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귤 200톤 보내는 게시글에서 군대에서 귤파동 겪은 이야기 나왔길래,
당시를 경험했던 군필자로서 당시 국방장관 이름과 제주도 지사 이름을 잊을 수가 없어서 적어 놨더니
귤파동도 도지사나 국방장관 책임이냐고 되묻는 댓글에 대한 답으로,
당시 겪었던 귤파동 경험을 적습니다.
참고로 그 댓글에 대한 답을 달자면 그들의 책임은 당연히 아니지만,
당시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그들의 이름을 잊을 수 없는 것 이지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1999년 12월에서 2000년 1월 사이 입니다.
당시 저희는 RCT를 준비하고 있었죠.
이게 원래 예정되어 있던 RCT가 당시 전군에서 최초로 도입되었던 뭐더라...
서바이벌 게임 같은 거 암튼...그거 도입식 준비하고 하느라 지연되서 평소와 달리 그 추운 때 RCT를 뛰게 된 거죠.
저희는 나름(?) 연대의 최정예라는 연대 직할대 수색중대.
따라서 거의 모든 검열은 저희 중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죠.
그 만큼 준비는 정말 토나올 정도 였습니다.
어느 정도 였냐..
하루에 준비태세 훈련을 대여섯번을 합니다.
자다 말고 새벽 부터 군장 싸고 집합하고 다시 군장 풀고 훈련 준비하다 또 준비태세 하고...
한번만 해도 내무실이 걸레가 되는데 이걸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반복을 했었습니다.
거기에 전 군생활의 절반을 5분대기를 한 까닭에 5분대기 검열까지 같이....
깃발로 수신호 보내는 것도 있는데 이건 뭐....써 먹을 일이 없으니 배운 적도 없었고..
당시 RCT 검열할 때 검열관이 저에게 와서 무전기 옆에 꽂힌 수기를 보더니,
" 이거 할 줄 알아? "
이러길래...할 줄 모르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 시범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고 깃발 뽑으려고 하니까 웃으면서 됐다고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암튼...잡설이 길었고...
정말 하루 종일 빡시게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국방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1면에 대문짝 만하게 실렸습니다.
" 우근민 제주도지사 군장병 사기 진작을 위해 귤 X만톤 기부 "
그 기사를 보고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죠.
저를 제외하고.
왜냐하면 저는 귤과 그 친구들을 굉장히 싫어했거든요.
다행이 그때 제 짬밥이 상말 퍼짐이 직전의 마대라서 귤을 안먹을 수는 있었지만...
그 기사 이후에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중대에 귤이 도착했습니다.
1인당 1박스 ㅎㄷㄷㄷ
처음에는 계급 상관 없이 누구나 먹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꺼내서 먹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며칠 정도 지나니 다들 물려서 안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RCT 훈련이 바로 코 앞인데 그 때 까지 그걸 다 해치워야 한다는 사실!
그래서 그 때 부터 중대의 가혹행위는 귤 먹이기로 바뀌었습니다.
그 전 까지는 갈구거나 기껏해야 원산 폭격하고 조인트 좀 까이거나 하는 수준 이었는데
그게 다 사라지고 점호 시간에 가혹행위는 귤 먹이기로 바뀌었습니다.
귤 한박스 가져다 놓고 그 날 갈굼꺼리가 있는 병사들 앞에 귤 열댓개씩 나눠 주고 먹으라고 하는 거죠.
뭐...그런 껀덕지가 없으면 퍼짐이들은 먹고 싶은 사람들만 먹고 나머지는 일괄 동일한 개수로 배분.
나중에는 병사들 손톱 밑이 노래지고 피부가 누렇게 뜨더군요.
전 귤로 인해 사람의 피부색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게 귤을 싫어하는 저도 워낙 다른 병사들이 고생을 하니 억지로 몇 개씩 먹고는 했었습니다.
암튼...그렇게 어거지로 겨우 RCT 때 까지 귤을 모두 소화했습니다.
열심히 훈련을 끝내고 일주일 만에 중대로 복귀를 했지요.
중대 복귀하고 오침을 한 다음에 일어나 정비를 하는데,
후임이 기겁을 하면서 국방일보를 들고 왔습니다.
국방일보 1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실려 있었죠.
" XXX 국방장관 군 장병 사기 진작을 위해 귤 X만톤 보급 지시 "
(이게 천용택인지 조성태인지 헷갈림..시기 상으로는 조성태인데 워낙 천용택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서...)
다들 자지러 졌었습니다.
그 기사 이후 다시 1인당 1박스 이상의 귤이 보급이 나왔었습니다.
당시 소대원이 5분대기조 파견병 포함해서 29명 이었는데...소대로 보급 나온 것이 30박스..
파견병 두 명(짬밥이 안되는 아저씨들)의 몫으로 소속 중대에서 온 1인당 2박스 해서 34박스......
또 다들 그거 해치우느라 개고생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니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죠.
그 놈의 귤파동 ㅠ.ㅠ
(기타)
mbc 주말 뉴스 이지선앵커 마지막 인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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