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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좋은말씀

글쓴이 : 佛중도 날짜 : 2018-05-14 (월) 20:01 조회 : 4471


만약에 색으로 모양으로서 나(여래)를 보거나
음성으로서 나(여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사람이니 
능히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 
- 금강경 제26분 법신비상분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임하라.
- 금강경

기도를 함으로써 병이 낫고 수명도 길어진다면
병들어 죽을 자가 누가 있으랴.
- 정토종약초

다섯 자 여섯 자의 몸에 담긴 정신은
한 자의 얼굴에 나타나며,
한 자 얼굴의  정신은
한 치의 눈 속에 들어 있다.
- 묘법니어전어반사

병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며,
만족을 아는 자가 가장 넉넉한 자이다.
- 법구경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은 주(主)가 되어 모든 일을 시킨다.
마음이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다.
괴로움은 그를  따라  마치 수레를 따르는 수레바퀴  자국처럼 생겨난다.
몸은 빈 병과 같다.  그러므로 마음이라는 성을 든든히 쌓아
몸에 악마가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 법구경





토토로이 2018-05-14 (월) 20:08
불교의 좋은말씀은 이런것보다

"만약 꿈에 내가 나온다면, 나를 죽여라" - 부처

이거죠

다른 종교처럼 무슨무슨교를 '믿는다' 라는 개념이 아니라는걸 확실히 알려주는 말씀

다른 종교에서 우상이 꿈에 나온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지만,

불교에선 부처는커녕 부처 할애비가 와도 내 인생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 관점.

전생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한 행동들이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단 하나의 신념.

이게 멋있는 점이죠.

물론 50대이상 할머니들은 맛이가서 불교조차도 무슨 교회처럼 믿더군요

열심히 기도하면 부처님이 다 들어주실 거라고...ㅋㅋ
joycool 2018-05-14 (월) 20:11
확실히 성경보단 좋은 이야기가 많죠..
다만, 개독이나 불교나 어떤 종교든 빠돌이와 그걸 권력마냥 사용하는놈들이 문제죠
잉어피자 2018-05-14 (월) 20:12
대행스님.
법훈집- 자유인이 되는길 강추 드립니다.
가공할 위력이 잇습니다.
내사랑박민영 2018-05-14 (월) 20:19
누구나 아는 번지르르 한 말들 차라리 시집이 더 낫다
     
       
YIELD 2018-05-14 (월) 20:43
성경보다 낫구만 뭘 그래요?
     
       
김미원 2018-05-14 (월) 20:59


개 좆같은 남의 나라 단군할배 할머니 마늘 쑥 처먹는 소리 읽을바에야
시집이 더 낫지..
          
            
내사랑박민영 2018-05-15 (화) 07:00
헛되고 헛되니 헛되니라
zetman1 2018-05-14 (월) 20:40
항상 스들이 문제임
國破山河在 2018-05-14 (월) 20:49
내사랑박민영님
"누구나 아는 번지르르 한 말들 차라리 시집이 더 낫다" 라고 하시는데.

4살때 부터 부모님께 앵무새 혹은 녹음기 처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차 조심해라"가, 40이 훌쩍 넘은 지금도 듣지만 그 의미나 깊이가 부모가 되어보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 지 알고 하시는 말이라면 인정하겠습니다.
토브 2018-05-14 (월) 21:21
내 사랑 박민영님이 불가의 명언보다 시집詩集이 더 낫다고 정확히 통찰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일부 불경을 번역해가며 공부하기도 했었지만 실제로 불경의 내용은
알맹이 없이 말만 번지르르한 관념에 더 가깝습니다.
두보詩 '춘망'의 첫구절을 닉네임으로 쓰신 분이 '차 조심해라'와 같은 좋은 말이
불경에 쓰여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전혀 잘못 알 고 계신 것이죠. 성경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차조심'처럼 '예수천국 불신 지옥'도  얼마나 단순하고 지겹습니까?
하지만 무시하면 큰 일 납니다.
불교에서는 차조심도 집착의 산물입니다.차가 보이지 않는 곳, '산행길로만 다녀라'는 식입니다.
뭔가 임팩트가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현대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가르침입니다.
시집으로 차라리 마음의 위안을 얻는게 나을지 모릅니다.

글 내용중에도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 마음의 근본을 바꾸는 것(거듭남)입니다.
그 말씀의 영향력이 삶 에서, 영원한 삶까지 그대로 진가가 드러납니다.
석가모니도 인정한 것처럼 불교는 사람 마음의 근본을 바꿀 수 없습니다.
악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잔잔한 구정물 상태를 그대로 품고 사는 것이 좋다고 할 뿐입니다.
윗물이 맑아보이도록 집착된 행동으로 구정물을 흐트러뜨리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석가는 자신이 죽은 후 500년 후 그것이 가능한 세상, 서너다섯 사람의 마음 뿌리를
선하게 바꾸는 것이 아니고 佛三四五佛 而種善根 
수천 수만 무량의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의 뿌리를 심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온다면
원문: 不於一佛二 佛三四五佛 而種善根 已於無量 千萬佛所 種諸善根
자신이 말한 가르침 역시 강을 건너고 난 후의 뗏목처럼 버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원문: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구약 성경에서도 발람이라는 이방 종교 선지자가
석가모니처럼 하나님 말씀의 핵심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경우가 등장합니다.
*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불교는 대승불교 내용으로
그것은 용수가 서기후 200년 경 모두 체계를 다시 잡은 것입니다.
순수한 소승 불교 입장이었던 석가의 가르침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 불교는 진리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외면하도록 사람들을 대용품으로 현혹하여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속이는 거짓 종교일뿐입니다.
     
       
붉은화살 2018-05-15 (화) 00:43
어지간하면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현혹', '속이는', 거짓 종교?
댁같은 분들 덕분에 기독교가 그 좋은 교리를 가지고도 욕먹는 겁니다.
          
            
김미원 2018-05-15 (화) 13:14
기독교 교리가 좋다니요...
안믿으면 지옥 보냅니다 ㅋ
이웃의 대한 사랑? 지역에 대한 사랑? 나라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기는 한가..

지네들 바운더리 안에서의 사랑.
아부지 하나님에 대한 맹목적이고 충성스런 사랑
그런 잡스러운것들만 남아아겠지.
     
       
東邪西毒 2018-05-15 (화) 10:51
예수의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구정물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너무 많아서,
부처의 존재가 돋보이나 봅니다.
oosoo 2018-05-15 (화) 04:07
내사랑박민영 2018-05-15 (화) 07:39
불교의 도가 기독교처럼 깊지는 못한 것 같네요
벽계 2018-05-15 (화) 09:43
마음을 다스리는 부처님 말씀 모음

 

몸의 행동은 모두가 마음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고르게 해야 한다.

《불본행경》 한글장171책


  옛날 어떤 비구니가 사가라국(?伽羅國)에 갔었는데 어느 한 바라문이 온몸을 불에 지지고 있었다. 그의 이마 위에서는 물이 흐르고 가슴과 겨드랑이에서는 땀이 마구 솟았으며 목구멍은 마르고 입술과 혀는 바짝 타 있었다. …(중략)
  이때 그 비구니가 지나가다가 이것을 보고 바라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불에 지져야 할 것은 지지지 않고 지지지 않아야 할 것을 지지고 있소? 그대가 정말 불에 지져야 할 것은 그대가 남을 미워하고 성을 내는 그 마음을 불에 지져야 한다. 그 마음을 지지는 것이 참다운 고행이다. 그대는 저 수레를 끌고 가는 소를 보았는가? 마치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채찍질해야 하고 수레는 채찍질할 필요는 없듯이 이 몸은 수레와 같고 마음은 소와 같다. 그러므로 그대는 마음을 불에 지져야 하거늘 왜 쓸데없이 그 몸을 못견디게 구는가?”

《대장엄경론》



  교화하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은 원숭이와 같으므로 여러가지 방법[法]으로 그 마음을 다스려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훈련되지 아니한 코끼리와 말에게는 여러가지로 고통을 주어, 혹은 뼈나 몸에 영향을 주어 다스리는 것과 같이, 마음이 굳어서 교화하기 어려운 사람들 뿐이므로 마음에 고통을 느끼게 하는 고언(苦言)을 함으로써 비로소 규율이 바른 생활[律]에 들게 합니다.

《유마힐소설경》 향적품 한글장57책 124쪽


  마음이 하나로 잘 통일되면 이것을 정(定)이라 한다.

《중아함경》 법락비구니경, 한글장4책 357쪽


  도(道)는 마음에서 생기나니 마음이 바른 사람이라야 도를 얻을 수 있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단정하면 천상에 올라가고, 경에 밝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

《불반니원경》 권상, 한글장12책 40쪽


  무엇을 병의 근원이라고 하는가 하면, 대상에 대하여 마음이 작용하는 것으로서, 마음이 작용할 때 그것이 병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작용하는 대상은 일체의 미(迷)한 세계입니다. 이 마음의 작용을 끊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아야[無所得] 합니다. 만약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으면, 그때 마음은 대상을 향하여 작용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생각[二見]을 떠나는 것이며, 상대적인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주관과 객관이며, 이들을 떠나는 것이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이와 같은 것을 병든 보살이 그의 마음을 극복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을 끊어 없앤다고 합니다. 이것이 보살의 깨달음입니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다면 지금까지의 수행은 무익한 것입니다.

《유마힐경》 문병품, 한글장57책 81-82쪽


  온갖 장수도 마음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니, 마음은 원수여서 항상 사람을 속인다. 마음이 지옥을 취하며, 마음이 아귀를 취하고, 마음이 축생을 취하며, 마음이 천인(天人)을 취한다. 형상을 이루는 것은 모두가 마음이 하는 짓이니, 능히 마음을 항복받고 도를 닦는 이는 그 힘이 가장 센 사람이다. 내가 마음과 싸운 겁수(劫數)는 헤아릴 수도 없겠거니와 이제는 부처를 이루어서 홀로 삼계를 거닐으니 모두가 마음이 하는 짓이다.

《오고장구경》 한글장162책 423-423쪽


  비롯됨이 없는, 예로부터 익혀온 애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마음자리[意地]를 둘러싸고 있어서 잠시 엎드려 있다가 다시 되살아남이 ‘하루거리 학질’과 같나니 하루 24시간 언제나 방편과 지혜의 힘을 더욱 더하여 간절히 스스로 막고 보호할지언정, 어찌 한가로이 뿌리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서 심종(心宗)을 바라며 해탈의 길을 구할 수 있겠는가.

《계초심학인문》 한글166책


삼일 간 닦은 마음
영원한 나의 보배.
한 평생 모은 재산
아침의 이슬일세.

《野雲比丘 自警文》


그릇됨 없는 마음 참다운 계율이고
우치가 없는 마음 여여한 지혜이고
산란을 여읜 마음 고요한 선정이고
더하고 덜함없는 그 자리가 법신일세.

《육조단경》 남북돈점 제7


  모든 사람이 밥을 먹어 그 배고픈 창자를 위로할 줄은 알면서도 불법을 배워 어리석은 마음을 고칠 줄은 모르는구나.
 
《발심수행장》 한글장70책 564쪽


  모든 중생이 시작을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여러 가지로 뒤바뀌어서 그 업이 씨앗이 자연히 악차(惡叉)의 열매와 같이 한데 모여 있으며,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최상의 보리를 이루지 못하고 별도로 성문이나 연각을 이루며, 외도와 하늘과 마왕과 마구니의 권속이 되기도 하니, 이 모두가 두 가지 근본을 알지 못하고 뒤섞여 어지럽게 닦아 익혀왔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모래를 삶아서 좋은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비록 티끌처럼 많은 겁의 세월을 지낸다 하더라도 끝내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 두 가지 근본이란 무엇인가? 아난아! 하나는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의 근본이니, 지금  너와 모든 중생들이 반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요, 둘째는 시작이 없는 보리와 열반의 원래 깨끗한 본체이니 원래부터 밝은 너의 식정(識精)이 모든 인연을 만드는데 바로 그 인연으로 인하여 본래의 참다운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러 중생들은 이렇게 본래부터 밝았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록 종일토록 행하여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여러 갈래의 중생세계로 잘못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능엄경》 민족사불교경전5, 29-30쪽


  사리자야, 왕이나 대신이 맑은 물이 가득 찬 좋은 목욕할 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비구와 비구니는 자기 마음을 목욕할 못으로 삼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비구와 비구니가 자기 마음을 성취하여 목욕할 못으로 삼으면, 곧 능히 악을 버리고 선을 닦아 익힐 것이다.

《중아함경》제15권 삼십유경, 한글장2책 328쪽


  만일 어떤 비구가 남의 마음을 잘 관찰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스스로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중아함경》 제27권 자관심경 한글장3책139쪽


  사문아, 너무 지나치게 정진하면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너무 정진하지 않으면 마음을 게으르게 한다.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이 때를 분별하고 이 상(相)을 관찰하여 방일하게 하지 말라.
 
《중아함경》 제29권 사문이십억경 한글장3책 188쪽





부부에게 들려주는 부처님말씀 모음

 

서로 사랑하라


부자간에, 형제간에, 부부간에, 친족간에 항상 서로 사랑하여 시기하거나 증오하지 말라. 안색은 항상 화평하게 하고 서로 멀리 있어도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라.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진정한 수행자의 사랑[慈悲]은 그 영원까지 뛰어넘는다.

《무량수경》하권 한글장 241책 174쪽

 

사랑이 깊으면 괴로움도 깊다


옛날에 어떤 부인이 잠깐 친정에 들리러 왔는데, 그 친정 식구들이 그 여자를 다른 곳으로 다시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는 이 말을 듣고 곧 남편에게 돌아가 말하였다.

“여보, 어쩌면 좋아요? 지금 우리 친정 식구들은 당신의 아내인 나를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다시 시집보내려고 해요.”

그러자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함께 저 세상으로 갑시다. 그럼 그런 일도 당하지 않을 것이오.”

곧 예리한 칼로 아내를 찔러 죽이고, 자기도 함께 죽었다. 이런 일만 보더라도 애정에는 곧 슬픔과 울음?근심?괴로움?번민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아함경》제60권 한글장(인터넷판) 1702-1703쪽




부부 인연은 인력으로 안된다


옛날 어떤 부인이 딸을 낳았는데 예쁘기 그지없었다. 그 소문을 들은 국왕은 그 아이가 크면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하였지만 도인들은 이 아이는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 예언하였다. 그러자 왕은 높은 설산 중턱에 살고 있는 백조를 불러 여자 아이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키우도록 하였다.

백조는 곧 아이를 자신의 둥지로 데려가 세상과 인연을 끊게 하고는 날마다 궁중에서 밥을 날라다 먹였다.

아이는 성숙한 여인으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수의 상류에 물난리가 나서 한 사내가 통나무를 안고 떠내려오다가 천신만고 끝에 백조의 둥지 위에 오르게 되었다. 사내는 백조 둥지에 홀로 있는 천하절색의 미인을 보자 한 눈에 반하였고 여인도 남자를 백조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주었다. 그들은 애정을 키워나갔다.

날마다 여자를 들여다보던 백조는 어느 날 여자의 몸이 달라진 것을 발견하였다. 수상히 여긴 백조는 둥지를 샅샅이 뒤져서 한 사내를 발견하였고 당장 궁중으로 날아가 왕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제짝이 있어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짝은 만나면 서로 끌려 허락하는 것이니, 뭇 짐승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구잡비유경》한글장 18책 681-682쪽

 


임종을 앞둔 배우자에게 애착하지 말라


지극한 신심을 지닌 청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결혼한 몸이었지만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아 이미 생사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죽게 되자 부인은 곁에서 몹시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부부로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당신 혼자만이 이런 고통을 받습니까? 당신이 세상 떠나면 나는 어디에 의지하며, 자식들도 누구를 믿고 살겠습니까?”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남편에게 이토록 애절한 슬픔과 연모의 마음을 거두지 못하자 남편은 죽는 즉시 그 혼신이 아내의 콧속으로 들어가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하였다.

아내는 조문을 온 남편의 친구인 수행자에게 눈물로 하소연하였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스님, 남편은 벌써 죽었습니다.”

그때 부인이 흘린 콧물과 함께 콧속의 벌레가 땅으로 떨어졌다. 부인이 부끄러워하면서 발로 밟으려고 하자 수행자가 말하였다.

“죽이면 안됩니다. 당신 남편이 벌레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자 부인이 물었다.

“제 남편은 평생 경전을 받들고 계율을 지녔으며 정진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는데 어째서 죽어서 벌레가 되었단 말입니까?”

수행자는 대답하였다.

“당신이 깊은 사랑으로 슬퍼하면서 울부짖으니 고인에게 은애와 애착하는 마음이 일어나 연모하고 근심했기 때문에 죽어서 이런 벌레가 된 것입니다.”(후략)

《법원주림》 제83권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한글장(인터넷판) 84-85쪽




여자의 힘과 남자의 힘


여자는 다섯 가지 힘을 가지고 그 남편을 가볍게 본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색(色)의 힘이요, 둘째는 친척의 힘이며, 셋째는 농사의 힘이요, 넷째는 아이의 힘이며, 다섯째는 스스로 지키는 힘이다. 이것을 일러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남편에게 한 가지 힘만 있으면 그 여자를 눌러 버리니 그것은 바로 부귀(富貴)의 힘이니라.

남편이 부하고 귀하면 색의 힘도 당하지 못하고, 친척과 농사와 아이와 스스로를 지키는 힘도 당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한 가지 힘으로 저러한 힘들을 이기기 때문이니라.

《증일아함경》 제27권 한글장(인터넷판) 223-224쪽




부부에게 주는 가르침


부부라는 것은 환경에 의해서 함께 지내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육체가 한 곳에 함께 산다고 하여 그것으로 부부의 인연을 다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부부가 함께 하나의 가르침에 의해서 마음을 길러내야만 하는 것이다. 일찍이 부부의 귀감이라 칭송받던 노부부가 세존 계신 곳으로 와서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내오다가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의 마음속에 티끌 만한 부정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부부로 일생을 지내왔던 것처럼, 다음 세상에서도 서로 부부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답하셨다.

“두 사람은 신앙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가르침을 받들고 똑같이 마음을 기르며, 똑같이 보시를 하고, 똑같이 지혜를 기른다면 다음 생에도 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버마불전,《和英對照佛敎聖典》 445쪽




다음 생에도 만나기를 원한다면


만약 부부가 현세에서도 서로 보기를 원하고 다음 생에서도 서로 보기를 원한다면 두 사람은 동일한 믿음, 동일한 계, 동일한 보시, 동일한 지혜를 지녀야 한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은 현세에서도 함께 지내고 미래세에도 서로 만날 수 있다.

《팔리 니카야 앙굿타라 니카야》 2.62




다섯 가지 일을 행하면 천상에 태어나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자비한 마음이니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않고 생명을 길러서 그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얻게 함이요,
둘째는 어질고 착함이니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보시하되 탐내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셋째는 정결함이니, 바깥 색을 범하지 않는 것[不邪淫]이며, 남녀의 계율을 지키며, 제(齊)를 받들어 정진하는 일이다.
넷째는 신뢰성이니 남을 속이지 않고 입의 네 가지 허물을 지키며 탐내거나 속이지 않는 일이다.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니 입의 행실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지키면 천상에 난다.

《辯意長者子經》 한글장 159책 525쪽




어려울 때일수록 믿음을 무너뜨리지 말라


바라나시국의 태자가 부왕의 미움을 사서 궁에서 쫓겨났다. 부인과 단 둘이 산 속으로 쫓겨난 태자는 어느 날 사냥하러 나갔다가 큰 짐승 한 마리를 잡게 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주며 삶으라고 하였다. 한참을 삶자 물이 졸아들었기에 부인은 물을 길어오려고 집을 나섰다. 그 사이 태자는 너무나 배가 고파 반쯤 익은 고기를 꺼내 다 먹어버리고 부인 몫은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

물을 길어온 부인은 고기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남편에게 물었는데 남편은 고기가 갑자기 살아나 제 발로 달아났다고 딱 잡아떼었다. 너무나 완강하게 잡아떼는 남편의 진실하지 못한 태도에 질려버린 아내는 그후 남편과 지내는 날들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태자는 신하들의 간청으로 왕위에 올랐다. 자연히 태자비도 궁궐로 돌아갔다. 왕은 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보물을 왕비에게 선물하였지만 왕비의 얼굴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왕은 왕비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왕비는 산 속에서 가난하게 지내던 당시 자신을 속인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차 그때의 서글픈 마음을 씻을 수 없음을 고백하였다.

그때의 왕자가 바로 지금의 석가모니이고, 그 왕자비는 지금의 야소다라이다. 그때 왕자가 몰래 고기를 먹고 왕위에 오른 뒤 재물을 왕비에게 주어 친근한 마음을 나타내었지만 왕비는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고 원망의 마음만을 더하였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금 석가모니께서 보배를 야소다라에게 주어도 부인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본행집경》 제12권 한글장 15책 167-168쪽




부부는 인간관계의 기본


부부 사이야말로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이 부부 사이의 관계, 그 기초 위에서 자식과의 관계가 성립되고 이어서 형제, 상하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그 기초가 올바르다면 나머지 인간관계는 잘못될 것이 없다.

《아함경》 (정휴스님, 마음을 열어주는 부처님 말씀300가지, 87쪽)




승만부인의 전생이야기


옛날 소티세나왕자에게 삼브라라고 하는 이름의 왕자비가 있었는데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진심으로 왕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자의 손등에 작은 종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종기와 고름으로 뒤덮였다. 숱한 궁녀들과 신하들은 흉칙한 왕자를 피하였고 왕자는 몸과 마음이 함께 병들어버렸다.

왕자는 자신이 놀림감이 되는 것 같아 아내와 함께 숲 속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자연 속에서 아내는 극진하게 남편을 보살폈다. 열매를 따와서 식사준비를 하였고 맑은 물을 길어와서 고름투성이인 남편의 몸을 씻겨주었다. 온통 남편의 병간호로 아내는 하루를 보냈고 이렇게 세월이 흐르자 남편은 차츰 마음의 병을 치유해갔다.

어느 날 아내는 맑은 샘에서 머리를 감으려고 검은 머리를 풀어헤쳤다. 바로 이때 숲에 살고 있던 귀신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고 반하여 겁탈하려 하였다. 자신이 변을 당하면 남편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어할까만을 걱정한 아내는 필사적으로 반항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귀신에게 붙잡힌 순간 아내는 이렇게 소리질렀다.

“네 아무리 귀신이라지만 이렇게 무도한 짓을 범해도 좋단 말이냐! 정의를 지키고 있는 하늘의 신들은 모두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아내의 목소리는 제석천의 궁전을 두드렸고 제석천의 도움으로 아내는 귀신의 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돌아온 아내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깊은 의심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던 아내는 마침내 물항아리를 들고 이렇게 노래하였다.



진실이야말로 그대를 지켜주리니

진실이여! 내게 가피를 내리소서.

나는 남편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하지 않았네.

남편보다 더 사랑하는 이가 내겐 없나니

오오, 이 말이 진실하다면

내 남편의 병은 치유되리라.



그리고나서 물을 남편의 머리에 붓자 기적처럼 온 몸에 났던 종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허물이 벗겨진 피부도 예전의 빛나던 몸으로 되돌아갔다. 마침내 그들은 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내에 대한 불만이 가득찬 남편은 궁으로 돌아가서 다시 왕자의 신분을 회복하자 아름다운 궁녀들과 어울릴 뿐 아내의 처소에는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한 아내는 차츰 야위어 갔고 아름답던 피부도 거칠어지고 빛을 잃어갔다. 이런 일들을 지켜본 부왕은 왕자에게 일러주었다.

“다른 여인들은 네가 병들었을 때나 건강했을 때나 한결같이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었지만 왕자비는 오직 너와 함께 지내면서 사랑으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여인의 응석을 받아주는 남자는 많지만 남자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여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왕자여! 그런 여인을 배신해선 안된다.”

부왕의 가르침으로 아내를 찾아간 왕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왕자비는 그런 남편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 왕자비는 바로 승만부인의 전생이다.

《본생경》 민족사 85-106쪽(쟈타카 519번째 이야기)




진리 속에서 부부의 연을 맺다


천한 신분인 마등가라는 여인은 아난에게 마음이 이끌려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결혼하려 하였다. 하지만 아난은 유혹에 시달릴 때 부처님을 생각하여 벗어날 수 있었다. 마등가는 온종일 아난의 뒤를 좇아다녔고 이 일을 알게 된 부처님은 마등가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처럼 아난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러나 아난의 아내가 되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 자격이란 바로 수행인데, 너는 그 수행을 견뎌낼 수 있겠느냐?”

“예, 부처님. 아난 존자의 아내가 될 수만 있다면 저는 어떤 힘든 수행도 견뎌내겠습니다.”

그리하여 마등가는 비구니 승가에 들어가서 수행하였다. 거기서 행동거지와 예절을 배우고 교양을 높였으며 진실한 도를 구하면서 고결한 사랑에 사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비구니가 되었다. 마등가의 부모도 부처님에게 나아가 법을 듣고 재가신자가 되었다.

月下佛敎說話145, 불교설화전서 433-434쪽 





남편에게 들려주는 부처님 말씀 모음
 
 
아내 덕분에 목숨을 건진 남편 이야기

어느 넓은 들판에 5백 마리의 사슴을 거느리고 있는 왕사슴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냥꾼 한 사람이 사슴을 잡으려고 들판에 함정을 만들어 놓고는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 줄도 모르던 왕사슴은 무리들을 이끌고 다니다가 그만 함정에 걸려들고 말았다.
사슴들은 이 광경을 보고 모두 놀라 달아났다. 하지만 왕의 아내 사슴만은 남편이 걸린 그물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왕사슴은 그물을 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그물은 사슴의 몸을 파고 들었다. 아내는 남편의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서 그물을 끊고 도망치라며 애원하였다. 하지만 남편은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사냥꾼은 그런 사슴을 잡으려고 다가갔다. 아내는 결국 남편을 살리기 위해 사냥꾼 앞에 자기가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사냥꾼이여, 그 활과 화살을 버리시오. 칼을 들어 나를 죽이고 그런 뒤에 왕사슴에게 달려드시오.”
사냥꾼은 이 두 사슴이 부부지간임을 알았다. 그리고 남편을 위하여 아내가 제 목숨을 버리려는 데에 감동하여 사슴을 풀어주었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겠다. 왕사슴도 죽이지 않겠다. 부부가 다시 사랑하고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암사슴은 기쁨에 겨워 이렇게 말하였다.
“남편과 나란히 다시 삶을 얻어 사랑의 보금자리 찾아갑니다. 자비로운 그대 집안에도 행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암사슴은 지금의 아난존자요, 왕사슴은 지금의 석존이시다.



아내를 미워하다 때늦게 후회한 남편

어떤 바라문에게 아주 아름답고 어질고 현명한 아내가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바라문은 자신의 하녀와는 친근하게 어울리면서 아내에게는 곁을 주지 않았다. 그는 아내를 미워하다 못해 나무 열매를 따도록 꾀어 나무 위로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워버리고는 떠나갔다. 마침 그 나무 밑을 지나던 왕이 절세미인이 나무 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려오게 하였다. 빼어난 용모와 재치가 있고 말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음을 보고 왕비로 삼았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바라문은 후회하며 왕궁으로 나아가서 예전의 아내를 유혹하는 노래를 불렀으나 왕비는 담담히 이렇게 대꾸하였다.
“서로 가는 길은 제각각이네. 하녀를 사랑한 나머지 엊저녁의 참된 존경을 저버린 자여! 사람을 탐낸 것도 이미 옛날의 일이다.”
바라문은 크게 뉘우치며 후회하였지만 이미 때는 지나버렸다.



아내에게 충실하는 것이 복업

세 가지 복이 되는 업(業)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보시로 복을 짓는 업이요, 평등으로 복을 짓는 업이며, 사유로 복을 짓는 업이다. …(중략) 평등으로 복을 짓는 업이란 혹 어떤 사람이 살생을 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항상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지 않고 남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탐하거나 아끼는 마음이 없고 말씨가 온화하고도 맑으며, 남의 마음에 상처 입히지 않고 또한 다른 이와 음란한 짓을 하지 않으며, 제 자신이 범행(梵行)을 닦고 자기 아내에 만족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 항상 성실하기를 생각하며, 속이는 말을 하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고 또한 술을 마시지 않아서 언제나 혼란한 것을 피할 줄 안다. 또 우정[慈]·슬픔[悲]·기쁨[喜]·담담함[捨]의 마음을 시방에 두루 채워 모든 생명체를 편안하게 이끄는 일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사람과 사귀라.
자신의 아내에게 만족하지 않고
윤락녀와 놀아나고
남의 아내와 어울리는 것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젊은 시절이 지나버린 남자가
풍만한 젖가슴의 여자를 집에 들여놓고
그녀의 질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것,
이것은 파멸의 문이다.

《수타니파타》


내 아내의 순결을 바란다면 또 사람이 남의 아내와 음행을 즐기면 후생에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그 아내는 정숙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아내의 도리

아내는 열 세 가지 일로 남편을 공경하고 순종해야 한다. 첫째는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남편을 존중하여 공양하는 것이며, 셋째는 남편을 잘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할 일을 챙기는 것이며, 다섯째는 권속을 잘 거두는 것이요, 여섯째는 먼저 우러러 모시는 것이며, 일곱째는 그 다음에 애정을 품는 것이요, 여덟째는 말이 성실한 것이며, 아홉째는 문을 잠그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요, 열째는 오는 것을 보고는 칭찬하는 것이며, 열한째는 자리와 침상을 펴고 기다리는 것이요, 열두째는 깔끔하고 맛나고 풍족한 음식을 차리는 것이며, 열셋째는 수행자를 공양하는 것이다.



부인의 속성

부인은 남자를 얻고자 하고, 화장하고 꾸미며, 아이로써 서고, 남편[無對]을 의지하며, 자재(自在)로 마침을 삼는다.



여자의 다섯 가지 욕망

여자들에겐 다섯 가지 욕망이 있다. 첫째는 호화롭고 귀한 집안에 태어나는 것이요, 둘째는 부귀한 집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며, 셋째는 남편으로 하여금 제 말을 따르게 하는 것이요, 넷째는 아이를 많이 두는 것이며, 다섯째는 집에서 혼자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호화로운 종족으로 태어나
부유하고 귀한 집으로 시집가고
남편도 마음대로 부려 보길 원하나
복 없으면 그리 될 수 없다네.
많은 자식을 두고
향과 꽃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싶겠지만
지은 복 없으면 그리 될 수 없다네.



진짜 아름다움이란

여자는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믿고 남편을 업신여기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무엇이 아름다움인가 하면 간사함 등의 허물을 털어 없애고 뜻을 정하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는 것이다. 얼굴 생김이나 화장, 머리모양이나 비단옷으로 아름다움을 논해서는 안된다.



아내의 도리

여자가 남편과 시부모 및 어른을 섬기는데 다섯 가지 착한 것과 세 가지 악한 것이 있다. 무엇 무엇이 다섯 가지 착한 것인가. 첫째는 아내가 되어서 마땅히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머리를 빗질하며 의복을 정돈하고 얼굴을 깨끗이 씻어서 때가 없게 하며, 무슨 일을 할 때 당해서는 먼저 어른께 여쭈어 보며, 마음이 항상 공순하며, 달고 맛있는 음식이 있더라도 먼저 먹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남편이 꾸짖더라도 노하고 한탄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한마음으로 남편을 지키어 간사하고 음란한 것을 생각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항상 남편이 장수하기를 원하며, 남편이 출타하거든 아내가 집안을 정돈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항상 남편이 착하다고 생각하고 악하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착한 것이다.
무엇이 세 가지 악한 것인가. 첫째는 며느리의 예로써 시부모와 남편을 받들어 섬기지 않으며, 다만 맛있는 음식을 욕심내어 먼저 취하여 먹으며, 어둡지도 않아서 일찍 자고, 해가 돋아도 일어나지 않으며, 남편이 가르치고 꾸짖으려 하면 눈을 흘기어 남편을 쳐다보며, 거역하고 쫑알거리는 것이요, 둘째는 한마음으로 남편을 향하지 않고 다만 다른 남자만 생각하는 것이요, 셋째는 남편이 일찍 줄어서 다시 개가하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것이 세 가지 악한 것이다.



일곱 종류의 아내

세상에는 일곱 종류의 아내가 있으니 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 같은 아내, 선지식 같은 아내, 며느리 같은 아내요, 종 같은 아내요, 원수 같은 아내요, 목숨을 빼앗는 아내이다.
어머니 같은 아내란, 남편을 아끼고 생각하기를 어미가 자식 사랑하듯 하여 밤낮으로 모시어 좌우를 떠나지 않으며, 때를 놓치지 않고 남편이 만족하도록 공양한다. 그리고 남편이 만일 먼 길을 하면 남들이 만만히 여길까 염려하되 마음이 지치고 피로한 줄 모르니 마치 자식을 생각하듯 하는 것이다.

누이 같은 아내란, 남편을 받들어 섬기되 마치 한 피를 나눈 형제처럼 하여 두 가지 정이 없이 높여 받들고 공경하기를 누이가 형을 섬기듯 하는 것이다.
선지식 같은 아내란, 남편을 모시어 사랑하는 생각이 지극하여 의지하고 생각하여 서로 버리지 못하며, 사적이고 비밀한 일을 항상 서로 고하며, 잘못한 것이 있으면 서로 충고하여 실수가 없도록 일러준다. 그리고 착한 일을 서로 일러주고 지혜가 더욱 밝아지게 하며 서로 사랑하여 세상을 건너게 하기를 선지식과 같이 하는 것이다.

며느리 같은 아내란,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어른을 공양하며, 겸손하고 순종하는 태도로 남편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며, 말하고 명령하는 것을 공손히 하고 조심하여 잘못된 말과 잘못된 행동이 없으며, 착한 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허물이 있으면 자기가 했다 하며, 가르치고 훈계하고 어질고 베풀고 원하여 정진하는 것으로 도를 삼으며, 마음이 단정하고 뜻이 한결같아 티끌만한 간사함도 없으며, 정갈하게 아내의 도리를 닦아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게 하며, 나오나 물러가나 예의를 잃지 않으며, 오직 화목한 것으로 귀함을 삼는 것이다.

하인 같은 아내란, 항상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생각을 품어서 감히 잘난 척하지 않고, 조심성 있게 일해 나가되 피하고 꺼리는 것이 없으며, 마음이 항상 공손하고 조심하여 충성과 효도를 다하여, 부드러운 말을 하며, 성품이 항상 화목하여 추하고 간사한 말을 범하지 않으며 제 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정숙하고 선량하고 순수하고 한결같으며, 소박하고 믿음직하여 항상 스스로 엄하게 단속한다. 남편이 사랑하더라도 교만을 부리지 않으며, 설사 박대를 하더라도 원망을 하지 않으며, 혹 맞더라도 노하지 않으며, 꾸짖고 욕하는 것을 당하여도 묵묵히 원망하지 않으며, 기꺼이 받아들여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며,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지니며 질투하지 않고, 아내의 절도를 힘써 닦아 옷과 밥을 간택하지 않으며, 오직 온 힘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남편을 공경하고 받들어 하인이 상전을 섬기듯 하는 것이다.

원수 같은 아내란, 남편을 보면 좋아하지 않고 항상 분노를 품으며, 밤낮으로 생각하되 서로 떨어지려 하며, 부부의 마음이 없이 항상 붙어 있는 손 같이 하며, 으르렁거리고 싸워서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이 없으며, 어지러운 머리를 하고 누워서 일을 하지 않으며, 가사를 돌보거나 자식을 양육하는 것을 생각지 않으며, 혹 음탕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것을 알지 못하며, 매무새가 지저분하여 친척을 욕되게 하고 원수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목숨을 빼앗는 아내란, 밤낮으로 자지 않고 노한 마음으로 서로 향하여, 어떻게 해서든 헤어지기만을 노리는 것이다. 독약을 먹이자니 남들이 알까 두려우므로 멀고 가까운 친척에게 부탁하여 분노를 일으키게 하여 항상 해치려 하거나 돈으로 사람을 사거나 혹은 정부(情夫)를 시켜 틈을 엿보아 억울하게 남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남편을 부처님에게 인도하라

바라문 한 사람이 부처님에게 따지러 왔다. 자신의 아내가 삼보에 귀의하고부터는 집안에서 대대로 믿고 따르던 외도들에게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교의 귀의한 뒤부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언제나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에 화가 난 남편은 부처님을 만나 이렇게 물었다.
“내가 어떤 것을 죽이면 편안하고 걱정없이 살 수 있겠소?”
부치님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한다는 뜻인데 부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성냄을 없애면 편안히 살 수 있다. 성냄을 없애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성냄은 모든 독의 근본이다. 그것은 모든 선근을 해친다.”
이어서 부처님은 그에게 보시와 계율의 공덕과 번뇌를 없애는 법을 차례로 설하셨고 바라문은 새하얀 천에 염료가 쉽게 배어들 듯이 모든 의혹이 사라져 그 자리에서 바른 지혜를 얻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아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 덕분에 부처님을 만났소. 오늘부터 나는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가 될 것이오.”
《잡아함경》



서로 사랑하라

부자간에, 형제간에, 부부간에, 친족간에 항상 서로 사랑하여 시기하거나 증오하지 말라. 안색은 항상 화평하게 하고 서로 멀리 있어도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라.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진정한 수행자의 사랑[慈悲]은 그 영원까지 뛰어넘는다.
《무량수경》하권 한글장 241책 174쪽
 


사랑이 깊으면 괴로움도 깊다

옛날에 어떤 부인이 잠깐 친정에 들리러 왔는데, 그 친정 식구들이 그 여자를 다른 곳으로 다시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는 이 말을 듣고 곧 남편에게 돌아가 말하였다.
“여보, 어쩌면 좋아요? 지금 우리 친정 식구들은 당신의 아내인 나를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다시 시집보내려고 해요.”
그러자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함께 저 세상으로 갑시다. 그럼 그런 일도 당하지 않을 것이오.”
곧 예리한 칼로 아내를 찔러 죽이고, 자기도 함께 죽었다. 이런 일만 보더라도 애정에는 곧 슬픔과 울음?근심?괴로움?번민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아함경》제60권 한글장(인터넷판) 1702-1703쪽



부부 인연은 인력으로 안된다

옛날 어떤 부인이 딸을 낳았는데 예쁘기 그지없었다. 그 소문을 들은 국왕은 그 아이가 크면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하였지만 도인들은 이 아이는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 예언하였다. 그러자 왕은 높은 설산 중턱에 살고 있는 백조를 불러 여자 아이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키우도록 하였다.
백조는 곧 아이를 자신의 둥지로 데려가 세상과 인연을 끊게 하고는 날마다 궁중에서 밥을 날라다 먹였다.
아이는 성숙한 여인으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수의 상류에 물난리가 나서 한 사내가 통나무를 안고 떠내려오다가 천신만고 끝에 백조의 둥지 위에 오르게 되었다. 사내는 백조 둥지에 홀로 있는 천하절색의 미인을 보자 한 눈에 반하였고 여인도 남자를 백조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주었다. 그들은 애정을 키워나갔다.
날마다 여자를 들여다보던 백조는 어느 날 여자의 몸이 달라진 것을 발견하였다. 수상히 여긴 백조는 둥지를 샅샅이 뒤져서 한 사내를 발견하였고 당장 궁중으로 날아가 왕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제짝이 있어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짝은 만나면 서로 끌려 허락하는 것이니, 뭇 짐승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구잡비유경》한글장 18책 681-682쪽
 


임종을 앞둔 배우자에게 애착하지 말라

지극한 신심을 지닌 청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결혼한 몸이었지만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아 이미 생사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죽게 되자 부인은 곁에서 몹시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말하였다.
“우리는 부부로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당신 혼자만이 이런 고통을 받습니까? 당신이 세상 떠나면 나는 어디에 의지하며, 자식들도 누구를 믿고 살겠습니까?”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남편에게 이토록 애절한 슬픔과 연모의 마음을 거두지 못하자 남편은 죽는 즉시 그 혼신이 아내의 콧속으로 들어가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하였다.
아내는 조문을 온 남편의 친구인 수행자에게 눈물로 하소연하였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스님, 남편은 벌써 죽었습니다.”
그때 부인이 흘린 콧물과 함께 콧속의 벌레가 땅으로 떨어졌다. 부인이 부끄러워하면서 발로 밟으려고 하자 수행자가 말하였다.
“죽이면 안됩니다. 당신 남편이 벌레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자 부인이 물었다.
“제 남편은 평생 경전을 받들고 계율을 지녔으며 정진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는데 어째서 죽어서 벌레가 되었단 말입니까?”
수행자는 대답하였다.
“당신이 깊은 사랑으로 슬퍼하면서 울부짖으니 고인에게 은애와 애착하는 마음이 일어나 연모하고 근심했기 때문에 죽어서 이런 벌레가 된 것입니다.”(후략)
《법원주림》 제83권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한글장(인터넷판) 84-85쪽



여자의 힘과 남자의 힘

여자는 다섯 가지 힘을 가지고 그 남편을 가볍게 본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색(色)의 힘이요, 둘째는 친척의 힘이며, 셋째는 농사의 힘이요, 넷째는 아이의 힘이며, 다섯째는 스스로 지키는 힘이다. 이것을 일러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남편에게 한 가지 힘만 있으면 그 여자를 눌러 버리니 그것은 바로 부귀(富貴)의 힘이니라.
남편이 부하고 귀하면 색의 힘도 당하지 못하고, 친척과 농사와 아이와 스스로를 지키는 힘도 당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 한 가지 힘으로 저러한 힘들을 이기기 때문이니라.
《증일아함경》 제27권 한글장(인터넷판) 223-224쪽



부부에게 주는 가르침

부부라는 것은 환경에 의해서 함께 지내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육체가 한 곳에 함께 산다고 하여 그것으로 부부의 인연을 다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부부가 함께 하나의 가르침에 의해서 마음을 길러내야만 하는 것이다. 일찍이 부부의 귀감이라 칭송받던 노부부가 세존 계신 곳으로 와서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내오다가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의 마음속에 티끌 만한 부정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부부로 일생을 지내왔던 것처럼, 다음 세상에서도 서로 부부가 될 수 있도록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답하셨다.
“두 사람은 신앙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가르침을 받들고 똑같이 마음을 기르며, 똑같이 보시를 하고, 똑같이 지혜를 기른다면 다음 생에도 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버마불전,《和英對照佛敎聖典》 445쪽



다음 생에도 만나기를 원한다면

만약 부부가 현세에서도 서로 보기를 원하고 다음 생에서도 서로 보기를 원한다면 두 사람은 동일한 믿음, 동일한 계, 동일한 보시, 동일한 지혜를 지녀야 한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은 현세에서도 함께 지내고 미래세에도 서로 만날 수 있다.
《팔리 니카야 앙굿타라 니카야》 2.62



다섯 가지 일을 행하면 천상에 태어나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자비한 마음이니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않고 생명을 길러서 그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얻게 함이요, 둘째는 어질고 착함이니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보시하되 탐내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일이다. 셋째는 정결함이니, 바깥 색을 범하지 않는 것[不邪淫]이며, 남녀의 계율을 지키며, 제(齊)를 받들어 정진하는 일이다. 넷째는 신뢰성이니 남을 속이지 않고 입의 네 가지 허물을 지키며 탐내거나 속이지 않는 일이다.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니 입의 행실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지키면 천상에 난다.
《辯意長者子經》 한글장 159책 525쪽



어려울 때일수록 믿음을 무너뜨리지 말라

바라나시국의 태자가 부왕의 미움을 사서 궁에서 쫓겨났다. 부인과 단 둘이 산 속으로 쫓겨난 태자는 어느 날 사냥하러 나갔다가 큰 짐승 한 마리를 잡게 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주며 삶으라고 하였다. 한참을 삶자 물이 졸아들었기에 부인은 물을 길어오려고 집을 나섰다. 그 사이 태자는 너무나 배가 고파 반쯤 익은 고기를 꺼내 다 먹어버리고 부인 몫은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
물을 길어온 부인은 고기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남편에게 물었는데 남편은 고기가 갑자기 살아나 제 발로 달아났다고 딱 잡아떼었다. 너무나 완강하게 잡아떼는 남편의 진실하지 못한 태도에 질려버린 아내는 그후 남편과 지내는 날들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부왕이 세상을 떠나자 태자는 신하들의 간청으로 왕위에 올랐다. 자연히 태자비도 궁궐로 돌아갔다. 왕은 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보물을 왕비에게 선물하였지만 왕비의 얼굴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왕은 왕비에게 그 이유를 물었고 왕비는 산 속에서 가난하게 지내던 당시 자신을 속인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차 그때의 서글픈 마음을 씻을 수 없음을 고백하였다.
그때의 왕자가 바로 지금의 석가모니이고, 그 왕자비는 지금의 야소다라이다. 그때 왕자가 몰래 고기를 먹고 왕위에 오른 뒤 재물을 왕비에게 주어 친근한 마음을 나타내었지만 왕비는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고 원망의 마음만을 더하였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지금 석가모니께서 보배를 야소다라에게 주어도 부인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본행집경》 제12권 한글장 15책 167-168쪽



부부는 인간관계의 기본

부부 사이야말로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이 부부 사이의 관계, 그 기초 위에서 자식과의 관계가 성립되고 이어서 형제, 상하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그 기초가 올바르다면 나머지 인간관계는 잘못될 것이 없다.
《아함경》 (정휴스님, 마음을 열어주는 부처님 말씀300가지, 87쪽)
     
       
토브 2018-05-15 (화) 12:56
1. 전도자와 구도자

언급하신 내용 중에도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실현 불가능한 계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말씀한 613가지 율법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계율입니다.
이처럼 세상 종교는 인간이 상상하는 신, 신의 가르침일법한 도道를 찾는 것입니다.
구도求道이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구도자들이 됩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검증할 수 없기에 그럴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와는 의미가 다른 '믿음' 역시 일반 종교의 바탕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 것입니다.
의인을 찾아내 그들에게만 천국을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주기위해 이땅에 직접 오셨을 뿐만 아니라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마 9:13
그가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면
과거에는 죄인이었더라도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님 탄생 580여년 전 태어난 석가모니가 말한 예언처럼,
석가가 죽은 후 500년이 지나 한 사람인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수천 수만 무량의 사람들에게 선한 뿌리를 심게 된 것입니다.
선한 뿌리란 사람들이 거듭나 새로운 영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거듭난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내주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때로는 모사로, 전능자로 상담자로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지혜를 공급하시는 분, 하나님이 그의 삶에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합니다.
그것은 하늘 저편 멀리에 계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 속에 계시는 하나님께 당면한 문제나 어려움을 알리고
지혜, 힘과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 영혼은 도를 이미 마음에 품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기쁜 소식을 알려서 다른 사람 역시 새롭게 살릴 수 있기 때문에 도道이신 하나님,
즉 하나님을 전하는 일, 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종교의 구도자와 이미 진리를 깨달은 기독교의 전도자는
땅과 하늘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2. 기독교의 먹고 마시기와 불교의 계율
불교가 죄, 즉 악업을 쌓지 않도록 계율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와 같아서 임의로 정한 계율만으로 죄가 사해지지는 않습니다.
이런 행동은 죄를 범하고 저런 행동으로 이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입니다.
계율은 명령이지 약속은 아닙니다.
일반인들의 죄에 대한 자각이나 각성으로 조심할 수는 있지만즉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을 살린다는
어떠한 보장이나 약속은 들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옛날 많은 성인들, 철학자들이 인생 궁극의 길과 진리,
생명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 실체는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 종교의 창시자들도 ‘이런 것이 길이다, 저런 것이 진리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아직 죽기 전이었으므로 그것이 정말 맞는 말인지 그럴듯한 거짓말인지
그들 자신들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계율을 처음으로 설파했더라도 자신이 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때가 되면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명실 공히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자이시면서 사랑의 본체이십니다.창1:1,요일 4:8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더라도
물고기 뱃속에 사흘동안 있었던 요나서를 들어 예고하신 것처럼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분입니다.
즉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죄 사함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죽으심으로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인 우리의 영혼을 살리셨습니다.
죄의 삯인 사망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짊어지고 대신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스스럼 없이 자신의 아버지 사정을 다 말해주는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다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친구를 위하여 죽는 죽음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요 15:13 ,요 15:15
그것은 친구인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죄사함의 대속제물이 될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친구인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으심으로 가장 큰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죄의 삯인 사망을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죄의 삯인 사망을(롬6:23), 짊어질 수 있는 분은 하나님만 가능했는데
죄가 없어야만 그것이 가능했고 죄없이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만이
우리를 대신하여 제물이 되어 죽으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죄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악한 마귀가 차지하여
하나님을 가로막던 벽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철퇴가 되어 허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56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5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 6:35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살과 피가 참된 음식과 음료가 되어 우리 몸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하신 것입니다.
화목제사의 경우 제사 음식은 드리고 난 후 함께 먹는다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화목제 속죄 양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언뜻 쉬운 것 같지만 먹어봐야 그 효과를 아는 것이어서
그것을 먼저 먹어본다는 것은 먼저 그 말씀을 하신 분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2:17

예수님은 예수님이 길 자체이며 진리 자체이며 생명 자체라고
하나님이 아니면 말씀하실 수 없는 선포를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도를 거저 주러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거저 받는 것이 구원이므로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예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어 구원을 받은 우리는
그분께 감사하고 칭찬(찬양)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엡 1:6


또한 거듭난 우리가 어린 아이처럼 연약하지만 않고 성장하도록 힘과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결국 거듭난 그사람은 하나님과 상호 사귐을 누리며 친밀감을 높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짐을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요 1:29)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아낌없이 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받는 사랑으로 그 관계를 더욱 깊이 발전시켜 나갈뿐만 아니라
그 힘으로 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와 신이 있지만 인간을 대신하여 죽어준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원하여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사실은 창세기 아담의 창조 때부터 이미 예고되어지고 반복되어진 약속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하라’고 강요는 하지만 할 수 있는 힘은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참고 견디며 악착같이 해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전능자가 직접 우리와 함께 하면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또한 우리가 하는 것처럼 행동을 취하는 쪽이라면
실제로 지렛대처럼 강력하게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삶 속에서 거듭하여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에게 갖가지 짐을 지워 더욱 무겁게 하지만
예수님은 그 짐을 벗겨주십니다.
우리의 인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그 짐을 예수님이 함께 져주시는 것입니다.

3. 일방적인 의무 vs 사귐이 있는 관계

많은 종교들은 개인의 영적인 노력에 집중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양방향 관계에 중심을 둡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병 낫기를 원하는 기도에도 응답하시고,
우리 마음에 평안과 기쁨, 사랑을 주시며 가난한 삶을 부요하게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며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인생이 완벽해진다거나 문제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건축물의 모르타르처럼 견고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시 68:19)

세상 종교는 사람의 영혼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세상 종교는 “붙잡지도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골 2:21)는 식의 많은 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히 13:8)를 믿고 그 분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세상 많은 종교의 깨달음은 각자가 깨달아야 할 것이며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반하여,
성경의 깨달음은 말로 진술이 가능하며 또 그것을 옳게 깨달은 것인지 그릇되게 깨달은 것인지
성경 말씀과 비교하여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깨달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롬 10:17)
성령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이므로 입으로 시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0)
성경의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깨닫는 것이므로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이 깨달은 것이나 현재의 사람이 깨달은 것이나 동일하며
외국이나 한국이나 그 어디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간증은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후 1: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유 1:3)


결론 :

여러 불경의 본문을 많이 인용하셨습니다.

부부의 인연은 인력으로 안된다는 내용의 경우는
억겁의 업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인연보다 더 강력한 뭔가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생에도 만나기를 원한다면

만약 부부가 현세에서도 서로 보기를 원하고 다음 생에서도 서로 보기를 원한다면
두 사람은 동일한 믿음, 동일한 계, 동일한 보시, 동일한 지혜를 지녀야 한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은 현세에서도 함께 지내고 미래세에도 서로 만날 수 있다.'>

'동일' 하다는 표현이 기록되었습니다.
다음 생에도 젊은 새로운 상대가 아닌 쭈글쭈글 가려운 피부를 긁어 대고
트림하거나 방귀나 뿡뿡 뀌는
늙은 이생의 배우자와 다음 생에서도 만나  해로하겠다는 가상한 마음은 높이 사지만
두 사람이 동일한 믿음 동일한 계 동일한 보시 동일한 지혜를 지녀야 한다고 했는데
두 사람이 동일한지 아닌지 그것을 판단하는 눈금은 무엇이며
그것을 판정하는 전지적인 제 3자는 누구인지에 대한 전제가 있어야  논리가
성립되는데 그런 개념이 불교에는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주관자와 피감자등의 상하 관계가 되고 맙니다.
스스로 해탈하여 '평등한' 부처가 되는 것과는 맞지 않는 세계관입니다.
너무 많은 맹점이 있는 것을 인용하신 본문들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인용 예들에는 제 3의 주관자가 있어야만 인정될 수 있는 논리들입니다.

모든 자연인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인해 오염되어 죄와 양립될 수 없는
본성은 이미 죽어 있는채 태어났습니다. 구원 받지 않으면
여전히 죽어진 상태의 희망이 없는 인간의 삶입니다.
어느 순간 마음 가짐이 달라진다해도 구정물의
윗물이 나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 구원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https://youtu.be/bBm_u7pvUz0
우리말 자막과 더빙 버젼
요한복음 전문을 영화로 보면서 들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상 소개해 올린 내용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보시면
무슨 의미인지 더 깊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youtu.be/2mgUPt2KI08
오리지널 영화 공식 고화질 영상 : 영문 버젼
두 작품을 동시에 싱크를 맞추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토브 2018-05-16 (수) 13:01
http://www.etoland.co.kr/bbs/board.php?bo_table=data_movie&wr_id=29681
싱크를 맞추느라 신경 쓰지 않으시도록
영화 '요한복음' 고화질 편을 유투브에서 다운로드 받아
우리말 더빙을 입혀 영상 열화 손실없는 새로운 파일로 만들어 토렌트로 배포했습니다.
신약 성경 '요한복음'은 영화 전체를 요한복음으로 해설과 지문으로 삼은 영화인데
앞서 언급해드린 예수님 말씀을 모두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손주임 2018-05-15 (화) 11:57
항상 잘 보고 있읍니다.좋은하루되세요~
바로그남자 2018-05-16 (수) 06:38
이래서 종교논쟁은 답이 없다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저 우주를 한번 좀
쳐다보고나서 떠들던지....
끝이없이 큰 우주속에서 먼지 티끌보다 작은지구에 태어나 살면서 두뇌가 가장 발달된 죽음을 두려워하는 유일한 동물일뿐인데.. 어디서 종교라는걸 만들어서리
ㅉㅉㅉ
     
       
토브 2018-05-16 (수) 08:51
그 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예술가가 그 작품에 사인을 남기듯이 우주에는 분명하게 그 힌트가 담겨져 있습니다.
믿음의 증거들은 세상에서도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통해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그남자 2018-05-16 (수) 11:21
에혀....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믿는
댁의 머리가 바로 인간의 머리라오...
우리가 속해있는 이 거대한 우주 속 좁쌀만도 못한
지구라는행성에서 말이요...
땅속 여왕개미가 마치 이 세상은 내가 만든것이라
외치는것과 그걸 따르는 일개미처럼...ㅉㅉ
다올선생 2018-05-16 (수) 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