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핸드폰으로만 끄적대다 거의 6~7년만에 손그림으로 회귀중입니다. 손그림과 비교해서 태블릿이든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최대 장점은 높은 유틸성과 수정이 편리하다는거죠. 특히 핸드폰으로만 끄적대던 저는 전철에 서서도 그림을 무리없이 그립니다.
미러리스와 dslr을 비교하자면 데세랄의 감성이랄까? 튀는 비교긴 하지만.. 아니 데세랄의 감성보다 손그림이 가지는 매력은 더 크다고 느껴졌습니다. 어릴땐 무언가 새로운것에 도전하는게 늘 두려웠고, 한두번해보니 재능이 없는것같아 '난 채색못해','명암 못넣어'라는 생각에 검은 선으로만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대하고서 6~7년간 그림을 거의 놔버렸습니다. 하지만 관찰하는 호기심은 그대로여서 내 그림에서 '어색함'을 발견할줄 알게되었고, 그림을 오랜동안 그리지않아도 생전 넣지않던 명암과 채색을 만족할만큼은(?) 넣게되더군요.
모작이나 보고 그리는것도 못해서, 두려워서 하지않던건데 최근 사진을 따라 그립니다. 굉장히 안똑같습니다. 디테일을 보는 관찰력은 좋아졌어도 구조와 형태를 보는 눈은 10년전 그대로였습니다. 정밀묘사가 재미있거든요. 예전부터 샤프로 그림을 그렸고, a4용지에 무언갈 세밀하게 그리긴 샤프가 제격이었습니다.
취미로 그림을 그려오면서 '왜?'라는 생각을 별로 안해본것 같네요. 요즘 와서 그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며칠전 어느 유튜버처럼 그려보려 4b연필을 구입했고, 위 그림을 그렸습니다. 4비 연필이 예전부터 무진장 싫었습니다. 두꺼워요. 내가 이걸 왜샀나 싶다가도 몇번 그리다보니 익숙해졌습니다. 위 그림은 사람 생김새만 따와서 포즈를 다르게 그려보았습니다. 그렇게 재미붙어 이 그림을 그리다가 드는 생각이.. 심을 얇게 깎아서 이렇게 그릴거라면 샤프랑 무슨차이인가 싶었습니다.
손과 다리만 그리면 완성되는 그림인데 그리는 의미가 희미해졌습니다.
정밀묘사가 재밌어서 디테일만 좇아왔듯, 재미있는 것만을 찾아 가려는듯 합니다. 무서워서, 못 할까봐 변화를 두려워하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가 봅니다. 사실 4b가 아니라 아트박스나 문구를 돌며, 유튜버를 따라 콘테를 사려고 했습니다. 안팔아서 산건데.. 4b에도 적응못하면 콘테는 사나마나입니다. 두꺼운 획이 싫었거든요.
제가 두꺼운 획으로 슥슥 그리는것을 좋아했다면, 형태와 구조를 잡는게 지금보단 낫지않았을까 망상을 해봅니다.
손그림으로 회귀하는 이유는 폰으로만 그려 만족스러울줄 알았던게, 손그림으로 만족할만큼 표현이 되는구나를 느껴서입니다. 연필도 그렇고, 콘테는 더 그럴거고, 손그림은 수정이 유틸로 그리는것보다 어려워요. 그래서 부닥치는 문제는 수정이 필요없을 틀이 잡힌 구조이고, 내 그림의 구조가 엉성하다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지금도 그리면 정말 많은 가상의 획을 그리고 지워요.
예전에 정성을 들이던 그림과 비교하면 요즘의 그림들은 정말 심플합니다. 그때 손으로 그리던 그림들을, 지금 프로그램의 편리함과 정밀성을 더해 노력을 기하면 보기좋은 그림이 될거에요. 김정기씨만큼은 아니지만 거대한 그림의 구도를 연출하는건 정말 재미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배고픔도 잊고 5~6시간씩 줄창 그림을 그릴때도 있지만.. 뭐 의미 없죠.
아마 발전하는게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림을 오랜동안 놓았던거고..
그림을 본업으로 삼지야 않을테지만 살다보니 떼어놓고 살수없다고 생각했고, 그리면서 사는게 훨씬 재미있습니다. 혼자 징징대다 얘기를 다른데로 튕겨보자면.. 웹툰 안봅니다.
흑백 웹툰이 있나요? 채색없는 그림이 전에는 '채색을 못해서'였는데, 요새는 선과 간단한 명암으로 표현되는 그림이 정말 좋습니다. 특히나 만화같은 선으로 표현하는 그림의 정수는 '선'의 표현에 담겨있어요. 그것을 자각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고요. 그냥 지나가다 흘깃거리는 웹툰들 보면.. 그림에 멋이 안느껴집니다.
안배운 무식자가 개똥철학을 늘어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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