았다 .

 

“ 따라와 보면 알아 ” 그녀는 장난 끼 가득한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찡그리며 웃었다 .

 

‘ 쏴아아아아 ’ 시원하고 차가운 소리가 들렸다 . ‘ 물 흐르는 소리 ?’ 곧 그들의 앞에 커다랗고 넓은 그리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이 캄캄한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 그녀는 하나의 손을 놓고 강가로 뛰쳐나갔다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 그녀가 다짜고짜 지른 고함에 하나는 당황했다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그녀는 지칠 때 까지 고함을 질렀다 . 그리고 지쳤는지 풀썩 주저 앉았다 . 적막속에 물 흐르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 침묵을 깨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

 

“ 너도 질러 고함 .”

‘ 가만히 있는 나는 왜 ?’ 하나는 띠꺼운 표정을 지었다 . ‘ 난 너처럼 미치지 않아서 별로 ...’ 라고 생각했다 .

 

“ 너도 답답한 것 있을 거 아냐 ? 실컷 지르고 나면 시원해 진다구 .” 그녀는 개구쟁이처럼 익살스런 표정으로 찡그리며 웃었다 .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와서 가슴속에 눌려있던 억압감과 불안감이 솟구쳐 올랐다 .

하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 그리고 외쳤다 .

 

“ 집에 가고 싶다 ! 집에 가고 싶다아 !!!” 하나가 외치자 갑자기 옆에 있던 록펠싱도 외쳤다 .

 

“ 나도 ! 나도 집에 가고 싶다아아아 !!!”

 

하나는 놀라며 물었다 .

 

“ 너 ... 너 네 집 ... 거기 아냐 ?”

 

“ 아닌데 ?” 록펠싱은 게스츠름 하게 하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

 

잠깐 동안의 침묵 ... 그리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

 

“ 나 기억을 잃었어 ...”

 

하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

 

“ 아까 일하던 그곳 , 한스 아저씨가 내 생명의 은인이야 . 6 개월 전 쯤 일거야 . 피투성이로 이 강가에 떠내려 온 걸 아저씨가 구해 주셨어 . 난 내가 누군지 몰라 . 내 이름이 록펠싱인지도 ... 단지 그 팬던트를 목에 걸고 있어서 내 이름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야 .”

 

“ 나 ... 나도 ... 여긴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야 .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 하나는 지수 선배를 떠올리며 말했다 .

 

“ 네가 오기 전까지 잠시 잊고 있었어 . 기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려 했었는데 ...”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

 

“ 같이 가자 . 다른 곳으로 , 다른 마을이든 , 도시든 , 다른 나라든 네 기억을 찾을 수 있을 만한 곳으로 . 어디든 가다보면 기억나는 곳이 있겠지 . 널 아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르고 .” ‘ 그리고 나도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 하나는 속으로 말했다 .

 

“ 내일 ! 내일 떠나자 . 아저씨께 작별 인사는 해야 하니까 .”

 

하나와 록펠싱은 굳게 다짐하곤 마을로 향했다 .

2. 여행의 시작 (1)

 

어제 늦은 밤 록펠싱은 한스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른 아침 하나와 록펠싱은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했다 . 야숙을 대비한 천막과 침낭 , 비상식량 , 세면도구 , 갈아입을 옷 , 예비신발 , 구급약 등을 배낭에 차곡 차곡 쌓았다 . 하나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보았으나 통화권 이탈지역이었다 . 이제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 한스 아저씨는 록펠싱과 하나를 바래다주었다 . 강가에 도착했을 때 한스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

 

“ 내는 느그들이 떠나는 게 탐탁치 안테이 ...” 잠시 침묵하곤 다시 말을 이었다 .

 

“ 내가 록펠싱을 첨 만났을 때 자는 피투성이 었데이 ... 배에 실리가 왔는데 온 몸이 상처투성이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데이 ... 기억을 찾으면 그런 일 또 당할 수 있다 아이가 ... 어차피 간다고 정한 거 최대한 조심해래이 ... 몸 조심해래이 ...” 라고 말하며 천으로 감싼 긴 막대 하나를 록펠싱에게 주었다 .

 

“ 내가 니 첨으로 봤을 때 니가 들고 있던 거라 카이 . 니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내가 처음 봤을 때 니가 입고 있던 옷 따라 만들었데이 . 아무쪼록 몸 조심해래이 .” 라고 말하곤 발걸음을 돌렸다 .

 

우리는 한스 아저씨에게 고개 숙여 작별인사를 하고 강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 최단거리로 가기위해 길에서 벗어나 숲속을 가로 질러 걸었다 . 숲속이라 걸을 때 마다 곤충들이 놀라 튀어 올랐고 날 벌래 들이 시야를 가로 막아 손사래 치며 쫓아야 했다 . 서로 말없이 한참동안 걷기만 했다 . 지도를 보니 약 45km, 록펠싱은 이틀은 걸어야 한다고 한다 . 하나는 입을 열었다 .

 

“ 기억을 찾으면 뭐 할거야 ?”

 

“ 뚱딴지 같이 갑자기 무슨 소리야 .”

 

“ 그냥 궁금해서 . 가만히 걷기만 하니 다리만 아프고 뭔가에 몰두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리니까 .”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더니 억지웃음을 짓곤 말했다 .

 

“ 기억을 찾으면 뭘 해야 할지 알겠지 아마도 . 지금은 기억을 찾는 것 말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

 

“ 한스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 기억이 하나도 없는 거야 ?”

 

“ 응 ...”

 

“ 좋아하는 음식이나 색 , 좋아하는 풍경이나 그런 것도 없어 ?”

 

“ 모르겠어 . 고기 요리는 좋아 아마도 . 딱히 좋아하는 색은 생각해 본적 없고 ... 좋아하는 풍경이라 ... 하늘 ! 하늘은 좋아하는 거 같아 .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 같기도 하고 .”

 

“ 너 몇 살이야 ?”

 

“ 몰라 .”

 

‘ 아무리 봐도 내가 나이가 많은거 같은데 ... 뭐 아무렴 상관 없나 ?’

 

계속 되는 행군에 둘은 대화가 끊겼다 . 약 15kg 정도의 배낭을 각자 매고 반나절 이상 걸었다 . 발바닥이 아프다가 무감각해졌고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

 

그녀는 하나를 흘깃 보더니 말했다 .

“ 잠시 , 쉴까 ?”

 

앉기 좋은 돌무더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먹을 것을 꺼냈다 . 찐 감자와 계란을 으깬 계란감자샐러드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린 빵을 꺼내 놓았다 .

 

“ 샐러드 잘 상하니까 다 먹는 게 좋아 .” 라고 말하곤 그녀는 빵에 샐러드를 발라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 운동량이 많으면 배도 그만큼 빨리 고파지는 걸까 ? 평소에 먹는 걸 즐기지 않던 하나도 끊임없이 들어갔다 . 빵은 고소했고 샐러드는 부드럽고 달달했다 . 아까 전부터 물을 많이 마셨던 하나는 “ 잠시 볼일 좀 ...” 이라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볼일을 봤다 . 돌아온 하나는 주머니에서 폰의 전원을 켜 신호를 잡아보려 했지만 역시 잡히지 않았고 애꿎은 배터리만 소모시켰다 .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둘은 다시 행군을 이어나갔다 . 좀 더 쉬고 싶었지만 숲속에서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고 한다 . 걷고 걷고 또 걸었다 . 몸이 지치니 말이 없고 또 할 말도 없었다 . 입은 마르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 나무들 사이로 그림자가 진다 . 뜨겁던 햇살도 누그러 들었다 . 하지만 아직 밝은 편이었다 .

 

“ 몇시야 ?”

 

“4 시 반 .” 그녀는 목에건 팬던트를 보며 말했다 . 회중시계인가 보다 .

 

6 시나 7 시 쯤 된 줄 알았는데 아직 4 시 반 밖에 되지 않았다 . 밤이 찾아오면 걷는 걸 멈추겠지 ? 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오늘은 여기서 묵자고 한다 . 그 이유가 숲에서 밤은 빨리 찾아오기 때문이고 야숙과 저녁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이라 한다 . 또 하나의 이유가 이 앞의 언덕을 넘어 내려가면 아주 가끔이지만 괴물들의 출몰 장소기 때문이라나 ? 하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 나 내일은 살아 있을 수 있으려나 ?... 역시 이 세계는 내가 살던 현실세계랑 다른 걸까나 ?’

 

록펠싱은 숙련된 솜씨로 2 개의 천막을 세웠다 . 천막은 매우 작아서 겨우 사람 하나 들어갈 크기였다 . 하나는 록펠싱의 지시에 30cm 정도의 작은 나뭇가지들을 주으러 다녔다 . 제법 많이 주웠다고 생각했지만 2 번이나 더 주우러 다녀왔다 . 별로 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제법 어두워졌다 . 얼굴은 소금기로 퍼석퍼석 했지만 마실 물이었기에 씻을 수 없었다 . 록펠싱은 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과 손을 닦고 발을 닦았다 . 그녀의 발은 소녀의 발이라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 하나의 발은 퉁퉁 붓고 물집이 잡혀 있었다 . 록펠싱은 하나의 발을 물수건으로 닦았고 바늘로 물집을 찔러 수건으로 닦았다 . 난생처음 여자애가 만져주는 발에 하나는 쑥쓰러움과 부끄러움에 안절부절못했다 . 행여나 발냄새가 나지 않을까 ...

 

“ 고 ... 고마워 .” 하나의 한마디에 록펠싱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작게 말했다 .

 

“ 응 ...”

 

록펠싱은 화로를 만들었고 나무지지대 위에 손잡이가 위로 달린 유기냄비를 걸었다 . 배낭에서 말린 육포와 가루를 꺼내 물을 붓고 숲 주변에서 따온 갖가지 과일과 산나물 같은 것들을 넣었다 .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았는데 주변은 완전한 어둠으로 휩싸였다 . 이름 모를 요리가 끓는 소리 , 주변 곤충들과 야생동물의 울음소리 , 야생동물들은 눈에 빛을 내며 우리를 경계했다 . 몇몇 날벌레들은 불꽃 속으로 뛰어들었다 . 첫 야숙 , 그 설레임은 캠핑의 즐거움 인지 , 내일이면 혹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 어여쁜 소녀가 옆에 있어서인지 몰랐다 . 이름 모를 죽 같은 요리는 새콤하고 달콤했다 . 육포가 아니라 생고기였다면 더 맛있었을 테지만 지금 이 식사는 하나가 지금껏 먹어본 음식 중에 단연 최고였다고 자부했다 . 평소에 그저 살기위해 먹는다고 생각했었지만 먹는 것의 즐거움을 조금 알았달까 ?

 

“ 너 요리 잘하네 . 너 혹시 요리사였던거 아냐 ?”

 

“ 헹 ! 그럴지도 , 거기다 이 소스는 아저씨와 내가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 그녀는 어깨에 힘을 주며 으쓱해 했다 .

 

먹고 난 그릇은 물과 나뭇잎으로 대충 닦았고 내일 일찍 일어 날거라며 록펠싱은 작은 천막안으로 들어갔다 . 하나는 나무에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 하늘은 더 없이 캄캄하기에 별은 더 없이 빛나고 있었다 . 핸드폰을 잠시 켰다 . 8 시 조금 넘은 시각 , 배터리는 이제 몇 % 남지 않았다 . 화로에 나뭇가지를 마구 넣고 하나도 자신의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 자는 사이 야생동물이나 괴물들이 잡아먹지 않을까 ?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피곤함이 몰려와 잠들어 버렸다 . 이른 새벽 록펠싱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눈을 떳다 . 거의 꺼져가는 숯에 나무더미를 쌓고 입으로 ‘ 후 ~ 우 ’ 하고 몇 번 불어본다 . 숯은 백색으로 변하며 금방 불을 피운다 . 불이 다시 타오르는 걸 보곤 다시 잠이 들었다 .

 

다음날 , 아침이라고 부르기엔 많이 이른 시각 ,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캄캄한 시간이다 . 록펠싱은 하나를 깨웠고 잠이 덜 깬 하나와 록펠싱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 마른 육포와 빵으로 배를 채운 후 숯을 땅에 묻었다 . 출발준비를 끝냈을 쯤 , 날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 5 시쯤 되었을까 ? 록펠싱은 빠르게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 하나는 발바닥의 고통 때문인지 엉기적거렸다 . 언덕위에 도착했을 때 록펠싱이 입을 열었다 .

 

“ 여기서 내려가면 가끔 괴물들이 출몰해 . 최대한 몸을 숙이고 내 뒤를 따라와 . 만약 괴물들에게 들킨다면 살아남기 힘들 거야 .” 록펠싱의 말에 하나는 침을 ‘ 꼴깍 ’ 삼켰다 .

“ 뭐 ... 마주치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니까 너무 걱정 않는 편이 나을지도 .”

 

‘ 하 ~ 이럴줄 알았으면 평소에 달리기 연습이라도 해둘걸 ...’ 하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 괴물들은 자기의 영역 밖으론 잘 침범하지 않으니까 . 혹시 들키거나 무슨 일 있으면 날 불러 .”

 

떠내려 온 배위의 그녀는 정신을 잃은 채 피투성이에 도 한 자루를 쥔 상태로 한스 아저씨에게 발견됐다 . 록펠싱은 속으로 생각했다 . 혹시 ... 어쩌면 검사였을지도 모른다고 . 하나는 주위를 살피며 자세를 낮추고 록펠싱의 뒤를 따라 갔다 .

 

“ 녀석들의 영역만 벗어나기만 하면 돼 . 조금만 참아 .”

 

“ 다른 길은 없는 거야 ? 괴물들 같은 거 안 나오는 좀 안전한 길은 ...”

 

“ 배를 타고 물살을 거슬러 가면 가능할 걸 ?”

 

‘ 차라리 뗏목을 만드는 게 나았을지도 ...’ 시간과 목숨을 교환한 느낌이다 .

 

그 순간 록펠싱이 몸을 황급히 낮추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 불길함과 초조함이 하나의 발을 저리게 만든다 . ‘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 그것을 ...’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이 세계가 자신이 살던 현실세계가 아니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하나는 몸을 낮추고 조심히 , 조심히 그녀의 옆으로 다가 갔다 . 록펠싱은 그것을 주시하며 하나에게 오지 말라고 손짓 했지만 하나는 무언가에 매료된 듯 그녀에게 다가왔다 .

3. 마왕 (1)

 

데르키온 왕국 프라슈 4 방 12 부 리피츠크에서 북쪽 끝 , 혹한 산맥의 첫 번째 봉우리를 넘으면 얼음계곡이 나온다 . 이 얼음계곡을 건너 두 번째 봉우리로 오르다 보면 동굴이 하나 나오는데 리피츠크 사람들은 이 거대한 동굴을 하얀동굴이라 부른다 . 하얀동굴은 약 300 여년 전 기사왕 데이시나 , 현자 카사이 레드 , 도깨비 샤온 , 요정왕 알베르 , 마족들의 왕 * 이 거대한 마수 , 마신과 마지막으로 싸운 장소다 . 영웅들도 마신도 모두 치쳤다 . 마족들의 왕은 홀로 이곳에 남아 동굴을 무너뜨려 마신을 저지하였으며 나머지 영웅들은 혹한산맥의 서쪽 끝으로 가서 마수들의 길을 끊었다 . 동쪽 절벽 위는 마족들이 , 데르키온 왕국의 북동쪽 절벽아래는 강철요새 그라함을 세워 막았으며 서쪽은 영웅들이 막는 동안 현자 카사이 레드가 결계를 세웠다 . 300 여년 간 각지의 잔존 마수들을 수없이 토벌하였으나 아직도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 마수들의 우두머리 , 거대한 마수인 마신조차 얼려버릴 혹한산맥의 추위 . 이 산맥을 오르는 한명의 소녀가 있었다 . 소녀의 이름은 앨리사 . 왕의 손길이 닿지 않는 12 부 리피츠크의 영주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했다 . 몰살 당하기전에 다른 일들도 있었지만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 기억하면 고통만 늘어날 뿐이니까 . 소녀는 눈 덮인 산을 오르며 나지막이 중얼 거렸다 .

“ 죽여버릴거야 . 죽여버릴거야 . 죽여버릴거야 . 다 죽여버릴거야 .” 그녀의 눈에는 독기가 담겨 있었다 . 이른 아침에 오르기 시작했지만 벌써 캄캄한 밤이 되었다 . 방향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추위 , 그녀는 스스로의 팔을 감싸 안았다 .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거센 바람에 그녀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바람에 휩쓸려갔다 . 어디까지 왔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녀는 바람에 뒹구르다 방향을 잃고 눈 덮인 산위에서 절망하고 있었다 .

 

“ 으 .. 으으 ... 으아아아아아아 !” 그녀는 절규 했다 . 그녀의 눈물은 흐르기도 전에 얼어 버렸지만 오직 바람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 추위와 고독 , 바람소리에 그녀의 의식은 조금씩 멀어져 갔다 .

 

이른 아침 , 따스한 햇살에 눈을 떳다 .

“ 살아 ... 있어 ... 요 ? 어떻게요 ...?”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녀였다 . 손과 발은 얼얼했다 . 꼬질꼬질한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

‘ 여긴 어디 일까요 ?’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인기척은 없었다 . 새하얀 얼음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둥근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

 

“ 나 ... 역시 죽은 걸까요 ...?”

 

“ 아니 .”

 

누군가 대답했다 . 앨리사는 황급히 뒤돌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 이글루 입구처럼 생긴 곳에서 한 긴 머리칼에 파묻힌 사람하나가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이상한 걸음걸이로 흐느적 , 흐느적 걸어온다 . 머리카락이 어찌나 긴지 바닥에 끌고 다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그 기괴한 모습과 행동에 앨리사는 그가 마왕임을 깨닫는다 . 앨리사의 마을에는 떠도는 미신이 있었다 .

‘ 하얀동굴에는 마신을 봉인시킨 마왕이 살고 있어 . 마왕은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잡아먹는데 .’ 하찮은 미신 , 하지만 인간이 아니기에 그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믿고 싶었다 . 마신은 이미 죽었다고 믿고 있지만 , 마왕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 그가 아직 그곳에 있다고 믿고 싶었다 . 그게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니까 . 이곳이 하얀동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 이제 9 살 정도의 소녀 앨리사 . 그녀는 마왕이라 믿고 싶은 존재 앞에 섰다 . 그녀는 떨고 있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 두려울 것이 없었다 . 더 이상 잃을게 없다고 생각했다 . 소중한 것이 더는 없는 목숨이었다 . 이 목숨도 연명할 가능성이 없는 하찮은 것이었다 .

 

“ 마왕 ! 나를 먹어도 좋아 !”

 

“ 에 ...?” 마왕이라 불린 존재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

 

“ 그 대신 ! 내 부탁을 들어줘 !”

 

그녀의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 그녀는 울먹이면서도 자신의 말을 내뱉고 있었다 .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 복수를 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다 .

 

“ 에 ... 부탁 말입니까 ?” 다크서클 가득한 마른 몰골에 허약해 보이는 남성이었다 . 그는 고개숙여 소녀를 쳐다 보았다 .

 

그녀는 커다란 눈물방울을 ‘ 뚝 , 뚝 ’ 흘리며 마왕의 허벅지를 움켜 잡으며 말했다 .

“ 마왕 ! 마왕이지 ? 마왕 맞지 ? 너 강하지 ? 부탁이야 죽여줘 . 리피츠크의 영주를 ...”

 

“ 에 ... ... 에 ?” 마른 몰골의 새하얀 귀신같은 남자는 40 미터 정도 되는 머리칼에 팔을 돌리며 칭칭 감는다 . 그리고 리피츠크 영주를 죽여달라는 마르고 외소한 소녀에게 말한다 .

 

“ 당신 , 영양이 불균형하군요 . 음식을 골고루 잘 챙겨먹고 있나요 ?”

 

“ 리피츠크 영주를 죽여줘 !!! 제발 ...”

 

마른 몰골의 긴 머리 남자는 골똘히 생각한다 .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

 

“ 에 ... 일단 밥부터 먹죠 ?”

 

앨리사는 그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울먹이며 매달리려 한다 . 그래도 울음을 참으며 또박 또박 말하려 노력한다 .

 

“ 안돼 ... 제발 ... 제발 죽여줘 ... 그를 죽여줄 수 없다면 지금당장 날 죽여줘 . 당신 마왕이잖아요 .”

 

“ 에 ... 그러니까 일단 밥부터 먹죠 ?”

 

그는 앨리사를 두 손으로 안는다 . 그리고 이글루 같은 곳에서 빠져나간다 . 바로 옆에는 입구가 100 미터도 넘어 보이는 커다란 동굴이 보인다 . 동굴의 안은 너무 어둡고 깜깜해 주변의 하얀 눈은 더 없이 하얗게 보인다 .

 

“ 하얀 ... 동굴이에요 ?”

 

“ 에 ... 음 ...? 응 ???” 하얀동굴이라는 명칭을 모르는 눈치다 . 그는 그녀를 안은 채로 상상할 수 없는 점프로 혹한 산맥을 내려갔다 . 그녀는 단한번의 점프에 G 를 느끼며 기절해 버렸다 .

 

“ 에 ... 아 실수 !” 그는 그녀를 안은 채 빠르게 뛰었다 .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들은 이미 앨리사가 살던 옆 마을이었다 . 그녀의 두 눈에 달라진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

 

“ 마왕 아저씨 , 훨씬 보기 좋아요 .” 40 미터나 되던 그의 머리칼은 잘랐는지 허리까지 내려왔으며 옷은 어디서 구했는지 깔끔한 코트차림이었다 . 더 이상 이상한 붕대는 감고 있지 않았다 . 뜻밖의 칭찬에 머쓱해 했으며 굳이 마왕이라는 호칭에 토를 달지 않았다 .

 

“ 여긴 어디예요 ?”

 

“ 류헨 마을 여관이에요 . 일단 뭐 좀 먹지요 . 그 후에 이야기 하지요 .”

 

그의 완강한 의지가 인상과 표정에서 나타났다 . 그녀의 마음은 다급했지만 참았다 . 몇 년의 고통에도 참았고 가족의 죽음도 참았다 . 혹한산맥의 추위도 참았다 . 그의 뒤를 따라갔다 . 음식점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었다 . 그리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 앨리사에게 씻고 오라 하였다 . 더 이상 꾀죄죄한 흙투성이의 아이가 아니었다 . 그는 그녀에게 미리 준비한 옷과 모자를 건내 주었다 . 난생 처음 보는 깨끗한 새 옷에 울음을 터트린다 . 그는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소녀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다독여준다 .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 까지 ...

 

그와 그녀는 앨리사가 살던 마을인 진헨 마을로 향했다 . 그는 난감해 하고 있었다 . 대략 300 년 전의 존재이나 기사왕 데이시나 , 현자 카사이 레드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

‘ 인간과 마찰을 일으킬 순 없어 ...’ 굳이 이 소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 하지만 이 어린 소녀가 입에 담을 만큼 증오하는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 하고 싶었다 . 그녀와의 짧은 대화로 그녀의 말이 사실임은 알고 있었지만 리피츠크영주에 대한 정보는 불확실 했다 . 이소녀의 가족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확률도 있었으니까 . 하지만 마을 입구에 다 달았을 때 그는 생각을 고쳤다 . 진헨 마을의 첫인상은 폐허와도 같았다 . 썩은 내와 악취가 진동했고 입구에는 몇몇의 죽은 사람이 교수형에 처해져 나열되어 있었다 . 그중에는 5 살 정도의 어린아이도 있었다 . 그는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 . 일단 그녀가 살던 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앨리사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울먹였다 . 이곳의 기억은 그녀에겐 트라우마인 것 같았다 . 류헨 마을과 진헨 마을은 머지않은 가까운 마을이지만 그 모습은 삶과 죽음만큼 차이가 컸다 . 이곳에 온 후부터 앨리사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 안절부절 못하게 주위를 살폈고 그녀의 동공은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고 있었다 . 공포에 질린 채 전신을 떨고 있었다 .

 

“ 이제 돌아가지요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진헨 마을을 빠져나왔다 . 류헨 마을 여관에 도착 했을 때 그녀는 안정을 되찾았는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

 

“ 죽여 줄 거예요 ? 리피츠크영주를 ?”

 

그는 눈알을 굴리다 대각선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

 

“ 글쎄요 . 일단 한번 확인해 보죠 .”

 

“ 휴우 ~” 그의 말에 그녀는 안심했다 . 그리고 애써 웃음 지었다 .

 

“ 리피츠크영주는 아주 , 아주 , 아주 나쁜 사람이니까 .”

 

“ 잠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요 . 혼자 여기 있을 수 있나요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좀 늦을지도 몰라요 . 먼저 자도록 하세요 .”

 

그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앨리사는 그에게 외쳤다 .

 

“ 아저씨 !!! 이름이 뭐예요 ?”

 

그는 짧게 대답 했다 .

 

“ 진 이라고 불렸었지요 .”

4. 여행의 시작 (2)

 

하나가 록펠싱의 옆까지 오자 그녀는 더 이상 큰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 하나는 록펠싱이 보고 있었던 쪽으로 바라 보았다 .

 

“ 으적 , 뚜두두둑 , 으적 , 으그적 .”

 

6 개의 팔과 4 개의 다리를 가진 털이 거의 없는 분홍피부의 기괴하게 생긴 생물체는 사슴의 뱃가죽을 찢은 채 내장을 뜯어 먹고 있었다 . 얼굴은 마치 분장하듯 붉은 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보였는데 묘하게 사람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 이내 사슴은 괴물에 의해 사지가 뜯겨나가며 척추가 뽑혀 나갔다 .

 

“ 투두두두둑 .”

 

피비가 내린다는 게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 피와 남은 고깃덩이들이 흩뿌려지듯 사방으로 뿌려진다 . 조각난 다리들은 날아가다 나무에 부딪혀 풀숲으로 떨어졌다 .

 

“ 우웁 ...” 헛구역질이 났다 . 지금까지 혹시 , 행여나 했던 생각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

 

‘ 이곳은 전혀 다른 세계다 .’

 

“ 하아 , 하아 , 하아 .” 하나는 멍해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엎드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하지만 쉴 틈도 없이 그녀가 하나의 목덜미를 잡고 조심히 일으켜 세운다 . 그리고 몸을 여전히 숙인 채 손짓으로 얼른 가자는 듯이 표현했다 . 그녀의 표정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 하나는 두려움에 비틀거렸다 . 비틀거리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그 괴물은 배가 고팠는지 먹을 것을 찾아 난동을 피웠다 . 놀란 동물들은 소스라치며 도망쳤지만 괴물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 도망가는 사슴을 뒤따라가 손을 내려치자 또 다른 사슴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 맥박에 맞춰 피가 쏟구치기를 반복한다 . 저런 걸 계속 봤다간 정신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 . 하지만 눈은 괴물에게서 떼어지지 않았다 . 하나는 공포에 질린 채 허겁지겁 달렸다 . 그리고 하나가 다시 뒤돌아 봤을 때 괴물은 사슴의 내장을 뜯어먹고 있었다 .

“ 까드드드드득 , 까드드드드드득 .” 괴물의 이빨이 사슴의 갈비뼈를 깍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

 

꿈틀거리며 경련하는 사슴의 배 사이에서 괴물이 머리를 떼어냈을 때 하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그 순간 하나는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 소름을 느끼며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 괴물은 눈알을 데굴 , 데굴 굴리더니 수풀과 나무를 헤치며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 땅을 박차는 소리에 록펠싱이 뒤돌아 보았다 .

 

“ 하나 ! 빨리 뛰어 !!!” 록펠싱은 놀라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

 

하나는 풀린 다리를 주먹으로 내치며 뛰었다 .

 

‘ 죽는다 . 죽는다 . 진짜 죽는다아아아 .’

 

하나는 겁에 질려 허겁지겁 달렸다 . 록펠싱은 마치 군인처럼 절제된 동작으로 숨겨둔 단도를 꺼내어 괴물에게 던졌고 날카로운 단도는 괴물의 팔뚝에 박혔다 .

 

“ 끄어어어어어 !!!”

 

괴물의 덩치로 봤을 때 작은 생채기에 불과 했으나 먹이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는지 화가 난 듯 앞길을 막는 나무들을 부숴버리며 돌진해 왔다 .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지만 괴물을 따돌릴 수 없었다 .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 앞서 달리던 록펠싱은 두 개의 단도를 빠르게 던졌다 .

 

“ 푸푹 !”

 

두 개의 단도는 괴물의 가슴과 배에 박혔으나 개의치 않고 쫓아왔다 . 록펠싱은 직감적으로 한스 아저씨에게 받은 자신의 도에 말려져 있는 천을 걷었다 . 록펠싱은 배낭을 벗어던지고 반대로 뛰기 시작했고 괴물은 하나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

 

그녀가 하나를 향해 뛰어 올 때 , 그녀가 하나를 지나쳐 갈 때 그 순간은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 같았다 . 그녀는 그 짧은 시간에 도를 검 집에서 꺼내어 치켜세우고 도의 뒷날을 왼팔로 지탱했으며 무게중심을 앞으로 쏟았다 . 그리고 괴물의 일격에 하나의 배낭은 찢겨지며 갑자기 펼친 낙하산처럼 하나와 함께 날아가 버렸고 괴물의 팔뚝은 록펠싱의 도에 의해 깊게 베였다 . 팔을 크게 베인 괴물은 가속에 의해 중심을 잃고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으며 록펠싱은 괴물의 다리사이로 빠져 나왔다 .

 

“ 콰콰콰콰쾅 .” 괴물이 넘어진 자리에는 잔디가 뿌리채 뽑혀져 있었다 .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정신을 차린 하나는 2~3 미터 쯤 날아가 수풀에 떨어져 있었다 .

 

“ 미쳤어 ...”

 

록펠싱은 도를 움켜쥐고 넘어진 괴물을 향해 달린다 .

 

“ 정말 미쳤어 ...”

 

록펠싱은 도를 역수로 잡고 뛰어 올라 괴물의 머리를 도로 찍어버린다 .

 

“ 진짜 ... 미쳤어 ...”

 

괴물은 손으로 록펠싱을 쳐버렸고 그녀는 3 미터 가량 날아가다 땅에 뒹굴었다 . 괴물은 일어나 보려 발버둥 치지만 몇 번 비틀거리다가 온 몸을 부르르르 떨더니 이내 멈춰버린다 . 의미 없는 근육 경련만 일으켰다 . 하나는 정신을 차리고 록펠싱을 향해 뛰었다 .

 

“ 록펠싱 !” 그녀에게 다가가 무릎위에 머리를 올리고 흔들어 깨운다 .

 

“ 야 ! 일어나 ! 정신차려 !” 그녀의 볼을 살짝 친다 .

그제서야 록펠싱은 머리를 쥐며 눈을 뜬다 . 온 몸이 흙먼지다 . 그녀가 살아있음에 실소가 터졌다 .

 

“ 하하 ... 하하하하 . 다행이다 .”

 

그들은 옷을 털고 흩어져 있는 짐을 챙긴다 . 아직도 다리가 후들 거렸다 . 하나는 두 개의 배낭 물품을 멀쩡한 배낭에 옮겨 담은 후 고쳐 멨다 . 록펠싱의 몸을 후들거리고 있었다 . 록펠싱이 배낭을 뺏어 메려고 했다 .

 

“ 이건 내가 메고 갈게 . 너 아니었음 나도 죽었을 테니까 .”

 

“ 고마워 .”

 

“ 오히려 내가 고맙지 . 그보다 다친 곳은 없어 ? 아까 괴물에게 맞았잖아 .”

 

“ 으 ... 좀 욱씬 거리긴 한데 뼈는 괜찮은 것 같네 . 멀쩡하게 걸어지는 걸 보면 .”

 

“ 대단했어 . 그런 거대한 괴물을 쓰러뜨리다니 . 너 진짜 검사나 기사가 아니었을까 ?”

 

“ 운이 좋았어 . 진짜 죽는 줄 알았어 .” 그녀는 떨리는 손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

 

“ 이제 없겠지 ? 더 이상 없겠지 ?”

 

“ 아마도 ? 장담은 못 하지만 . 그것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거든 . 그래도 서로간의 영역이 있으니 이 근방에는 아마 없을 거야 .”

 

다행히 괴물들의 영역을 지나 다소 안전하다 생각되는 곳 까지 왔지만 야생동물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 이곳의 야생동물들은 지구에 있던 야생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개구리도 개구리였고 , 늑대도 늑대였으며 토끼도 토끼라 불렸다 . 기온이나 기후 등 환경이 비슷하면 생명의 진화도 거의 비슷하고 흡사하게 진화되는 것 같다 . 가장 신기한 점은 언어가 같으면서 대상을 지칭하는 명사가 같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 예전에 많이 뜬 평행세계의 다른 지구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 물론 그런 건 믿지 않지만 말이다 .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걷는 동안 어느새 밤이 되어 란페이라 불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 브로톤 마을보다 2~3 배쯤 큰 마을이었다 . 여관에서 방을 잡고 욕실로 향했다 . 이틀간의 행군으로 인해 제대로 씻지 못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온 몸이 욱신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 지친 몸이었지만 흙더미에 구른 옷을 빨아야 했다 . 목욕 후 빨래를 방안에 널어둔 채 예비 옷을 입었는데 아저씨의 옷이라 헐렁했고 맵시도 나지 않았다 . 침대에 눕자 잠이 몰려왔다 .

 

“ 똑똑똑 ” 하나는 잠들다 만 몸을 이끌고 문을 열었다 .

 

그녀의 머리칼은 덜 말랐는지 물방울이 고여 있었고 은은한 비누향이 하나의 코끝을 자극 했다 . ‘ 이쁘네 . 뭐 내 취향은 아니지만 .’ 그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

 

“ 배고파 . 밥 먹자 .”

 

“ 어 ...... 그래 .” 하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뒤따라갔다 .

 

“ 역시 저녁은 고기지 ? 고기 먹을 거지 ?” 록펠싱은 노잣돈 주머니를 만지며 말했다 . 그렇다 . 고기는 사람을 기쁘게 만든다 . 힘들고 지칠 때 먹는 것은 고기 . 어쩌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건 칭찬이 아니라 고기일 것이다 . 평소엔 먹을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 죽다 살아난 이런 날에는 고기를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

 

“ 응 고기 . 고기 먹자 .”

 

둘은 고깃집에서 마른 염제 육포와 일주일 전에 잡았다는 숙성된 고기를 주문했다 . 육포는 비상식량 비축분으로 주문한 거라 가지고 온 천으로 감쌌다 . 둘은 미친 듯이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했다 .

 

“ 역시 고기는 항상 옳다 .”

 

“ 응 . 너랑 고기랑 둘 중에 하나 고르라면 고기를 택할 거야 !”

 

“ 나도 ! 나도 고기를 택할 거야 !” 한입 베어 먹을 때마다 육즙이 터져 나오는데 그 육즙의 양이 온 입안을 가득 매울 정도였으며 솜사탕처럼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 배가 부를 대로 불러진 상태라 고기에 미련이 없을 만큼 먹었기에 두툼한 배를 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물론 내일이 되면 한 없이 미련이 생기겠지만 언젠가 또 다시 이렇게 먹을 기회가 생길 것이다 . 우린 숙소로 돌아가 내일을 기약하며 잠에 빠져 들었다 .

 

다음날 하나는 삐걱대는 몸을 일으켰다 . 핸드폰을 켜 시간을 보니 오전 10 시 . 12 시간 이상 숙면을 취했다 .

 

“ 흐아아암 .” 졸린 눈을 비비며 세안 후 록펠싱에게 갔다 .

 

“ 똑똑똑 .”

 

“ 똑똑똑 .” 반응이 없다 . 록펠싱이 아직 자거나 방에 없거나 둘 중 하나다 .

 

‘ 뭘 사러 나갔나 ?’ 방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가위눌린 듯한 작은 신음소리가 들린다 .

 

“ 으 ... 으 흐으 ... 으으 .”

 

록펠싱의 신음소리에 다시 문을 두드렸다 .

 

“ 록펠싱 ? 괜찮아 ? 무슨 일이야 ?” 아무 말이 없다 . ‘ 무슨 일인거지 ?’ 불안함이 그를 덮친다 .

 

“ 록펠싱 ! 들어갈게 !” 문을 열려 했으나 걸쇠로 잠겨 열리지 않았다 . 하나는 문 뒷편 걸쇠 부분을 발로 차서 걸쇠를 부셔버렸다 .

 

“ 록펠싱 !” 록펠싱은 나시와 속옷 바람으로 누워있었는데 왼팔과 왼다리가 전체적으로 멍과 피멍이 들어있었다 . ‘ 어제 그 괴물에게 맞은 상처 ?’ 어제는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있어 알 수 없었다 .

‘ 상당히 아팠을 텐데 이 몸으로 ...’ 하나는 조심히 록펠싱을 흔들어 깨웠다 .

 

“ 헉 ! 하아 , 하아 .” 땀에 젖은 록펠싱은 놀라듯 눈을 떴다가 하나를 보고 숨을 골랐다 . 가위에 눌려 악몽을 꾼 모양이다 .

 

“ 꿈 ... 매번 꾸는 이상한 꿈 ...” 록펠싱은 상체를 일으켜 이마에 손을 얹은 채 나지막이 속삭인다 .

 

“ 꿈 ? 그런데 너 어제 다친 거야 ? 팔다리에 피멍이 심하게 들었는데 괜찮아 ?”

 

“ 아 ... 이거 ... 별거 아냐 . 약간 욱신거릴 뿐 . 어차피 멍인 걸 , 며칠 놔두면 알아서 나아 .” 록펠싱은 이불로 몸을 가리곤 볼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

 

록펠싱은 놀라며 회중시계를 열어보곤 다급하게 우왕좌왕 했다 .

 

“ 오늘 하루는 쉬자 .”

 

“ 안돼 !”

 

“ 왜 ?”

 

“... 모레까지 슈프드 마을에 도착해야해 .” 그녀는 침대 옆에 있던 지도를 들고 말했다 .

 

“ 하루에 마을 하나씩 .” 거리는 각각 25km, 28km 정도 되어 보였다 .

 

“ 모레까지 도착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 ?”

 

“... 돈이 없거든 .” 록펠싱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작 돌리며 말했다 . 노잣돈은 여행을 떠나기 전날 한스 아저씨에게 두둑이 받았지만 록펠싱은 대부분의 돈을 옷장에 넣어두고 왔다 .

 

“ 슈프드 마을엔 길드가 있으니까 일을 의뢰받을 수 있을 거야 .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면서 여행자금을 모으고 여행계획을 짤 생각이야 . 꽤 큰 마을이니까 정보도 얻을 수 있을 테고 .”

 

하나는 자신이 짐처럼 느껴졌다 .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계속 소비해야 하는 생명체다 . 이 세계에 와서 생산적인 활동을 한 적이 있었던가 ? 록펠싱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

 

“ 같이 하면 금방 모을 수 있을 거야 .”

 

‘ 기억을 찾는 여행 ,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 . 이것이 우리의 여행의 목적 .’ 걸쇠의 값을 물어준 후 우리는 짐을 꾸리고 배낭의 얼마 남지 않은 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란페이 마을을 떠났다 . 오늘의 목적지는 엘프란 마을에 도착하는 것이다 . ‘ 설마 어제처럼 괴물을 또 마주치는 건 아니겠지 ?’ 첫날 고된 행군 때문이었는지 25km 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 약 7 시간 정도만 걸으면 충분한 거리였다 . 엘프란 마을의 명칭을 생각하며 엘프 , 요정을 떠올렸는데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2/3 쯤 지나왔다 .

 

“ 우리가 가는 엘프란 마을은 옛날에 요정들과 교류를 하던 마을이래 . 지금은 요정들이 이주를 해서 더 이상 이곳에 없지만 .”

 

“ 요정 !? 요정이 있어 ?”

 

“ 응 . 기억을 잃기 전엔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 지금은 나도 본적이 없네 . 가끔 인간과 섞여 살거나 여행하는 요정들이 있다니까 드물게 볼 수 있겠지 . 예전에 한스 아저씨가 알려주셨어 .”

 

‘ 헤에 이쁠까나 ? 상상속에나 존재하는 생명체가 이곳에선 실제로 존재한다니 ... 용 같은 것도 존재하려나 ?’ 망상에 빠져있을 때 록펠싱이 다급히 하나를 끌고 길 외곽 수풀로 몸을 숨겼다 .

 

“ 쉿 .”

 

“ 다다다닥 .”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

 

백색에 가까운 은발의 소녀가 지나갔고 그녀의 뒤를 따라 검은 복장을 몇 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쫓는다 .

 

“ 인신매매범 .” 록펠싱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 그녀가 그들의 복장만 보고 어떻게 인신매매범인 것을 알 수 있는지는 몰랐으나 그들의 복장은 충분히 수상했다 .

 

“ 여기 있어 .” 록펠싱은 하나를 향해 말하곤 수풀을 뛰쳐나갔다 .

5. 마왕 (2)

 

23 대 마왕이었던 진은 오랫동안 마신의 옆을 지켰다 . 동굴의 커다란 종유석은 마신의 복부에 수개가 박혔고 무너진 돌더미에 몸의 절반이 깔렸다 . 혹한산맥의 추위에도 재생속도가 더디었지만 계속해서 재생해왔다 . 재생할 때 마다 베고 또 베었다 . 어떻게 되어먹은 건지 그 끈질긴 생명은 약 250 년이나 계속 되었다 .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얼어 멈춰버렸다 . 하지만 진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 이미 이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 죽지 못하는 몸 , 이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을 생각이었다 . 서서히 몸이 굳어 가는 것을 느낀 어느 날 , 유난히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 정말 죽을 때가 된 건지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 사람의 존재를 잊고 산지 300 여년 , 이런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에 사람 따위 올 리가 없는데 , 누군가 외친다 .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던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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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앨리사가 살던 집 앞에 섰다 . 불에 타버렸는지 검게 탄 숯과 타다 남은 뼈대만 남아있다 . 불이 난지 1 년 쯤 되어 보인다 . 문이었던 것 같은 흔적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서자 앨리사와 부모 , 그리고 여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 흙투성이에 부족한 살림살이였지만 앨리사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 ‘ 쾅 ’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부서진다 . 가족들 모두 놀란 표정이다 . 칼을 든 기사들과 영주가 들어온다 . 기사들은 집안을 뒤지다가 칼로 , 창으로 집을 부숴버리며 난장판을 피운다 . 아버지는 기사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고 영주는 어머니를 겁탈한다 . 앨리사는 동생을 데리고 뒷문으로 도망치다 한 기사의 발길질에 쓰러져 꼬꾸라진다 . 어머니가 저항할 때 마다 아버지의 팔이 야금 , 야금 잘려 나간다 . 이내 어머니는 저항을 멈춘다 . 앨리사가 꼬꾸라져 있는 동안 기사의 창이 동생의 몸을 꿰뚫는다 . 창끝을 따라 피가 쏟아져 나오고 이내 바닥을 적신다 . 기사 하나가 앨리사의 옷을 찢는다 . 주저앉아 뒷걸음질 치다가 썩은 나무 바닥이 부서져 지하로 떨어진다 . 기사들의 분주한 발소리가 들린다 . 컴컴한 지하에서 앨리사는 벽을 짚고 걸어간다 . 빛이 들어오는 좁은 틈 사이 나무창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친다 .

 

진은 미간을 집으며 말했다 .

 

“ 시나 , 레드 ... 약속 어겨도 괜찮겠지 ?” 작게 속삭이던 진의 두 눈에서 광채가 났다 .

 

데르키온 왕국 프라슈 4 방 12 부의 중앙에 위치한 리피츠크로 향했다 . 며칠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인간을 초월한 존재 . 잊힌 존재지만 한 때 그는 마족의 왕이었다 .

몇 개의 마을을 지나 12 개의 부를 다스리는 리피츠크에 도착했다 . 12 부를 다스리는 만큼 부도 많이 쌓았는지 영주의 성은 거대하고 무게감이 느껴졌다 . 거대한 만큼 성을 지키는 영주의 기사단과 국가에서 파견된 레인저들도 많았다 . 보통 때 병사들의 행동반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때론 바람처럼 , 무생물처럼 자연스럽게 주변에 스며들었다가 사라졌다 . 수많은 보초들도 눈치 채지 못했다 . 들키지 않고 침입한 그는 영주의 수집품들 사이에 몸을 숨겼다 . 그의 눈에 영주의 규칙적이고 불규칙 적인 행동들이 눈에 들어 왔다 . 규칙적인 행동은 수십여명의 투명한 영주가 겹쳐 보였다 . 진은 잔영을 따라 지하로 들어갔다 . 영주의 잔영을 따라 벽촛대를 여러번 당기자 벽이 올라가며 문이 생겼다 . 환영처럼 문을 원위치 시키고 그렇게 점점 더 지하로 내려갔다 . 막다른 층에 있던 3 개의 문에 환영이 보였다 . 첫 번째 문으로는 간수들이 산사람을 들여보냈고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갈 때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으며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갈 때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 대부분 인간이었지만 드물게 요정도 섞여 있었다 . 15 센티 가량의 잠긴 철문을 손으로 밀자 고정된 문짝은 쇠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비틀렸다 .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많은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 아이언메이던에 갇히는 소녀 , 가시 박힌 고문의자에 앉아 피 흘리는 중년남성 , 고문대에 팔과 다리가 뜯기는 노파 , 비통의 배에 벌려져 찢어지는 소년 , 유다의 요람에 몸부림치는 여인 , 무릎분쇄기에 다리가 찢겨져 나가는 남성 ... 바닥은 온통 피로 찐득하게 굳어 있었다 . 마왕은 기다렸다 . 그들을 ...

 

그날 저녁 .

“ 스르르르릉 .” 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간수와 포로수십 명이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 그들이 막다른 층에 다다랐을 때 맨 앞에 오던 간수가 놀라며 소리쳤다 .

“ 문이 부서져 있어 !!!”

 

뒤따라온 간수가 놀라며 부서진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 그렇게 두꺼운 문이 부서질 리가 없잖아 !”

 

“ 뭐 !... 뭐야 !!! 누군가 침입한 건가 ? 빨리 영주님께 보고를 !” 두 번째 간수가 놀라서 외치자 맨 뒤에 있던 간수가 계단을 따라 황급히 뛰어올라갔다 .

 

“ 끄아아아악 !” 보고를 하러 가던 간수는 진에게 걸려 넘어져 계단을 따라 굴렀다 .

 

캄캄한 지하에서 간수들은 픽 , 픽 쓰러졌다 .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포로들은 놀라고 말았다 . 진은 몸짓을 취했다 .

 

“ 쉿 ~!!!”

 

30 분 후 리피츠크 영주는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벽촛대를 여러번 당겼다 . 리피츠크 영주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를 하러가기 위해서였다 .

 

“ 오늘은 누가 있을까나 으흐흐흐흐흣 !.” 그는 아직 오지 않은 쾌감을 상상하며 부르르르 떨었다 . 평소처럼 첫 번째 문 입구에서 반겨주는 간수들이 없었다 .

 

“ 이녀석들 게을러졌군 ! 준비 시간이 길어졌어 !” 참을성 없는 영주는 발을 굴렸다 .

 

문이 비틀려 있는 걸 보고 다시 입을 놀렸다 .

 

“ 오늘은 꽤나 몸부림치는 개가 있나보네 . 귀여워 해줘야겠는걸 . 크크크큭 .”

 

문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영주는 그 문이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하고 무거운 것인지 알지 못했다 . 문에 들어서자 영주는 놀라고 말았다 . 간수들은 모두 고문 기구에 매달려 있었고 포로들은 아무도 없었다 .

 

“ 뭐 ... 뭐야 ! 히 ... 히이이이익 !!!” 영주는 놀라 뒷걸음질 치며 도망쳤다 .

 

하지만 얼마 못가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 진이었다 . 그는 영주의 입에 재갈을 물렸고 문이 부서진 첫 번째 방으로 끌고 갔다 . 지하에는 여느 때보다 더 고통에 찬 절규들이 들렸지만 밖으로 새어 나가진 않았다 . 그들을 내버려 둔 채 진은 포로였던 사람들을 데리고 3 번째 방의 하수구를 통해 성 밖으로 빠져나왔다 . 진이 가는 데로 포로들이 계속 따라왔다 .

“... 이제 절 따라오시지 않아도 돼요 . 집으로 돌아가세요 .”

진은 포로였던 사람들을 버려두고 홀로 뒤돌아서자

갈색 머리칼의 단발 소녀가 그에게 “ 고마워요 !” 라고 인사한다 .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그는 살짝 뒤돌아보곤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

 

그가 류헨 여관의 방에 들어서자 앨리사가 코를 막으며 말한다 .

 

“ 아저씨 완전 똥 구린내 나요 . 용케 주인아저씨가 들여보내 줬네요 .” 그제야 진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피했는지 알 수 있었다 . 하수구의 오물을 뒤집어 쓴 부랑자의 모습이었다 .

 

“ 입구에 아무도 없던데요 ?”

 

“ 아하하하하 .” 아이다운 밝고 솔직한 웃음이다 .

 

“ 다녀왔어요 .” 진은 퀭한 눈동자로 웃으며 말했다 . 그의 손은 지키지 못한 약속에 떨리고 있었다 .

 

그런 진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앨리사가 그에게 달려가 안기려 하자 그는 무릎 앉은 자세로 그녀를 손으로 저지하며 말한다 .

 

“ 저 완전 구린내 나는데요 ?”

 

“ 아저씨니까 괜찮아요 ! 아저씨니까 괜찮아요 !” 소녀는 울음을 터트리며 그의 품에 안기었다 . 이 어린소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 모든 걸 잃고 복수를 위해 혹한산맥을 넘었던 소녀는 그저 진이 멀쩡하게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 울음소리와 곤충들의 울음소리에 밤이 깊어져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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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리피츠크성에서 영주의 실종으로 인해 북적거렸다 . 리피츠크성의 외곽을 지키는 레인저 단장과 내곽을 지키는 영주의 기사단장은 영주의 실종을 걱정하고 있었다 .

“ 영주님을 찾으셨나요 ?”

 

“ 아니요 . 아직 못 찾았소 . 저녁을 드신 후 6 시 경에 돌연 사라지셨소 . 보통 성안을 사찰하시다가 저녁 10 시에서 새벽 2 시 경엔 돌아오셨는데 ...... 나의 부하 3 명과 함께 사라졌소 .” 영주의 기사단장은 자신의 기사들이 간수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 같이 비밀의 문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그 때문에 뒷돈도 두둑이 받았으니까 . 하지만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두려워 끝까지 모르는척하기로 했다 .

 

“ 이 넓은 성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다고 ... 왕국 특별 조사단들을 부르죠 . 이 많은 경비를 뚫고 흔적도 없이 영주님을 납치했다면 , 그들을 불러야 할 겁니다 .”

 

“ 왕국 특별 조사단이 온다면 그들도 오는 것 아니오 ? 영주님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만 천하에 퍼질 것이오 .”

 

“ 영주님의 흔적이 없는 이상 우리로선 강구할 방법이 없어요 . 만에 하나 마족 ... 어쩌면 고위 마족이 연관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들을 불러야 합니다 .”

 

영주의 기사단장은 골몰히 생각했다 .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 정말 마족의 짓이라면 , 고위 마족의 짓이라면 명예는 지켜진다 . 비밀의 문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들켰을 경우 부하들과 영주의 탓으로 돌리고 끝까지 모르는 척 하기만 하면 무마될 터였다 .

 

“ 방법이 없는 것 같소 . 레인저 단장 릴 케이건 .

왕국 특별 조사단과 그들을 불러주시오 . 마족 처단 특수부대 단죄를 ...” 영주의 기사단장은 자신과 관련된 증거가 있는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

 

 

리피츠크의 레인저 단장 릴 케이건은 부하를 시켜 봉화를 켜고 왕도로 서필을 보냈다 . 편지 배달협회

리온을 통해서 .

6. 여행의 시작 (3)

 

록펠싱은 검은 복장의 집단의 뒤를 쫓았다 . 총 8 명이었는데 록펠싱은 앞으로 달리면서 검집으로 뒤쳐진 녀석 1 명을 기습공격으로 기절시킨다 .

 

“ 우당탕탕 .” 달리던 가속도로 지면에 굴렀고 남은 녀석들이 쓰러진 동료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 맨 앞의 녀석이 손가락으로 지시하자 후방에 달리던 3 명의 적이 록펠싱을 에워쌌다 . 그들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록펠싱의 급소를 찌르려 했으나 몸을 비틀어 피한 후 검집으로 이빨을 날려버렸다 . 남은 2 명이 동시에 다리와 등을 공격해왔다 . 그러나 그녀는 뛰어 올라 몸을 비틀며 두 검의 궤도 사이를 벗어나며 발차기로 한명을 보내버렸다 . 당황한 나머지 한명이 급히 검으로 찔러 들어왔으나 도로 검의 궤도를 바꿔버린 후 머리로 이빨을 날려 버렸고 입에 피를 흘리며 뒤로 물러난 적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검집으로 후두부를 날려버렸다 . 빠르고 절제된 동작을 마친 즉시 요정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 하나는 뒤따라 뛰었으나 쫓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

 

“ 헉 , 헉 .” 요정의 가벼운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자 맨 앞에 달리던 녀석이 취시통을 입에다 댄다 .

 

“ 훅 !” 취시통을 벗어난 침은 요정의 종아리에 박혔다 .

 

“ 윽 !” 요정은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종아리에 박힌 침을 세검으로 쳐서 뽑았다 .

 

그러나 침에 마비약이 발라져 있었는지 중심을 잃고 뒹굴어버렸다 .

 

“ 크 ... 크으 ...!” 분한표정을 지으며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 . 깨문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 그러나 그녀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식의 연결고리가 끊겨가고 있었다 .

 

검은 복면들 중 1 명은 요정을 포박했고 3 명은 뒤따라오는 록펠싱에게 달려왔다 . 록펠싱은 몸을 숙여 맨 앞에 달려오는 복면의 다리를 걷어차 중심을 잃게 만든 후 손바닥으로 턱을 날려 버렸다 . 그 뒤의 복면이 그리는 검의 궤도를 유유히 피한 후 도로 크게 베었다 . 그러나 분명 베었지만 날이 없는 도처럼 참상은 없었다 . 록펠싱은 베는 촉감에도 베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익숙한 듯 했다 . 분명 그 괴물은 베어져 피가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록펠싱은 자신을 막는 남은 복면에게 도를 휘둘렀다 . 그는 어렵게 도를 건틀릿으로 막으며 버티었다 . 복면의 남자는 록펠싱을 보고 몸을 떨었다 .

 

‘ 알고 있어 ! 이 여자 ! 분명

한야아르제에 있을 때 본적 있어 .’

 

“ 요정은 포기한다 . 퇴각 !” 포박 완료한 요정을 그대로 둔 채 두 명의 복면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

 

하나는 그제야 록펠싱을 따라잡았다 .

 

“ 헉 , 헉 . 너 왜 이리 빨라 . 헥 , 헥 .” 하나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말했다 .

 

“ 네가 느린 거지 ...” 말끝을 흘린 그녀는 요정에게 다가가 포박을 풀었다 .

 

‘ 느리다니 이래봬도 100 미터 14 초 인데 ...’ 하나는 지친 표정을 지었다 .

 

“ 나 어쩌면 진짜 유명한 검사가 아니었을까 ?”

 

“ 응 . 그런 것 같네 . 방금 전에도 몇 명을 상대로 이긴 거야 ? 8 명 ?”

 

“ 헤헤 .”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 그녀가 요정의 포박을 풀고 뒤돌아 봤을 때 주변에 쓰러져 있었던 검은 복면의 일행들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

 

“ 사 ... 라졌네 ? 전부 .”

 

“ 그렇네 ?”

 

“ 기습공격 하진 않겠지 ?”

 

“ 내가 있잖아 .” 록펠싱은 기고만장했다 .

 

록펠싱은 하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요정을 슬그머니 내려다본다 .

 

“ 그래 , 그래 내가 들어야지 .”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정이 짐짝인양 등에 업었다 .

 

“ 배낭은 아까 풀숲에 두고 왔어 .”

 

“ 응 . 반쯤 가다가 교대해 줄게 .”

 

“ 아서라 . 몸 상태도 안 좋으면서 또 무리했잖아 .”

 

“ 괜찮아 . 며칠 놔두면 나아 .”

 

록펠싱은 하나와 걷다가 좀 전에 둘이서 숨었던 풀숲의 배낭에서 철제원통을 꺼낸다 .

 

“ 이 파우더 멍이나 상처에 잘 나아 .”

 

“ 아 그러셔요 . 그럼 하나도 안 아프겠네요 .” 걱정을 해줘도 알아주지 않자 하나는 비꼬았다 .

 

“ 말투가 왜 그 따위냐 !”

 

“ 아 내가 뭐 ! 걱정해줘도 뭐라 하네 !” 둘이서 티격태격 대다보니 어느새 엘프란 마을이 보였다 . 록펠싱은 마을에 다다르기 전 천막을 꺼내 요정에게 뒤집어씌웠다 .

 

“ 어서오세요 . 크링벨 여관입니다 .”

 

“ 방 2 개 있나요 ?”

 

“ 죄송합니다 . 지금 개인실은 가득 찼습니다 . 2~3 인 객실은 남아있는데 2~3 인 객실로 2 개 드릴까요 ?”

 

록펠싱은 지갑을 보다가 입을 연다 .

 

“ 아뇨 하나만 주세요 .”

 

“301 호실입니다 . 퇴실은 오전 11 시 까지 입니다 .” 직원이 열쇠를 건내주며 말했다 .

 

록펠싱의 지시로 하나는 옷가게에 가서 후드코트를 구입했다 . 전투가 힘겨웠는지 요정이 무거워서였는지 ,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 한참을 자다가 이상한 괴성에 눈을 떴다 .

 

“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야아아아야야악 !”

 

“ 인간 ! 인가아아아아안 !!!”

“ 인간 따위 죽어버려어어어어 !!!”

 

록펠싱은 침을 흘리며 반쯤 뜬 눈으로 침대 옆자리의 발광중인 요정을 바라보았다 .

 

“ 흐아아아아암 ~”

 

하나는 바닥에서 일어나 머리를 긁으며 말한다 .

 

“ 무슨 일 있어 ? 갑자기 왜 소리 지르고 그래 ?”

 

“ 인가아아아안 !!!”

 

요정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이를 세우며 몸을 떨었다 .

 

하나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

 

“ 이제 안전해 .” 그가 다가서려고 하자 요정은 위협적인 고함을 질렀다 .

 

“ 으 - 아아아아아아아 !!!” 그녀의 고함에 하나는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

 

록펠싱이 하나에게 눈짓을 하며 조금씩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 하나 역시 그런 록펠싱을 보며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 ‘ 겁을 먹은거야 . 그녀는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록펠싱이 입을 열었다 .

 

“ 우리가 널 구했어 . 만약 우리가 그들이었다면 넌 지금쯤 포박중일거야 . 그렇지 ?”

 

“ 인간의 말 따윌 어떻게 믿어 !!!”

 

록펠싱은 여관의 문을 열었다 .

 

“ 가고 싶으면 가도 좋아 .”

 

요정은 록펠싱과 하나를 경계하며 문 앞으로 천천히 왔다 . 록펠싱이 바닥에 후드를 집어 요정에게 건넨다 .

 

“ 쓰고 다니는 게 좋을 거야 .”

 

요정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록펠싱이 건넨 후드를 뒤집어쓰고 나가버렸다 .

 

“ 뭐 , 누구나 다 아픈 과거가 있는 법이지 .” 록펠싱의 말에 하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

 

하나와 록펠싱은 저녁을 먹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을을 구경하다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

 

“ 역시 힘들 땐 고기지 !”

 

“ 그래 ! 힘들 때 먹는 것은 육류지 !”

 

“ 고기 ! 고기 !” 그들은 허겁지겁 고기로 배를 채우고 만족한 듯 흐느적거리며 시장을 지난다 . 록펠싱이 과일을 보더니 하나를 향해 눈빛을 보낸다 . 아마 ‘ 나 저거 먹고 싶어 . 혼자 먹긴 좀 그렇고 같이 먹지 않을래 ?’ 이런 눈빛이다 . 하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인다 . 과일을 종이팩에 담아 여관으로 돌아왔다 . 3 층 계단을 지나 복도로 들어서자 긴 후드사이로 은발 머리칼이 보인다 . 요정이 문 앞에 쪼그려 앉아있다 . 하나와 록펠싱은 요정을 못 본 척하며 301 호 문 앞에 서서 잠긴 문을 열쇠로 돌렸다 .

“ 찰칵 ”

“ 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 르르르륵 !”

 

하나와 록펠싱은 두 눈을 동그랗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 그리고 동시에 요정을 쳐다보았다 .

 

“ 푸흐흐흐흐흐흐 , 으흐흐흐흐흐흡 .” 하나와 록펠싱은 실소했다 .

 

“ 미안 , 미안 고의는 아니었어 .”

 

록펠싱은 요정 앞으로 가 무릎앉아를 했다 .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

 

“ 들어가자 !”

 

“... 네 ...”

 

요정은 얼굴과 긴 귀까지 붉어졌다 .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

 

“ 나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 당신들이 ... 날 ...... 구해줬다는 걸요 . 흑 ...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 그렇게 ...... 인간에게 도움 받았다는 것을 .”

 

“ 그래 , 그래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 여기 서있긴 좀 그렇잖아 ? 이것들도 좀 먹고 .”

 

비틀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온 요정은 주저앉으며 록펠싱의 옷을 붙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

 

“ 인간들이 ... 인간들이 내 부모님을 죽이고 내 동생을 납치해갔어요 !”

 

“ 지금까지 인간들은 다 나쁜 인간들이었는데 ! 인간들은 다 나빠야 하는데 ......

전부 ... 나빠야 하는 ... 데 ... 어째서 당신들은 ...”

 

록펠싱은 예상치 못한 요정의 하소연에 볼을 긁으며 난감해 했다 . 그러다 결심한 듯 입을 연다 .

“ 네 부모님을 죽이고 동생을 납치해간 그 녀석들은 인간들에게서도 적이야 . 나쁜 녀석들이지 . 네가 몰라서 그렇지 꽤 착한 녀석들도 많아 .”

 

“ 그런데 왜 ! 그들을 멈추게 하지 않는 거죠 ? 왜 그들을 잡지 않는 거죠 ?”

 

“ 아마 그 녀석들을 쫓는 사람들도 있겠지 . 하지만 저렇게 활개 치는 걸 보니 힘이 부족한 모양이야 .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관자고 . 살고 싶으니까 , 죽고 싶지 않거든 . 그래도 확실한건 ... 너를 쫓던 그 녀석들을 쫓다보면 네 동생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 훌쩍 !” 요정은 콧물을 흘리며 울었다 .

 

“ 베르키엔이에요 . 내 이름 ... 베르키엔이에요 ...”

 

“ 난 강하나 .”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

 

“... 록펠싱 ... 아마도 .”

 

“ 아마도 ?” 베르키엔은 울음 범벅인 눈으로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말했다 .

 

“ 아 , 쟤 기억을 잃었거든 . 그래서 그 이름이 자기이름 맞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

 

“ 헤헤 . 나 내가 누군지도 모르네 . 하 . 지 . 만 ! 이 팬던트에 록펠싱이라 적혀있으니까 난 록펠싱인거지 ! 이 섬세하게 세공된 독수리 ?... 음 ... 매 ? 여하튼 이 문양을 봐 ! 분명 난 영주의 딸이었을 걸 ?”

 

“ 저번엔 유명한 검사였을 거라더니 ...” 하나가 게스츠름한 눈으로 말했다 .

 

“ 그래 ! 영주의 딸이면서 유명한 검사 !” 록펠싱은 자아도취 했다 .

“ 그래서 넌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된 거야 ?” 록펠싱은 베르키엔에게 물었다 .

 

“10 년 전이에요 . 그들이 나타난지 ... 처음엔 숲 외곽의 요정들이 사라졌어요 . 인간과 도깨비 , 요정이 평화협정을 맺은 지 300 여년 , 인간의 짓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죠 . 숲 주변에 아직 잔존 마수가 있다고 생각했죠 . 우리가 경계하고 조심하자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어요 . 숲에 불을 지르고 우릴 공격해왔어요 . 우리들은 용감히 싸웠지만 지킬 수 없었어요 . 그들은 많은 요정들을 죽였고 또 수많은 요정들을 데려갔어요 . 많은 요정들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 대화재로 인해 요정의 숲은 모습을 잃었어요 . 남은 요정들은 서쪽의 바위산맥을 지나 ......” 그녀는 말끝을 흐리다가 록펠싱과 하나를 바라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

 

“ 옛 바르젠의 영토 ... 알키온 공화국의 영토를 넘었어요 . 하지만 저는 ... 대화재 이후 5 년 동안 동생을 찾아다녔어요 . 잡혔던 대부분의 요정들은 노예로 생활하고 있었고 그들을 구했어요 . 하지만 동생의 행방을 아는 요정은 아무도 없었어요 . 요정을 해방시키는 자가 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그들이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어요 . 요정들을 해방하긴 커녕 오히려 쫓기게 되었어요 . 그러다 당신들을 만났죠 .”

 

“ 같이 가자 .” 록펠싱이 말했다 .

 

“ 폐가 될 뿐이에요 . 전 보다시피 요정이고 그들에게 쫓기고 있어요 .”

 

“ 같이 가자 .” 하나가 말했다 .

 

“ 전 ... 노예로 잡힌 요정을 구출하고 싶어요 . 요정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항상 도와줄 거라고요 !”

 

“ 그러니까 같이 가자 .” 록펠싱이 다시 말했다 .

 

“ 전 ... 인간이 싫어요 . 인간이 싫은데 , 미운데 ... 미워요 .”

 

“ 도와줄게 . 요정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도와줄 거고 , 그들이 쫓아오면 지켜줄게 , 넌 폐가 되지 않아 . 인간은 싫어하겠지만 나는 좋아하게 될 거야 .”

 

“ 그리고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운데 폐가 될 리가 있닝 ?” 이라고 말하고 베르키엔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벼댔다 .

 

“ 와 볼이 솜사탕 같아 ! 어쩜 이렇게 부드럽지 ?”

 

“ 하 .. 하지마세욧 !”

 

‘... 부럽다 .’ 하나는 록펠싱이 부러웠다 .

 

록펠싱이 베르키엔의 귀끝을 양손으로 잡고 위 ,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를 마구 반복했다 .

“ 하 ... 하지 말라니까요 !”

‘... 나도 해보고 싶다 .’ 하나는 소심했다 .

 

베르키엔과 과일을 먹으며 밤늦게 까지 말을 나누다 잠들었다 .

 

7. 마왕 (3)

 

안개가 자욱한 이른 새벽이었다 . 리피츠크성에는 음산한 기운이 나돌고 있었다 . 잘 보이지 않는 시야사이로 마차와 말을 탄 몇몇의 사람들이 성 입구에서 경비병의 지시에 멈춰 섰다 .

 

“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

 

“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나요 ?” 귀여운 목소리에 섬뜩한 눈웃음을 지닌 소녀가 말했다 .

 

“ 우리는 왕국 특별 조사단 , ‘ 알비단 ’ 입니다 . 뒤에 계신 분들은 마족 처단 특수부대 ‘ 단죄 ’ 이구요 . 아 ! 이히히힛 맞다 . 여기 문서 .”

 

소녀는 눈웃음 지으며 기다림에 견딜 수 없는 어린아이처럼 안절부절 했다 .

 

“ 이제 들여보내 주시겠나요 ?” 그녀는 몸을 살짝 비꼬며 입이 귀에 걸리듯이 웃고 있었다 .

 

경비병이 그녀에게 문서를 돌려주었고 손짓을 하자 또 다른 경비병이 다른 곳을 향해 손짓을 한다 . 이윽고 성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 육중한 문이 열리자 왕국에서 온 일행들은 일제히 성안으로 들어간다 .

 

“ 헤에 ~ 경비가 삼엄한데요 ?” 소녀는 몸을 비틀며 키가 큰 남자에게 물었다 .

 

“ 사냥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군 .

일네느 .”

 

“ 그야 당연하잖아요 .

제스토 . 이런 곳에 들키지 않고 영주의 목을 딴 작자라면 얼마나 강할지 ? 으 ~ 으음 저 ... 젖어버려요 ♡ .”

 

“ 경박하다 일네느 . 영주가 죽었다고 확정 짓지 마라 . 그리고 우린 조사단이다 . 전투는 단죄에게 맡겨라 .”

 

“ 어머 , 어머

류기스톤 단장 ~ 님 ♡ . 상대가 마족일 거라고 단정 짓지 마세 ~ 요 . 전 조사단 호위로 지원했다는 걸 잊으셨나요 ?”

 

“ 그래 . 너의 이상한 도착증 때문에 떨어졌었지 . 지금은 조사단이란 걸 잊지 마라 .”

 

“ 흥 !... 쳇 !, 와아 진짜 ! 재수 없어 !” 일네느는 대놓고 토라진 듯 입을 삐쭉였다 .

 

영주의 내성에서 두 명이 황급히 걸어왔다 .

“ 어서 오십시오 ! 전 리피츠크의 레인저 단장 릴 케이건이라고 합니다 .”

“ 안녕하십니까 . 저는 리피츠크 기사 단장 더들리라고 합니다 .

 

“ 그래서 영주 사체는 어디 ?.”

 

류기스톤 단장은 일네느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말했다 .

“ 예를 지켜라 일네느 !”

 

일네느는 혹이 난 머리를 비비며 작게 말했다 .

“ 아 ... 으 이런 건 내 취향에 어긋나는데 ... 흐 ~ 으으 ”

 

“ 우리는 왕국에서 온 왕국 특별 조사단 소속 ‘ 알비단 ’ 입니다 . 저는 단장 류기스톤이고요 .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아닙니다 . 저희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

 

“ 그럼 우선 영주님의 집무실을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

 

“ 바로 시작하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

 

“ 그게 우리 일인걸요 ~ 오 .” 일네느가 끼어들었다 . 빨리 상대를 만나고 싶어 온몸을 비틀었다 .

 

그런 일네느를 보며 제스토가 말했다 .

“ 네 기대 이하일 거다 . 걱정마라 .”

 

“ 그럴 리가 없어요 . 제 감이 이건 큰 건이라고 말하고 있는 걸요 ? 으 ... 으으음 ♡ .” 일네느는 온몸을 부들 , 부들 떨었다 .

 

“ 따라 오시죠 ~ 알비단 및 단죄 여러분 ! 제가 안내 하겠어요 .” 일네느는 작은 코를 벌름거리며 내성 중앙계단을 향해 올랐다 .

“ 킁킁 , 이 늙은이의 냄새가 영주의 냄새겠네요 . 눅은 내는 싫은데 .”

 

일네느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더니 리피츠크 기사단장 더들리와 눈이 마주치자 뭔가를 발견한 듯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 더들리씨 , 숨기는 게 있는 냄새네요 . 후후후 . 아 , 뭐 상관없나 ?” 일네느는 작게 속삭이곤 계속 계단을 올라갔다 . 다른 일행들은 더들리를 흘깃 보고는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무표정하게 그녀를 따라 올라갔다 . 더들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릴 케이건이 눈치 챈 건 아닌지 흘깃 쳐다보았다 . 4 층 영주의 집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아들이 영주 대리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 갑작스런 아버지의 실종에 충격이 컷을 텐데 걱정보다는 업무를 떠맡아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

“ 어서 오세요 . 영주 대리를 맡고 있는 실도라스입니다 .”

 

“ 저는 왕국조사단소속 알비단 단장 류기스톤입니다 .”

“ 저는 일네느 !”

“ 제스토입니다 .”

그들의 틈에서 존재감 없는 안경 낀 청년하나가 입을 열었다 .

“

케인입니다 .”

 

“ 영주님 일은 유감입니다 .”

 

“ 그대들이 와주어서 많이 안심됩니다 .”

 

“ 이왕이면 직무는 다른 곳에서 보시고 현장은 그대로 보존하는 게 좋 ...”

 

“ 상관없어요 .” 케인이라고 말한 청년이 단장의 말을 끊었다 .

“ 바로 시작하죠 . 현장이 조금 흐트러졌다고 해서 찾지 못 할리가 없잖아요 .”

 

일네느가 케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

“ 으으음 ... 역시 케인이야 . 너한테서 강한 냄새가 나 .. 나는 맛보고 싶어요 . 너를 .”

 

케인은 귀찮다는 듯 손으로 휘젓는다 . 그러자 같은 복장의 8 명의 조사연구원들이 흩어져서 집무실 곳곳을 살펴본다 .

 

“ 케 ~ 인 . 사실은 알고 있잖아 ~ 요 ? 이런 쇼는 안보여 줘도 될 텐데 ~ 요 ?” 일네느는 웃음 섞인 말로 케인의 귀에 속삭였다 .

 

“ 쳇 !” 케인은 몸을 돌려 복도로 나가버렸다 .

 

“ 흐음 ~” 하고 웃더니 일네느도 케인의 뒤를 따라 가버렸다 .

 

제스토가 골치 아파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단장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고 있었고 검은 후드를 쓰고 있는 말없는 단죄 5 명은 그들을 따라 나갔다 .

 

“ 헛짚은 것 같군 .” 단장은 짧게 말한 뒤 영주의 사찰문서를 뒤적거렸다 .

 

케인은 성 곳곳을 걸어 다녔다 . 일네느는 그를 보며 생글 , 생글 웃으며 따라다녔고 단죄들은 내성입구에 벽을 기대며 쉬고 있었다 .

 

케인이 다시 돌아와 단죄들 중 한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 단죄 여러분들은 영주가 어디 있을 것 같나요 ?”

 

그들 모두 잠시 침묵했다 . 그리고 케인이 바라본 그자가 입을 연다 .

“ 다 알고 있으면서 일일이 묻지 마라 . 조사단원은 너희지 내가 아니야 . 난 그저 탈주한 동족을 처단할 뿐이다 .”

 

“ 저는 맞는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라고요 . 지루하잖아요 . 기다리는 건 .”

 

그자는 벽에 기댄 채 손가락으로 내성의 구석 외벽을 가리켰다 .

 

“ 역시 ! 감사합니다 .” 케인과 일네느는 내성입구로 들어섰다 .

 

그자는 케인만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 너도 단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

 

케인 역시 그자만 들을 수 있게 작게 속삭였다 .

“ 저는 아니죠 . 저의 아버지라면 몰라도 .” 케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5 명의 단죄가 그 둘의 뒤를 따랐다 . 그들은 내성의 구석 굽이진 외길로 들어섰다 .

 

“ 그날 이후로 이곳의 경비가 없어졌군 .” 단죄 중 그자가 입을 열었다 .

 

계단을 향해 지하로 내려갔다 . 굽이진 길을 지나자 벽이 나왔다 . 막다른 길이었다 .

 

“ 이벽 너머일 텐데 ...” 케인은 벽을 쳤다 .

 

‘ 투 - 웅 !’ 두꺼운 벽 너머에는 공기가 진동되는 , 비어있는 소리가 났다 . 일네느는 벽의 틈 사이로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

“ 킁 , 킁 . 쇠 냄새 , 마른 피 냄새 , 재미있는 냄새 . 여기야 여기 !” 그녀는 뭔가 찾았다는 듯 폴짝 폴짝 뛰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

 

“ 이걸 열 수 있는 장치가 있을 텐데 ... 지워졌어 .” 케인은 벽을 더듬었다 .

 

“ 부분적으로 지워졌군 . 지우는 능력이 완전하지 않은 모양이군 . 아니면 많이 급했다거나 . 이 앞에 잔상은 지우지 못한 걸 보니 .” 그자가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말했다 .

 

“ 분명 열 수 있는 장치가 있을 거야 .” 그는 미묘하게 닳은 촛대에 손을 가져갔다 . 몇 번 당겼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

“ 움직이는 촛대가 문을 여는 열쇠는 확실한데 ... 문을 열 수 있는 횟수나 방법을 알 수가 없네요 .”

 

“ 이 문 부숴버리죠 ?” 일네느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

 

“ 네가 ?”

 

“ 아니 , 아니 이런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요 . 내 검이 손상 입는 것도 싫고요 . 두 분 중에 한분이 해주셨음 하는데 ?”

 

케인과 그자는 서로 쳐다보았다 .

 

“ 단죄여러분 ? 이 벽 좀 처리해 주시겠어요 ?”

 

“ 네가 할 수 있잖아 ?”

 

“ 저는 평범한 인간이라 이런 건 못하는데요 .” 케인은 능청맞게 으쓱였다 .

 

그자는 팔을 크게 한번 휘두르자 팔에서 여러 촉수가 튀어 나오더니 벽에 수개의 구멍을 뚫어버렸고 팔을 다시 휘둘러 촉수를 회수했을 때 50 센티 두께의 벽은 ‘ 와르르르르르 ’ 무너져 버렸다 .

 

“ 와아 ... 진짜는 이런 거군요 .” 케인은 감탄하듯 말했다 .

 

“ 너도 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터 .”

 

“ 일단은 조사단 입장이라 .”

“ 혹시 이름 , 알려줄 수 있나요 ? 계속 단죄여러분 이라고 부르기도 뭣 한데 .”

 

“ 이 임무가 끝나면 다시 보기 힘들겠지 . 내 이름 따윌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 그자는 케인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

 

“ 내가 앞장선다 .” 단죄들은 음침하고 어두운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 조사단 둘은 그 뒤를 따라갔다 . 한참 계단을 밟고 내려갔을까 ? 두터운 철문 3 개가 나왔고 부서진 첫 문에 들어섰다 .

 

“ 이 ... 곳은 뭐하는 곳이지 ?”

 

방안을 들여다 본 순간 7 명은 모두 굳고 말았다 . 고문 기구에 3 명의 고문관과 영주가 참혹하게 찢겨져 있었다 . 바닥은 피가 굳어 끈적했다 .

 

“ 어머 , 어머 이건 완전 내 취향이야 ~ ♡ .” 일네느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

 

이정도의 고문에 찢겨진 상처와 출혈로 보아 사람이라면 이미 죽었어야 가능했다 . 그러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상처가 생기는 동시에 자가 치유되고 있었다 . 죽어가면서 살아가는 기괴한 형태였다 . 누군가 풀어주지 않는 한 끝없는 고통을 느끼는 형태 .

 

누군가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다 .

 

“ 어이 , 어이 무슨 일이야 . 벽은 왜 부순 거야 ? 마음대로 날 뛰지 말라고 !” 단장과 제스토가 다급히 뛰어 내려 왔다 .

 

“ 보다시피 ...” 케인이 몸을 틀어 단장에게 실종된 영주를 보여주었다 .

“ 영주님 !?” 단장은 고문대에 매달린 영주에게 달려갔다 . 제스토가 손을 뻗어 저지하려 했으나 늦어버렸다 .

 

“ 영주님 어떻게 된겁니까 !?” 라며 고문대의 수갑에 있는 철심을 뽑았다 .

 

“ 하지마 .” 그자가 작게 속삭였으나 이미 철심은 뽑힌 뒤였다 . 그의 외침은 아무런 감정 없듯 들렸다 . 마치 그들이 풀려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

 

영주의 몸은 부글부글 끓더니 부피가 늘어났다 . 인간 형태에서 기괴한 촉수괴물의 형태로 변형하기 시작했다 . 늘어나는 부피로 인해 고문기구들이 부서지며 고문관 3 명도 풀려나게 되었다 . 기괴한 괴물은 어느새 4 마리가 되었다 .

 

“ 여기는 좁다 ! 빨리 올라가 ! 매장당하기 싫으면 !” 그자가 외쳤고 그들은 일제히 내성 밖으로 빠져나왔다 . 촉수 괴물은 계단을 올라온 후 내성의 벽을 부서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

 

“ 끄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 사람이었던 괴물들은 촉수를 꿈틀거리며 주변의 기사와 경비병들을 촉수로 찍어버렸다 .

 

“ 끄아아아악 !” 삽시간에 기사들과 경비병이 쓸려나갔다 .

 

“ 무슨 일이십니까 !” 릴 케이건과 더들리가 뛰어나왔다 .

“ 이 .. 이 무슨 !”

 

“ 병사들을 물리세요 . 저희가 처리합니다 .” 그자가 말했다 .

 

그리고 빠르게 뛰어 들어가 검으로 촉수를 잘라버리고 손을 찔러 넣어 심장을 뽑아버리고 뒤돌아 올라타 척추를 뜯어버렸다 . 촉수괴물은 꿈틀거렸으나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

 

“ 한 마리 ... 저 한 마리를 쓰러뜨리면 이름은 알려주지 .” 그자는 영주였던 괴물을 가리키고 케인을 보며 말했다 . 케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영주였던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

 

한편 일네느와 제스토가 한 마리를 맡고 있었다 .

 

“ 일네느 ! 왜 공격 안하고 피하기만 하는 거야 ! 이럴 때 힘 좀 쓰라고 !”

 

일네느는 촉수를 잘라버리고 요리조리 피하며 말했다 .

 

“ 그치만 ... 그치만 얘네들 ... 아름답지 않은 걸요 ? ♡ ”

 

“ 아 ! 쫌 !”

 

다른 한편 그자는 촉수 괴물 한 마리를 상대로 놀고 있었으며 나머지 단죄 4 명은 그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

 

일네느가 요리조리 피하면서 제스토에게 물었다 .

“ 단죄는 5 명이면서 왜 1 명만 싸우는 거죠 ? 저만한 능력자가 모두 싸우면 쉽게 처리할 텐데 .”

 

제스토는 촉수를 검으로 튕기며 말했다 .

“ 단죄 중 마족은 하나 뿐이야 ! 나머지는 그를 감시하기 위해 있는 거라고 !”

 

“ 호 ~ 오 ... 엑 ! 그럼 내가 지원한 게 ... 저런 재미없는 일이었 ... 떨어진 게 다행이네요 .”

 

“ 단죄여 빨리 처리하시오 .” 류기스톤 단장이 단죄들에게 말했다 .

 

4 명의 단죄가 검을 천천히 뽑았다 .

 

“ 스르르르릉 ” 검이 반쯤 뽑히자 그자의 손에서 검은 촉수가 튀어나와 촉수괴물을 4 조각으로 뜯어버렸다 . 그자가 뒤 돌아 보자 그들은 검을 검 집에 다시 넣었다 . 단죄는 일네느와 제스토가 상대하는 괴물도 검으로 양단한 후 팔에서 나온 촉수로 찔러 뜯어버렸다 .

 

“ 촤아아아악 !” 괴물의 피가 공중에 뿌린 붉은 물감처럼 쏟아져 내린다 .

 

“ 애송이 . 끝낼 시간이다 .” 뿌려지는 피 속에서 케인을 쳐다보았다 .

 

케인은 검으로 촉수를 잘랐으나 빠르게 재생해왔다 .

 

‘ 잔 상처는 금방 재생된다 . 재생 불가능한 큰 상처를 만들어야 해 .’

 

케인은 검을 꼭 쥐었다 . 날아오는 촉수를 피해 파고들었다 . 마지막 촉수가 그를 향해 날아올 때 괴물의 품으로 뛰어들며 몸을 틀어 피하고는 대각선으로 회전하며 영주였던 괴물을 베어 지나쳤다 . 쓰러진 괴물은 벌어진 상처를 치유하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 케인은 괴물의 위에 올라섰다 . 몇 개의 촉수가 그를 향해 날아왔으나 베어버렸다 . 큰 상처를 재생하는데 에너지를 집중하기 때문인지 치유능력이 줄어들어 촉수를 재생하지 못했다 . 케인의 눈동자는 붉게 빛났다 . 땅에 검을 꼽고 재생하는 상처를 따라 크게 그어 두 동강 내어버렸다 . 그리고 영주였던 괴물의 가슴을 밟은 채 목을 베어 날려버렸다 .

 

“ 짝짝짝 ” “ 썩 나쁘지 않은 솜씨군 .”

 

“ 헉 ... 헉 ... 이제 이름 알려줄 수 있나요 ?” 케인은 얼굴에 튀긴 피를 닦으며 말한다 .

 

“ 그리 좋은 이름은 아니야 . 난 서진이라 불렸다 . 금방 끝날 임무라 통성명 따위 필요 없을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길어질 것 같군 .” 서진은 고민했다 . ‘ 완전하진 않지만 흔적을 보고 지울 수 있는 능력이라면 상위 15% 정도 일 것이다 .’

 

류기스톤 단장이 지하로 내려가려 했지만 괴물에 의해 무너져 들어갈 수 없었다 . 서진이 입을 열었다 .

“ 추방자가 3 번째 방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 다시 계단으로 올라오지 않았어 .”

 

“ 그의 잔여 상 ... 을 보신 거 맞죠 ?”

 

“ 그래 .”

 

케인이 성의 지도를 펼쳤다 .

“ 지도에는 없지만 3 번째 방의 위치는 이쯤 ... 이 길은 뭐죠 ?”

 

더들리가 말했다 .

“ 그 길은 성내 하수도입니다 .”

 

“ 이곳으로 빠져 나갔겠군요 . 이 방향을 중점으로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

8. 여행의 시작 (4)

 

“ 잘 묵고 갑니다 .”

 

“ 잠자리가 맞았는지 모르겠군요 .”

 

“ 꽤 괜찮았어요 .” 록펠싱이 생글거리며 웃는다 .

“ 혹시 요정에 관한 소문 들은 것 없나요 ?”

 

“ 글쎄요 ? 예전엔 많았다는데 전 본적이 없네요 . 사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보는 게 소원이긴 해요 .” 점원은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말했다 .

 

하나와 록펠싱은 웃으며 ‘ 소원 이루셨네요 .’ 라고 속으로 말했다 . 생글거리며 웃는 하나와 록펠싱을 보며 베르키엔은 후드를 뒤집어 쓴 채 어리둥절한 미소를 지었다 .

 

“ 잘 묵고 가요 ~.” 일동 모두 인사를 한 후 엘프란 마을을 벗어났다 . 슈프드 마을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

 

“ 아 ~ 다시 행군인가 . 걷는 거 정말 싫어 이제 그만 걸었으면 좋겠다 .” 하나는 투덜거렸다 .

 

또 다시 걷는다 .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끝 . 마치 시간과의 싸움 같았다 . 마을을 어느 정도 벗어나자 베르키엔은 코트후드망토를 벗는다 . 하나는 좌우로 고개를 돌린다 . ‘ 요정이 실존하다니 ... 내가 살던 세계에서 요정을 본 건 나뿐 일 걸 ? 거기다 미인 ! 이런 건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 하나는 베르키엔을 보며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이 요정을 봤다는 것에 취해 웃고 있었다 . 록펠싱은 그런 하나를 보며 말했다 .

“ 변태 .”

 

“ 아니 내가 뭘 !”

 

“ 아까 전부터 계속 베르키엔만 쳐다보며 실실 쪼개고 있어 . 기분 나빠 .”

 

“ 아니 요정 처음 보는데 좀 볼 수도 있지 . 거기에다 ...”

 

“ 거기에다 ?”

 

“ 이쁘지 !”

 

단호한 하나의 목소리에 록펠싱은 고개를 ‘ 홱 ’ 돌려버린다 .

“ 흥 !”

 

록펠싱은 난감해 하며 얼굴을 긁고 있는 베르키엔에게 다가가 뒤에서 껴안는다 . 베르키엔은 조금 놀라는 표정이지만 이내 익숙한 듯 다시 웃음지어 보인다 .

 

“ 미안 . 외로움을 많이 타서 뭔 갈 안아야 마음이 놓이네 .” 록펠싱이 웃는다 .

 

그런 그녀들을 앞에 두고 하나는 생각에 잠겼다 . ‘ 앞으로 싸움이 많아 질 것이다 . 베르키엔을 노리는 검은 복면의 그자들 , 그리고 숲 곳곳에 있는 기괴한 괴물들 . 록펠싱 덕분에 살았지만 앞으로 그자들은 더 준비해 올 것이고 또 괴물들에게서 살아남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 . 적어도 , 하다못해 나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해 .’ 이 세계에 와 며칠 만에 죽을 고비를 넘긴 하나는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했다 . 이들은 말없이 또 몇 시간을 걸었다 . 서울과는 다른 높고 쾌청한 맑은 하늘에 나무도 꽃도 은은하게 산란되고 있었다 . 베르키엔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입을 연다 .

“ 여기 열매들이 많네요 . 먼저 가고 계세요 . 곧 따라 갈게요 .”

 

“ 어제 그 녀석들 있을지도 모르는데 ?”

 

“ 저도 쉬운 상대는 아니에요 . 어제는 수가 많아서 도망쳤지만요 . 그 정도 인원수면 발견하기도 쉽고요 . 그리 오래 채집하진 않을 거예요 . 금방 따라갈 거예요 .”

 

록펠싱은 같이 채집하자고 말하려 했으나 베르키엔이 불편해 할 것 같아 말을 고쳤다 .

“ 무슨 일 있으면 소리 질러 .”

 

“ 네 !”

 

“10 분 내로 안 오면 찾으러 되돌아 올 거야 !”

 

“ 네 !” 베르키엔은 힘차게 대답하곤 과일을 따기 시작했다 .

 

하나는 록펠싱에게 작게 말했다 .

“ 놔두고 그냥 가도 돼 ?”

 

“ 몰라 . 편한 대로 하겠지 .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 어쩌면 저대로 그냥 떠날지도 모르고 .”

 

“ 그럼 납치 당한건지 그냥 떠났는지 더 헷갈리잖아 .”

 

“ 그것도 그녀의 선택이지 . 그리고 그녀는 약하지 않아 . 아마 그들 8 명만 그녀를 쫓는 건 아니었을 거야 . 어디서부터 도망쳐 왔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를 쫓아온 게 그 8 명인 거지 . 여튼 충분히 회복한 것 같네 . 이정도 변방에 요정 하나 잡으려고 수십 명은 보내지 않겠지 .”

 

“ 오 !” 록펠싱의 상황판단에 하나는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 맞는지 틀릴지는 모르겠지만 .

5 분 쯤 걸었을까 ? 그녀가 따라오기 쉽도록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

길의 외곽 , 숲속은 꽤나 시끄러웠다 . “ 푸드득 ” 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 아주 약간이지만 작은 진동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

 

“ 뭔가 불길해 . 빨리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 록펠싱의 안색이 어두웠다 .

 

“ 베르키엔은 ?”

 

록펠싱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

 

“ 쾅 !” 멀리서 나무가 쪼개지며 쓰러진다 . 다급하게 베르키엔이 달려온다 .

 

“ 도망쳐요 ! 마수에요 !”

 

‘ 어째서 ?’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은 왕국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대부분의 마수를 토벌 하였다 . 물론 잔존 마수들이 다수 남아있다 하여도 길드의 헌터와 길드원들 , 용병들이 대다수의 마수들을 잠재웠다 . 이렇게 길 가까이 마수가 출현 한다는 것은 마수의 개체수가 증가했거나 누군가가 마수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것 , 유인하고 있는 것인지 도망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하나와 록펠싱의 발걸음이 다급해 졌다 . 이 괴물들에게서는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다 .

 

“ 콰콰콰쾅 !” 뿌연 흙먼지와 함께 몇 채의 나무가 쓰러졌다 . 소리와 진동은 점차 가까워 왔다 . 길을 따라 달리고 있을 때 하나의 눈앞으로 화살 하나가 날아와 근처 나무에 깊숙이 박혔다 .

“ 슈슈슈슉 !” 그 화살을 따라 빠르게 무엇인가 이동해간다 .

“ 촤아아아악 ”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긴 코트를 날리며 길에서 미끄러진다 . 그 화살에 가느다란 와이어가 그의 허리춤에 연결되어 있다 . 하나 일행을 보자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 하지만 바로 숲에서 쫓아오는 마수를 향해 화살을 날린다 . 멈춰선 하나 일행은 도망치지도 숨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 조금 전에 날아온 화살과는 다르게 그의 손에는 활도 화살도 존재하지 않았다 . 그러나 빠른 속도로 보이지 않는 화살을 쏘았다 .

“ 퓽 ! 퓽 ! 퓽 !”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화살은 나무 사이로 날아갔다 .

“ 끄끼끼끼끼이이익 !” 기괴한 소리를 내는 괴물은 온몸의 살점이 너덜너덜 하게 찢겨진 채 달려오다가 쓰러졌다 . 하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비 규칙적으로 길게 튀어나온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수는 3 개의 눈에 회색 갈기털 , 4 개의 다리와 긴꼬리 , 2 개의 팔을 가졌다 . 지친 듯 거칠게 숨 쉬는 괴수는 눈을 감았다 . 붉은 머리의 긴 코트를 입은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괴수를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

“ 퓨퓨퓨퓨퓩 !” 여러발의 무형의 화살이 괴수의 몸을 꿰 뚫는다 . 너덜한 살점이 튀어나가고 갈라졌다 .

 

“ 끼끽끅끅끅끅 !” 거대한 몸채가 조금씩 밀렸다 .

 

“ 하아 ... 하아 ..”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남자는 거친 숨을 내쉬며 하나일행을 쳐다보았다 . 그때 괴수가 눈을 떳고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 눈 속에 수백 개의 오돌토돌한 눈알이 하나를 바라보았다 . 거구의 괴수는 등이 부글부글 하고 끓어오르더니 피와 함께 갈라지며 십여 개의 촉수가 쏟아져 나왔고 코트를 입은 남자의 머리를 스치자 그의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 그는 비틀거리며 주저앉아 버렸다 .

하나가 속으로 ‘ 망했다 ’ 는 생각하고 있을 때 록펠싱은 허리춤의 도를 꺼내어 괴수의 품으로 파고들어 괴수의 다리를 크게 베었다 . “ 끄끠끠끠끠끡 !” 고통에 찬 기괴한 고함에 괴수는 크게 몸을 틀었고 꼬리를 휘두르는 풍압에 록펠싱은 중심을 잃고 바닥을 뒹굴었다 . 수개의 촉수가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

“ 촤촤촥 !” 베르키엔은 어느새 록펠싱의 앞으로 다가와 세검으로 괴수의 촉수를 꿰뚫었다 . 하지만 그 힘을 정면에서 받아 쳐냈기에 부담이 많이 갔는지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 도망쳐야 해 ! 도망쳐야 돼 ! 움직여라 다리야 !’ 하나는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주먹으로 내쳤을 때 괴수의 눈과 마주쳤다 . 괴수는 혀를 내밀어 하나의 몸을 음미했다 . 괴수의 타액이 하나의 머리칼에서 볼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 마치 진귀한 음식에 매료된 모습이었다 . 록펠싱과 베르키엔은 무방비한 괴수의 너덜너덜하게 상처 입은 옆구리를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쳤다 . 숨통을 끊는 강한 공격에 괴수는 내장을 뿌리며 강한 몸부림을 쳤다 . 록펠싱과 베르키엔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하나는 아니었다 . 그는 5 미터를 날아가 뒹굴었다 . 그의 머리에는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 괴수는 하나를 증오로 가득 찬 눈으로 , 동시에 연민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며 헐떡이다가 눈을 감았다 . 하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

 

“ 하나 !” 록펠싱과 베르키엔이 놀라며 그에게 다가와 부축한다 . 그는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으려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 차사고가 난 것처럼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요동쳤다 .

 

“ 다친 곳은 ? 아픈 데는 ?” 록펠싱과 베르키엔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것에 익숙지 않았지만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 괘 ... 괜찮은 것 같아 . 머리가 좀 어지러운 것 같지만 .” 그녀들의 부축을 받은 하나는 피가 흘러내리는 머리를 쥐어 잡으며 바닥에 앉았다 .

 

“ 잠깐 좀 볼게요 .” 베르키엔이 하나의 머리칼을 넘기며 상처가 난 머리 밑을 바라본다 .

“ 좀 찢어졌네요 .”

 

“ 꿰매야 할 것 같은데 ?” 옆에서 록펠싱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

 

“ 제가 잠시 볼게요 .” 베르키엔은 하나의 머리에 손을 대고 뭐라고 작게 중얼거린다 . 주변의 하얀 입자들이 모이더니 상처의 부위에 달라붙었고 이내 피가 멈췄다 .

 

“ 마법 ? 마법이야 ? 그거 ?” 록펠싱은 놀라며 베르키엔을 쳐다본다 .

 

“ 네 .”

 

“ 헤에 ... 처음 봤어 마법 . 아니 기억을 잃기 전에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

 

“ 고마워 . 완전 신기하네 . 피가 멎었어 .” ‘ 록펠싱이 놀라는 표정으로 예상컨대 이쪽 세계에서도 마법은 흔한 게 아니구나 ’ 라고 생각했다 . ‘ 이거 나중에 나도 배울 수 있을까 ?’

 

하나가 조금 전에 쓰러진 붉은 머리의 긴 코트를 입은 남자를 가리키며 베르키엔에게 말했다 . “ 저 사람도 치료해 줄 수 있을까 ?”

 

“...... 네 .”

 

“ 치료해주고 돈이나 듬뿍 받자고 . 괴수 뒤처리도 해줬고 상처도 입었으니까 .” 록펠싱이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

 

록펠싱이 남자에게 다가가 볼을 때린다 .

“ 철썩 철썩 !” 일행을 위험에 빠트린 이 남자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

 

“ 로 ... 록펠싱 .” 하나는 록펠싱을 저지한다 .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남자는 느리게 고개를 들며 천천히 눈을 뜬다 . 그의 눈동자는 정신을 잃기 전과 다르게 초점 없는 탁한 눈이었다 . 눈을 뜬 그는 갑자기 록펠싱을 향해 무형의 활시위를 당긴다 .

“ 아니 내가 좀 기분 나쁘게 깨웠다고 ...”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하나는 록펠싱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를 향해 몸을 날린다 .

“ 피유우 - 우웅 !” 록펠싱이 서있던 자리에 거대한 바람이 지나가며 뒤에 있던 나무가 “ 쩌저적 ” 하고 이쑤시개처럼 쪼개져 버렸다 .

 

“ 이 사람 이상해 !” 하나가 외쳤다 .

“ 정신이 오염당한 것 같아요 !” 베르키엔이 세검을 뽑으며 말했다 .

 

“ 정신 ? 오염 ?” 처음 듣는 생소한 말에 하나와 록펠싱은 당황했다 .

 

“ 뭐 , 어쨌든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지 ?” 록펠싱은 도를 꽉 쥐었다 .

 

사방으로 날아오는 무형의 화살에 록펠싱은 도로 힘겹게 튕겨냈다 . 하나가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피하거나 이동할 수 없었다 . 베르키엔은 우측의 풀숲으로 돌아 록펠싱의 반대방향으로 이동했다 . 무형의 화살이 날아 왔지만 가벼운 발을 가진 베르키엔을 따라 올 수 없었다 . 그녀는 손을 위로 올린 채 작게 중얼거렸다 . 하얀 입자들이 손으로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그자의 눈앞에서 빛이 사방으로 눈부시게 흩뿌려졌다 . 번쩍이는 빛과 함께 그자는 눈을 찌푸렸다 . 앞이 보이지 않는지 사방에다가 마구 쏘기 시작했으나 명중률은 형편없었다 . 베르키엔은 그자의 뒤로 빠르게 다가가 그자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 그리고 작게 중얼거리자 하얀 입자들이 그녀의 손으로 모였다가 방출되었다 . 그자는 당겼던 활시위를 힘없이 놓으며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 흐리멍텅했던 눈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왔다 .

“ 대 ... 대체 ...” 그는 머리을 좌우로 흔들며 하나일행을 둘러보았다 .

 

“ 당신 정신이 오염됐어요 . 일단 임시방편으로 몽마의 행동을 구속했지만 신전을 찾아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해요 . 이대로 라면 정신이 오염되어 몽마에게 침식당할 거예요 .”

 

그는 말하는 베르키엔을 뒤로 한 채 쓰러져 있는 괴수에게 다가가 허리춤의 단도로 이빨을 뽑았다 .

 

“ 당신 , 이대로라면 언젠가 몽마에게 몸을 빼앗겨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요 .”

그는 이빨을 손에 든 채 비틀거리며 베르키엔을 쳐다 보며 말했다 . “ 요정 ... 인가 ? 요정 ...”

 

그는 비틀거리며 땅을 쳐다보곤 웃었다가 인상을 구겼다가 다시 웃는다 .

“ 그래 ... 신전 . 찾아가 보도록 하지 .” 그는 뒤돌아 마을로 향해 걸었다 .

 

“ 아니 잠깐만 !” 록펠싱이 그를 향해 소리치자 그자는 뒤돌아 고개를 돌렸다 .

“ 괴물에게서 구해준 것도 우리고 정신오염 당해서 다짜고짜 공격하는 걸 정신 차리게 해준 것도 우리라고 ! 봐 괴수 때문에 다친 사람도 있다고 !” 록펠싱은 얼굴에 피가 묻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

“ 미안하군 . 그래서 뭘 원하지 ?” 그자가 흘겨보며 말했다 .

 

“ 돈 !” 록펠싱은 당당하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

 

“ 돈 ? 아 , 아 사례금 말이군 . 좋아 . 그런데 지금은 가진 게 없고 슈프드마을에 가면 이 녀석의 의뢰금 받아서 줄 수 있는데 .” 그는 이빨을 공중에 던졌다가 받으며 말했다 .

 

“ 좋아 ! 앞장서 .” 록펠싱의 말에 그는 다시 앞을 보고 걷기 시작한다 .

 

“ 그나저나 아까 굉장하던데 ? 활도 화살도 없이 뭔가 슝 , 슝 날아가던데 .” 하나는 빠르게 달려가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

 

“ 이거 ?” 그는 왼손에 가느다란 잘 보이지 않는 실을 오른손으로 튕기며 말했다 . 그 실은 엄지와 소지 끝을 팽팽하게 잇고 있었다 .

 

“ 신기하네 . 그거 어떻게 달았어 ? 활도 화살도 없이 어떻게 쏘는거야 ?”

 

“ 나도 몰라 . 태어날 때부터 있는 거라 .” 그는 허리춤에서 마른 꽃 몇 개를 꺼내었다 .

“ 이게 화살 .” 그는 마른 꽃을 화살처럼 왼손을 활로 삼아 시위를 당겼다 . 그러자 작게 반짝이는 투명한 마법진이 화살모양의 형태로 돌아가며 감쌌다 . 그가 활시위를 놓자 투명하게 반짝이던 화살은 돌풍을 일으키며 나무를 꿰뚫는다 .

“ 완전 신기해 . 베르키엔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신비한 능력을 가졌네 . 록펠싱은 검술의 달인이고 . 베르키엔은 마법을 쓰고 , 넌 무형의 화살을 날리고 .” 하나의 말에 붉은 머리의 남자는 의외로 쑥스러워 하며 뒷머리를 긁는다 .

“ 무궁 . 난 무궁이라고 해 . 넌 ?”

“ 난 하나 . 강하나 . 쟤는 록펠싱 , 그리고 저 요정은 베르키엔 .”

 

‘ 베르키엔 ...’ 그는 뭔가를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흔든다 . 그들의 언덕 저편 멀리 슈프드 마을이 보였다 .

9. 마왕 (4)

 

“ 아저씨 아직도 냄새나요 .” 앨리사는 진의 손가락을 손에 꼭 쥔 채 다른 손으로 코를 막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한다 . 며칠 전까지만 해도 증오로 일그러진 소녀의 얼굴은 어느새 어린아이 본연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 진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난처한 표정으로 앨리사를 바라본다 .

 

“ 아저씨 . 있잖아요 . 앨리사는 아저씨가 정말 좋아요 !” 앨리사의 뜬금없는 말에 진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 그의 표정을 보고 앨리사는 베시시 웃으며 말한다 . “ 아저씨는 앨리사를 귀찮아 하지 않아서 좋고요 , 앨리사를 싫어하지 않아서 좋아요 . 앨리사의 부탁을 들어줘서 더 , 더 , 더 , 아주 ! 많이 ! 좋아요 .”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입을 삐죽인다 . “ 그러니까 앨리사는 아저씨가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 .” 앨리사의 말에 진은 앨리사를 쳐다보며 말한다 .

“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

 

“ 그 ... 그야 아저씨는 아직 젊어 보이고 나 같은 애가 붙어있으면 여자 친구도 못 사귀고 귀찮기만 할 테니까요 .” 앨리사는 검지 손가락 끝을 마주 대며 꼼지락 거렸다 .

 

진은 피식 웃더니 퀭한 눈의 초점을 먼 곳으로 맞춘다 .

 

“ 사라질 때는 말하고 사라질게요 . 작별인사도 꼭 할게요 .”

 

“ 그럼 말하지 않고 사라지면 꼭 다시 돌아오기에요 !” 앨리사는 두손을 모아 움츠리며 진을 향해 기쁜 듯 말했다 .

 

“ 그래요 .” 진의 말에 앨리사는 안심한 듯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걸었다 .

 

진은 고민하고 있었다 . 앞으로 앨리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 하얀동굴에서 나와 어린아이의 부탁을 들어준 것 까지는 좋았지만 300 년이란 시간동안 세상과 연을 끊고 살았다 . 한때는 마족의 왕이었다 . 하지만 지금은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 지금 돌아가 봤자 분열을 조장할 뿐일지도 모른다 . 분리되어 잊혀진 부품은 작동중인 기계에서 쓸모가 없다 . 그저 예비부품으로 어딘가에 간직될 뿐이다 . 인간들에게도 다섯 영웅 중 한명으로 추앙받았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은 이 작은 꼬마 소녀와 마찬가지였다 . 그런 진이 쓸쓸해 보였는지 앨리사가 그의 다리를 꼭 껴안는다 . 진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 ‘ 인간은 인간이 키우는 게 여러모로 좋겠지요 . 먼저 그녀를 맡길만한 안전한 곳을 찾아야겠군요 .’ 둘은 햇빛이 잔잔하게 비치는 숲길을 걸어갔다 . 진은 아주 천천히 걸었지만 앨리사에게는 벅찬 속도였다 . 그녀는 진의 뒤를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 반나절 동안 물도 , 음식도 먹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

“ 꼬르르르르륵 .” 앨리사는 귀까지 빨개지며 황급히 배를 움켜잡았다 . 진은 앨리사와 눈이 마주쳤다 .

“ 음 ... 아직도 영양이 많이 부족하군요 .” 진은 앨리사를 두고 빠르게 나무들 사이를 휙휙 지나갔다 . 진의 빠른 속도에 앨리사는 멍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 잠시 후 진은 앨리사에게 양손 가득 뭔가를 내밀었다 . 진의 양손에는 알록달록한 과일과 그 틈 사이에서 절지동물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

“ 으 ... 으아 ~ 아아아아 ...... 아아아악 !” 꿈틀거리는 절지동물들을 보고 기겁을 한 나머지 온몸의 털들이 곤두서며 소스라치게 황급히 뒷걸음질 치다 돌부리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 앨리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 몇 달 전의 그녀였다면 살기위해서 바퀴벌레도 잡아먹었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익숙한 음식은 아니었다 . 적어도 먹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필요했다 .

진은 그녀의 얼굴에 꿈틀거리는 긴 절지동물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

“ 이거 보기엔 좀 뭣해도 단백질이 풍부하다고요 .” 절지동물이 진의 손가락을 휘어감자 앨리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 까 !!! 끠아아아아아악 !” 앨리사는 눈물을 쏟으면서 소스라치며 도망쳤다 . 진은 손에 휘감긴 절지동물과 도망치는 앨리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 앨리사가 어느정도 떨어진 후 뒤돌아보자 진은 절지동물을 먹어버렸다 .

“ 끼아아아아아아아악 !!! 가까이 오지 마요 !!!” 온몸에 소름 돋은 앨리사는 더 멀리 도망쳤다 . 도망치는 앨리사를 보며 진은 장난끼가 발동했지 기괴하게 웃으면서 통통 튀며 그녀를 쫓아갔다 .

 

앨리사는 겨우 울음을 멈추고 진의 어깨에 목마를 타고 사과를 먹고 있었다 . 사과 부스러기가 진의 머리에 조금 묻었다 .

“ 당신들은 ... 인간들은 ...... 에너지 효율이 매우 안 좋군요 . 그렇게 자주 , 많이 먹어야 유지할 수 있다니 .” 300 년이나 된 데이시나와 카사이 레드를 회상했다 . 자주 , 많이 먹었던 것 같다 . 진의 말에 앨리사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볼을 꼬집었다 .

“ 아 - 야 - 앗 . 너무 아프다 .” 진은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 앨리사는 약이 올라 진의 볼을 마구 잡아 당겼다 .

“ 아저씨 . 그럼 못써요 !” 진은 앨리사에게 혼났다 .

 

300 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인지 사라진 마을도 새로 생긴 마을도 있었으며 길도 많이 바뀌었다 . 진은 냄새를 맡았다 .

 

“ 조금 인위적인 악취가 나는군요 .”

 

“ 아저씨 한테 아직 똥구린내 나요 .” 앨리사는 코를 막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

 

“ 아 ... 아니 그게 아니고요 . 인위 ...”

“ 내 응아 냄새보다 지독해요 . 어제는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 나던걸요 ? 마왕도 똥구린내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 앨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 악의는 없는 말이었지만 진은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 시무룩해졌다 .

 

“ 조금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안아 들어도 될까요 ?”

 

“ 네 ?... 네 .” 진의 물음에 궁금한 것이 있었지만 굳이 물어 보지 않았다 . 진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다소 진지한 표정이 섞여 있었다 . 앨리사를 품에 앉은 진은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 조용하던 숲속에 작은 여러 수의 진동으로 시끄러워졌다 . 새들은 울부짖으며 날아올랐다 .

육중한 무게의 개체가 이동하는 울림소리와 함께 진동은 가까워졌다 . 마치 코끼리들의 무리이동 같았다 .

“ 쿵쿵쿵 !”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

 

“ 아저씨 ...” 앨리사는 그의 품에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 밝았던 숲은 일식이라도 온 듯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 거대한 구름이 빛을 가렸다 .

 

“ 이히히히히히힝 !” 근처에 겁에 질린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

 

“ 꽉 잡아요 .” 진은 뛰었다 . 풍압에 앨리사는 눈을 질근 감았다 . 길에 들어서자 마차를 끄는 겁에 질린 말들은 우왕좌왕 했고 마부들은 말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 잠시 주춤해 하던 진은 다시 달렸다 .

 

“ 뭐예요 ?” 앨리사의 물음에 진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달렸다 .

 

“ 아저씨 ...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 ?” 다시 묻는 앨리사의 물음을 진은 무시할 수 없었다 .

 

“ 아무것도 아니에요 . 그저 스쳐가는 ... 에 ... 음 ... 지진이에요 . 지진 .” 당황하는 앨리사와 달리 진은 매우 차분하게 말했다 .

 

“ 아저씨 거짓말 완전 못해요 .” 앨리사는 진의 배려 섞인 거짓말에 웃으며 말했다 .

 

“ 이힝 - 이힝 - 이히히히힝 -!!!”

“ 으아아아아아 !!!” “ 괴 ... 괴물이다 !” “ 꺄아아악 !” “ 사 .... 살려줘 !!!”

진이 지나친 길에서 공포에 질린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 진은 앨리사를 품에 꼭 안았다 . 그녀의 귀를 막아주고 싶었다 .

 

“ 아저씨 ...”

 

“ 아저씨 있잖아요 . 앨리사는 괜찮아요 .” 앨리사는 큰 눈망울로 진을 바라보며 웃는다 .

 

“ 아저씨 혼자 도망쳐도 괜찮아요 .” 앨리사의 말에 진은 놀란 듯 앨리사를 쳐다본다 .

 

“ 저를 안고 도망치면 느리잖아요 . 앨리사는 근처에 숨어 있을게요 . 작아서 괜찮을 거예요 .”

“ 앨리사가 숨으면 슈스카도 못 찾아요 .”

“ 아 ! 슈스카가 누구냐 하면요 옆집에 살았던 앤데 뚱뚱하고 나쁜 애에요 . 제가 기르던 모모를 항상 괴롭혔어요 . 아 ! 모모가 누구냐면요 .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기니피그에요 . 지금은 없지만요 .”

여태껏 본적 없는 괴물이었지만 소문으로 , 또는 이야기로 들은 적 있었다 . 숲속에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무섭고 거대한 괴물들이 우글우글 거린다고 . 개중에는 토벌하러 갔던 기사단 들이 전멸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 하지만 그가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것은 앨리사가 기절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맞춰서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 물론 손쉽게 괴물들을 죽일 수도 있겠지만 앨리사에게 괴물의 존재를 , 자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 그래서 길에 있던 겁에 질린 사람들도 버려둔 채 달렸다 . 그가 내려줄 생각을 하지 않자 앨리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

“ 저 사람들 ... 어떻게 될까요 ? 괴물에게 안 들키게 잘 숨어야 할 텐데 ...”

“ 걱정되나요 ? 저 사람들이 ?” 진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

“ 아 ... 아니에요 . 앨리사는 ...”

 

“ 앨리사 ?” 앨리사가 머뭇거리자 진이 앨리사의 이름을 불렀다 .

 

“ 앨리사는 아저씨가 걱정돼요 .”

 

그녀의 대답에 진은 그녀를 보고 웃는다 .

 

“ 아저씨는 마수들 보다 훨씬 강해요 . 도망치는 게 아니라 ... 그냥 귀찮아서 ... 아저씨 이래봬도 마왕인걸요 ?” 진은 웃으며 눈을 흘긴다 .

 

“ 아저씨 있잖아요 . 아저씨 ! 그럼 아까 그 사람들 도와줄 수 있나요 ? 앨리사 . 잘 숨어 있을게요 .”

 

진이 우려하던 말이었다 . 앨리사를 혼자 두는 상황이 생기거나 앨리사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만한 일이 벌어지는 것 . 사실 이미 늦었을지도 몰랐다 .

 

“ 앨리사 여기 숨어 있을게요 . 아저씨 빨리 다녀와요 !” 진이 생각할 틈도 없이 주춤 거리는 사이에 앨리사는 그의 품에서 내려와 풀이 우거진 큰 고목나무 아래 틈사이로 기어 들어갔다 .

꺼림칙했다 . 그녀를 혼자 두기엔 불안함에 견딜 수 없었다 . 하지만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

“ 다녀올게요 . 무슨 일 있으면 크게 내 이름 불러요 .”

“ 응 ! 다녀와요 . 아저씨 . 앨리사는 용감하니까 씩씩하게 혼자 있을 수 있어요 !”

 

진은 빠르게 되돌아갔다 . 앨리사가 보기엔 진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

 

“ 아저씨 ... 다치면 안돼요 ...” 앨리사의 표정은 걱정과 두려움이 역력했다 . 하지만 그를 믿고 있었다 .

 

마차가 있던 길로 되돌아왔다 . 진의 예상대로 마차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부서져 있었고 두 마리의 마수는 죽은 말 한 마리를 두고 먹이 다툼을 하고 있었다 . 다른 마수들은 흩어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는지 수풀 곳곳을 살피고 있었다 .

 

“ 크아아아아아 !” 싸우던 두 마수의 외침에 도망치던 동물들이 굳었다 . 그중에는 미끄러져 넘어진 사슴도 있었다 . 마수하나가 다리 풀린 물소에게 다가가더니 한입에 삼켜버린다 . 이곳에 있던 사람의 생사를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 딱히 마수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 마수들은 끝없이 인간의 영토와 자신들의 땅으로 몰려들었다 . 전 마왕이었던 그에겐 마수는 그저 귀찮은 존재들일 뿐이었다 . 죽여도 , 죽여도 끝이 없이 몰려오는 그런 존재 . 대마수인 마신과 싸웠던 진에게 있어서 하급 중에서도 가장 약한 축에 속하는 이런 마수들은 일도 아니었다 . 진은 울부짖는 마수를 향해 뛰어올랐다 . 그가 빠르게 마수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자 거대한 거구의 마수는 힘없이 쓰러진다 . 그 거대한 무게 때문에 천천히 느리게 쓰러지다가 나무에 부딪혀 커다란 나무가 뿌리 뽑혀 나간다 . 4 마리의 마수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크게 울부짖는다 . 커다란 이빨로 진을 물려고 하지만 그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었다 . 그는 발을 치켜세워 마수의 송곳니를 내려찍었다 .

“ 크아아아아아아 !!!”

 

마수의 송곳니는 돌처럼 쪼개졌다 . 송곳니가 부서진 괴물은 고통에 손톱을 휘둘렀고 진이 유유히 피하자 앞에 있던 다른 마수의 배를 할퀴었다 . 살가죽이 벌어지며 새하얀 피부가 뒤집어져 모습을 드러냈다 .

“ 크아아아아아 !!!!!”

마수들이 또다시 울부짖는다 . 진은 뛰어올라 이빨이 부서진 마수의 정수리를 찍어 내린다 . 마수의 두개골이 부서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진의 다리 길이만큼 움푹 파인다 . 이내 마수의 눈은 흰자로 뒤덮였고 울부짖음과 함께 육중한 거구가 쓰러진다 . 땅에 낙법으로 구르며 착지한 진은 가시 뿔이 달린 꼬리를 가진 마수가 휘두르는 꼬리에 맞아 30 미터 정도 날아가 풀속에 뒹굴었다 .

“ 크으으으 .” 진은 작은 신음소리를 내 뱉었다 .

가시 뿔의 꼬리에 찔려 사람이라면 이미 죽었어야 할 상처가 났다 . 피와 흙으로 온몸이 물들었으며 그의 코트는 걸레처럼 찢어졌다 . 오른팔이 날아가고 뼈와 근육 , 힘줄이 보였으며 복부도 내장 채 도려내져 있었다 .

“ 몸이 많이 약해졌네요 . 생각처럼 움직여지진 않는군요 .” 아주 심각한 상처였지만 진은 마치 대단치 않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 진은 남은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 그가 쩔뚝이며 걸어오자 찢어져 나간 근육과 뼈가 생성되며 피부가 씌워졌다 . 내장도 이어지며 형태를 이루더니 뼈와 근육으로 뒤덮고 피부가 생겨났다 . 찢겨진 옷만이 상처의 심각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 진은 재생된 몸을 풀면서 달려왔다 . 마수들은 주춤했지만 이내 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 그들이 커다란 몸짓으로 두리번거리다 그들의 뒤에 서있는 진을 발견했다 . 마수들은 동시에 진을 향해 돌진했다 . 하지만 진의 앞에서 일제히 붉은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 진은 흙먼지가 이는 숲속을 유유히 걸어 나왔다 .

“ 괴 ... 괴물 !”

“ 사 ... 사람이 아니야 ! 봐 ... 봤어 !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걸 봤어 !”

살아남아 수풀 속에서 숨어있던 사람들이 진과 마수가 싸우는 광경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 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 그야 당연합니다 . 전 당신들이 마족이라 부르는 존재니까요 . 다들 무사합니까 ?” 그가 마족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경악하기도 , 또는 살짝 놀라기도 했다 .

“ 마수는 마족의 하수인 아닌가요 ? 왜 우릴 공격하는 거죠 ?”

 

“ 우린 마수들과 연관이 없어요 .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군요 .”

 

“ 마족이라 길래 흉측한 괴물일줄 알았는데 우리랑 별로 다를 것도 없네요 .” 살아남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

“ 그런가요 ?” 진은 퀭한 눈으로 꾸부정한 어깨로 대꾸했다 .

 

“ 로냐 ! 로냐가 안보여 ! 리오네도 안보여 ... 리오네 ! 리오네 !!!”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인들을 찾기 위해 소리쳤다 . 풀숲을 뒤척이던 한 남자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흐느껴 울며 말했다 .

“ 로냐 ... 이거 ... 로냐야 ? 로냐 일어나봐 ... 로냐 ! 로냐아 !!!” 로냐는 하반신이 잔혹하게 뜯겨져 있었다 .

“ 리오네 ! 리오네에에 !!!” 다른 한쪽에서도 사체를 찾았는지 슬프고 안타깝게 부르는 이름 소리가 들린다 .

 

진은 아주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 모두 살릴 수도 있었지만 그의 욕심이 원하지 않던 결과를 가져왔다 . 앨리사에겐 그 어떤 슬픔도 공포도 괴로움도 아픔도 연관시키고 싶지 않았다 . 그렇게 슬퍼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존재 하지 않았다는 듯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 앨리사에게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 여태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 애착이 생긴다는 것이 ... 자신을 필요로 해준 다는 것이 ...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 준다는 것이 ... 그들의 왕으로써 이끌어갈 때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 보다 분쟁을 막거나 의견을 통합하기 위한 존재였다 .

‘ 앨리사 앨리사 앨리사 .’ 그는 달리며 속으로 되뇌었다 . 걱정이란 것을 , 타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

하지만 지친 호흡을 내쉬며 도착한 그 고목나무 아래에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

10. 여행의 시작 (5)

 

슈프드 마을은 생각 했던 것보다 더 컸다 . 마을 외곽은 높진 않았지만 견고한 돌벽을 두르고 있었고 입구에는 경비병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 앞서 지나간 사람들을 확인 하는 것 같았다 .

“ 신원을 확인하는데 어쩌지 ? 아무것도 없는데 지나갈 수 있으려나 ?”

 

“ 아 ... 이 녀석 신원을 확인 할 만 한게 아무것도 없어 !” 록펠싱이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르키며 말했다 .

 

“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

 

“ 흐흐흥 ~ 나에겐 이 팬던트가 있지롱 . 분명 귀족의 자제겠지 ? 이걸 내밀면 경비병이 놀라면서 귀하신 *** 영주님의 따님 이시군요 ! 라면서 통과시켜주겠지 ? 그럼 그 영지를 찾아가면 아버지와 눈물겨운 상봉을 ~” 록펠싱은 혼자 눈물을 훔치는 연기를 하며 팬던트의 새 문양을 쓰다듬었다 .

 

“ 베르키엔은 ?” 하나가 베르키엔을 보며 말하자 베르키엔은 불안한 듯 움츠려 눈을 옆으로 굴리며 좌 우로 눈치를 살핀다 .

 

“ 걱정마 .” 무궁이 하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한다 .

“ 외곽 마을에서는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 . 남쪽 끝이라면 모를까 . 마수와의 싸움 이전에는 나라간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서로 동맹이니까 . 애초에 옆나라인 알키온 공화국도 데르키온의 현자가 세운 나라고 . 마수를 경계하는 거지 사람을 경계하는 게 아니야 .” 무궁은 앞서서 경비병에게 무엇인가 보여주었고 경비병이 고개를 끄덕이자 입구를 지나갔다 . 우리들은 무궁의 뒤를 바짝 붙어 입구를 지나왔다 .

 

“ 이봐 이봐 . 아까 입구 통과 할 때 경비씨에게 뭘 보여준거야 ?” 록펠싱이 호기심 강한 표정으로 무궁에게 물었다 . 무궁은 잠시 뜸들이더니 금색의 빛나는 증표를 보여준다 .

 

“ 와 !... 와와 !!! 이 .. 이거 ? 이거 ... 이거 ” 록펠싱이 말을 더듬는다 . 뭔가 대단한 물건인가 보다 .

 

“ 음 ... 음음 . 저기 무궁씨 ?” 록펠싱은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웃으며 정중하게 말했다 . 록펠싱은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가 입을 오물거리며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연다 .

 

“ 혹시 일 의뢰 같이 받아도 돼 ? 우리 이 마을에 방금 왔고 일 의뢰 받으려면 증명 받아야 하고 등급을 올리려면 또 오래 걸리고 해서 .”

 

무궁은 턱을 괴고 잠시 생각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 좋아 . 단 내 빚을 갚는데 일조 한다면 .”

 

“ 빚 ? 빚이 얼마 길래 ?”

 

무궁은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단호하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

“3 천만 이미르 .” 이미르 . 이 세계의 돈의 단위이다 .

 

“ 사 ... 삼천 ... 만 ... 이 ... 미 ... 르 ...” 록펠싱은 앙상한 표정으로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듯이 비틀거렸다 .

“ 평생 모아도 그런 돈을 모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 자 ! 여기 1 이미르 . 어쨌든 일조는 한 거지 ?” 록펠싱은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며 말했다 .

 

“...... 받지 않겠어 .”

 

“ 우린 생명의 은인이라고 !”

 

“ 그건 그거 . 이건 이거 .”

 

“ 닳냐 ! 좀 써도 되잖아 .”

 

“ 그럼 너희들 몫의 30 할을 내가 가질게 .”

 

“ 와 ! 진짜 악질이야 !”

 

무궁은 우리들을 쭉 훑다가 록펠싱을 가리키며 말한다 .

“ 그럼 너만 30 할 받을게 .”

 

“ 왜 ! 왜왜 !! 나만 30 할 씩이나 받으려는 건데 !!!”

 

“ 그야 ... 넌 못생겼으니까 .” 무궁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록펠싱은 화나고 분했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뻥긋 뻥긋 하며 여러 의미 없는 몸짓만 하다가 한숨 쉬었다 . 아무래도 그가 정신오염 당했을 시 폭력적으로 깨운 것에 약간의 죄책감이 남아 있어서 였으리라 .

 

“ 농담이야 . 강한사람이 많으면 좀 더 높은 보수의 일을 받을 수 있겠지 . 좀 늦었지만 보고도 할 겸 길드로 가볼까 ?” 하지만 록펠싱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귀까지 빨개져 씩씩 거리고 있었다 .

길드는 4 층 건물이었는데 입구에 ‘ 길드 모르반 ’ 이라고 크게 새겨져 있었다 . 입구에 들어서자 경비를 맡는 것 같은 강해보이는 4 명의 검사와 몇 명의 용병 , 배달부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 20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접수원이 웃으며 일행을 반겨주었다 .

“ 늦게 오셨네요 . 다들 퇴근했어요 .” 그녀는 무궁의 일행들을 보고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익숙한 표정을 짓는다 .

 

무궁은 마수의 이빨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

 

“ 아 ... 아아아 ...”

“ 그거 잘 안 지워진단 말이에요 . 거기다 올리지 마세요 !” 여자 접수원은 울먹이며 무궁을 향해 강하게 쏘아 말했다 . 이내 니트릴 재질 같은 장갑을 끼고 단도와 천 뭉치를 가져오더니 이빨아래에 천을 깔고 이빨을 강하게 내리친다 . 큰 이빨이 퉁 하고 살짝 위치를 흐트렸다 .

“ 아야야야야야 ...” 여 접수원은 지잉 거리는 손을 움켜쥐고 울먹거렸다 .

 

“ 내가 할게 .” 무궁이 그녀의 단도를 뺏으려 했으나 그녀는 무궁의 손을 치며 노려보았다 .

 

“ 이건 제일이에요 !” 그녀는 앙칼지게 말하곤 이빨을 한손으로 고정시키고 다시 단도로 내리 찍었다 . 작은 이빨 파편이 튀어 나왔다 . 그녀는 파편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접수대 뒤로 갔다 .

 

“ 확인 했습니다 . 보라색 즉 암컷이에요 . 기포가 많이 올라오는 거 보이시죠 ?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 한 ...3 개월 정도 ? 이로서 마수들이 번식하고 있다는 게 증명 되었습니다 . 정말 ... 심각한 큰 사건이에요 . 지금껏 개체수가 줄어들기만 했었는데 행여 라도 늘어난다면 ... 번식속도나 성장속도 등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 그녀는 투명한 보라색 액체에 담긴 조각난 이빨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

“ 예전처럼 전사한 동료들의 금액은 그들의 지인에게 전달해 드릴까요 ?” 그녀는 동정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응 ... 부탁해 .” 그는 애써 웃음 짓는다 . 하나일행들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

 

“ 이번 보수에요 . 무궁씨가 구해달라고 하신 거 . 이거 구하느라 다들 고생했다고요 .” 그녀는 접수대 아래에서 천에 쌓인 뭔가를 꺼내더니 무궁에게 건네주었다 .

 

“ 리오네프씨 ! 여기 이거 포장 후 긴급으로 왕궁 의학계 론다르크님께 배달 부탁드립니다 .” 그녀는 무궁을 뒤로 한 채 다음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

 

무궁은 보수로 받은 것의 천을 살짝 열어보곤 다시 덮었다 . 무궁이 얼빠진 얼굴로 멍하게 있다가 이내 일행들을 보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

“ 미안해 . 이번 보수는 못 나눌 것 같아 .” 무궁의 말에 록펠싱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돌처럼 굳었다 .

 

“ 아아아악 !!! 돈이 없다고 ! 오늘 노숙하게 생겼다고 !” 록펠싱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궁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 무궁과 록펠싱이 티격 대는 동안 일의 정리를 마친 눈치 빠른 접수원이 입을 연다 .

“ 새로운 일행들인가 봐요 . 오늘 밤도 늦었는데 방 구하셨나요 ?”

 

“ 아직 ...” 갑자기 끼어든 접수원의 말에 록펠싱은 다투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

 

“ 길드 숙소는 어떠세요 ? 그리 시설이 좋진 않지만요 .”

 

“ 음 ... 좋아요 !” 록펠싱은 생각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응했다 .

 

“ 오늘은 정말 큰 발견이에요 . 길 인근에서 마수를 발견했다는 목격자도 종종 나타났고 300 여 년간 마수의 개체수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는데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수의 영역지역이 넓어져서 조사 중이었어요 . 그런데 정말 ... 개체 수 증가라니 ... 숙소 때문에 곤란하신 것 같은데 추가 보수로 보름간 숙소를 빌려드리겠습니다 .”

 

“ 아 ! 그리고 무궁씨 토벌한 마수의 위치 좀 알려주세요 . 내일 조사를 위해 마수의 시체를 수거해야 할 것 같아요 . 아니면 내일 위치확인 차 안내해 주셔도 되고요 .” 그녀는 지도를 꺼내며 무궁에게 토벌한 마수의 위치를 물었다 . 위치를 확인한 그녀는 일행을 숙소로 안내 해 주었다 . 숙소는 평범했다 . 가끔 길드인원이 출장오거나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거나 배달협회에서 올 때 사용하는 곳이었다 .

지칠 대로 지친 일행은 각자 씻은 후 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다 . 늦은 시각이라 대부분의 식당은 불이 꺼진 상태였다 . 베르키엔과 록펠싱은 접수원과 같은 방을 , 무궁과 하나는 남은 방을 사용했다 . 베르키엔이 후드를 벗자 접수원은 놀라고 말았다 . 최근 흔적을 완전히 감춘 요정이라니 ... 어머니 세대에서는 흔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 그녀는 길드의 식재료 창고에서 수육을 조리하고 길드 뒤편에서 야채들을 뜯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 조리한 요리들을 가지고 록펠싱과 베르키엔 , 접수원은 무궁과 하나가 묵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 어디서 가져온 줄 모르는 포도주와 술을 마셨다 . 그들은 음식을 중앙에 두고 둘러 앉아 있었다 . 접수원은 식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 했다 .

 

“ 저는 덴 루아 에요 . 보시다 시피 길드에서 접수원을 하고 있죠 . 그밖에도 잡다한 이것저것 하고 있어요 . 책읽는 걸 좋아하고 그림을 그려요 . 제 특기에요 .”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하고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무궁을 쳐다보았다 .

 

“ 난 무궁 . 떠돌이야 . 지금은 여기 머무르고 있지만 또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닌 탓에 길이라면 꽤 훤하게 알고 있어 . 배달협회 리온에서 일한 적도 있고 . 현재는 길드 일을 의뢰받아 처리하고 있어 .” 그는 금색으로 빛나는 금의 증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

“ 이정도면 꽤나 상위의 일도 의뢰받을 수 있어 . 그리고 보시다 시피 무형의 화살을 사용할 수 있고 ,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물어도 사실 나도 몰라 . 태어났을 때 왼손의 엄지와 약지에 이어진 끊기지 않는 실이 있었고 이걸 튕기면 바람이 일으켜졌어 . 그걸 개량하다보니 지금처럼 무형의 화살이 날아가게 된거고 .” 그는 왼손의 실을 튕기며 말했다 . 튕길 때 마다 살랑이는 작은 바람이 불어왔다 .

 

“ 무궁씨는 우리 길드에서 신뢰하고 있으니까요 .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 루아가 손을 모아 웃으며 말했다 . 무궁은 끄덕이며 옆자리의 베르키엔을 보았다 .

 

“ 아 ! 저는 베르키엔이라고 해요 . 보시다 시피 요정이구요 . 헤어진 여동생과 납치당하거나 실종된 요정들을 찾고 있어요 .” 그녀는 두리번거리다가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

 

“ 요정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납치라니 대체 누가 ... 헤어진 여동생 ... 실종이라면 큰일이네요 .” 루아는 측은하게 베르키엔을 바라보았다 . 베르키엔은 눈썹을 내리며 애써 웃음 지었다 .

 

“ 마법은 조금 사용할 수 있고 또 ...”

그녀는 말을 잇지 않았다 .

 

“ 마법 ? 마법을 쓸 수 있나요 ? 보여주실 수 있나요 ?” 루아의 눈은 초롱하게 빛이 났다 .

 

베르키엔이 양손을 모으자 빛의 덩어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 이내 그 덩어리들은 빛나는 구체가 되었다 .

 

“ 신기해요 . 이건 무슨 마법인가요 ?”

 

“ 빛으로 눈을 멀게도 하고 상처를 치유하기도 해요 . 가벼운 물체를 옮기기도 하고요 .”

 

“ 그야 말로 만능이네요 !” 그녀는 초롱한 눈으로 베르키엔을 따라 손을 모았다 .

“ 나와라 마법의 힘 !” 그러나 그녀의 손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그녀가 마법을 쓰려고 낑낑 대는 동안 베르키엔의 앞에 모여있던 빛의 덩어리들은 이내 옅어지더니 흩어져 사라졌다 .

 

“ 저도 마법 배울 수 있을까요 ?” 루아는 베르키엔을 보며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 나도 ! 나도 배우고 싶어 .” 하나도 손을 들어 말했다 .

 

“ 저도 어떻게 마법을 사용하는지 몰라요 . 걸음마처럼 워낙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거라서요 . 어쩌면 요정이라서 쓸 수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

 

“ 흐아아아아 ” 루아는 틈새에 흘린 물처럼 추 ~ 욱 쳐졌다 .

 

“ 옛날에는 인간도 마법을 사용했다는데 ... 마법사의 탑에서 마법사를 양성하기도 했대요 . 대지진으로 무너져서 대부분의 마법사와 마법서들이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 이웃나라 알키온 공화국은 현자 카사이 레드가 세운 나라인 만큼 마법사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 인간이 마법을 사용했었다는 서적이 남아 있는 만큼 마법을 배우는 게 아주 불가능 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

 

‘ 만약 인간이 마법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세계에서 온 나도 마법을 배울 수 있을까 ?’ 하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 제 소개는 여기까지 할게요 .” 베르키엔은 옆자리의 록펠싱을 바라보았다 .

 

“ 음 ... 어떻게 시작할까 ? 난 기억을 잃었어 . 그래서 이름도 나이도 알 수가 없어 . 6 개월 정도 됐나 ? 북쪽 끝 하르만 강에서 한스라는 아저씨에게 발견되었어 . 거기서 6 개월간 있다가 하나를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 된거야 . 여행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어 . 떠내려 올 때 가지고 있던 팬던트에 록펠싱이라고 적혀있어서 지금은 록펠싱이라고 불리고 있고 .” 록펠싱은 팬던트의 새문양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

 

“ 팬던트 잠시 볼 수 있을까요 ?” 루아가 팬던트에 관심을 보였다 . 록펠싱이 팬던트를 건내자 그녀는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

 

“ 이 매의 문양 폴르만 젠 슈타르 가문의 문양이에요 . 남쪽 끝의 폴르만 영지의 영주에요 .”

 

“ 헤헹 ! 봐 역시 난 영주의 딸이었어 .” 록펠싱이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

 

“ 하지만 제가 알기론 아들만 셋인 걸로 알고 있어요 .”

 

“ 너 혹시 남자 ?” 루아의 대답에 무궁이 록펠싱에게 물었다 . 록펠싱은 이를 갈면서 무궁을 쏘아 보았다 . 그녀의 눈빛에 무궁은 기가 죽었다 .

 

“ 윽 ! 그럼 난 누구지 ? 왜 이 팬던트를 목에 걸고 있었지 ...”

 

“ 폴르만 가문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 영주 아들의 약혼 상대라던가 ?” 록펠싱이 상상에 빠져 눈을 반짝였다 .

 

“ 영주의 하녀라던가 , 길가다 팬던트를 주었다거나 ...” 무궁이 그녀의 상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 록펠싱은 무궁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 무궁은 서둘러 그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

 

“ 흠 , 흠흠 ! 어쨌든 기억이 없어서 소개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 도를 한 자루 가지고 있었던 걸로 보아 검사였던 것 같습니다 . 오는 길에 마수 둘을 베었습니다 .” 토라진 록펠싱은 어울리지 않게 격식을 갖춰 말했다 . 마수를 두 마리나 베었다는 말에 무궁과 루아가 관심을 보였다 .

 

“ 마수를 두체나 ... 대단하네요 . 보통은 마수를 토벌하러 용병이나 기사단 부대가 가는데 말이죠 . 그마저도 전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 루아가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 한 녀석은 하나와 오는 길에 , 남은 한 녀석은 무궁을 구해주면서 ! 물론 베르키엔과 같이 물리쳤지만 !” 루아는 존경의 눈빛으로 베르키엔과 록펠싱을 번갈아 보았다 .

 

“ 무궁씨 앞으로는 든든하시겠네요 !” 루아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무궁을 바라보았다 .

 

“ 으 ... 응 .”

 

“ 더 소개 하고 싶어도 이제 더 소개 할게 없네 . 하나 .” 록펠싱은 옆자리의 하나를 바라보았다 .

 

“ 나는 ...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싶네 .” 하나는 마지막 차례였지만 머릿속을 아직 정리하지 못하였다 .

 

“ 난 ... 다른 세계에서 왔어 .” 하나의 말에 무궁과 루아는 매우 놀라는 표정이었다 .

 

“ 마법이 없는 세계 , 괴물이 없는 세계 , 과학의 힘으로 비행기라는 것을 만들어 하늘을 날고 차라는 바퀴가 굴러가는 이동수단으로 많은 사람들이 말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그런 곳 , 사람 키의 15 배 이상의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 곳 , 자동화 설비로 기계들이 일하는 곳 , 우주로 나가 본 사람들도 있는 그런 곳 ,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가장 작은 것 까지 파헤치는 그런 곳 , 존재 하는 모든 것을 밝혀내려는 그런 곳 . 그런 세상 .”

 

“ 와 ... 다른 세계가 존재 하는 군요 ?” 루아가 놀라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 무궁은 믿지 않는 눈빛이다 .

 

“ 며칠 전 하늘에서 록펠싱이 사는 마을 옆 호수로 떨어졌어 . 그때 마침 록펠싱이 나를 구해주었지 . 어째서 ,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없어 . 그래서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으려고 . 이 세계에 왔으니 돌아가는 방법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해 .”

 

“ 어떻게 이 세계로 오게 되었는데 ?” 무궁이 의심쩍은 눈빛으로 물었다 .

 

“ 그게 자고 있었는데 아침에 깨어나니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어 . 나도 알 수가 없네 .”

 

“ 돌아가는 방법을 찾는다면 저도 가보고 싶어요 ! 물론 돌아오는 방법이 확실하다면요 . 마법도 아닌데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니 !” 루아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 마법으로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

 

“ 다른 건 복잡하니까 가장 쉽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은 열기구를 만드는 것이려나 ? 통풍이 잘 안되는 천을 공처럼 둥글게 만들고 한곳에 구멍을 뚫어 . 그리고 그 구멍 아래에 불을 태워 뜨거운 공기를 천 안에 가득 채우면 공중에 뜨게 되지 .”

 

“ 뜨거운 공기를 채우면 공중에 뜬다고 ?” 무궁은 믿어지지 않았지만 호기심에 가득 찼다 .

 

“ 열에 의해 팽창된 공기가 부력을 발생시켜 기구를 뜨게 하거든 . 물론 기구가 불에 타지 않도록 설계에 힘써야 하고 .” 하나는 방에 있던 펜과 종이로 간단한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였다 .

 

“ 이 그림 제가 가져도 될까요 ?” 루아의 눈이 초롱초롱 빛이 났다 .

 

“ 응 . 내려올 때는 불을 켜는 연료의 양을 서서히 줄이면 기구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하강하게 될 거야 . 하강 속도가 빠르다 싶으면 연료의 양을 늘여서 속도를 낮추면 되고 . 이야기가 옆길로 새긴 했는데 내 목표는 내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거야 .” 그래 나의 목표는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는 것 . 아직 해야 할 일이 ,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

 

11. 여행의 시작 (6)

 

“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는 것 ...” 루아는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턱에 손을 괴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했다 .

“ 어쩌면 ...” 루아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가 뜸을 들였다 .

 

“ 어쩌면 ?”

 

“ 어쩌면 신이 이 세계로 불렀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

 

“ 신이라고 ?” 신이란 말에 하나는 의아해 했다 . 현 세계에 있던 하나는 무신론자였기 때문이었다 .

 

“ 그런 불가능 한 일 . 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겠어요 ?”

 

“ 음 ... 그럼 왜 날 이곳으로 부른 거지 ? 그리고 신이 불렀다면 나타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

 

“ 신은 바쁘시니까 . 계획이 있으시겠죠 . 분명 .” 현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것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 행여 신이 존재할 지도 모르지만 , 하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신의 존재여부를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

 

“ 이 세계는 신이 존재해 ? 신을 본적 있어 ? 신이 너의 바람을 들어주거나 이뤄주도록 직접적이든 , 간접적이든 도와준 적 있어 ?” 신의 존재에 부정적이면서도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자신을 도와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전 본적 없지만 , 실제로 봤다는 사람들이 다수 있어요 . 꿈에 나타나기도 하고요 .”

 

“ 그런 것으론 신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어 .” 신을 봤다고 하는 광신도일 거라 생각했다 .

 

“ 하지만 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의 생김새나 복장은 모두 일치해요 !” 루아의 말이 진실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형상화 해놓은 것을 보고 생각하거나 착각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

 

“ 그러니까 그런 것으론 신의 존재를 입증 불가능해 .”

 

“ 너희 세계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아 ?” 록펠싱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았다 . 무궁도 팔짱을 낀 채 살짝 놀란 듯 하나를 바라보았다 .

 

“ 내가 살던 세계엔 신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 아니 , 정확히 말하자면 난 신이란 존재를 본적이 없었어 . 이 세계에는 어쩌면 신이 존재 할 수도 있겠네 . 다른 세계니까 . 그래 . 마법 같은 불가사의한 힘을 사용하는 세계라면 분명 존재 할지도 ...” 그는 반신반의 하며 말끝을 흘렸다 .

 

“ 신전 . 신전에 가면 신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 신관은 신을 볼 수 있으니까요 . 신관은 신과 신께서 창조한 피조물을 연결시켜주거든요 .”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신의 존재를 증명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말했다 .

 

“ 신전 ... 그래 . 무궁의 정신오염도 있었지 . 어차피 그를 치료하기 위해 신전에 한번은 들러야 해 . 신이 존재한다면 내가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지 .”

 

“ 네 ! 반드시 신이 도와주실 거예요 ! 그런데 무궁씨 정신오염 당했나요 ?” 루아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응 . 베르키엔이 치료해줬어 .”

 

“ 치료가 아니에요 . 몽마의 움직임을 임시방편으로 봉해둔거 라고요 ! 반드시 신전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 베르키엔이 주먹에 힘을 쥐고 강하게 쏘아 붙였다 .

 

“ 어 ... 응 .” 몽마에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에 그녀가 화를 내자 무궁은 조금 당황했다 .

 

“ 치료가 늦어지면 주위 사람들이 휘말려요 . 그리고 자신의 인생도 망가지게 될 거라고요 .” 마치 몽마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처럼 걱정했다 .

 

“ 그래도 당분간은 돈을 벌어야 해서 . 여유자금도 없고 신전에 들리면 기금도 좀 내야 할 것 같고 .”

 

“ 신전에서는 돈을 받지 않아요 . 헌납이라면 받겠지만 ...” 루아는 신전에 가본적 있는 것처럼 말했다 .

 

“ 들었죠 ? 한시가 부족하다고요 !”

 

“ 그렇다 해도 지금 생활비도 없고 앞으로 여행하려면 조금은 벌어야 해 . 적어도 신전이 있는 마을 까지 가려면 .” 록펠싱이 돈주머니를 열어보며 말했다 .

 

“ 베르키엔의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될까 ?” 무궁은 마치 병원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떼를 썼다 .

 

“ 제 마법은 그저 상황을 늦춰주는 것뿐이에요 . 몽마도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이대로 몇 년 , 혹은 몇 십 년 그냥 방치해 버리면 큰일 나버릴 거라고요 !” 베르키엔의 눈망울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

 

“... 며 ... 몇 십 년 ...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까지 그냥 두지는 않는다고 .” 무궁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 아 그렇네 . 요정은 인간과 수명의 단위부터 다르구나 . 그래서 시간의 개념도 다 ... 달라 ...” 뭔가 깨달은 듯 록펠싱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

 

“ 요정들은 의외로 게으르네 ? 몇 년에서 몇 십 년이라니 ...” 하나가 말했다 .

 

“ 몇 년에서 몇 십 년 단위라면 전혀 걱정 할 필요 없을 거 같은데 ?” 무궁은 애초에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

 

“ 그래도 빨리 발현된다면 수개월 혹은 수일 이내에 깨어날 수도 있어요 . 몽마도 개체마다 달라서 언제 깨어날지는 미지수예요 .” 그래도 그녀는 걱정이 되나 보다 .

 

“ 그때는 베르키엔 네 신세 좀 질게 .” 무궁은 차분하게 베르키엔을 향해 말했다 .

 

“ 그러면 추가 요금을 더 내야 할 텐데 ?” 록펠싱이 게스츠름 한 눈으로 무궁을 흘겨보았다 .

 

“ 그럼 길드 의뢰에서 네 이름은 빼는 걸로 .”

 

“ 끄아아아아아 !!! 진짜 치사하다 !” 록펠싱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

 

“ 그런데 , 그럼 베르키엔은 지금 ... 며 ... 몇 살 ?” 록펠싱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

 

“ 몰라요 . 나이를 따로 세어보거나 하진 않아요 .” 그녀는 수줍어하며 은빛 머리칼을 손으로 구부려 입을 가린 채 말했다 .

 

“ 얼마나 오래 살길래 나이도 잊어버리는 거야 ?”

 

“ 가장 오래 산 다룬데오라가 천년 정도 산거 같아요 . 요정들은 인간과 달리 성인이 된 후로는 늙지 않아요 . 그래서 나이라던가 , 시간이라는 것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요 .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 대부분 전쟁이나 병으로 생을 마감하죠 .”

 

“ 와 ... 늙지 않는다니 ... 요정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 루아는 부러움에 울상이 되었다 .

 

이런 저런 잡담을 즐기는 사이 어느새 늦은 밤이 되었고 모두 각자의 잠자리에 들었다 .

 

다음날 이른 새벽 , 일행은 루아와 함께 길드로 나섰다 . 무궁과 베르키엔은 길드에서 고용된 연구원과 용병을 데리고 나섰고 하나와 록펠싱은 게시판과 벽면에 줄지어 붙어있는 의뢰서들을 살펴보았다 . 수송 호위 , 빵 제작 , 마을 벽 보수 , 대저택 하녀 모집 , 밭일 , 의류제작 등 많은 종류의 일들이 있었다 . 하나의 상상속의 길드는 마수들 토벌의뢰였지만 실제 의뢰들은 대부분 일상적인 것 들이었다 . 좀처럼 의뢰를 고르지 못하자 루아가 입을 연다 .

 

“ 좀 더 위험한 일을 원해요 ?” 루아가 부드럽게 웃는다 . 산전수전 다 격은 20 대 중반 , 누님의 매력이 넘쳐흘렀다 .

“ 아 ... 아뇨 .”

“ 네 !!!”

하나와 록펠싱의 대답이 엇갈렸다 . 루아는 턱을 괴고 웃더니 록펠싱을 부른다 . 하나는 록펠싱이나 무궁 , 베르키엔처럼 전투에 전혀 소질이 없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르고 있었다 . 록펠싱은 루아와 의뢰서 하나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

 

“ 이거라면 일행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을 거예요 .” 루아가 웃으며 록펠싱에게 의뢰서를 건낸다 .

 

“ 루아 .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의뢰를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거야 ?” 하나가 의뢰서 한 장을 손에 쥔 채 루아에게 물었다 .

 

“ 의뢰에 실패하면 무궁의 평가나 등급이 내려가요 .”

“ 길드의 증표는 등급마다 다른데 , 돈을 주고 사는 보증금 같은 거예요 . 실패한 만큼 차감되는 거죠 . 증표 금액의 1/2 를 넘어서면 의뢰권한을 박탈당합니다 . 무궁씨는 금의 증표니까 5~9 등급의 일은 의뢰받을 수 있어요 .” 그녀의 말을 듣고 의뢰서를 보니 오른쪽 하단에 등급이 적혀 있었다 .

 

“ 어때요 ? 이 일 보수도 괜찮다고요 .” 루아가 록펠싱의 눈을 보며 웃는다 . 록펠싱의 마음은 의뢰받기로 굳힌 표정이었다 . 록펠싱의 루아가 건낸 의뢰서를 손에 쥐고 하나에게 다가가 보여주며 말한다 .

“ 하나 이거 어때 ? 마수의 습격을 대비하여 마을근방에 방어시설이나 함정을 설치하는데 그 기간 동안 그들의 안전을 위해 보초나 경비를 서는 일이래 . 마을 근방이라 마수들도 여기까진 오지 않을 테니 꽤 안전할 것 같고 보수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말이야 .” 하지만 그녀의 친절한 설명에도 하나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지 벽에 붙은 한 의뢰서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제야 돌아보았다 .

“ 어 ? 어 .”

 

“ 내말 안 듣고 있었지 ?” 록펠싱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 . 그리고 하나가 바라보던 벽에 붙은 의뢰서를 떼서 보기 시작한다 .

 

“ 대장장이 조수 구함 . 기간은 본 당사자와 협의 ... 최소 보름 .” 그녀가 의뢰서를 천천히 읽자 그가 그녀를 향해 입을 연다 .

 

“ 록펠싱 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 .”

“ 응 ... 그래 이 일이지 ?” 그녀는 하나의 말에 의뢰서를 건네며 대답했다 . 그를 회유하고 싶었지만 그의 맑고 빛나는 , 힘이 실린 눈빛이 그녀를 쉽게 포기하게 만들었다 .

 

“ 증표 하나에 다중 의뢰는 안 되지만 그건 9 등급 의뢰기도 하고 간단한 서류만 작성해 주시면 간이 증표를 드릴게요 .” 루아가 웃으며 말한다 . 보통은 굉장히 깐깐해서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무궁의 이번 의뢰로 왕국에서 길드로 들어올 상금이 꽤나 될 예정이었고 추가 보수도 손에 들어올 예정이었기에 기분이 좋았다 . 록펠싱과 하나가 의뢰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20 세 정도의 건장한 남자 3 명이 길드제복을 착용한 채 들어와 각자 안내탁자에 자리 잡았다 .

 

“ 문 열기도 전에 먼저 온 손님이 있었네 ? 특별손님 ?” 한 건장한 청년이 루아에게 묻는다 .

 

“ 응 . 어제 양성반응이 나타났어 .”

 

“ 뭐 ? 뭐가 ?”

 

“ 마수 .”

 

“ 엑 ? 그거 ?” 건장한 청년은 매우 놀라며 대답했다 . 한 때 마수로 인하여 멸망할 뻔 한 역사를 가졌기에 마수의 개체수가 늘어날 명확한 증거는 곧 일상이나 평화가 흐트러짐을 의미하였다 .

 

“ 마수의 시체를 수거하러 갔고 곧 도착할거야 . 곧 바빠지겠지 . 군대가 올수도 있고 . 어쩌면 기사단이나 정예 레인저가 올지도 모르지 .”

 

“ 토벌의뢰가 들어올 수도 있겠네 .”

 

“ 군대랑 의뢰가 같이 들어올 수도 있겠지 .”

 

“ 또 엄청 죽어나갈지도 모르겠군 .”

 

“7 시 54 분이네 . 곧 문 열 시간이군 .”

 

“ 응 그러네 . 작성 다 하셨나요 ?” 루아는 청년에게 대답하고 하나와 록펠싱에게 물었다 . 특별히 대단한 사항은 없었다 . 현재 묵고 있는 주거지 , 나이 , 성별 등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 루아는 서류들을 받아들더니 하나를 보며 말한다 .

“ 하나씨 대장간은 시장을 지나 우측으로 돌면 바로 보일 거예요 . 마을 약도는 길드 밖 게시판에 있어요 . 9 시까지 가시면 되고 여기 간이 증표와 길드에서 보냈다는 의뢰증명서를 제시하면 돼요 . 의뢰보수는 의뢰가 끝난 후 확인이 되면 전달 될 거예요 . 생각보다 일이 힘들테니 각오 단단히 하고 가는 게 좋을 거예요 .” 루아는 하나에게 간이증표와 의뢰증명서를 건내며 말했다 .

“ 그리고 록펠싱씨는 다른 두 분이 오시면 바로 진행하도록 할게요 .”

 

이윽고 8 시가 되자 길드의 문이 열렸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 대게 의뢰가 끝나 보수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나 새로운 의뢰를 받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 길드 내는 순식간에 북적거렸고 루아와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일처리 해 나갔다 .

 

8 시 30 분 경 아직 베르키엔과 무궁은 오지 않았다 .

“ 록펠싱 . 나중에 일 끝나고 봐 .” 하나는 멋쩍게 웃었다 .

 

“ 응 . 그래 . 몸조심 해 .” 뒤돌아 유유히 사라지는 하나의 모습을 보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 그녀는 불안감을 감추려 양팔을 움켜쥐었다 . 혼자 있을 때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시달렸다 .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을 안은 채 길드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 그렇게 십 여분을 떨었을까 ? 멀리서 무궁과 베르키엔이 걸어왔다 . 떨리던 손도 조금씩 멈추는 듯하다 . 록펠싱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일어섰다 .

“ 어서와 ” 그녀는 불안감을 감추려 애써 웃으며 말했다 . ‘ 왜 이렇게 불안한 거야 .’ 과거의 자신에게 물었다 . 하지만 대답을 들려줄 자신의 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

 

“ 하나는 ? 어디다 팔았어 ?” 무궁이 그녀에게 물었다 .

“ 대장간에 팔았어 . 그리고 이거 , 우리가 팔릴 곳 .” 그녀는 무궁과 베르키엔에게 의뢰서를 건넨다 .

“ 나쁘지 않네 . 하지만 좀 더 돈이 될 만한 걸 찾아도 되지 않아 ?”

“ 그러네 . 베르키엔 . 네 생각은 어때 ?”

 

“ 전 어느 것이라도 좋아요 . 지금 의뢰도 좋을 것 같아요 . 신전에 들르기 전엔 안전한 의뢰 위주로 가요 .”

 

“ 그렇게 걱정 해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 무궁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

 

“ 무궁씨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위험해지니까요 !”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화를 냈다 . 그들은 루아에게 의뢰증명서를 받아 마을입구에서 기다렸다 . 그들은 총책임자의 말에 따라 작업하는 곳의 주변을 정찰을 하고 경비를 섰다 . 작업자들은 수많은 철제장비로 구덩이를 파고 덫을 설치했다 .

 

한편 하나는 뜨겁고 무거운 쇳덩어리를 요리하고 있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지적당하고 혼나느라 정신이 없었다 .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장비들은 무기 , 방어구 상점과 길드로 팔려갔다 . 5 명의 드워프 같은 근육질의 중년들이 쉴 틈 없이 쇠를 두드리고 자르고 있었다 .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해가 저물었다 . 저녁을 먹고 8 시까지 일을 끝마친 하나는 물집 잡힌 , 때 묻은 손을 비비며 길드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 캄캄하게 어두운 마을의 밤길은 낯설고 어색했다 . 이제 전원이 들어오지도 않는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주머니에 넣는다 .

“ 어서와 . 많이 늦었네 .” 바람 쐬러 나온 척 마중 나온 록펠싱이 하나를 반겨주었다 . 꾀죄죄한 하나는 얼굴에 검은 탄소를 묻힌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 촛불에 반사된 빛이 그녀의 이목구비를 더욱 뚜렷하게 비추었다 . 방금 샤워한 듯 , 향기로운 체취에 정신이 홀린 듯 멍하게 서있었다 .

“ 뭐해 ? 얼른 씻어 .” 그녀는 웃으며 욕실로 하나를 밀어 넣었다 . 그제야 하나는 정신을 차린 듯 문을 닫고 주섬주섬 옷을 벗어 씻는다 .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자 손과 발이 욱신거렸다 . 잠시 후 일행들은 다들 지쳤는지 서로의 일에 대해 물어보다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 하나는 머릿속으로 제작하고 싶은 것을 그려보다가 늦게 잠이 들었고 모두 잠이 든 이른 새벽 록펠싱은 얇은 벽틈으로 들리는 무궁의 코고는 소리와 하나의 신음소리에 잠이 깼다 . 걱정 때문인지 시끄러워서였는지 그녀는 그날 밤 잠을 설쳤다 .

 

다음날 이른 아침 , 그녀는 뒤늦게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 퀭한 눈으로 정신이 들자마자 하나를 찾아 둘러보았지만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 하나 어디있어 ?” 그녀는 무궁에게 물어보았다 .

 

“ 응 ? 벌써 일어나서 갔는데 ?”

 

“ 벌써 ? 빠르네 .” 그녀는 짧게 말을 끊고 욕실로 향했다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 하나는 처음 3 일 정도 밤새 앓았지만 그새 적응했는지 손의 물집이 굳은살로 바뀌었다 . 여행자금도 조금씩이지만 착실히 쌓이고 있었다 . 하나는 쉬는 틈틈이 설계도를 그렸다 . 일이 끝나고 몰래 화로 불이 꺼지기 전에 서둘러 설계한 작업물을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 . 그로 인해 퇴근 시간이 더 늦어졌다 . 사수로 일하던 드워프 근육의 3 년 견습공인 제노라는 남자에게 들켰는데 설계도를 보고 흥미를 가졌는지 같이 만들어 주었다 . 그러다 난해한 부품은 서로에게 물어보고 머리를 맞대고 작업하다가 이내 모두 동참하게 되었다 . 일주일 후 첫 휴일 , 화약을 만들기 위해 흙과 재 , 야교 , 유황 등을 구하러 다녔다 . 정수 후 예초와 재련을 하여 도침시켰다 . 그리고 다시 대장간에서 일하며 3 일간 건조시켰다 . 틀을 수없이 수정하며 구리로 탄피를 만들고 쇠로 탄두를 만들었다 . 뇌관을 만드는 것보다 뇌관을 만드는 도구를 만드는 게 더 힘들었다 . 재료비는 의뢰비에서 차감되었다 . 기름칠 된 방아쇠를 당기자 찰칵 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 부러지지 않는 탄력 있는 스프링을 만드는데 3 일이 걸렸다 .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 돌아온 휴일 , 여행을 떠날 날자가 다가오자 하나는 시작품을 가지고 시험 사격을 위해 숲으로 향했다 .

12. 만남 (1)

 

30 미터 가량의 앞에 있는 나무를 목표물로 삼았다 . 그의 손에 쥐어진 건 조금 두껍고 무거운 리볼버였다 . 하나는 두근거렸다 . 이것이 제대로 작동을 한다면 만일의 사태에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일행을 도와줄 수 있다고 . 그는 가늠좌와 나무를 일치시켰다 . 방아쇠를 당기자 ‘ 틱 ’ 하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 불발탄 . 그는 예상했다는 듯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 ‘ 틱 , 틱 , 틱 , 틱 .’ 장전된 5 발 모두 불발탄이었다 . ‘a’ 는 모두 실패 . 공이가 잘 못된 것일까 ? 뇌관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 그는 불발탄을 빼서 주머니에 넣은 후 가방에서 ‘b’ 라고 적힌 총알을 꺼내 장전하였다 . ‘ 틱 , 틱 , 틱 , 틱 , 틱 .’ 이번에도 모두 불발탄이었다 . 그렇게 연달아 e 까지 모두 실패하였다 . 마지막에 가장 질 좋은 화약으로 만든 f 탄피 5 개를 꺼내 장전하였다 . ‘ 틱 , 픽 ’ 두 번째 탄이 비록 실패하였으나 반응 하였다 . 탄알을 손으로 비틀어 꺼내 탄피 안을 보니 화약은 터졌지만 대부분 연소되지 않아 있었다 . 남은 3 발의 탄을 마저 소모했지만 모두 실패였다 . 화약이 좋지 않았다 . 재료가 좋지 않았던 것일까 ? 정제와 조합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 그의 머리에는 수많은 생각이 겹쳐있었다 . 숲이 어수선 했다 . 한창 밝을 시간대였지만 비오기 전처럼 숲은 온통 어두웠다 . 먼 곳에서 새들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올랐다 .

“ 크아아아아아아아 !!!” 멀리서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 괴 ... 괴물 . 근처에 괴물이 있어 !” 하나는 빠르게 탄들과 탄피를 가방에 우겨넣었다 . 마을로 향하기전 괴물이 아직 주변에 없다는 , 자신은 아직 안전하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뒤돌아보았을 때 커다란 고목나무 아래 한 어린아이가 귀를 막고 있었다 .

‘ 이런 곳에 어째서 어린아이가 ?’

괴물이 울부짖는 소리에 여러 동물들이 뛰어 다니며 수풀로 몸을 숨겼다 . 사슴이나 토끼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늑대무리와 범도 있었다 . 하나는 도망가는 동물들을 피하며 어린아이를 향해 뛰었다 . 괴물의 울부짖음에 도망치던 개체 중에는 뱀도 있었다 . 낙엽사이에 몸을 숨기며 해치고 나왔다 . 고목나무 아래가 마치 자신의 보금자리인 양 뱀은 어린아이의 앞에서 똬리를 틀어 그곳에서 나가라는 듯 위협했다 . 하지만 겁에 질린 어린아이는 그저 눈을 질끈 감은 채 작게 중얼거리며 같은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 뱀은 몸을 움츠리더니 어린아이를 향해 총알처럼 뛰어올라 아이의 손을 물고는 몸통으로 아이의 팔을 휘감았다 . 그 모습을 본 하나는 전력의 전력을 다해 뛰어가 뱀의 머리를 잡고 아이에게서 떼어 놓으려 했다 . 몸통으로 꽉 죄고 있었기에 잘 떨어지지 않았고 하나가 당기는 방향으로 아이의 몸이 딸려왔다 . 뱀의 머리를 꽉 쥐어 당기자 뱀이 아이에게서 떨어졌고 하나는 뱀 머리를 쥐고 원심력을 이용해 빙글 빙글 돌려 숲으로 내던졌다 . 옆으로 넘어진 채 움츠리고 있는 아이의 손은 뱀에게 물린 자국으로 인해 파랗게 부어 있었다 . 하나는 가방에서 끈을 빼서 아이의 팔뚝에 피가 통하지 않도록 감았고 겁에 질려 눈을 꼭 감고 있는 아이를 업고 마을로 뛰었다 .

“ 크아아아아아 !!!” 멀리서 괴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정도가 아닌 걸 보니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 하나는 돌아보지 않고 마을을 향해 그저 계속 뛸 뿐이다 .

마을 입구에 경비들과 몇몇의 길드원들이 모여 있었다 . 괴물의 울음소리가 마을까지 전해진 모양이었다 . 입구에는 록펠싱과 무궁 , 베르키엔도 있었다 .

“ 베르키엔 ! 도와줘 ! 이 아이 뱀에게 물렸어 !” 일행들은 마을 입구에서 하나 쪽으로 달려와 아이를 받아주었다 . 아이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베르키엔은 후드를 눌러쓴 채 말했다 .

“ 무궁씨 아이를 안고 있어주세요 .” 베르키엔은 집중하는 듯 눈을 감고 양손을 모았다 . 하얀 입자들이 모이더니 뱀에게 물린 상처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 이윽고 파랗게 부풀어 오른 손등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살색으로 돌아온다 . 시간이 꽤나 소모된다 . 주위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없는 마법에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

 

“ 어찌된 일이야 ?” 록펠싱이 하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말한다 .

 

“ 그게 ... 이것 좀 실험하러 갔는데 괴물의 포효가 들렸고 도망치려다 보니 아이가 보여서 데려왔어 . 괴물의 포효 때문에 뱀이 놀라 공격했어 .” 하나는 허리춤에서 리볼버를 꺼내며 말했다 .

 

“ 에이그 ! 왜 혼자 몰래 갔어 ! 이런 숲에 갈 땐 같이 가야지 ! 괴수뿐만 아니라 다른 위험한 야수들도 있는데 ! 혹시라도 네가 다쳤으면 ...” 록펠싱은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한번 쥐어 싸더니 말했다 . “ 우리 여행에 지장이 생긴다고 .”

 

“ 미안 .” 하나는 가볍게 웃어 넘겼다 .

치료가 끝났는지 베르키엔이 아이의 팔에 감긴 끈을 푼다 . ‘ 마법은 정말 무한한 능력인 것 같다 . 마법으로 불가능 한 것이 무엇일까 ? 시간을 되돌리거나 ... 나를 원래 있던 세계로 보내는 것 정도이려나 ?’ 하나가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

 

“ 아 ... 아빠아 ... 아빠 ...” 어린아이가 웅얼거리는 소리에 일행들이 움찔거리다가 일제히 하나를 야려보았다 .

 

“ 설마 ? 숨겨둔 ...”

“ 혹시 ? 이 세계에서 왔다는 건 뻥 ...”

“ 역시 ? 자기아이라서 괴수들 틈에서 데려올 만큼 목숨보다 소중 ...” 일행들은 각자 말을 하더니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응 ??? 왜들 이래 !” 당황한 나머지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

 

“ 이해한다 . 그럴 수 있지 .” 무궁이 하나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

 

“ 아니라고오오 !!!” 하나의 절규에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

하나가 록펠싱을 쳐다보자 째려볼 뿐이었고 베르키엔을 바라보자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웃음지을 뿐이었다 . 하나가 한숨을 쉬며 몸에서 힘을 쭉 빼자 록펠싱이 팔꿈치로 하나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

“ 장난이라고 . 너무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마 .” 그녀는 웃으며 말하더니 무궁에게서 어린아이를 받아 품에 안는다 .

“ 마수는 봤어 ?”

 

“ 아니 . 나도 포효소리만 들었어 .”

 

“ 그래 . 다행이다 .”

 

“ 이 아이 좀 부탁해 . 네가 아이를 데려올 줄은 몰랐거든 . 숙소에서 기다려 줄래 ?” 록펠싱은 어린아이를 하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

 

‘ 그렇지 . 난 비전투인원이지 .’ 하나는 어린아이를 받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

 

“ 우린 긴급 의뢰를 수주 받아서 경계가 풀릴 때 까지는 대기해야해 .” 무궁이 하나에게 말했다 .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를 안고 길드숙소로 향했다 .

 

그 시각 진은 고목나무 앞에 섰다 .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앨리사가 보이지 않았다 . 앨리사의 흔적이나 혈흔도 보이지 않았다 . 그의 눈이 푸른빛을 띄더니 세상의 빛들이 반전되었고 이윽고 잔상이 보였다 . 앨리사가 귀를 막고 있었다 . 그리고 흔적이 사라졌다 . 진은 다시 한 번 잔상을 확인하였다 . 하지만 역시 잔상은 앨리사가 귀를 막는 곳에서 멈췄다 . 진은 엄지손톱을 질끈 깨물었다 . 이 주변에는 앨리사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 그저 도망가는 동물들만 있을 뿐이었다 . 그 동물들마저도 일부는 희미하게 지워져 있었다 . 그는 동물들이 도망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그 방향 멀리 마을이 보였다 . “ 인간들의 마을 ...” 그곳에 앨리사가 있다면 안심이었다 . 진은 앨리사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반쯤 창백해진 얼빠진 얼굴로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 그가 입구에 다다랐을 때 마을 입구는 무거운 분위기였다 . 갑옷을 입은 용병들과 경비병이 입구에 모여 있었고 긴장감이 나돌았다 . 진은 발을 끌며 입구를 바라보았다 . 용병들이 진을 보고 살아남은 생존자라 생각해 구조하러 몇몇이 달려 나왔다 . 그러나 베르키엔은 그에게서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 마수의 비릿한 피 냄새가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용병들은 깡마르고 키가 크기만 한 비실대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

 

“ 앨리사 ... 앨 ... 리사 .” 진은 작게 웅얼거렸다 . 그러나 마을입구 역시 흔적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었다 . 안개처럼 뿌옇게 흩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그저 사람들의 말소리만 조금씩 들릴 뿐이었다 . 한 용병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 이봐 ! 괜찮아 ? 살아남은 생존자는 자네뿐인가 ?” 하지만 용병의 말에 진은 멍하게 지워진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 이 끝에 반드시 앨리사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다 . 진이 계속해서 마을 안으로 걷자 베르키엔이 떨면서 중얼거렸다 .

 

“ 위 ... 위험해 ... 저건 위 ..” 떨고 있는 베르키엔의 어깨를 무궁이 움켜쥐자 베르키엔이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린다 .

 

“ 위험해요 . 저 사람 ... 아니 저 존재는 ... 어째서 이곳에 ?”

 

“ 베르키엔 . 아는 사람이야 ?”

 

“ 아니요 . 몰라요 . 모르기에 더 ...” 그녀는 말을 잊지 못했다 . 그때 록펠싱이 뭔가 떠오른 듯 움찔거린다 .

 

“ 혹시 ? 그 애 ? 하나 !” 록펠싱이 그를 뒤쫓으려 발걸음을 박찼을 때 그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뒤따라갈 목표를 잃은 록펠싱의 발걸음은 힘을 잃었다 .

“ 뭐 ... 뭣 ?”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귀신에게 홀린 듯 그의 존재를 찾지 못했다 . 그런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일행들은 하나를 찾아 숙소로 뛰었다 .

 

 

커다랗고 높은 건물로 다가갈수록 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발이라던가 , 손이라던가 잔상이 남는 것 같았다 . 누군가가 앨리사를 업고 가고 있었다 . 건물로 들어설수록 잔상은 또렷해졌다 . 앨리사가 이곳에 있다 . 문을 닫고 나오는 남자를 밀쳐 목을 죄었다 .

“ 으엑 !!!” 갑작스런 밀침에 하나는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

 

“ 너 뭐야 ? 도대체 정체가 뭐야 ?”

 

“ 으익 ... 엑 ... 읍 !” 하나는 목이 졸려 숨이 막혔고 겁에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상대가 겁에 질렸다는 것을 알아챈 진은 힘을 빼고 그를 놓았다 . 누군가 잔상을 지웠다고 생각해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

 

“ 아 ... 죄송 ! 앨리 .. 아니 혹시 요만한 어린 소녀 하나 못 봤나요 ?” 진은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며 말했다 .

 

“ 안에 ... 안에 있어요 .” 하나는 목이 졸려 막히는 숨을 가다듬고 급히 내쉬며 대답했다 . 그런 하나를 뒤로 놔둔 채 진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 그제야 진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 앨리사를 도와줬군요 .”

 

“ 당연하죠 . 숲에 혼자 떨고 있는 아이를 보면 누구나 도와주고 싶을 거예요 . 더구나 마수가 나타나는 숲이라면 더더욱 .” 하나는 자신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

“ 뱀에게 물려서 조금 전에 치료했어요 . 한동안 자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하나의 말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

 

“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편안한 상태로 자고 있군요 . 호흡 , 맥박 모두 평온한 상태에요 .” 진은 자신의 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평온한 상태의 앨리사를 보고 안심과 동시에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꼈다 . 이제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 잔상이 옅게 흐려진 것도 스스로 너무 흥분한 나머지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 그의 몸은 지금 불안정했다 . 크게 심호흡을 하고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

 

“ 화약 냄새로군요 .”

 

“ 아 !” 그의 말에 하나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

 

“ 뭘 좀 만들고 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요 .” 하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했다 .

 

“ 힘든 방향으로 잡고 있네요 . 손이 많이 가고 질 좋은 화약을 만들기 어렵죠 .” 그의 말에 하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 적어도 이 사람은 화약에 대해 알고 있고 어쩌면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적색 노황 버섯 3 개 , 둥근 푸른 버섯 2 개 , 노란 갓 독버섯 1 개를 일주일 이상 말려서 갈면 꽤나 좋은 화약이 제조 될 거예요 . 먹지는 마요 . 전부 독버섯이니까 .” 하나는 놀랐다 . 그토록 원하는 화약제조법이 굴러들어왔다 . 그 제조법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지금껏 그 누구도 화약의 존재를 알지 못했건만 그는 알고 있었다 . 어쩌면 좋은 총을 제작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

 

“ 혹시 총 이라던가 화약을 이용한 장비는 있나요 ?” 하나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

 

“ 그런 거 쓸 필요가 없어서 안 씁니다 . 폭죽 만들 때 나 요리할 때 썼던 것 같군요 .” 하나의 열의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 화약의 존재를 알면서 사용하지 않는다니 ! 분명 이것을 사용하면 마수와의 싸움이나 자신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

 

“ 그러고 보니 탄에다 마법을 저장해서 쏘는 무기도 있었군요 . 저는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지만요 .” 그의 말에 하나는 다시 불타올랐다 . 베르키엔의 마법이면 마법을 탄에 쏘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색다른 화약을 제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

 

그때 숙소의 문이 열리며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

 

“ 하나 !” 록펠싱이 숙소 계단을 올라오며 외친다 . 그녀는 마치 하나의 보호자라도 된 마냥 하나의 몸을 이리저리 살핀다 . 하나는 그녀의 행동에 살짝 당황한다 . 뒤따라온 베르키엔이 진을 매섭게 노려보며 경계했다 .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

 

“ 당신 정체가 뭐에요 ?” 베르키엔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 사람인데요 .”

 

“ 사람이라면 그렇게 독한 마수의 냄새를 풍길 수 없어요 !” 베르키엔이 그를 쏘아 붙였다 .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진의 아우라가 매우 평온하게 보였다 .

 

“ 아 ! 마족이라고 해야 하는 군요 .” 그의 대답에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이 무기를 뽑아 그를 향해 겨누었다 . 인간의 나라에 존재하는 마족은 단죄를 제외하곤 추방당한 마족이었다 . 3 백여 년 전 추방당한 다수의 마족으로 인해 인간과 마족은 전쟁을 치렀다 . 그 후 오해가 풀려 협정을 맺으며 마족측은 단죄를 보내어 추방당해 인간의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마족들을 섬멸하고 있었다 . 단죄라면 왕국조사단과 함께 무리지어 있어야 했다 . 왕의 증표를 항상 보이는 곳에 지니고 있어야 했다 . 옷의 상태로 보아 다 찢어져 알 수 없었겠지만 4 명의 감시자들이 존재하여야 했다 .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 하나와 진만 제외한 채 .

 

“ 이 분 , 마족이긴 하지만 저 아이의 보호자인데 ? 나쁜 사람도 ... 아니 나쁜 마족도 아닌 거 같고 .” 하나가 적막함을 깨고 긴장감 없이 말했다 .

 

“ 이 녀석은 마족이야 . 저 아이도 마족일지도 모르지 .” 록펠싱이 도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

 

“ 왜들 이래 ? 마족이 그렇게 나쁜 존재야 ? 사람이랑 다를 바 없이 생겼는데 ?”

 

“ 그래 . 사람과 똑 닮았지 . 사람들 틈에 있는 마족들은 추방당한 존재야 . 재미로 사람을 죽이기도 , 먹기도 한다 . 본성을 드러내면 닮았다는 소리를 하지 못할 거야 .” 무궁이 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

 

“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어요 . 저 아이만 데려갈게요 .” 진은 전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문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

 

“ 저 아이가 인간이라면 ?” 록펠싱은 문으로 향하는 그의 목에 도를 대며 말했다 .

 

“ 저 아이는 인간입니다 . 마족들이 인간을 먹 ... 우리들끼리도 먹는 녀석들이 있는데요 . 그런 녀석들이 대게 추방됩니다 . 그런 녀석들은 덜된 녀석들이에요 . 그런 녀석은 보통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아요 . 걱정 마세요 . 전 안 먹으니까 . 애초에 에 ... 추방한 것도 그곳에 인간들이 사는 줄 모르고 ...” 진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자신의 미간 주름을 꼬집으며 말했다 .

 

“ 애당초 네 말을 믿을 수 없어 . 넌 마족이니까 .”

 

“ 음 ... 어쩔 수 없네요 . 그럼 잘 키워주세요 .” 진은 턱에 손을 괴고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한다 . 갑자기 이상한 분위기에 긴장감이 풀려 차가운 공기가 날아가 버린다 .

 

“ 뭐 ... 뭐야 그게 !” 록펠싱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 마치 마족은 모두 사악해야 한다는 듯이 .

 

“ 저 아이의 이름은 앨리사예요 . 그럼 안녕 !” 진은 역시 인간은 인간이 키우는 게 나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 이 사람들이라면 믿을 만 하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3 층 복도 끝 창문으로 뛰어내려 버렸다 . 일행들은 그를 보고 빠르게 길드입구로 내려왔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

 

“...” 베르키엔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 그가 하는 말이 거짓 없는 사실임을 아우라를 통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13. 만남 (2)

 

앨리사가 잠든 길드의 숙소에 모였다 .

“ 이제 꼬마 하나를 여행에 데려가야겠군 .” 무궁이 비꼬듯이 말했다 .

 

“ 그럼 애를 마족이 데려가게 놔뒀어야 했단 말이야 ?” 록펠싱이 무궁을 향해 격분하며 소리쳤다 .

 

“ 일단 깨어나면 물어보자 . 애의 진짜 보호자가 있겠지 .” 하나는 일행들이 언성을 높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 자신이 데려온 아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 하지만 아이를 내버려 두는 것은 더욱이 할 수 없었다 .

 

“ 내일 아침에 떠나기로 한 일정은 미뤄야겠네 ? 뭐 나야 상관없지만 .” 무궁은 어깨를 뜰썩이며 모르겠다는 몸짓을 취한다 .

 

“ 하루만 의뢰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 하루 더 머물 수 있는지 루아에게 물어 봐야 할 거고 . 또 애의 부모를 찾아줘야 해 .” 하루가 아니라 며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하나의 말에 무궁은 무관심 하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

 

“ 우 ... 우우우우 ~ 우웅 .” 그때 앨리사가 비비적거리며 몸을 비튼다 . 그러더니 반쯤 감긴 눈으로 상체를 일으켜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 잠이 덜 깼는지 반쯤 감긴 눈으로 주위를 다시 둘러보고 이상하다는 듯 눈을 비빈다 . 잠이 덜 깬 눈으로 다시 둘러보더니 또 다시 눈을 비빈다 . 앨리사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이고는 외친다 .

 

‘ 아저씨 !!!’ 자신의 손을 보고 뱀에게 물린 기억을 되살린다 . 그녀의 팔에 소름이 돋는다 . 뱀에게 물려서가 아니라 곁에 아저씨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 그녀는 이불을 제치며 침대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내려오려 발 닿지 않는 바닥에 까치발을 해서 내딛는다 . 허겁지겁 내려딛은 발은 바닥에 닿자 균형을 잃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것을 하나가 붙잡아 준다 .

 

“ 진정해 .” 그의 말을 듣지만 진정되지 않는다 . 그녀는 그의 옷을 붙잡고 목이 메여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

 

“ 아저 ... 콜록 , 콜록 ... 아저씨 .”

 

“ 숲에서 뱀에게 물렸어 . 치료했고 이제 괜찮아 . 진정해 .”

 

“ 아저씨가 저를 기다려요 . 저 가야해요 !” 그녀는 그녀를 붙잡고 있는 하나를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다 .

 

“ 지금은 밤이 늦었어요 . 숲에는 마수가 있어서 위험해요 .” 베르키엔이 나지막이 안도감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 앨리사는 베르키엔을 보더니 길쭉한 귀와 은빛 머리칼의 아름다운 외모에 잠시 멍하게 있는다 .

 

“ 구해줘서 고마워요 . 하지만 저는 가야해요 . 아저씨가 기다려요 . 밤늦게 기다려요 .” 앨리사는 베르키엔에게 웃으며 말하지만 이내 울먹이며 일행을 둘러본다 .

 

“ 그 아저씨라면 가버렸어 . 너를 잘 키워달라더라 .” 무궁이 벽에 기대어 말한다 . 그 말에 록펠싱은 무궁을 째려본다 . 앨리사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 왜 눈물이 흘러나오는지 모르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나온다 . 언젠가 떠날 걸 알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빨리 왔다 .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정작 자신은 아저씨에게 해준 게 없다 . 그저 미안했다 . 떼만 썼던 것 같다 . 거짓말 아니냐고 , 정말 아저씨가 가버린 거냐고 묻고 싶지만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이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 울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 알게 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흘러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 베르키엔이 앨리사를 품에 안고 다독여 준다 . 이런 모습을 보면 베르키엔은 정말 인간을 증오하는 것일까 ?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 앨리사는 그렇게 울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차분하게 잠든 모습을 보니 베르키엔이 마법으로 재운 게 아닐까 싶다 . 일행들도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로 들었다 . 모두가 잠든 이른 새벽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 록펠싱의 옆에서 자고 있던 앨리사는 조심히 이불 밑으로 꿈틀거리며 기어 나온다 . 캄캄한 방안을 더듬으며 까치말로 조심 조심 ,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문으로 향한다 . 나무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 살짝 문을 열었다가 몸이 빠져 나갈 만큼 다시 조금씩 연다 .

 

“ 어디 가는 거예요 ?” 베르키엔이 나지막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 앨리사는 화들짝 놀란다 .

 

“ 화 ... 화 ... 화 ! 화장실요 .” 앨리사가 깜짝 놀라 큰소리로 대답해 버린다 . 다행히 록펠싱은 몸을 뒤척이기만 할 뿐 깨진 않는다 . 록펠싱이 깨지 않은 걸 확인한 베르키엔이 입을 연다 .

 

“ 정말이에요 ? 저는 거짓말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있어요 .” 베르키엔의 말에 앨리사는 주춤거리며 우물쭈물한다 . 그사이 베르키엔은 끈으로 긴 머리를 묶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케이프를 팔에 걸친다 .

 

“ 숲으로 가는 거죠 ? 아저씨를 찾으러 .” 그녀의 말에 앨리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 베르키엔은 문을 열고 숙소 밖으로 나갔다 . 앨리사가 멍하게 있자 베르키엔이 나오라는 손짓을 한다 .

 

“ 숲에 그분 ... 아저씨가 없다면 돌아와서 자야해요 . 약속할거죠 ?” 베르키엔의 말에 앨리사가 우물쭈물한다 .

“ 없다면 충분히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 밝을 때 다시 찾아봐요 .” 그녀의 말에 안심한 듯 앨리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 옆방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 진다 .

 

밤의 공기는 차다 . 베르키엔은 앨리사가 행여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가지고 나온 케이프를 앨리사에게 두른다 . 마을 입구에 경비가 횃불을 켜고 졸고 있다 . 마수로 인해 긴장했던 낮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 망루에 보초병이 활을 들고 있다 . 마수가 오면 불화살을 기름통 함정에 쏴서 타격을 줌과 동시에 마을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베르키엔과 앨리사는 망루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숲으로 향했다 . 역시 숲을 향해 주시하고 있지 마을 쪽은 바라보지 않는다 . 이 시각에 마을에서 숲으로 향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

숲에 들어서니 동물들의 소리와 곤충들의 소리가 어우러진다 . 야행성 동물들은 사냥을 시작하고 서로 쫓고 쫓기는 추적전이 벌어진다 . 안광에 빛을 내는 동물들이 베르키엔과 앨리사를 주시하다가 사라진다 . 멀리 늑대들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 앨리사는 몸을 움츠리며 베르키엔에게 바짝 다가간다 .

“ 언니 . 고마워요 .” 앨리사가 베르키엔의 손을 꼭 잡는다 . 베르키엔은 대답대신 웃음지어 보인다 . 달빛과 별빛이 생각보다 아주 밝다 . 차오르는 달이라 그런 것 같다 . 어느새 그들은 고목나무 아래에 다다랐다 . 앨리사는 베르키엔의 손을 놓고 달려가 고목나무 근처를 둘러보았다 . 아저씨는 어디에도 없었다 . 앨리사의 얼굴이 조금 울상이 되었다 . 하지만 이를 악문다 . 뭔가를 다짐한 얼굴이다 .

 

“ 언니 . 조금만 더 가도 될까요 ? 아저씨가 무사한지만이라도 알고 싶어요 .”

 

“ 아저씨는 무사해요 . 앨리사가 자고 있을 때 만났어요 . 이름이 앨리사 라는 것도 알려줬어요 .”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사실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던 믿음이 깨져버린다 .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이 커다란 눈망울에 송글송글 맺힌다 .

 

“ 조금만 더 걸을까요 ?” 베르키엔의 말에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는 무성한 풀과 나무 , 잡초사이를 헤집어 걷는다 . 적막 속에서 베르키엔이 앨리사에게 묻는다 .

 

“ 아저씨는 어떤 분이에요 ?”

 

“ 음 ... 아저씨는요 . 착해요 . 착하고 순수하고 앨리사의 부탁을 들어주고 앨리사를 걱정해주고 ......” 앨리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인다 . 베르키엔의 눈에는 앨리사에게서 짙은 파란빛의 아우라가 품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 죄책감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

 

“ 앨리사가 나쁜 거예요 . 전부 ...”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끝을 흘린다 . 적막한 가운데 동물들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멈추고 침묵이 이어졌다 . 베르키엔이 앨리사의 앞에 손을 뻗어 발걸음을 정지시킨다 . 앨리사가 의아해 하며 고개를 들어 베르키엔을 올려 보았다 . 그녀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앨리사가 팔을 올려 베르키엔에게 물으려는 순간 어둠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 킁킁 , 킁킁 ... 드디어 찾았네 ~ 요 . ♡ 하 ~ 아 .” 먹잇감을 농락하는 듯 기다림에 지친 요염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베르키엔은 앨리사를 자신의 뒤로 보냈다 .

 

“ 일네느 ! 이런 멍청한 !” 류기스톤 단장이 일네느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화냈다 .

 

“ 아아앙 ! 하지만 단장 ! 쟤네들 이미 다 눈치 챘다고 ~ 요 .”

 

“ 님 자를 붙여 !” 류기스톤은 일네느의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았다 .

 

“ 아아앙 ! 때린데 또 때렸어어어 !!!” 일네느가 격분해서 단장을 할퀴려고 달려들려고 하자 제스토가 중간에서 막아선다 .

 

“ 제발 조금이라도 진지 할 수 없나요 ?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또 놓치겠어요 !” 제스토는 단장과 일네느를 번갈아 보며 말한다 .

 

“ 요 앞에서 크게 한바탕 했더군 . 그자는 어디에 있지 ?” 어두운 밤 케인의 눈에는 붉은 광채가 났다 . 증오로 일그러진 눈빛이었다 .

 

“ 누구세요 ?” 앨리사가 베르키엔의 뒤에서 고개만 빼꼼 꺼내 쳐다보았다 .

 

“... 누군지 말하면 순순히 잡혀 줄 건가 ?” 제스토가 웃으며 말했다 .

 

“ 인간 ... 인간 .... 인가아아안 !!!” 이번엔 베르키엔이 격분하자 후드가 벗겨지며 그녀의 뾰족한 귀가 드러난다 . 왕국조사단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놀란 눈치다 .

 

“ 역시 인간 따위 !!!...” 그녀는 검을 뽑았지만 달려들진 않았다 . 지켜야 할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 맞아요 ! 인간 따위 ! 쓰레기 예 ~ 요 . 하지만 베었을 때 감촉은 최고죠 ♡ ” 일네느는 어둠속에서 어느새 다가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베르키엔의 경계범위 안에 들어서자 베르키엔이 손에 하얀 빛의 입자를 모아 터트렸다 . 어두운 밤 눈부신 섬광에 다들 눈을 찌푸린다 .

 

“ 크윽 ! 어디 ... 어디냐 ?” 류기스톤이 그녀의 위치를 찾고 있을 때 베르키엔은 빠르게 앨리사의 팔을 잡고 마치 중력이 1/10 로 줄어든 것처럼 가볍게 뛰어 달렸다 . 왕국 기사단이 그녀를 쫓아 갈 때 잠복해 있던 서진이 나타나 베르키엔에게 달려들었다 . 그 순간 큰 돌풍이 일더니 서진의 몸을 꿰뚫고 지나간다 . 서진은 몇 미터 날아가더니 땅과 나무뿌리에 곤두박질친다 .

 

“ 일행이 있다 조심해라 !” 류기스톤 단장이 외친다 . 케인이 베르키엔에게 환약을 던진다 . 하얀연기를 뿌리며 날아가는 환약은 또다시 내리꽂히는 돌풍에 의해 날아가다 하얗게 흩날려버린다 .

“11 시 방향에 마법사가 있다 !” 뒤에 떨어져 있던 제스토가 외친다 . 서진은 일어나 옷을 털더니 사라져 보일 만큼 빠르게 11 시 방향으로 이동했다 . 팔이 변형한 5 개의 커다란 촉수로 나무를 쪼갠 후 감싸 으스러트려 버린다 . 부서진 나무와 흙먼지 사이로 한 남자가 와이어를 이용해 몇 미터 떨어진 나무로 이동하며 무형의 화살을 날린다 . 소음기음 같은 작은 소리가 여러 번 들리더니 서진의 촉수가 폭죽처럼 피를 튀기며 터져버린다 .

 

“ 무궁 ?” 베르키엔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짧게 흘러나왔다 . 그는 와이어를 타며 빠르게 그들 주변 나무에 화살을 쏴 쓰러뜨려 길을 막았다 . 그리고 베르키엔의 옆으로 와이어를 타고 와 같이 마을방향을 향해 달렸다 .

“ 고마워요 .” 베르키엔이 무궁 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

“ 뭘 이런 걸로 .”

왕국조사단들은 쓰러진 나무들 때문에 무성한 나뭇가지 쪽으로 오지 못하고 둘러 기둥을 짚고 뛰어넘어 온다 . 나무 위를 밟고 따라온 서진이 갑자기 위에서 내려찍는다 . 베르키엔은 앨리사를 급히 안고 방향을 틀어 보폭을 물처럼 흘린 후 공격을 피해 계속 달렸고 무궁은 와이어를 사용해 다른 나무로 이동했다 . 서진이 집요하게 베르키엔을 공격했고 무궁은 그녀를 지원사격 하다가 쫓아온 일네느와 케인에게 맞닥뜨리게 된다 . 무궁이 케인에게 무형의 화살을 쏘자 케인의 팔에서 기괴하게 심줄이 튀어나 검으로 돌풍을 베어버렸다 . 검풍에 의해 돌풍이 흐트러졌다 . 케인은 그로 인해 반대로 날아가 버렸고 뒤따라온 일네느의 손에 하얀 입자가 모이더니 무궁이 딛고 있는 바닥을 쓰다듬으며 지나쳤다 . 하얀 입자들이 쇠사슬로 변해 무궁의 다리를 묶었다 .

“ 크윽 ! 마법사 ?” 무궁은 안간힘을 쓰며 벗어나려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 그 광경을 본 베르키엔이 나지막이 입을 연다 .

 

“ 반요정 ...” 베르키엔의 움직임이 둔해지자 서진은 촉수로 그녀들을 포박했다 .

그때였다 . 검은 형체가 그림자처럼 , 묵직한 액체처럼 일렁이는가 싶더니 땅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가 튀어나왔다가를 반복한다 . 그러다가 서진의 촉수에 틈 없이 빠르게 달려들더니 갈가리 찢어버린다 . “ 크악 !” 서진은 짧은 신음과 함께 포박한 그녀들을 놓쳐버렸고 발을 올려 그것을 차려 하자 사라져버려 허공에 발길질한 셈이 되었다 . 그것은 애써 잡은 그녀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 일네느가 한눈판 사이 무궁도 사라져버렸다 .

“ 히이이에에에에 ?!!! 어디갔어 내 사냥감 !!!” 일네느의 경박한 외침소리가 들렸다 .

“ 잔상의 흔적이 사라졌어 . 그놈이다 .” 서진의 말에 케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

“ 얼굴 확인한 사람 있나요 ?” 케인이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한다 . 다들 고개를 흔든다 . 어두운 밤 전투 중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

“ 목표는 요정과 어린아이 . 그리고 바람을 일으키는 궁수다 . 그 중 어린아이는 꼭 잡아야 해 . 류헨 여관의 지워진 잔상의 흔적에서 발견된 인물일 확률이 높아 .” 제스토가 다부지게 말한다 .

“ 맞아요 . 냄새도 동일해요 . 구린내 때문에 구분하기 힘들었지만요 .” 옆에 있던 일네느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코를 막고 코맹맹이 나는 소리로 말했다 . 그리고 케인의 입가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주며 ‘ 씨익 ’ 하고 웃는다 . 그의 안경에는 조그만 핏자국이 튀겨져 있었다 .

 

“ 이 근처에 마을이 있습니다 . 그곳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 일단 그곳으로 가보죠 .” 제스토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움푹 파인 발자국이 있었다 .

 

한편 진은 앨리사를 업고 양팔에 무궁과 베르키엔을 안고 경비병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벽을 뛰어넘어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 나무 몇 개가 쓰러졌을 때 망루의 보초병이 경계음을 울렸고 다수의 경비병과 길드에서 파견된 용병이 급하게 파견돼 마을 입구에 모여 있었다 .

 

“ 아저씨 !” 앨리사가 진을 보고 그의 허벅지를 감싸 안는다 .

진은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듯 ‘ 헉 , 헉 ’ 대며 붉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 너무 빠른 속도와 흔들리는 충격 ,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궁과 베르키엔은 자신들이 마을에 와있다는 것에 어리둥절했다 . 갑자기 달리는 말에 발목이 묶인 듯 이리저리 치이면서 빠르게 딸려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 이제 ... 곧 그들이 올 겁니다 .” 진은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 어디서 옷을 갈아입었는지 말끔한 코트차림이다 .

“ 앨리사는 제가 데려가겠어요 . 여러분들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

 

“ 우리에겐 일행이 있어 . 알아서 할게 . 그리고 쫓기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너겠지 .” 무궁은 팔짱을 끼고 말한다 . 그가 마족이라서인지 , 베르키엔을 위험한 상황에 내놓아서 인지 매섭게 쏘아 말한다 .

 

“ 괜찮겠지요 ?” 진은 앨리사를 들어 품에 안는다 .

 

“ 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요 . 우린 그저 길 잃은 어린아이를 지켰을 뿐이니까요 .” 베르키엔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

 

“ 언니 . 안녕 ! 고마워요 . 담에 같이 놀아요 .” 앨리사가 진의 품에 안겨 뒤돌아 손을 흔든다 . 시야에서 멀어지는 진과 앨리사를 보며 베르키엔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

 

“ 그런데 쟤는 안 떠나고 있었네 ?” 무궁의 말에 베르키엔은 알고 있었다는 듯 작게 웃어 보인다 .

 

그리고 그들이 마을에 들어선다 .

“ 이 마을에 마족과 마족의 끄나풀이 있다 !” 류기스톤 단장이 외친다 .

 

“ 경비대장에게 알리세요 . 경비병들은 마을을 봉쇄하고 초소병의 수를 늘리세요 !” 옆에 있던 제스토가 왕국조사단 임을 증명하는 배지를 꺼내들었다 . 깊은 밤 슈프드 마을에는 불길함이 감돌았다 .

14. 비밀

 

베르키엔은 움츠려들었다 . 마을에서 도망칠 생각이었다 . 가능하다면 무궁도 같이 도망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 그도 쫓길 테니까 . 아직 들키지 않은 하나와 록펠싱은 후에 다시 만나도 될 터였다 . 하지만 무궁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

“ 날 믿어 .” 믿는 것은 쉽다 .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니까 . 하지만 믿고 난 뒤에 일어날 일들은 온전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 손과 발이 떨렸다 . 자신을 잡기위해 사람들은 이곳을 봉쇄하고 낱낱이 살펴 볼 것이다 . 악몽이 떠오른다 . 깜깜한 어둠 .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숲 . 요정들이 죽고 납치당하고 끌려가던 모습들이 스쳐지나간다 . 숨이 가빠진다 . 심하게 체하기라도 한 것처럼 목이 메고 숨이 턱턱 막힌다 . 동공이 풀리면서 눈앞이 흐려진다 . 숨이 점점 가빠진다 . “ 하아 , 하아 , 하아 .” 그리고 이성을 잃었다 .

 

다음날 그들이 눈을 떴을 땐 감옥 이었다 .

 

“ 베르키엔 ? 괜찮아 ?” 무궁이 그녀를 추스른다 . 베르키엔은 지끈 거리는 머리를 만지며 일어선다 .

“ 어제 무슨 일이 ... 어째서 이런 곳에 ...” 그녀는 머리를 만지며 고개를 흔든다 .

 

“ 어제 일 ... 기억 안나 ?” 무궁이 그녀를 걱정하며 말한다 .

 

“ 앨리사와 헤어지고 ... ” 그녀의 동공이 작아진다 .

 

“ 헉 , 헉 .” 그녀의 숨이 가빠진다 .

 

“ 베르키엔 . 진정해 !” 그러나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그녀의 숨은 점차 가빠진다 .

 

“ 베르키엔 !” 그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 그제야 그녀는 그의 얼굴을 쳐다본다 . 그녀의 입술에 붙은 머리카락들을 귀 뒤로 쓸어 넘겨준다 .

 

“ 어제 다짜고짜 그들을 공격했어 . 물론 사상자는 없었지만 .” 그의 말에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양손으로 머리칼을 머리 위에서부터 쪼그린 무릎 사이로 쓸어내린다 .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 곧 심문을 시작할 거야 . 넌 네가 아는 대로만 말하면 돼 . 다 잘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

 

그는 애써 그녀를 안심시킨다 . 하지만 그녀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 지금껏 구했던 요정들처럼 이제 자신이 노예가 될 거라 생각한다 . 그들처럼 죽은 눈으로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제정신이 아닌 인형이 될 거라 생각한다 . 일네느가 온다 . 무궁과 베르키엔에게 마법으로 족쇄를 만들어 손을 구속시킨다 . 일네느가 그들을 각각 다른 방으로 입장시킨다 . 좁은 방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하나가 있을 뿐이다 . 일네느는 베르키엔을 앉혀놓고 빤히 쳐다본다 . 그녀의 귀를 유심히 쳐다본다 . 그녀가 손에 있던 하얀 입자로 의자를 어루만지니 빛나는 쇠사슬이 베르키엔을 감싼다 .

“ 흐 ~ 흠 .” 그녀는 허리춤에서 송곳 같은 얇고 작은 단도를 꺼내더니 입술과 혀로 날 부분을 핥았다 .

“ 요정은 어떤 느낌 이려나요 ?” 그녀는 쾌감에 절은 모습으로 녹아내리기 직전이었다 . 베르키엔의 원피스치마를 위로 올리니 뽀얀 허벅지 살이 드러났다 . 베르키엔은 저항하려 흔들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

“ 마법을 쓸 수 있지요 ? 그래서 이 근방의 나노를 모두 태워버렸어요 . 이곳에 있는 것은 이병에 담긴 것이 전부에요 .” 그녀는 하얀 입자가 찰랑이는 원기둥의 병을 가리키며 웃었다 .

“ 찌르고 싶어 . 찌르고 싶어 . 찌르고 싶어 . 찌르면 혼날 텐데 ? 알게 뭐야 ! 찌르고 싶어 !” 그녀는 맛이 간 눈으로 고개를 흔들며 혼잣말을 한다 . 그러더니 갑자기 베르키엔의 뒷머리를 쥐어 잡으며 입을 맞췄다 . 당황한 베르키엔은 눈을 질근 감으며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그녀의 악력이 강해 돌리지 못했다 . 그와 동시에 그녀는 베르키엔의 허벅지에 단검을 내리박았다 . 검이 박힌 자리가 타오르는 것처럼 뜨겁다 . 몸부림을 치자 상처가 더 커지며 피가 뿜어져 나온다 . 마치 물이 가득한 비닐이 찢어진 것처럼 피가 솟구쳐 올라왔다 . 그녀는 입술을 떼고 겁에 질린 베르키엔의 눈을 쳐다보았다 .

 

“ 그럼 ... 이번엔 눈 ? 아니면 ... 귀 ?” 일네느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피가 뿜어져 나오는 그녀의 허벅지를 손으로 찍어 누른다 . 베르키엔은 고통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린다 . 그때 케인이 문을 벌컥 열면서 들어온다 .

 

“ 이럴 줄 알았어 .” 케인이 이마에 손을 얹고 인상 쓰며 머리를 흔든다 .

“ 빨리 치료해줘 .” 하지만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피 묻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 케인이 그녀의 뒤통수를 때리자 그제야 뒤돌아본다 .

“ 아얏 ! 응 ? 케인 언제 왔나요 ?”

 

“ 빨리 치료해줘 . 곧 내려 올 거야 .” 그의 말에 일네느는 아쉽다는 듯 나노가 든 병뚜껑을 연다 .

“ 칫 ! 조금만 더하면 됐는데 !” 그녀는 작게 속삭이곤 하얀 입자들을 허벅지와 피 묻은 바닥 그리고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

“ 아깝네요 . 조금만 더하면 예쁜 눈이랑 귀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 베르키엔의 귀에 작게 속삭이곤 음흉스럽고 요염하게 웃는다 .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

 

“ 미안합니다 . 저 녀석이 한 짓에 대해서요 .” 케인은 고개를 살짝 숙여 유감을 표했다 .

 

“ 왜 당신이 사과하는 거죠 ?” 베르키엔은 혐오하는 표정으로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묻는다 .

 

“ 일네느는 사과하지 않을 테니까요 .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둔 제 잘못이죠 .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 그는 정중히 사과하고 조용하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 한참이 지난 후에야 류기스톤 단장과 제스토가 계단으로 내려왔다 . 케인과 일네느가 그들을 무궁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

 

“ 어제 약속한대로 네게 먼저 왔다 . 약속대로 정보를 넘겨라 .”

 

“ 정보를 넘길 것도 없어 . 우린 그저 길 잃은 어린아이를 주웠을 뿐이고 그 애를 보호하고 있었을 뿐이다 . 너희들이 갑자기 공격해왔으니 우린 당연히 응대 할 수밖에 없었어 .” 그의 말에 류기스톤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

 

“ 너희들은 사건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그것도 한밤중에 ! 그 시간에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는 너희들이 마족과 한패였기 때문이지 . 그리고 그 꼬마 애는 마족과 연루된 아이다 . 어디로 빼돌렸지 ?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났던 ... 그 마족은 어디에 숨겼나 ?” 류기스톤은 몸을 숙여 탁자에 손을 짚고 말한다 .

 

“ 내가 말 한 대로다 . 우린 마족과 연관이 없다 . 우린 그저 길 잃은 아이를 보호했을 뿐이고 우릴 공격하는 너희에게서 그저 스스로를 지키려 했을 뿐이다 . 누군가 나타나 눈 깜짝 할 사이에 우릴 마을에 데려다 놓고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 무궁은 류기스톤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

 

“ 너에게선 답을 요구하기 힘들 것 같군 .” 류기스톤은 몸을 일으키더니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내 말은 사실이다 . 내 가문의 명예를 걸고 보증하지 .”

 

“ 네 가문 ?” 류기스톤이 코웃음을 친다 .

 

“ 내 목에 건 목걸이만 봐도 알 텐데 ?” 무궁이 비아냥거리자 류기스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 류기스톤이 제스토를 보며 고개를 살짝 치켜들자 제스토가 그의 옷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목걸이를 풀어 류기스톤에게 건넨다 . 그리고 그의 목걸이를 보자 류기스톤의 얼굴이 싸늘하게 내려앉는다 . “ 아르젠 아르제 시아 .” 그가 작게 말한다 . 촘촘한 문양으로 세공된 금목걸이였다 . 그 자리에 있던 왕국조사단은 모두 얼음처럼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

 

무궁은 곧바로 풀려났다 .

“ 이런 누추한 차림으로 어찌하여 모험자 행세를 하시는 겁니까 ?” 류기스톤이 그에게 물었다 .

 

“ 부끄럽게도 집안사정입니다 . 오늘 저를 본 것에 대해 잊어주셨으면 합니다 .” 류기스톤의 말투에 따라 그의 말투도 정중해 졌다 . 그의 말에 류기스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 이야기를 마치자 문이 열리며 베르키엔이 나온다 . 어두운 안색이 역력했다 .

“ 베르키엔 ? 괜찮아 ?” 그는 말없는 그녀를 부축했다 .

 

“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 인간이 없는 곳으로 ...” 그녀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작게 흔들며 이마에 손을 짚는다 . 그리고 길드 숙소 쪽으로 걸어갔다 .

“ 하아아아아 ~ 아아아 ~ 아 .” 그와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잔뜩 긴장한 일네느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 그리고 뭔가 아쉽다는 듯 계속 그들이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

일네느의 한숨에 케인을 제외한 조사단원은 의아한 눈초리로 일네느를 바라본다 . 제스토가 뭔가 놀라는 듯 주춤거리다가 눈치 채지 못한 단장을 보고 이내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한다 .

 

“ 단죄들을 따라가려면 부지런히 뛰어야겠군요 .” 제스토가 화재를 바꾸려는 듯 입을 연다 .

 

며칠 동안 강행군에 새벽까지 추적 , 마을에서 이성을 잃은 요정과 무형의 활을 쏘는 그분과의 전투 , 단서를 잡았다며 마족의 추적은 단죄에게 잠시 맡기고 서너 시간 눈을 붙인 후 심문했지만 수확은 전혀 없었다 . 조사단은 지칠 대로 지쳤다 . 하지만 그들에겐 임무가 있었기에 멈출 수 없었다 .

“ 이번 일이 끝나면 늘어지게 휴가나 즐기자고 ! 그러니까 빨리 출발이다 !” 하지만 정작 가장 지쳐 보이는 사람은 류기스톤과 제스토였다 .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 길드의 숙소에 들어선 무궁과 베르키엔은 각자의 방으로 갔다 . 새벽에 전투로 꽤나 시끄러웠으나 하나와 록펠싱은 꿀처럼 달콤한 잠을 자고 있었다 .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고 팔자 좋게 늘어지게 자고 있는 하나의 옆에서 무궁은 쓰러지듯 잠들었고 베르키엔은 자고 있는 록펠싱의 품에 파고들어 그녀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 .

 

늦게야 일어난 하나와 록펠싱은 앨리사가 사라져 찾는다고 야단법석이었다 . 그 소음에 먼저 깬 베르키엔은 어제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 자신이 고문당했다는 사실은 제외한 채 .

 

“ 그랬구나 . 데려 가버렸구나 .” 록펠싱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 “ 간밤에 정말 고생 많았네 ? 우린 그런지도 모르고 ... 좀 더 자는 게 좋겠어 .” 그녀의 말에 베르키엔은 고개를 흔든다 . 마침 옆방에 있던 무궁도 일어나 하품을 하며 문에 기대어 바라본다 .

“ 일어났네 ? 둘 다 더 안자도 정말 괜찮아 ?” 그녀의 말에 베르키엔은 웃으며 고개를 차분하게 끄덕인다 .

 

“ 괜찮아 ? 음 ... 그럼 우리도 우리의 길을 가볼까 ?” 일행은 분주하게 서둘러 씻은 후 짐을 정리한다 . 길드로 내려와 그동안 일했던 의뢰들을 정산 받는다 . 정산하는 동안 길드의 구석 테이블에 앉아 무궁이 펼친 지도를 살펴본다 .

 

“ 우리가 있는 곳은 이 마을이야 .” 무궁이 짚은 곳은 북쪽이었다 . 위로는 거친 산들이 있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크고 작은 산들과 커다란 강과 평야가 나타났다 . 강줄기를 따라 수많은 마을그림들이 있었다 . 그리고 저 아래 커다란 나무 그림이 있었다 .

 

“ 우선 가야할 곳은 ...”

 

“ 신전 . 신전이 있는 마을로 가요 .” 베르키엔이 지도를 짚으며 말한다 . 가장 가까운 신전이 있는 마을 베르겐 . 멀다면 꽤나 먼 마을이었다 . 작은 마을 두 개를 지나쳐 가야 했기 때문이다 .

“ 그럼 출발해 볼까 ?” 록펠싱의 말에 무궁이 지도를 접어 품속으로 넣는다 . 접수대의 루아와 작별의 인사를 했다 .

“ 나중에 또 들러주세요 .” 루아가 서운하다는 듯 작별인사를 했다 .

 

“ 여행이 끝나면 다시 올게 .” 일행들은 손을 흔들어 보인다 . 다시 행군이다 . 이번 가는 길엔 마수가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 아직 스스로를 지킬만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하나는 마족이 알려준 버섯이름을 생각해 내려 애썼다 . ‘ 그때 적어둘걸 .’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 ‘ 적색 ... 황 버섯 3 개에 ... 둥근 푸른 버섯 2 개 , ... 무슨 갓 버섯 1 개 ... 전부 독버섯이라고 했었지 ?’ 하나는 기억을 더듬어 냈다 . 일행은 슈프드 마을입구를 벗어나 길로 들어섰다 . 논과 밭이 사라지고 우거진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 하나는 옆에서 걷고 있던 록펠싱에게 묻는다 .

 

“ 록펠싱 . 혹시 버섯에 대해 잘 알아 ?”

 

“ 버섯 ? 버섯요리 맛있는데 . 전골이라든가 부침이라든가 .” 록펠싱이 황홀한 표정으로 당장 침이라도 흐를 것처럼 상상 속으로 뛰어든다 .

 

“ 침 닦아 .” 뒤에 따라오던 무궁이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간다는 듯 쏘아 말한다 .

 

록펠싱은 뒤돌아 무궁을 째려보다가 궁금한 표정으로 하나에게 묻는다 .

 

“ 그런데 갑자기 버섯은 왜 ?”

 

“ 뭘 좀 만들려는데 버섯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서 .”

 

“ 뭘 만들려고 ? 버섯 스프 ? 버섯전골 ? 버섯 부침 ?”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폭발하는 걸 만들려고 .”

 

“ 아 ~ 아아 .” 록펠싱은 먹을 것이 아니라 흥미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아마 숲에 실험하러 갔던 그 물건일 것이라 생각했다 .

 

“ 혹시 버섯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있어 ?” 하나가 모두가 들리도록 이야기한다 .

 

“ 버섯이라면 꽤 알거라 생각해요 .” 베르키엔이 말한다 .

 

“ 적색 무슨 황 버섯이랑 둥근 푸른 버섯 , 그리고 무슨 갓 버섯인데 , 이름이 다 기억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 .”

 

“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요 ?”

 

“ 아니 .” 그의 말에 베르키엔은 팔짱을 끼고 턱에 손을 괸다 .

 

“ 둥근 푸른 버섯은 말 그대로 둥글고 파란 버섯이에요 . 흰점이 박힌 건 점박이 둥근 푸른 버섯이고요 . 그런데 둘 다 독버섯인데 ...”

 

“ 아 ! 전부 독버섯이라고 했어 .”

 

“ 독버섯으로 뭘 하려고요 ?” 그녀는 자연스레 팔짱을 낀다 .

 

“ 아까 말했듯이 폭발하는 것을 만들 거야 . 일주일간 말려서 갈아서 혼합할 생각이야 .”

 

“ 흐 ~ 음 .” 베르키엔은 수상하다는 듯 하나를 쳐다본다 .

 

“ 먹을 건 아니죠 ?”

 

“ 당연하지 ! 내가 그걸 왜 먹겠어 .”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쓴웃음을 짓는다 .

 

“ 적색 무슨 황 버섯이라고 한건 독버섯이니까 아마 적색 노황 버섯일 것이에요 .”

 

“ 그리고 갓 버섯은 푸른 갓 버섯 , 그물 갓 버섯 , 하얀 갓 버섯 , 노란 점박이 갓 버섯 , 노란 갓 버섯 , 노란 우산 갓 버섯 아 이건 환각이 보이는 버섯인데 독버섯이라고 하긴 좀 애매한 버섯이네요 . 약으로도 쓰이니까 . 그리고 ...”

 

“ 맞아 ! 노란 갓 버섯이었던 것 같아 !” 하나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

 

“ 베르키엔 . 가는 길에 혹시 보이면 이 버섯들 알려줄 수 있어 ?”

 

“ 네 . 그런데 이런 길가에는 잘 없을 걸요 ?” 베르키엔은 숲 깊은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

 

“ 록펠싱 . 괜찮죠 ?”

 

“ 응 ? 뭘 ?”

 

“ 하나씨랑 버섯 재취 좀 하고 올게요 .” 베르키엔은 태양처럼 방긋 웃는다 . 눈부셔서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 저런 순수한 미소를 보이다니 반칙이다 .

 

“ 우리도 같이 갈까 ?” 록펠싱은 무궁을 쳐다보며 말했다 .

 

“ 그래 .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려고 .” 무궁이 걱정하며 말한다 .

 

“ 그래 ! 또 그때처럼 검은 복면들이 따라올지도 모르잖아 !” 록펠싱은 그녀를 뒤쫓던 인신매매 범을 떠올리며 말했다 .

 

“ 뭐 ? 검은 복면 ?” 무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

 

“ 아까 지도를 봐서 마을 위치는 잘 알고 있어요 . 그리고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마법을 모두에게 걸긴 힘들어요 . 모두 같이 가면 시간이 많이 늦어질 거예요 .”

 

“ 그렇다 해도 같이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 록펠싱의 걱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

 

“ 그러는 편이 좋지만 괜찮을 거예요 . 무슨 일이이야 생기겠어요 ?” 라고 말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자신을 쫓는 검은 복면의 집단과 마수들 , 그리고 어린소녀를 데리고 다니는 이상한 마족과 그들을 쫓는 제정신이 아닌 왕국조사단을 만났다 .

“ 무슨 일이 생기면 마법으로 섬광을 만들어 터트릴게요 .” 그녀의 단호한 행동에 록펠싱과 무궁은 마땅치 못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

 

베르키엔이 손에 하얀 입자를 모으더니 하나의 발과 자신의 발을 쓰다듬는다 . 하얀 입자들이 그들의 발을 감싼다 .

 

“ 와 ! 이거 뭐야 ? 엄청 가벼워 !” 하나는 베르키엔의 마법에 감탄했다 . 마법을 배운다면 이 마법을 반드시 배워야겠다고 마음속 목록에 기억해 두었다 .

 

“ 자 ! 이제 가볼까요 ?” 베르키엔과 하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순식간에 숲으로 사라졌다 . 무궁과 록펠싱을 길가에 남겨둔 채로 .

15. 습격 (1)

 

하나와 베르키엔은 습하고 퀴퀴한 , 음산한 곳으로 들어갔다 . 나무들의 뿌리에는 이끼와 여러 종류의 식물들과 버섯들이 자라고 있었다 . 그곳에 파란색의 공처럼 둥근 버섯이 무리지어 있었다 .

 

“ 둥근 푸른 버섯 !” 하나가 외쳤다 .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이름 그대로 생긴 버섯이었다 .

 

“ 맞아요 . 습한 음지에 자라요 . 그 아래에 있는 버섯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니에요 . 흰점이 있으니까요 .”

 

“ 이건 알아보기 쉽네 .” 하나는 버섯을 따서 배낭 안에 차곡차곡 넣었다 .

 

이번에는 활엽수 낙엽이 잔뜩 쌓여있는 나무 아래로 갔다 . 베르키엔이 쪼그리고 앉아 낙엽을 파헤치더니 윤기 흐르는 붉은 빛의 버섯이 보였다 .

 

“ 이건 적색 노황 버섯이에요 . 낙엽 아래 나무뿌리에 살죠 . 붉은 색과 삐죽하게 올라온 갓이 화난 것처럼 보인다고 해요 .” 하나와 베르키엔은 버섯을 따서 배낭 안에 쌓고 또 쌓았다 .

 

“ 마지막 노란 갓 독버섯은 죽은 참나무 위에서 자라요 . 그리고 햇빛이 비치지 않는 음산한 곳이어야 하죠 . 빛을 받고 자라는 참나무가 죽으면 그것을 양분삼아 빛이 오지 않는 음지에서만 자랄 수 있는 버섯이에요 .” 태양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갈 때까지 우리는 한참을 걸었다 .

 

“ 저것 봐요 ! 쓰러진 참나무예요 !” 베르키엔이 외친다 . 커다란 돌과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참나무가 쓰러져있었다 . 반나절 이상을 쉬지 않고 걸었지만 전혀 지치지 않았다 . 역시 마법이란 위대하다고 새삼 느끼던 하나였다 . 가까이 다가가자 노란 갓을 한 얇은 버섯이 줄지어 솟아 있었다 . 마지막 버섯 . 이것만 채취하여 일주일 간 잘 말리면 그토록 원하던 화약을 만들 수 있을 터였다 . 답답하게 막혀있던 무거운 머리가 뭔가 뚫리며 가벼워진 느낌이다 . ‘ 이거라면 할 수 있어 .’ 라는 믿음이 하나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 하나는 종류별로 잘 분류하여 버섯을 차곡차곡 쌓았다 . 그리고 버섯들이 자라는 주요 환경을 그림으로 스케치하며 기록했다 . 이젠 연락오지 않아도 폰의 진동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에 종종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는 버릇도 없어졌다 .

 

“ 베르키엔 고마워 .” 하나는 양손 가득 버섯을 들고 말한다 . 그녀는 아무 말 않고 그의 눈을 살짝 맞추고 웃다가 눈을 흘린다 .

 

“ 이렇게 인간과 서로 적대심 없이 믿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그녀의 눈은 차가운 얼음처럼 공허하게 먼 곳을 응시했다 . 긴 속눈썹이 더 애처롭고 슬프게 보였다 .

 

“ 분명 그런 날이 올 거야 . 올 거라고 믿어 .” 모든 요정들에게 그런 날이 올 거라 생각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 주변에는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그녀는 나무와 풀들이 우거진 주변을 둘러본다 . 예전에 살던 숲과 비슷한 점이 있는지 추억에 잠긴 모양이다 . 그녀가 우수에 젖은 눈을 들어 하나를 바라본다 .

 

“ 이제 돌아갈까요 ?”

 

“ 그래 . 돌아가자 .”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안정감이 생긴다 . 그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로 들어섰다 . 반나절 정도의 차이가 났기에 우린 서둘러 걸어갔다 .

 

“ 윽 !” 갑자기 무거워진 발걸음에 비틀거린다 . 마치 족쇄를 찬 것 같았다 .

 

“ 마법의 효과가 떨어졌어요 .” 그녀가 하나를 향해 살며시 웃었지만 안색이 어두운 것으로 보아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다 .

 

“ 베르키엔 . 또 하나 부탁할게 있는데 들어 줄 수 있겠어 ?”

 

“ 일단 들어보고 정해도 될까요 ?” 그녀는 피곤하지 않은 척 자세를 고쳐 하나를 향해 몸을 돌린다 .

 

“ 마을에 도착하면 마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 하나의 부탁에 베르키엔은 고민 많은 표정을 짓는다 .

 

“ 우리 요정들은 자연스레 마법을 사용해서 가르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볼게요 .”

 

“ 응 . 고마워 .” 그는 긍정적인 그녀의 대답에 웃으며 대답한다 . 그리고 생각한다 . ‘ 마법을 사용하는 이렇게 강한 요정을 인간들은 어떻게 노예로 부릴 수 있을까 ?’ 그녀에게 물어보려 하다가 그녀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할까 주춤거린다 . 어떻게 하면 조심스럽게 물어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

 

“ 베르키엔 . 요정들은 마법을 사용하고 이렇게나 강한데 인간들이 무슨 비열한 ... 수를 써서 요정들을 포박하여 노예로 부리고 있는 거야 ? 스스로도 언제든 탈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의 질문에 베르키엔은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본다 .

 

“ 어떤 약을 사용해요 . 마법으로 해독을 해봤는데 그 약으로 인해 요정들은 살아있는 인형처럼 변해요 . 마법은커녕 자주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저도 그 약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 중독 된 것처럼 그 약에 의존하게 되고 금단현상이 나타나요 . 구해줬는데 스스로 돌아가서 다시 구해준 요정이 많았어요 . 억지로 새 보금자리로 끌고 간 애들도 있어요 .”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 코끝까지 빨개진 그녀는 억울하고 속상해 보였다 . 하나는 마약 같은 종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 길 멀리 록펠싱과 무궁의 모습이 보였다 . 서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지 티격 대며 록펠싱이 발로 차고 무궁이 화를 낸다 . 베르키엔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린다 . 하나의 눈에는 마치 사이좋은 남매처럼 보였다 .

 

하나가 록펠싱과 무궁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며 뛰어간다 . 록펠싱과 무궁은 뒤돌아보며 뛰어 오는 하나와 뒤에서 걸어오는 베르키엔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 길의 끝에는 비올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 마을에 들어선 일행들은 마을 중앙 연못 앞의 넓고 커다란 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

 

“10 분간 휴식하고 점심 먹으러 가자 . 점심을 먹기엔 좀 늦은 시간이지만 . 그리고 오늘은 야숙을 해야 하니까 무궁과 베르키엔의 야숙 장비를 사야 할 것 같아 . 다음 마을이 강가에 있어서 좀 멀거든 .” 록펠싱은 일행의 인솔자답게 일정을 나열했다 .

 

“ 그래서 하는 말인데 뭘 먹으러 갈까 ?” 록펠싱은 양손으로 턱을 괴고 말한다 . 먹을 것을 상상하니 행복한 표정이다 .

 

“ 저는 고기가 좋습니다 !” 하나가 진지한 얼굴로 손을 번쩍 들고 말한다 .

 

“ 나도 고기 .” 무궁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찬성한다 .

 

“ 저는 과일이 좋아요 .” 베르키엔은 난처하다는 듯 웃는다 .

 

“ 베르키엔 . 골고루 먹어야지 . 과일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아 . 고기도 먹어줘야지 ~.” 록펠싱이 숲에서 딴 과일로만 배를 채우는 , 거기다 3 끼 식사를 잘 하지 않는 그녀의 건강을 걱정한다 .

“ 아니 ... 과일만 먹어서 그런 꿀 피부 인건가 ?!! 나도 과일 먹을래 !” 록펠싱은 곰곰이 생각하다 베르키엔의 피부를 보고 뭔가 깨달은 듯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

 

“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냐 ?” 무궁이 비아냥거린다 .

 

“ 뭐 이 자식아 !” 록펠싱이 발끈하며 무궁과 투닥거린다 .

 

“ 자 어서 밥 먹으러 갑시다 ! 오는 길에 보니 고기와 과일을 볶은 음식이 있던 것 같던데 그거 먹으면 될 거 같아 .” 빨리 고기를 록펠싱과 무궁의 입에 넣어줘야 조용할 것 같았다 . 고기는 항상 옳았다 . 화나고 짜증난 사람에겐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

 

음식점은 건물이 아니었다 . 커다란 반달모양의 돌판 주위에 의자가 둘러져 있었고 요리사로 보이는 털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돌판 위에 거대한 고기를 굽고 있었다 . 지붕이 없어서 비오는 날은 장사를 못할 것 같은 가게였다 . 용의 뼈라도 되는지 거대한 갈비뼈로 보이는 뼈대가 가게를 두르고 있었다 . 그 갈비뼈에 줄을 매달아 거대한 고기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 ‘ 이거 용 고기 인가 ? 이 세계에는 용도 존재하나 ?’ 하는 생각도 들었다 .

 

“ 이거 무슨 생물의 뼈인가요 ?” 궁금한 하나가 요리사 아저씨에게 물었다 .

 

“ 하핫 ! 중급 마수의 갈비뼈입니다 !” 그 아저씨의 말에 중급마수의 크기에 놀랐고 설마 이 고기들이 마수들 고기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 설마 이 고기 ...” 무궁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막으며 말했다 .

 

“ 아닙니다 . 이 고기는 포코입니다 .”

아저씨의 말에 하나를 제외한 일행들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록펠싱이 말하길 포코라는 게 집채만 한 크기의 거대한 돼지를 말하는 것 같았다 . 이 마을은 약 300 년 전 중급마수를 잡은 곳에서 전쟁의 승리로 기념처럼 세워진 마을이었다 . 과거 일행들이 식사하는 이 장소에는 누군가가 이렇게 갈비뼈만으로도 거대한 중급마수와 치열한 사투를 벌였을 거라 생각했다 . 일행은 고기과일볶음 3 개와 과일볶음 1 개를 주문했다 .

각종 여러 과일과 고기가 볶아져 나왔다 . 과일의 달콤함과 고기의 부드럽고 뜨거운 육즙이 입안을 휘감았다 . 록펠싱은 행복한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손으로 고기를 집으며 다른 한손으로 자신의 턱과 볼을 쓰다듬었다 . 역시 고기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

 

식사를 마친 일행은 건 육포와 건 과일을 사고 야영장비와 배낭 , 물통을 샀다 . 그들은 또다시 걸었다 . 3~4 시간 밖에 걷지 않은 것 같았는데 밤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 어두운 숲에서 마른 것인지 젖은 것인지 구별되지 않는 나뭇가지를 줍고 1 인용 천막을 연결하여 2 인용 천막 2 개로 만들었다 . 하나는 버섯을 꺼내 펼쳐서 화로 주변에 말려두었다 . 독버섯이니까 먹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 건 육포와 건 과일을 넣은 스튜를 먹은 후 주변에 산짐승 들이 싫어하는 가루를 주변에 뿌렸다 . 그리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그러나 하나는 2 인용 천막으로 만든 것을 후회했다 . 무궁의 잠꼬대가 너무 심했기에 늦게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이른 새벽 짐을 꾸린다 . 추위와 무궁의 잠꼬대 때문에 잠이 들자마자 깬 느낌이다 . 정리하다가 문득 떠오른다 . 어제 마을에 도착하면 베르키엔에게 마법을 배우기로 했었다는 것을 . 배고픔에 먹고 장비사고 바로 행군을 하는 바람에 둘 다 잊어버린 듯 했다 . ‘ 다음 마을에 숙소를 잡으면 베르키엔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 하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행군은 지루했다 . 하루 종일 걷기만 하는 강행군은 오후가 되자 서로 말이 없어졌다 . 쉬는 시간에도 서로 말이 없었다 . 하나는 ‘ 내가 마법만 쓸 수 있었다면 행군이 좀 더 편해지지 않았을까 ’ 라고 생각했다 .

 

3 시경 , 마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 마지막 휴식을 취하려 하자 앞에는 앉기 좋은 넓은 돌들이 모여 있었다 . 지친 하나가 빨리 쉬기 위해 넓은 돌로 뛰어갔다 . 무궁은 인위적인 이질감을 느꼈다 . 마치 누군가 일행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성해 놓은 것 같았다 . 하지만 이곳을 자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쉬기 위해 이렇게 조성해 놓았을 수도 , 혹은 아주 적은 확률로 자연이 이렇게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 억측이라 생각했다 . 그녀를 쫓는 검은 복면들이 있다는 말에 신경이 날카로운 것이라 생각했다 . 그 검은 복면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들이 아닐 거라 믿고 싶었다 .

 

그들은 배낭을 벗고 넓은 돌 위에 앉아 건 식재료와 물을 섭취했다 . 그때였다 . 4 개의 그물망이 순식간에 날아왔다 . 하나는 물을 마시다 그물망에 걸려 옷에 쏟아버렸고 무궁과 록펠싱도 그물망에 걸려 허우적거렸다 . 처음 맞아본 그물망은 무거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 그러나 베르키엔은 몸을 숙이고 앞으로 튕겨져 나가 그물망을 간발의 차이로 피할 수 있었다 . 그와 동시에 20 명 가까이 되는 검은 복면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

“ 목표는 요정이다 ! 요정을 제외하곤 모두 죽여도 상관없다 !” 그중 대장처럼 인솔하는 자가 외쳤다 . 그들을 본 무궁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

10 여명이 베르키엔을 둘러싸고 나머지 인원들은 그물망에 걸린 일행들에게 다가가 창을 겨누었다 .

 

베르키엔은 손에 하얀 입자들을 모았다 .

 

“ 얌전히 잡히지 않으면 너의 일행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다 !”

 

베르키엔은 그의 말을 듣던 , 듣지 않던 일행들을 모두 죽일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 그녀는 떨렸고 그녀의 손에 모인 나노는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형태를 이루었다 . 그러는 사이 포위망은 점차 좁아졌다 .

 

그때 록펠싱이 도로 그물망을 단번에 베어버리며 일어섰다 . 도의 날은 그물망에 스치기만 해도 뜯어져 버렸다 .

“ 아 진짜 ~ 무거워서 칼 꺼내기 되게 힘드네 .” 일어난 록펠싱은 옷을 털며 툴툴거렸다 .

 

몇몇의 검은 복면들은 놀랐다 . 쇠줄로 만든 그물망을 그토록 쉽게 베어 나와 버렸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긴 은날 ... 역시 그녀가 맞다 ! 설마 했지만 한야아르제에서의 그녀가 맞다 ! 푸른 머리색은 백발에 가까울 만큼 옅어졌지만 저 검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 .’ 적의 대장처럼 보이는 자는 즉시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검을 꽉 움켜쥐었다 . 긴장으로 온몸을 떠는 듯 했다 .

그녀를 한참동안 바라본 그는 뭔가를 깨달았다 . ‘ 뭐지 ? 검이 없어 ?’ 그는 그녀의 주변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 ‘ 역시 검이 없어 ?’ 처음 만났을 때는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

 

베르키엔의 머리위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졌다 .

검은 복면들의 대장이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지시를 못 받은 부하들은 섬광에 눈을 뜨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 그사이 록펠싱은 그물에 걸린 일행들의 그물을 모두 베어버렸다 .

“ 반격 시작 ! 우리에게 덤빈 대가로 본 떼를 보여줘야지 ?” 그녀의 말에 일행들은 모두 미소를 머금었다 . 하나만 제외한 채 .

 

전투가 시작되자 혼란해졌다 . 다수의 적들이 일행들에게 덤벼들었고 무궁은 와이어를 사용하여 이곳 , 저곳을 이동하며 화살을 쏴댔다 . 그의 강력한 화살에 한 , 두 명씩 날아가 버렸다 . 베르키엔은 마법으로 바닥을 만져 함정을 만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적들에게 마법의 쇠사슬로 발을 묶었다 . 록펠싱은 은장도로 적들을 현란하게 베어나갔다 . 그러나 그녀의 검은 옷만 벨뿐 참상의 상처를 입은 적들은 없었다 . 그저 기절하듯 정신을 잃고 쓰러질 뿐이었다 . 하나는 쫓아오는 적들을 뒤로 한 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공격을 지그재그로 피하면서 도망만 쳤다 . 마주본다고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 그러자 그를 쫓던 적들도 분산되어 다른 일행들에게 되돌아갔고 그 틈을 타 수풀 속으로 숨었다 . 아군이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 적들의 수가 10 명으로 줄어들자 적의 대장이 그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 그리고 그는 가면을 벗었다 . 노란색의 곱슬머리였다 . 또렷한 이목구비에 큰 눈을 한 ,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 이런 비열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 그는 록펠싱을 노려보았다 . 그러나 그녀 역시 그를 노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

 

‘ 크큭 ... 검들도 잃었겠다 . 내 얼굴도 기억하지 못 한다라 ... 그 사태에서 멀쩡할 리가 없지 . 아니 오히려 어떻게 살아있는지가 더 궁금하군 .’ 그의 손짓에 검은 복면들은 일제히 달려들었다 . 표창과 수리검들이 날아왔다 . 일행들은 피하기 위해 뛰어 올랐다 . 그때 적의 대장이 뛰어올라 무궁에게 검을 휘둘렀다 . 공중에서 와이어로 피하지 못한 무궁은 왼손을 뻗었다 . 검의 날은 엄지와 약지를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을 긁고 지나갔다 . 하지만 완전히 막지 못해 손바닥에 작은 참상이 생겼다 . 자신의 공격에 실패한 적의 대장은 몸을 돌려 무궁의 턱을 주먹으로 내리꽂았다 . 무궁은 땅에 추락하며 의식을 잃었다 . 그리고 곧바로 록펠싱에게 다가갔다 . 10 여명의 복면들은 베르키엔과 거리를 두며 견제만 하고 있었다 . 베르키엔은 섣불리 마법을 쓸 수도 , 적을 공격할 수도 없어 시간만 끌고 있었다 . 베르키엔의 호흡은 점차 가빠졌다 . 적의 대장은 허리춤에서 단도 하나를 꺼내 역수로 잡았다 .

“ 이도류 .” 록펠싱은 그 자세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

16. 습격 (2)

 

적의 대장은 웃었다 . 선량해 보이는 얼굴에서 비열함이 묻어나왔다 . 그는 간격을 좁혀오며 짧은 역수 단도로 록펠싱의 공격을 막는 동시에 검으로 바로 공격을 퍼부었다 . 록펠싱은 어떻게든 간격을 벌리려 하였으나 적의 대장은 빠른 발로 보폭을 짚으며 록펠싱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었다 . 빈틈이 보였다 . 록펠싱은 아래에서 위로 크게 그의 오른팔을 베어 올렸다 . 승리를 확신했다 . 그러나 그는 뒤돌며 그녀의 명치를 발로 내리찍었다 . 그의 공격에 록펠싱은 뒤로 밀려나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 숨이 막혔다 . 숨을 쉬려 하여도 쉴 수가 없었다 .

“ 흡 .... 으으으 ... 헙 ...” 숨을 쉬려 안간힘을 주지만 순간적으로 막혀버린 기도가 뚫리지 않았다 .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피가 몰려 붉어졌고 관자놀이에 핏줄이 살짝 튀어 올라왔다 . 그는 오른손에 있던 단도를 떨어트리고 팔을 아래로 축 늘여놓고 있었다 . 10 여명에게 포위당해 체력이 고갈된 베르키엔은 취시통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몸이 점차 마비되었다 .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쓰러졌을 때 검은 복면 중 한명이 그녀를 어깨에 들쳐 업었고 그들은 쓰러진 동료들을 회수하여 강가로 향했다 .

 

“ 컥 ! 헉 !” 겨우 기도가 뚫린 듯 록펠싱은 급격히 숨을 몰아쉬었다 .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베르키엔의 이름을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온몸에 힘이 빠진 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켜 기어가다시피 무궁에게 다가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

 

“ 일어나 ! 일어나 !!! 베르키엔이 위험해 !” 그녀는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 놀란 듯 눈을 뜬 무궁은 헐레벌떡 일어나 적들의 뒤를 쫓았다 . 턱을 심하게 맞아서 인지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 거기에 하필이면 높은 나무도 없어 와이어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 그의 뒤에 몸을 겨우 추스른 록펠싱이 힘겹게 뛰어왔다 . 적들은 강가에 준비해둔 배에 기절한 인원들을 태우고 있었다 . 베르키엔은 마비된 몸을 겨우 움직이며 몸부림 쳤기에 이동하는 도중 두 , 세 번 바닥에 떨어졌고 그로인해 그녀를 운반하는 검은 복면은 아직 배에 도착하지 못했다 . 마법을 쓰려 손에 나노를 모으려 했지만 마비 때문인지 이내 흩어져 버렸다 .

 

“ 화살을 쏴 !” 록펠싱이 뒤따라오며 힘겹게 무궁을 향해 외친다 . 그는 제자리에 멈춰 활시위를 당겼지만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선 화살을 쏘지 못했다 . 과거의 어떤 장면과 겹친다 . 그때처럼 쏠 수가 없었다 .

“ 쓸모없는 녀석 !” 록펠싱이 그를 지나치며 쏘아붙였다 . 그는 멍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저주할 뿐이었다 .

베르키엔을 들쳐 업은 적은 거의 배에 다다랐다 . 그때 수풀에서 하나가 달려왔다 .

 

“ 으아아아아아아아 !!!” 하나는 고함을 질렀다 . 두려움 때문에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기 위해 더 크게 외쳤다 . 그리고 뒤돌아선 적의 허리에 드롭킥을 날렸다 .

 

적은 중심을 잃고 베르키엔을 떨어뜨린 채 바닥에 뒹굴었다 . 커다란 덩치의 검은 복면은 뒤돌아 일어서더니 하나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린다 . 하나는 몸부림치며 버둥거렸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 그의 주먹이 하나의 배에 내리 꽂힌다 . 온몸의 힘이 빠진다 . 하나는 오히려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의 팔을 꽉 잡는다 . 이자를 놓치면 베르키엔이 다시 끌려가 버릴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 그자는 하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 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터진다 . 애써 그의 팔을 잡고 몸을 움츠린다 . 하나의 무게를 계속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바닥에 내려찍고선 머리와 옆구리 , 허리를 난타한다 . 처음에는 아프던 고통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 그가 공격할 때마다 충격으로 인해 조금씩 순간이동을 하는 것 같은 전신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 배에 올라 타있던 적들은 어서 요정을 데려 오라는 손짓을 한다 . 쓰러져 정신을 잃은 하나를 제쳐두고 베르키엔에게 다가간다 . 록펠싱은 이를 악문다 . 거리는 약 100 미터이상 , 절대 쫓아갈 수 없는 거리였다 . 적의 배가 요정을 태우면 바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조금씩 움직인다 . 베르키엔을 들쳐 매고 달리기 시작한 적과 배의 거리는 약 10 미터 안팍이었다 .

 

그 순간 록펠싱의 은장도가 마치 살아있는 듯 그녀의 손을 떠나 주위를 원형톱날처럼 한 바퀴 회전하며 돌더니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가기 시작한다 . 은빛 섬광처럼 날아간 도는 베르키엔을 들쳐 매고 있던 검은 복면 남자의 등에 꼽혀 그대로 배까지 날려 버린 후 부메랑처럼 돌아와 록펠싱의 옆 바닥에 꼽혔다 . 그 충격으로 베르키엔은 튕겨져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 배에 타고 있던 검은 복면들이 일제히 내리려 하자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멈추라는 손짓을 한다 . “ 두령에게 보고할 것이 생겼어 .” 대장으로 보인자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그들의 배는 점점 빨라지는 강의 물길을 타고 유유히 사라져갔다 .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록펠싱은 멍하게 그들을 쳐다볼 뿐 이었다 . 적들이 사라지자 긴장이 풀렸다 . 그제야 록펠싱은 정신을 차렸다 .

 

록펠싱은 손을 떨었다 . 바닥에 꽂힌 검에 손을 가져가기가 두려웠다 . 주춤거리다 도의 손잡이를 잡는다 .

“ 손을 대지 않고 검을 날렸어 ? 내가 ?”

 

“ 검을 어떻게 손대지 않고 날려 ? 네 괴력 같은 힘으로 날린 거 아냐 ?” 뒤따라온 무궁이 베르키엔을 향해 뛰며 빈정거린다 .

 

“ 정작 위험할 때 아무것도 못한 주제에 .” 록펠싱이 째려보자 무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베르키엔 , 하나 ...” 그녀는 작게 말하곤 쓰러져 널브러진 그들에게 뛰어갔다 .

베르키엔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서려 애쓰지만 이내 주저앉는다 . 그래서인지 엉금엉금 기어서 하나에게 다가간다 . 일행들은 정신을 잃은 하나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 무궁은 베르키엔을 부축하여 일으킨다 .

 

“ 하나 ! 괜찮아 ?” 록펠싱이 부어오른 하나의 볼을 살살 두드린다 .

 

“ 어이어이 . 날 깨울 때랑 너무 다른 거 아냐 ?” 무궁은 록펠싱이 못 마땅한 듯 쪼개어 웃는다 . 그녀는 무궁의 말을 흘겨 넘기곤 하나의 어깨를 잡고 흔든다 .

“ 일어나봐 .” 하나는 부은 눈을 살며시 뜬다 .

 

“ 어 ? 어어 .” 마치 자다 깬 것처럼 어리둥절해한다 .

“ 다들 무사해 ? 적들은 ?” 급히 상황을 파악한 하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

 

“ 도망쳤어 . 어쨌든 우리의 승리지 . 어서 마을로 가서 재정비를 해야겠어 . 다들 상태가 영 아니네 .”

 

“ 이대로 다른 길로 갈 생각은 없어 ? 그들은 계속 추적해 올 것 같은데 ?” 무궁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

 

“ 일단 이 강을 건너야해 . 신전이 있는 마을에는 치안도 빵빵하겠지 .”

“ 그리고 무궁씨의 치료를 위해서도 꼭 가야해요 .” 그녀의 말에 무궁은 짜증나는 듯 손으로 머리를 턴다 .

 

“ 하지 마 ! 비듬 나와 .” 록펠싱은 손을 휘젓는다 .

 

“ 아 ~ 씨 !!!” 무궁은 청개구리처럼 더 세차게 머리를 턴다 .

 

“ 아 ! 진짜 !” 록펠싱은 짜증내면서 뒷걸음질 치며 자리를 피한다 .

 

“ 하나씨 . 고마워요 . 얼굴이 말이 아니네요 . 조금만 참아요 . 치료해 줄 테니까요 .” 베르키엔은 자신의 몸도 못 가누면서 하나를 걱정한다 . 그녀는 자꾸 흩어지는 나노를 모으려 애썼다 .

 

“ 내가 더 고맙지 ...” 하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이 일행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 결국 베르키엔은 치유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

 

어느새 주변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마을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걸었다 . 습격으로 인해 야숙은 위험했고 마을에서 편하게 쉬고 싶었다 . 밤늦게야 도착한 마을은 불이 꺼져 캄캄했다 . 여관에 들어서서 종을 울리자 한참 후에야 잠에서 깬 듯 눈을 비비며 나온 주인이 손님을 받았다 . 삯을 지불하고 간단한 먹을 것을 요청하여 먹은 후 베르키엔이 하나의 상처를 돌봐주었지만 마비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치유마법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 그들은 성별을 나누어 방에 들어갔다 .

 

모두가 잠든 새벽 . 록펠싱은 머릿속이 어지러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 마수에게서도 느낀 적 없었던 적에 대한 두려움과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르는 불안감 , 그리고 검을 날려 보낸 자신에 대한 의문감 때문이었다 . 하지만 다시 검을 움직이려 힘을 주며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 ‘ 역시 착각이었나 ?’

 

일행에게 패한 곱슬 금발의 검은 복면이 빛이 들지 않아 온통 어두운 통로를 지나 커다란 문을 몇 번 두드린 후 열고 들어간다 .

“

이드 , 방금 도착했습니다 .” 시리도록 차가운 대리석이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 그 끝에는 흡사 왕좌 같은 좌석에 길고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턱을 치켜들자 이드가 입을 연다 .

 

“ 두령님 . 보고 드리겠습니다 . 요정의 포획은 실패하였습니다만 ...”

 

“ 만 ?” 두령이라 불린 자는 손으로 턱을 괴었다 .

 

“ 그녀가 살아있었습니다 .”

 

“ 그녀 ?” 두령은 손을 깍지 끼고 흥미롭다는 듯 꼰 다리를 풀었다 .

 

“ 그녀입니다 . 보아하니 기억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

 

“ 그녀가 살아있다 ?” 두령은 흥미로운 듯 몸을 앞으로 내밀고 팔꿈치를 무릎에 기대었다 .

“ 검의 계약자는 같은 검의 계약자가 잘 알겠지 ? 산송장이었던 그녀에겐 어쩌면 희소식이겠군 .” 커튼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대리석의 바닥은 온통 굳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

 

하나일행은 다음날 짐을 꾸리고 배를 타러갔다가 배 삯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

 

“ 이거 완전 바가지 아냐 ?”

“ 이정도면 사기 수준인데 ?”

“ 이거 너무 양심이 없는 거 아냐 ?”

“ 배를 만들어서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

살인적인 배 삯에 대한 각자의 소감이었다 .

 

“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 손님도 없는데 왔으면 뽕을 뽑아야 할 것 아녀 ?” 뱃사공이 말한다 . 어쩐지 어제 여관비도 상당히 비싼 편이었는데 이 마을자체가 바가지 씌우는 마을인 모양이었다 . 우리는 여행자금을 확인한 후 길드를 찾았다 . 그러나 의뢰비가 너무나도 짰다 .

“ 돈에 쪼달리는 여행이라니 .” 록펠싱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

 

“ 여기 영주가 대체 누구야 ? 이따위로 해먹게 놔두다니 !” 무궁이 성을 내며 이를 갈았다 . 리피츠크 영주가 살해당해 서류가 밀려 감사가 더디게 나오고 이 틈을 타서 사람들이 비리를 저지른 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짜디짠 길드의 의뢰들을 받아들였고 여관에 일주일간 머무르기로 했다 .

 

하나에겐 오히려 기회였다 . 베르키엔에게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 그녀는 잊었다는 듯 “ 아 !”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 그녀의 말로는 마법을 쓰기위해선 세상에 흩어져 있는 나노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 이것은 세상어디에나 존재 하는 것으로 이것을 모아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강력한 마법사일수록 자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로 마법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 . 그만큼 정신력 또한 많이 갉아 먹는다고 한다 . 나노라는 마법의 근원인 이 입자를 얼마나 집중하여 조종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 만약 술자가 화염을 만들었다 해도 적이 탈취하여 오히려 술자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 몸속에 축적하여 꺼내 쓸 생각이었는데 어디에서든 존재한다면 굳이 모아둘 필요가 없었고 몸속에 나노를 모아둔다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 마법을 사용하는 강한 적이 있다면 적에게 폭발 버튼을 넘겨준 거대한 인간폭탄과도 같았다 . 그러나 안타깝게 계속되는 연습 속에서도 하나는 나노라는 것을 느낄 없었다 . 일행 중 베르키엔을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느낄 수 없었다 . 종족의 차이라는 것일까 ? 그럼에도 하나는 시간 나는 틈틈이 나노를 느껴보려 했다 .

 

그는 버섯들을 여관방에 말려놓고 대장간에서 일하며 무두질과 자신의 무기를 개량해 나갔다 . 무궁의 와이어를 참고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구상해 나갔다 . 나머지일행들은 조그만 선착장에서 상하차를 하고 있었다 . 처음이라 그런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허리의 고통을 호소했다 . 자금이 완성되는 마지막 날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고된 노동으로 인한 몸의 비명을 달래기 위해 하루 쉬기로 하였다 . 하나는 일을 마친 후 또 뭔가 만들어서 실험한다고 늦게 돌아올 모양이었다 . 베르키엔과 무궁은 여행의 비상식량준비와 배 삯을 흥정하러 나갔다 . 록펠싱도 따라가려 했으나 무궁에게 저지당했다 .

“ 나도 ! 나도 갈래 !”

 

“ 그럼 하나는 누가 기다리냐 ?”

 

“...”

“ 네가 ?”

 

“ 웃기셔 !”

 

그래서 여관 아래 주점에서 맥주 한잔을 들이 키고 있었다 . 그때 그녀가 나타났다 .

“ 여기서 뭐하는 거야 ?” 후드를 눌러쓴 채 분홍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그녀는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록펠싱을 노려보고 있었다 .

 

그녀는 록펠싱이 누군지 알아보는 듯 했다 . 살의로 가득 찬 얼굴로 따라 나오라고 했다 . 본능이 그녀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렸지만 록펠싱은 순순히 그녀를 따라 나갔다 . 그녀의 살의가 주점 안의 모든 사람을 죽여 버릴 것 같아서였다 .

 

그녀는 마을 외곽으로 향했다 . 젊은 층이 다른 마을로 떠나거나 마수에 의해 죽임을 당해 마을의 인구수가 줄어든 탓에 마을의 반은 버려진 집들이 모여 있는 공터였다 .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 그로인해 록펠싱도 그녀와 간격을 두기위해 발걸음을 멈추었다 .

 

갑자기 록펠싱의 눈앞에 다섯 자루의 검이 날아왔다 .

 

“ 카카캉 !” 놀란 그녀는 황급히 도를 꺼내어 세 자루의 검을 튕겨냈고 뛰어올라 회전하여 그 자리를 피했다 .

“ 파팍 ! 파파팍 !” 두 자루의 검이 그녀가 있었던 바닥에 내리꽂혔고 튕겨나간 세 자루의 검 역시 빠르게 그 자리에 꽂혔다 .

록펠싱은 무릎 앉은 자세로 상체를 일으켜 그녀를 노려보았다 .

 

“ 여 ~ 오랜만인걸 ? 키루키스 .”

 

“ 키루 ... 키스 ?” 록펠싱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 ‘ 나를 알아 ? 그게 내 이름 ?’

 

“ 이런 곳에서 뭘 하는 거야 ?” 그녀는 긴 분홍 머리칼을 날리며 냉랭한 말투로 매섭게 말한다 .

 

“ 다짜고짜 공격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 록펠싱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 ‘ 적 ... 인건가 ?’

 

“ 역시 여전히 버릇이 없군 . 감히 날 ! 이 꼴로 만들어 놓고 !!!” 그녀의 외침에 세 자루의 검이 빠르게 날아왔다 .

도를 틀어 한 자루는 궤도를 바꿨지만 두 자루는 그녀의 어깨와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

 

“ 이딴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 넌 !!!” 그녀는 검으로 강하게 내리찍었고 록펠싱은 힘겹게 그녀의 검을 막았다 .

“ 깡 !”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 나 ... 난 ...” 록펠싱은 말을 잇지 못했다 . 그녀의 등 뒤에서 날아오는 두 자루의 검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17. 습격 (3)

 

“ 카카칵 ! 콰콱 !”

두 자루의 검이 그녀의 허리와 팔을 스치며 바닥에 꽂혔고 이윽고 세 자루의 검이 바닥에 꽂혔다 . 그녀는 그 충격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

 

“... 지금 그걸 ... 맞은 거야 ?” 분홍머리칼의 소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가 터졌다 .

“ 천하의 키루키스가 인사 축에도 못 끼는 걸 맞고 쓰러지는 꼴이라니 .” 그녀는 얼굴에 손을 대고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

“ 크크큭 , 키키킥 , 깔깔깔 . 그런 건 ‘

키시아 ’ 나 맞는 거라고 .” 그녀는 죽겠다는 듯 배를 움켜잡고 배꼽 빠진 듯 웃어댔다 .

“ 아니면 내가 강해진 건가 ? 그런 건가 ?” 그녀의 입은 미소를 머금었다 .

 

“ 그런건 ... 앙 ?” 그녀는 옆구리를 움켜쥐고 연신 ‘ 헉헉 ’ 대는 록펠싱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

 

“ 너 ! 너 검들은 다 어쨌어 ?” 그녀는 록펠싱이 경계할 틈도 없이 빠르게 간격을 좁혀 어깨를 부여잡고 말한다 .

“ 오는 길에 네 검 같은 걸 한 자루 보긴 했는데 ... 설마 했는데 .”

 

“ 저기 난 키루키스가 아니고 록펠싱인데 . 나 너 몰라 .” 록펠싱은 난처하다는 듯 그녀에게 말한다 . ‘ 날 아는 것 같지만 아군은 아닌 것 같고 겁나 셀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인 척하자 .’

 

“ 완전 똑같이 생겼는데 아니구나 ? 하긴 머리색이 다르긴 하네 .” 그녀는 완전 실망한 얼굴이었다 .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

“ 그럼 죽어줘 . 어차피 죽일 거였지만 .” 록펠싱은 그녀의 말에 소름을 느끼며 튕기듯 물러났다 .

 

그녀는 한손에 검을 들고 반대쪽 손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 십여 자루의 검들이 원을 그리며 회전하여 각자 살아있는 생명처럼 삐뚤삐뚤하게 올라가 멈춘다 .

 

그녀가 작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향한 손을 아래로 휘두르자 검들은 일제히 원을 그리며 록펠싱을 향해 날아간다 . 록펠싱은 급히 낮게 뛰어올라 자리를 피한다 .

 

“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콱 !” 십여 자루의 검이 바닥에 내리꽂힌다 .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자라는 가시 뻗힌 나무 같았다 . 록펠싱의 피하는 방향 반대쪽에서 한 자루의 검이 날아온다 . 운동방향과 무게중심으로 인해 피할 수 없자 그녀는 은장도를 휘둘러 힘겹게 튕겨 보낸다 .

 

튕겨나간 검과 바닥에 꽂힌 검들은 폴터가이스트 현상처럼 ‘ 찌르르르 ’ 울리며 공중으로 떠오른다 .

 

‘ 놓아줄 생각은 없는 것 같고 , 나의 과거를 아는 적이라면 어떻게든 붙잡아서 불게 만들어야 할까 ? 검을 날린다면 거리를 두는 것은 위험해 .’

 

록펠싱은 은장도를 바닥에 내리깔고 분홍머리칼의 소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 여러 자루의 검들이 록펠싱의 앞과 뒤 , 주위에 박혔다 . 그녀는 지그재그로 피하며 거리를 좁혔다 . 분홍머리칼의 소녀 앞에 두 자루의 장검이 대각선으로 교차하여 바닥에 꽂혔다 . 진로가 막혀버린 셈이었다 . 록펠싱은 빠르게 몸을 돌려 회전하며 보폭을 밟았다 . 그때 대각선으로 교차하여 꽂힌 검이 회전하며 록펠싱의 왼쪽어깨에 참상을 입혔다 .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분홍머리칼의 소녀에게 도를 휘두른다 . 은빛의 장도는 궤도를 그리면서 뻗어나갔다 . 그러나 그녀의 은빛 궤도는 공중에서 내려온 수십여 자루의 검에 갈 곳을 잃는다 . 수십 자루의 검이 은장도와 부딪히며 ‘ 까가가가깡 !’ 하고 맑은 쇳소리를 낸다 . 수십 자루의 검은 공전과 자전을 하듯이 분홍머리 소녀의 주위를 휘감아 돌았다 . 록펠싱은 도로 막았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 그녀는 수십여 자루의 검이 일으키는 회오리에 밀려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 참상은 많았지만 목숨이 끊길만한 깊은 상처는 없었다 . 사람의 몸이 중심이 되어 휘두르는 검과는 달리 검의 무게로 휘둘러지는 검이었기에 위력은 약한 편이었다 . 그럼에도 그녀의 옷과 피부 가죽은 찢겨나가고 머리카락은 너덜하게 끊겼다 .

 

“ 한 자루의 검으로 대항하려 한 거야 ? 응 ? 그런 거야 ?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

 

록펠싱이 도를 집으며 힘겹게 일어선다 .

 

“... 아직도 더 할 생각인거야 ? 응 ? 그런 거야 ?” 그녀는 차갑게 비웃으며 코웃음 친다 . 그리고 싸늘하게 내려다본다 .

 

“ 이런 쓰레기가 된 너를 상대해줄 거라 생각해 ?!” 그녀가 흥분하여 손을 휘두르자 수십여 자루의 검들이 역수로 날아가 검 자루로 그녀 몸을 치고 지나간다 . 분홍머리소녀의 머리위에 있던 장검들은 새장처럼 록펠싱의 주위에 내리꽂힌다 .

 

“2 년 만에 이런 쓰레기가 되다니 .” 분홍머리의 소녀는 미간의 주름을 엄지와 검지로 집으며 검들의 틈새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

 

“ 네 하찮은 은장도로 막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천하의 키루키스라면 이정도 일격은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 ?”

 

그녀가 내리꽂은 검의 감옥위에 수십 , 아니 수백여 자루의 검들이 얽히고설킨다 . 검들이 부딪히며 쇠 긁는 소리가 난다 .

 

록펠싱은 공중에 모여든 은빛으로 빛나는 검들을 본다 . 자신을 죽이기 위한 것 이지만 그녀의 눈에는 마치 궁전에 있는 휘황찬란한 거대한 샹들리에 같이 아름다워 보인다 . 온몸에 빠지는 힘과 욱신거리며 따가워 견디기 힘든 상처를 느끼며 이 고통이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 .

‘ 과거의 난 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걸까 ? 차라리 그냥 여기서 죽어버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 거대하고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그녀를 향해 빠르게 내려온다 . 눈꺼풀이 스르륵 감겨왔다 .

 

‘ 너만은 살아남아 ! 너만은 ...’ 그 순간 한 남자의 목소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

 

‘ 그래 . 아직 죽을 수 없어 .’ 왜인지 몰라도 죽을 수 없었다 .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이 , 몸이 말하고 있었다 .

 

“ 파아아아아아앙 !!!” 공기가 압축되어 터지는 소리가 나며 수백여 자루의 검들이 사방팔방으로 튕겨져 날아간다 .

 

“ 계약 파괴자 .” 분홍머리의 소녀가 작게 중얼거린다 . 흙먼지의 중앙에 록펠싱이 비틀거리며 서있었다 . 분홍머리의 소녀는 허공에 손을 빠르게 휘두른다 . 그녀의 등 뒤에 떠있던 검들이 역수로 날아간다 . 그러나 록펠싱의 주위에서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하여 미끄러진다 .

 

분홍머리의 소녀가 매우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다 . 등 뒤에 맨 7 개의 검 집에서 첫 번째 검을 공중에 띄운다 . 그리고 빠르게 역수로 날린다 . 날아가는 검은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록펠싱의 몸을 훑고 지나간다 . 록펠싱은 마치 자동차에 치인 것처럼 공중에서 두 바퀴 회전한 후 바닥에 떨어져 미끄러졌다 . 만신창이가 된 록펠싱은 신음소리를 내며 엎드린 채 팔꿈치로 바닥을 짚어 상체를 일으키려했다 . 그러나 풀려버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

분홍머리칼의 소녀가 록펠싱의 머리채를 잡고 고개를 젖힌다 .

 

“ 이게 가능한 인물도 ... 키루키스 너밖에 없지 .” 그녀는 록펠싱의 머리를 바닥에 찍어버렸고 록펠싱의 의식은 끊겨버렸다 .

 

“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지만 네 검들을 찾아라 . 키루키스 .” 그녀는 검을 조종해 떨어진 검 한 자루에 글을 새기기 시작한다 .

 

“ 그때의 치욕을 갚아주마 .”

 

 

 

돌아온 일행들은 록펠싱을 찾고 있었다 .

 

“ 어디로 간 거야 ? 하나를 기다리라고 했더니 . 배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 무궁이 투덜거린다 .

 

“ 혹시 검은 복면들이 ?”

 

“ 아닐 거야 . 그들이라면 베르키엔을 노렸을 거야 .”

 

“ 한 번 더 둘러보자 .” 일행은 흩어졌다 . 베르키엔은 숙소로 무궁은 길드로 하나는 거리로 나섰다 . 마을 반대쪽 인근이 없는 곳에서 가로막은 건물들 사이로 은빛 회오리가 친다 . 불안감이 엄습한다 . 그곳을 향해 빠르게 발을 내딛는다 .

 

그곳에 도착한 하나는 그곳의 광경에 놀라고 말았다 . 부서진 수십 자루의 검의 파편이 주변 건물과 바닥에 촘촘히 박혀있었고 험난한 전투가 있었다는 듯 바닥은 검이 박힌 자국들로 가득했다 . 그 중앙 , 박혀있는 한 자루의 검 뒤에 그녀가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

 

“ 록펠싱 !” 그녀에게 달려간다 .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몸을 돌리자 피로 점철된 벗겨진 살가죽이 눈에 띈다 . 그는 참혹한 그녀의 상태에 눈을 찌푸린다 . 의식이 없는 그녀를 업고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은장도와 그녀의 머리위에 박혀있던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검을 뽑아 베르키엔을 향해 달린다 .

“ 베르키엔 !!!”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이름을 부른다 . 그녀에게 가는 길이 ,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멀어 보인다 . 아무리 달려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처럼 . 그래서 그녀의 이름을 계속 해서 외친다 .

 

“ 베르키엔 ! 베르키엔 ! 베르키엔 !!!” 멀리 그녀가 빠르게 달려온다 . 발이 가벼워지는 마법을 건 것 같다 . 베르키엔이 다가오자 하나는 업고 있는 록펠싱을 바닥에 눕힌다 .

“ 베르키엔 ... 베르키엔 ...” 하나는 도와달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 베르키엔은 그녀의 참상을 보고 놀라며 손에 나노를 모아 그녀의 상처 난 피부를 더듬는다 .

 

하나의 등은 그녀의 피로 따뜻했다 . 그리고 점차 차가워져 싸늘해짐을 느꼈다 . 베르키엔의 마법으로 치료하고 있으나 치료가 전진되지 않는다 . 한곳의 상처를 치료하면 다른 곳의 상처가 터져 피가 배어 나온다 .

 

무궁이 달려온다 . 그녀의 상태에 눈살을 찌푸리며 놀란다 .

 

“ 어떻게 된 거야 !”

 

“ 나도 몰라 . 그녀를 찾았을 땐 이미 ...”

 

“ 빨리 배에 타 ! 시간이 얼마 없어 !” 무궁이 하나를 다그친다 .

 

“ 하지만 록펠싱이 !”

 

“ 강 건너편엔 신전이 있어 . 베르키엔 . 배에서 계속 치료 부탁해 .” 그의 말에 베르키엔은 고개를 끄덕인다 .

 

무궁이 뛰어가 출발하려는 배를 붙잡아 두었고 하나는 록펠싱을 업고 뛰어갔다 . 일행은 배를 탔다 . 배는 느릿느릿하게 강 건너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너무 안일했어 !” 무궁이 배의 벽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

“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 아니 다른 경로로 이동해야 했어 ...” 무궁은 자신의 탓인 냥 벽을 짚고 서있었다 .

 

신전이 있는 마을 ‘ 베르겐 ’ 의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베르키엔이 하나의 발에 마법을 걸었고 하나는 빠르게 신전을 향해 뛰었다 . 신전을 찾는 것은 쉬웠다 .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기 때문이었다 . 신전의 입구에 들어서자 록펠싱을 보고 두 명의 경비병이 돕기 위해 다가왔다 . 그때였다 . 근처에서 치료 중이던 사제 한명이 하나를 보고 놀라며 외친다 .

“ 마족 ! 마족이다 !” 그의 외침에 두 명의 경비병은 검을 빼든다 .

 

“ 전 마족이 아닙니다 !” 하지만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경비병은 검을 들고 그를 위협한다 . 한시가 다급한 상황이라 하나는 애가 탔다 .

 

“ 그는 마족이 아닙니다 . 검을 거두십시오 .” 신전 안에서 중년의 여인이 걸어 나온다 .

“ 에르제 신관님 .” 하나를 마족이라 불렀던 사제가 그녀에게 허리 굽혀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 경비병도 검을 거두고 그녀를 향해 허리 굽혀 고개를 숙인다 .

 

“ 오실 줄 알았습니다 . 신께서 마중을 가라고 하셨거든요 .” 그녀는 인자하게 웃으며 하나를 안으로 안내한다 .

 

“ 이곳에 그녀를 눕히세요 . 요르한 사제님 . 이분의 치료를 급히 부탁드립니다 .”

 

“ 하지만 그는 마족입니다 .”

 

“ 그는 마족이 아닙니다 . 신께서 말하시길 다른 세계에서 온 자라고 하시더군요 . 그러니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 요르한 사제는 쉽게 수긍하고 록펠싱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

 

“ 저희는 신의 힘을 빌려 치료를 합니다 . 흉터는 남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하지만 신께서 원치 않으시면 치료를 할 수가 없죠 .” 그녀는 난처하게 웃는다 . 록펠싱을 치료하는 사제의 손에 하얀 입자가 모여든다 .

 

“ 저 빛은 ...”

 

“ 아 , 저건 신의 입자라고 합니다 . 신의 힘을 빌리는 것이지요 .” 베르키엔은 이것을 나노라고 마법의 근원이라고 말했었다 .

 

“ 신을 모시는 자들은 신의 창조물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마수와 마족은 구별할 수가 없죠 . 다른 세계에서 온 당신도요 . 그래서 요르한 사제가 당신을 마족으로 착각하게 된 겁니다 .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녀는 하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

 

“ 아닙니다 .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 이렇게 제 일행을 치료해 주셔서 ...”

 

그녀는 대답대신 인자한 표정으로 답했다 .

 

“ 그리고 신께서 이걸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 마족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타 세계에서 왔다는 증표가 필요하겠지요 .” 목걸이였다 . 중앙의 보석이 하얀 투명한 색이었는데 빛에 반사되자 스펙트럼 프리즘처럼 갖가지 색을 띄었다 .

 

“ 감사합니다 .” 그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고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

 

삽시간에 록펠싱의 치료가 끝났다 . 사제의 치료는 굉장했다 . 벗겨지고 갈라진 피부가 말끔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 다행히 흉터도 없었으며 정말 신기했던 건 그녀의 잘려나간 머리칼도 원상 복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감탄했다 . 가능하다면 반드시 배우고 싶은 능력이었다 . 이윽고 무궁과 베르키엔이 신전에 도착했다 .

 

“ 괜찮아 ?” 일행은 치료가 끝난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

 

“ 응 ...” 그녀는 힘없이 대답한다 . 하나는 자리를 떠나는 요르한 사제에게 감사를 전했다 .

 

“ 무슨 ...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될까 ?” 하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 그녀는 분홍머리칼의 소녀가 갑작스레 공격해왔고 수십 , 수백자루의 검을 조종해 움직였다고 말했다 . 그리고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일 것 같다고 말했다 . 주의해야할 대상이 더 늘었다 . 하나는 그녀에게 은장도를 건네주고 망설이다가 문자가 적혀있는 검을 그녀에게 건넨다 .

 

“ 이건 ?” 그녀가 처음 보는 검을 쥐고 말한다 .

 

“ 네가 쓰러졌을 때 네 앞에 꽂혀있었어 .” 그녀는 검에 적혀있는 글을 읽고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

 

“

너 이 글 읽을 수 있어 ?”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보는 생소한 문자였다 .

 

“... 응 ”

 

“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

 

“ 네 검들을 찾으라고 써져있어 .”

 

“ 그 마을 갈 거야 ?” 무궁이 마치 그 글귀에 장소가 적혀 있다는 듯 묻는다 .

 

“...... 아마도 .” 그녀는 짤막하게 대답한다 . 그런 그녀를 두고 무심하게 지나쳐 요르한 사제 앞에 앉는다 .

“ 나도 치료해줘요 .” 무궁이 다른 이를 치료중인 그에게 다가가 말한다 .

 

“- 오필리아 -” 그녀는 검의 맨 마지막에 새겨진 서명을 작게 속삭인다 .

 

“ 몽마에 침식당하셨군요 ?” 요르한 사제가 무궁에게 말한다 .

 

“ 네 .”

 

“ 잘 오셨어요 . 이쪽으로 누우세요 .” 사제의 손에 신의 입자가 모이더니 줄지어서 귀속으로 , 눈속으로 ,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어간다 .

“ 탐색 , 탐색 , 탐색 .” 사제는 신의 입자와 같은 빛을 눈에 띠며 중얼거린다 .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를 탐색하는 것 같다 .

“ 치료 , 치료 , 삭제 .”

 

어느새 사제의 눈빛이 원래의 색으로 되돌아온다 .

 

“ 치료가 끝났습니다 .” 사제가 완치를 그에게 알렸고 그는 품속에 돈주머니를 꺼내 그에게 건 낸다 .

 

“ 이런 건 받을 수 없습니다 .”

 

“ 신전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치료를 위해 써 주십시오 . 기부금입니다 .”

 

“ 감사합니다 . 좋은 곳에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 사제는 그에게 목례를 하고 기부금을 가지고 사라진다 .

 

하나가 안절부절 못한다 . 에르제 신관에게 다가간다 .

 

“ 신전에서는 신과 대면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 신과 대면할 수 있을까요 ?” 그의 말에 에르제 신관이 웃어 보인다 .

 

“ 신께서도 그리 말씀 하셨습니다 . 하지만 당신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기에 직접 대면하지 못 합니다 . 그래서 중간 다리역할이 필요합니다 .” 에르제는 싱긋 웃는다 . 그리고 눈을 감는다 . 약간의 시간이 흐른다 . 그녀가 눈을 뜬다 . 그녀의 눈은 에메랄드 같은 녹색 빛에서 신의 입자와 같은 새하얀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

18. 대면

 

“ 안녕 ... 하세요 ?”

 

“ 그래 .”

 

‘ 신과의 대화가 마치 사람간의 대화 같았다 . 애초에 신관과 대화하는 건지 신과 대화하는 건지 모르겠다 .’ 하나가 말이 없자 신 내림을 받은 신관이 입을 연다 .

 

“ 원하는 것이 있다지 ?”

 

“ 네 .” 그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 무엇을 원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 그럼에도 신은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능청스럽다고 생각했다 .

 

“ 제가 살고 있던 세계로 돌려보내 주시겠습니까 ?”

 

“... 좋다 .” 하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이렇게 쉽게 되돌아 갈 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 이렇게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된다고 생각하니 록펠싱은 다소 서운해 하는 표정이다 .

 

“ 그럼 지금 바로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니 , 잠시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

 

“... 아직은 이르다 .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대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 신의 말에 하나의 얼굴은 굳어진다 . 모든 일에는 대가와 책임이 있다 .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한다 .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 전지전능한 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니 상상을 해본적도 없었다 .

 

“ 신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의 물음에 엘리제의 눈빛이 원래의 녹색 에메랄드빛으로 돌아왔다 . 그리고 그들의 앞에 신의 입자가 모이더니 사람의 형태를 이루었다 . 신이 강림하였다 . 하나를 제외한 모두 그를 향해 엎드렸다 .

 

“ 이것은 나의 분신 . 세상에 흩어진 것들로 형상을 만든 것에 불과하니라 . 고개를 들라 .” 신은 중년 남자의 외모였고 천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 온몸에서 빛이나 제대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 신이 손을 휘젓자 신의 입자가 모여들더니 번쩍인다 . 하나와 신의 분신은 우주에 있었다 . 하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의 바다에서 보이지 않는 바닥이 있어서 서 있을 수 있었고 숨을 쉴 수도 있었다 .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

 

“ 너의 세계에 있던 어떤 건축물들이 나의 세계로 전이되었다 .”

‘ 내가 전이 되었다면 다른 것들이 전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 건축물이 전이되었다면 그 속에 많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

 

“ 어찌된 것인지 그것들이 나의 힘을 봉하고 있다 . 그것들이 나의 힘을 봉하지 않도록 해결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고 네가 할 일이다 .”

‘ 어째서 우리 세계의 건축물이 전이 되었을까 ? 내가 전이된 것처럼 아무 이유 없이 ? 어떻게 그 건축물들이 신의 힘을 봉하는 것일까 ? 신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내가 해결할 수 있을까 ?’

 

“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라 . 오직 이 세계에서 온 너만이 풀 수 있는 것이니까 .” 마치 신은 하나의 머릿속을 꿰고 있는 것 같았다 .

 

“ 혹시 저 말고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 이 세계에 온 사람은 ...”

 

“ 아직까지는 .”

 

“ 혹시 ... 신께서 봉인을 풀기 위해 저를 이곳에 데려 온 겁니까 ?”

 

“ 힘이 봉해진 시점에서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 하지만 네가 이곳에 왔기에 나에게는 다행인 것이지 .”

‘ 그럼 아직은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란 말인가 ? 봉해진 능력을 풀어야 내가 살던 세계로 돌려보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

 

하나는 생각한다 . 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는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이라고 .

 

“ 봉인을 푸는 것은 험난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

‘ 내가 봉인을 풀지 못하고 죽어버리면 신은 곤란해 질 것이다 .’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

 

“... 그래서 무엇을 원하지 ?” 신이 입을 열었다 .

 

“ 힘을 원합니다 .”

 

“ 너의 주변 동료들로는 부족한가 ?”

 

“ 그들은 각자의 목표가 있습니다 . 언제 헤어질지 모릅니다 . 저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합니다 . 만약 들어주실 수 없으시다면 ...”

 

“ 없다면 ?”

 

“ 저희를 쫓는 검은 복면들과 마수들을 싹 ~ 다 처리해 주십시오 .” 하나는 웃으며 말한다 .

 

“ 그런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 나는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 .” 안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 개입을 원하지 않는 것을 보니 방관자라 생각했다 .

 

“ 그럼 , 저를 , 스스로 지킬 능력을 주십시오 . 그리고 가능하다면 일행들을 지키고 도와주고 싶습니다 .” 그의 말에 신은 웃는다 .

“ 그것도 좋을 테지 . 그럼 무슨 능력을 원하느냐 ?” ‘ 신의 능력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 ?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 버릴 테니까 .’ 애초에 그런 능력을 줄 수 있는 지도 의문이었다 .

 

“ 강력한 마법사가 되게 해주십시오 .”

 

“... 그것은 들어줄 수 없다 . 너는 내가 창조한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

‘ 들어줄 수 없다 . 라 ... 가능은 하지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일까 ?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가 아니기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일까 ?’

 

“ 허나 ...” 신은 뜸을 들인다 .

 

“ 대신 나노를 느낄 수 있게 해주겠다 . 너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강해질 수도 있겠지 . 하지만 내 세계에 혼란을 초래한다면 언제든 그 능력을 끊어버리겠다 .” ‘ 나노 . 마법의 근원 . 사제들에게는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물질 .’ 손쉽게 대마법사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

 

“ 그래 . 그 목걸이를 통해 나노를 느낄 수 있게 해주지 . 봉인의 건축물 위치는 그 목걸이가 안내해 줄 것이다 . 모든 봉인을 푼 후에 다시 나를 찾아오너라 .” 신은 마지막 말과 함께 신의 입자가 사방에서 빛이 나더니 원래 있던 신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 신의 분신은 사라져 있었다 .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고 묻고 싶은 것이 끝도 없었지만 그는 사라져 버렸다 . 그곳에는 멍한 상태의 일행들과 아르제가 있었다 .

 

신과의 이야기를 일행에게 해주었다 . 일행들은 다소 놀라는 표정이다 . 신이라는 세계의 정점인 존재께서 한 보잘 것 없는 인간에게 부탁한다 .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 신의 말을 잘 듣는 신전의 인원들만 대거로 보내도 충분히 해결하지 않을까 ? 개입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저 나에게 맡긴 것일까 ? 내가 살던 세계의 건축물이라서 같은 세계의 존재인 내가 대표로 해결하는 것일까 ? 그저 나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는 명분이나 대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 이건 신의 부탁이 아니었다 .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신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길 원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 정말 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나에게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주었을 것이다 .

 

“ 신님께 부탁받다니 ! 영광스러워라 !” 주위에서 듣고 있던 사제가 부러움에 몸을 꼰다 .

‘ 나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 신께서 말하는 건축물의 봉인을 풀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

 

하나가 목걸이를 손바닥위에 올리자 빛이 남동쪽을 향해 뻗어나간다 . 저곳에 신이 말하는 우리 세계에서 전이된 신의 힘을 봉하는 건축물이 있을 방향이었다 . 신비한 광경에 사제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하나를 부럽다는 듯 바라본다 . 이런 눈빛은 부담스러웠다 . 하나는 특권을 발휘하여 일행들과 쉬기 위해 작은 방을 빌렸다 . 하나는 신이 말했던 나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을 되뇌며 베르키엔이 말한 대로 정신을 집중시켜본다 . 너무나도 쉽게 나노를 느낄 수 있었다 . 나노는 마치 주변에 내리깔린 안개처럼 흩어져 있었다 . 하지만 아무리 집중해 봐도 조금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 뭔가 요령이 필요한가 ?’

 

‘ 대신 나노를 느낄 수 있게 해주겠다 . 라더니 이거 정말 나노를 느낄 수만 있게 해준 거 아냐 ?’ 라고 의심되었으나 노력여하에 따라 강해질 수도 있다는 뒷말이 떠올랐다 . 이 힘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 신이 만든 이 세계에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면 언제든 이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 그는 허리춤에 찬 완성된 리볼버를 어루만졌다 .

 

하나가 집중하고 있는 사이 베르키엔은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낙서를 하고 있었고 무궁은 누워 자고 있었으며 록펠싱은 글이 새겨진 검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 없었다 . 우리에겐 목적이 있으니까 . 무궁을 깨우고 베르키엔과 록펠싱을 불러 모은다 .

 

“ 다음 목적지를 정해야 할 것 같은데 .” 하나가 목걸이를 꺼내들며 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본다 .

 

“ 하나 . 신님께 부탁받고 마음이 급한 것은 알겠는데 ...” 록펠싱이 머뭇거린다 .

“ 나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며 머무적거렸다 .

 

“ 결국 가기로 한 거야 ? 함정일지도 모르는데 ?” 무궁이 묻는다 .

 

“ 아닐 거야 . 나를 그 자리에서 죽이지 않고 이런 글귀를 남겼다는 것은 .” 록펠싱은 검에 새겨진 문자를 쓰다듬는다 .

 

“ 그 자리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였어 . 그리고 장소를 적어뒀다는 것은 우리를 모두 잡기 위한 계략일지도 몰라 .” 그는 베르키엔을 바라보며 말한다 .

 

“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말을 믿고 싶어 .” 록펠싱은 글귀의 ‘- 오필리아 -’ 라는 이름부분을 어루만졌다 .

 

“ 너를 죽이려 했던 적을 믿는다고 ?” 무궁이 코웃음 친다 .

 

“ 그럼 ... 나 혼자서라도 가겠어 .” 그녀의 말에 베르키엔과 하나가 깜짝 놀란다 .

 

“ 혼자 보내지 않아 . 또 그런 꼴을 당하게 내버려 둘 수 없어 . 함정이라면 더더욱 함께 가야해 .” 하급마수를 도륙할 정도로 강했던 그녀가 피투성이로 쓰러질 정도의 적이었다 . 하나는 리볼버를 꽉 움켜쥔다 .

 

“ 저도 따라가겠어요 .” 베르키엔이 확고한 표정으로 말한다 .

 

“ 그녀를 따라가는 것은 위험해 ! 무모하다고 !” 무궁이 감으로 말하는 록펠싱을 비아냥거린다 .

 

“ 그럼 당신을 따라가는 것은요 ?” 베르키엔이 무궁을 향해 팔짱을 끼며 말한다 .

 

“ 그녀를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겠지 .”

 

“ 계속 그렇게 도망만 쳐왔겠지 .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도망만 치겠지 .” 록펠싱이 무궁을 향해 말한다 .

 

“ 네가 뭘 안다고 !” 무궁이 흥분에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내 머쓱한지 돌아서서 머리를 긁었다 .

 

“ 넌 따라오지 않아도 돼 .” 그녀가 무궁을 바라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무게가 실린 묵직한 한마디였다 . 그녀의 말에 무궁은 고개를 돌리며 먼 곳을 응시한 채 벽에 기댄다 .

 

“ 싫어 . 따라갈 거야 .” 그의 대답에 그녀는 싱긋 웃음을 짓는다 .

 

신전에서 하루 묵은 일행은 이른 아침 떠날 채비를 마쳤다 . 신관 에르제와 많은 사제들이 마중을 나왔다 .

“ 감사했습니다 .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 언제든지 들러주세요 . 항상 신의 가호가 그대들과 함께 하기를 .”

그들이 떠나려 하자 사제들이 따라가고 싶다는 듯 안절부절 못한다 . 아마 아르제 신관에게 부탁하였으나 그녀가 사제들의 부탁을 모두 거절한 모양이었다 .

 

그런 그들을 뒤로 한 채 다시 길을 나선다 . 록펠싱의 검이 있을지도 모르는 ‘ 폰란델 마을 ’ 을 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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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트리어 2018-11-24 (토) 14:57
어우, 길다.. 아무리 비평받고 싶다지만 14화 전부를 올리시면 눈 아파요ㅋㅋ
어쨌든 잘 봤는데 다듬을 부분이 많네요. 초보작가의 실수인 의식에 따라 쓴 의미없는 과도한 묘사, 대화 또한 문어체에 가깝고, 어휘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그리고 욕심이 있어서 본인도 이해를 못하는 어려운 단어를 느낌적인 느낌으로 넣으시고...그래서 글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작가는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즉, 작가 머릿속에 있는 모든 내용을 쓸 필요는 없으며, 1인칭이라면 철저하게 롤플레이를 해야됩니다. 내가 아는 쉬운 단어로 써도 어려운 게 소설입니다. 시제도 소설에서 행동한 후에 묘사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과거형을 써주셔야 됩니다. 특히 캐릭터에 맞춰서 쓰려면 많은 생각을 해야하죠. 일부분을 다듬어서 보여드릴게요. 12화 앞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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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트리어 2018-11-24 (토) 14:57
숲은 어수선했다 . 한낮이었지만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태양빛을 가려 숲은 온통 어두웠다 . 먼곳에서 새들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오리는 소리가 났다.
서른 걸음 앞에 있는 나무를 표적을 그려두었다. 총신이 조금 두꺼운 리볼버는 무거운 편이었다.
하나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 제대로 작동하는 총은 일격필살의 무기니까.
그는 두 손으로 그립을 잡고, 다리를 살짝 벌린 채 오른 팔을 굽혔다.
그리고 가늠선과 나무에 그려운 붉은 원이 일치할 때 방아쇠를 당겼다. ‘
화약의 격발음 대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나는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 틱틱하는 소리가 났다. 약실이 회전하고 공이는 뇌관을 내리쳤지만 장전된 5발 모두 불발이었다 .
뇌홍의 양이 부족했나보군. 탄약 a는 모두 실패였다.
그는 곧장 가방에서 b탄약을 꺼내 삽입했다. 방아쇠를 당기자 여지없이 금속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해서 준비해둔 e탄약까지 모두 실패하고 났을 때, 그의 주머니는 불발탄으로 불룩해졌다.

'이것마저 안된다면 어쩔 수 없지.'

가장 질 좋은 화약으로 만든 f 탄이 남아있었다. 두발째에서 연소반응이 일어났다. 탄두는 발사되지 않았지만.
두번째 탄을 꺼내 탄두를 빼내고 내부를 확인했다. 뇌홍은 터졌지만 대부분 연소되지 않아 있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화약이 이정도라니.'

화승총의 시대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일지도 몰랐다. 하나가 리볼버를 홀스터에 수납했을 때였다.
멀리서 정체불명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포식자 부류의 짐승들의 울음보다 높고 컸지만 괴상한 느낌이었다.

 “ 괴 ... 괴물이야. 근처에 괴물이 있어 !”

하나는 재빠르게 탄들을 가방에 우겨넣고 내달렸다. 숲은 깊고 어두워서 출구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공포감에 휩싸여 무작정 내달리다가 정작 자신이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참 달리다가 마주친 사슴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고, 언뜻 회색 늑대와 호랑이를이 초식 동물 무리에 섞여 달리는 것을 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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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트리어 2018-11-24 (토) 14:58
그는 뒤꽁무니도 보이지 않는 사슴이 갔던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도중에 뱀들이 낙엽 사이에 숨긴 몸을 해치고 나왔다.
꿈틀거리는 뱀들을 피해 디딜 곳이 없었다. 이 뱀들이 독사라면 그는 멀리 가지도 못하고 짐승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걷다 고목 아래에 깊은 굴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는 몸을 집어넣었다. 굴은 덩치가 큰 짐승의 보금자리였는지 넓고 큰 반원형이었다.
급하게나마 잎사귀가 많은 나무가지를 꺾어 입구를 막고나자 힘이 빠져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죽는 줄 알았네."

그러나 금방 일어나고 말았는데, 그것은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짐승의 것이 아닌 어린 아이의 것이었다.
삐쩍 말랐고, 앙상한 아이는 굴의 가징 깊은 곳에 웅크려있었다. 하나가 다가가자 더욱 움츠러들었다.

"얘, 괜찮니? 도대체 너 혼자 여기서 뭐하는 거야?"

어린아이는 겁에 질려있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이의 손에는 물린 자국이 있었는데, 뱀에게 물렸는지 손이 파랗게 퉁퉁 부어있었다.

"뱀에게 물렸구나? 아프지 않아? 내가 도와줄수 있어."

하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몸을 덜덜 떨었지만 물러나진 않았다.
자그마한 몸은 차가워져 있었다. 그는 뱀에게서 물렸을 때 취하는 조치들을 알고 있었다. 치사성 맹독은 짧은 시간내에 응급조치를 못하면 조직을 괴사시키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은 멀쩡해 보일지라도 해독 주술이 필요했다. 먼저 가방에서 끈을 빼내 아이의 팔뚝에 피가 통하지 않도록 감아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숲은 많은 생명들이 빠져나가 고요해졌다. 오직 괴물의 포효만이 이따끔씩 들려올 뿐이었다.
다행히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듯 했다. 하나는 아이를 업고 굴 밖을 나왔다. 그는 동물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작은 발굽들, 뱀들이 기어간 자국, 큰 덩치의 맹수의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있었지만 방향은 일정했다.
거기에 인간 발자국 하나가 더해진다고 해서 무리는 없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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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트리어 2018-11-24 (토) 14:58
그는 엉킨 덩굴과 고목 뿌리들을 지나쳤다.
얼마간 뛰었을까, 숲 속의 어둠이 뒤로 물러났다.
아이의 숨이 가빠졌다. 마을까지는 지척이었다. 하나가 목책 근처에 도달했을 때, 종탑에서 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입구 위편에 경비들과 길드원들이 모여있었다.
록펠싱, 무궁, 베르키엔은 하나를 보고 문을 열어줬다.

"이 난리에 어디갔다 왔어?"

록펠싱이 물었다.

“ 베르키엔 ! 도와줘 ! 이 아이가 뱀에게 물렸어 !”

베르키엔은 지팡이를 들고 달려와 아이를 살폈다.
무궁은 옆에 서서 아이를 넘겨받았다.

"정신을 잃었군요. 어떤 뱀에게 물린 건지 안다면 도움이 될텐데요. 일단 기본적인 처치를 하겠습니다."

베르키엔이 집중하는 듯 양손 모으고 주문을 읊조렸다.
그녀의 위로 떠온 하얀 빛덩이가 아이의 상처를 맴돌았다. 파랗게 부풀어 오른 환부에서 조금씩 부기가 가라앉았다.

“뭔 난리냐?”

록펠싱이 하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나는 홀스터를 툭 치며 말했다.

“ 그게 ... 이걸 쏘러 갔었는데 괴물이 포효하는 걸 듣고 도망쳤어. 그러던 도중에 얘를 만나 데려온거야 . 이미 뱀에게 물려있더라고.

록펠싱은 에이그!라고 힐난하는 소리를 냈다.
 
“왜 혼자 갔어 ! 괴물 숲에 갈 땐 같이 가야하는 거 아니냐? 싸울 줄도 모르잖아. 혹시라도 네가 다쳤으면 어쩔려고 그랬냐?”
 
그는 읏으면서 어깨를 두드렸다. 하나는 약골이니까,라고 덧붙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하나로써는 꽤 열받는 말이었지만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 우리 여행에 지장이 생긴단 말야.”

“ 미안 .”

"치료가 끝났습니다. 간단한 해독 마법으로 해결이 가능해서 다행입니다."

베르키엔은 팔에 감긴 끈을 풀어주었다. 정신을 잃은 아이의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 마법은 정말 무한한 능력이구나. 마법으로 불가능 한 게 뭘까 ? 시간을 되돌리거나 ...나를 원래 있던 세계로 보내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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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잘되라고하는소리 2018-11-24 (토) 16:11
천사시네요. 저는 그냥 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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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구워먹은감자글쓴이 2018-11-24 (토) 19:53
귀중한 시간을 보태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칠 부분이 많네요.

써주신 부분 참고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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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미소년G 2018-11-25 (일) 02:38
그냥 링크만 달아놔도 많이들 봐주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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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구워먹은감자글쓴이 2018-11-25 (일) 11:17
넵

다 올리다 보니 스크롤만 길어졌네요. 앞으로 링크를 달아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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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백설화향 2018-11-26 (월) 00:32
소설에서 첫문장, 첫문단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기서 독자들 90%가 손절을 선택합니다.

첫문장, 첫문단을 너무 의미없이 쓰신거 같습니다.

첫문장 첫문단이 유명한 작품들을 보시면 바로 느낌이 오실겁니다.

흐음...

소설작법에 대해 공부를 안하신게 보입니다.
취미든 프로든 전업을 노리시든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신다면

기본적인 작법서 정도는 읽으시는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가볍게 읽을거로는

소설작법의 정석, 서사패턴 959

이 두책이 나름 핵심만 잘 요약해 이해하기 쉽게 썻습니다.

여기에 스티븐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정도 읽으셔서 창작론에 대해서 좀 알아보시고 동기부여도 받으시면 좋을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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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k구워먹은감자글쓴이 2018-11-26 (월) 22:50
감사합니다.

기초도 없으면서 마음만 급했던 것 같습니다.

갈길이 까마득 하네요.

써주신 책들 참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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