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142154005
비핵화 해답은 CVID 아닌 신뢰…‘외눈’ 아닌 균형적 시각으로 봐야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공동성명에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빠졌다며 불만이 가득하다. 명시한 ‘완전한 비핵화’에는 V(검증 가능하고)와 I(되돌릴 수 없는)가 없으니 실패한 것이라고까지 한다. 애당초 모순덩어리인 CVID를 북핵 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인 양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CVID가 없다고 투덜대지만 공동성명에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도 빠져있다.
단지 북한의 ‘안전 보장’이라고만 명시했을 뿐이다.
CVID 신봉자들에게 역사적인 최초의 북·미 정상 간 만남은 그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쯤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한쪽 눈을 감고 외눈박이가 되어보라. 사물에 대한 거리감이 확연하게 떨어진다. 북한의 체제 보장을 살펴봐야 하는 눈은 감고 비핵화란 한쪽 눈만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외눈박이들에게는 현실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혹자는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과거의 합의보다 내용이 없고 후퇴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껏 북핵 문제가 구체적 합의가 없어 해결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 북·미 공동코뮈니케, 2012년 2·29 합의가 있었다. 6자회담을 통해서도 9·19 공동성명과 2·13, 10·3 합의를 도출했다. 그럼에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문제는 합의 내용이 아니라 북·미 간 불신이다. 북한도 북한이지만 미국은 북한을 믿지 않았다. 끊임없이 악마화해 왔다.
그랬던 미국이 변했다. 아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만 바뀌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북한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공동성명에 서명한 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CVID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김 위원장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겉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양보한 것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더 멀리 더 크게 보고 있는 듯하다. 상대에게 먼저 호감을 주고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실제 행동으로 이끌어내려는 신뢰의 협상전략인 것이다. 비핵화의 해답은 CVID가 아니라 신뢰에 있다.
북·미는 공동성명을 통해 새로운 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전쟁포로와 실종자의 신원확인 및 유해 송환에도 재합의했다. 확실히 디테일은 없다. 그러나 북·미관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겨 있다. 수차례 실무회담을 통해서도 구체화시키지 못할 만큼 과거부터 쌓여온 불신의 벽을 깨기 어렵다는 점을 양측 모두 뼈저리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욕심을 내 상대방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기 전에 신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선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북·미 모두 인식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공동성명에는 비핵화와 체제 보장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미래를 위한 북·미 양측 의지는 담겨있다.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북한은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를 약속하고 미국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상징적 선제조치를 통해 신뢰를 확인했다. 비핵화와 체제 보장의 시작점은 정해진 것이다.
이제 정교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새로운 관계 수립은 연락사무소와 무역대표부, 그리고 대사급 북·미수교로 이어질 것이다. 평화체제를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이 필요하고 종전선언도 이야기되고 있다. 이는 남한 및 중국과도 긴밀하게 협력해야 할 사안이다. 비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20%의 비핵화가 현실적이다. 보유한 핵물질을 완전히 반출하고 더 이상 만들지 못하게 재처리 및 농축시설을 불능화 폐기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초기 핵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반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초기 6개월 내 핵심 시설 불능화를 시작으로 2020년 전에 20%의 비핵화를 달성하는 로드맵이 현실적이다. 여기엔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로드맵이 어떻게 결합되는지가 관건이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보도를 통해 단계적, 동시적 이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이행을 두 눈 크게 뜨고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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