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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 9 - 여인애수//아내의 마음

컷과송 2017-03-30 (목) 09:18 조회 : 511 추천 : 3

나는 이제까지 그를 16번 만날 수 있었다.

나루세 미키오는 1905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15. 여인애수 女人哀愁 (1937) : 그녀의 완성이 지금은 도달했을까.

나루세 미키오에게도 서투른 청년의 시절이 있었다라고 할까.

1930년 무성영화로 데뷔한 이후 7년이 흐른 후 연출한 본편은 구식 행색을 벗어나지 못했다.

불과 1시간 14분에 불과한 영화에서 카메라가 때때로 고정된 틀을 벗어나서 움직이면 그로 인해 화들짝 놀랄 정도다.

30년대 일본 영화의 전성기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으니

본편의 직선적인 서사와 캐릭터에 대해서 단숨에 폄하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어쩌면 보관상태가 좋지 않은 필름의 거친 질감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본편은 거의 1인극으로서 영화를 지속시키는 이리에 타카코의 얼굴선의 매끄러움조차 다소 낡아보였다.

당연하겠지만 1937년의 중산층 일본 여성의 일상사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입장에서 본편의 낯설음은 더욱 배가된다.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수난극이라는 세계 안에서 거슬러 올라가자면 본편은 멜로 비극은 물론이고

무능하고 나약하며 술에 중독된 자기결핍의 남성상이 선명하게 확인되지 않으며 가혹한 수난도 부과되지 않는다.

본편의 서사는 히로코라는 여성의 선택과 성찰을 중핵으로 신파적으로 구조화되는데,

그 정점에는 소위 말하는 시집살이 하녀로서의 며느리의 삶의 양상이 반증으로서 제시된다.

그렇다고 이땅에서 근자에 떠도는 시월드에서 상상되는 고부갈등의 극악한 억압이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히로코로 인정하듯이 과도한 가사노동이나 직접적인 비인격화가 아닌 단지 인간으로서의 삶의 유무가 의제에 놓인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상당히 부산해보이는 시댁에서의 며느리 노동만으로는 하녀화 밀도가 충분하지 않을 정도다.

이같은 서사의 기본축을 의뭉스럽게 제압할만한 몇 개의 의문이 본편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그 첫째는 필름의 낡음이나 당대의 남성 외관 스타일의 유사성으로 인해 오도된 측면도 있을 터이다.

주인공 히로코와 사촌 지간으로서 명확하게 연정을 인정받기를 거부하는 관계인 키타무라는

첫 등장 이후 편집상으로 이어지는 히로코의 남편이 되는 호리에와 언뜻 보기에 착각을 유도할만큼 닮아있다.

왜 키타무라와 호리에, 두 남성은 서로 다른 좌표임에도 동형이라는 착식를 유도하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과연 키타무라는 별도의 예외적인 남성상인가라는 질문과 잇닿아있다.

밤늦게까지 유흥주점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집안에서는 가부장제를 강요하는 남편 호리에의 위선이 직접적이라면

히로코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서도 현명한 선택을 강압하거나 자임하는 키타무라는 어쩌면 호리에의 이면일 것이다.

전술했듯이 본편에서 알콜중독과 무능으로 지정된 남성 폐인류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에서 신뢰할만한 남성이 대체되어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히로코의 친정에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만 보이고 아버지가 없는 것은 유의할만하다.

본편에서 긍/부정의 판별 너머에 있는 남성은 미성년 저학년 아동들 뿐이라는 점도 동일한 맥락이다.

애시당초 본편이 나루세 미키오의 50년대 이후 작품과 구별되는 지점으로서 남성의 비폐인적 캐릭터를 선두에 세운다면

이에 대한 확장이자 정론으로서 여성 주인공의 자아 성찰로 엔딩을 장식하는 것은 날이 선 화두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오타쿠적인 질문에 대한 성찰의 선배로서 본편 엔딩에서 히로코의 대사들,

즉 "나를 완성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는다' 등은 21세기와는 다른 1930년대 일본 여성의 논제겠지만,

극 내내 과연 히로코가 이 대사가 이르기전까지 이같은 고민을 내재화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

추론이 가능한 가닥 하나는 여전히 나루세 미키오의 그녀들처럼 본편의 히로코 역시 결혼에의 확신이 없다는 점인데,

그녀는 자신이 결혼할 남자 키타무라에 대한 애정을 거의 본편 내부에서 보이지 않은 채 결혼식을 사진으로 보내버린다.

그녀가 결혼을 선택한 이유 중 겉치레는 남자가 '부자, 현대적, 좋은 사람'이라는 조건인데

극은 이 지점에서 은근히 그같은 외면들이 실제로는 허울좋은 거죽일 뿐이라는 것을 신파적으로 극화할 것을 예고한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 후 시집살이를 하는 히로코를 괴롭히는 것은 시댁 식구의 숨쉴틈 없는 호출과 남편의 권위적인 모습이다.

의아한 것은 극이 다소 난잡할 정도로 이같은 시댁의 정경을 반복함으로서 극을 지루함의 나락으로 강등시킴으로서

정작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되는 접점의 경로를 관객에게 선연하게 전달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에 있다.

오히려 극이 찾은 다른 탈출구는 시누이 중 첫째인 요코를 통해서이다.

요코가 그의 애인 마츠다의 가난에 대해 혐오하면서도 그가 횡령 범죄를 저지를 때 끝까지 기다린다는 신문 기사가

엔딩에서 히로코의 시선으로 일독될 때 영화는 명백하지는 않지만 여인의 애수가 자유의지의 배제와 모순되지만은

않다는 것을 굴절된 상태로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어쩌면 히로코의 여인애수는 로맨스적 낭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을 비롯한 후기작의 면면에서 관객은 이에 대한 진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본편의 구조가 허술한 지점, 즉 히로코 시댁 가족들의 부산함 등의 인위성은 극의 밀도를 떨어뜨리고

남편 호리에의 이중성의 전형 등은 상대편 카타무라의 입체성과 대비할 때 좀 더 다듬었어야할 필요가 있었다.

더불어 히로코의 친정집의 식구들에 대해서도 분량을 들여서라도 무언가 캐릭터의 불구성을 보완했어야하며

무엇보다 엔딩에서 일방적인 히로코의 선언에 의존함으로서 관객에게 주제를 설파하는 방식은 30년대라도 해도

마치 전쟁 선전영화의 면모를 페미니즘 드라마 안에서 발견한 듯 못내 미학의 성취도가 아쉽다.

<여인애수>는 나루세 미키오의 여인들이 여전히 자신의 운명 앞에서 자아 상실한 채로 휩쓸리는 전제를 반복하고

거의 노골적인 선전물처럼 과도한 당당함으로 한순간에 전복을 통해 수난극을 탈주해버린 여성(주의) 선언극이다.

16. 아내의 마음 妻の心, (1956) : 무엇도 분명하지 않을 때를 현상유지라고 한다.

올 연말과 내년 초까지 개최되는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 포스터는 본편에서 비롯되었다.

관객은 5, 60년대 일본 영화의 주, 조연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을 통해 낯익은 배우들을 본편에서 다시 만나게된다.

개인적으로 다소 심심했던 본편에서 처음 찾았던 기쁨은 마치 옛친구를 만난듯한 그들의 여전한 면면이라고할까.

비열하고 소심한 캐릭터의 배우 미노루보다 더 반가운 것은 당연히 오랫만에 그 늠름한 어깨를 다시 견식한 미후네 도시로다.

그에게 본편은 <산 자의 기록>과 <거미집의 성> 두 편의 구로사와 아끼라 사이에서 외출한 서민 로맨스극이다.

미후네 도시로가 본편에서 맡은 역할은 흔히 이 땅의 드라마 안에서 '실장님'으로 표현될 키다리 아저씨 연인 캐릭터다.

1920년생인 미후네 도시로는 자신보다 4살 어린 타카미네 히데코와 불륜을 넘지 않는 단 한번의 작은 휴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본편이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라는 인증받으면서 동시에 의문을 제출할 표식일 듯 싶다.

이에 대해서는 차후 논의하기로 하고, 선인들의 발자취를 추앙하는 후인 관객으로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남자와

나루세 미키오의 여자를 한 편의 영화에서 조우한다는 것은 일종의 일본 배우끼리의 격투처럼 누설될 일이다.

여기에 먼저 작고한 이 두 배우에 이어서 얼마전 운명한 오즈 야스지로의 하라 세츠코를 한 작품에서 마주친다면 어떠했을까.

할리우드라면 한번쯤은 성사되었을 이 전설들의 조우가 적어도 내 체험 안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잡설이 너무 길었다. 여성 수난극이라기보다 서민극에 가까운 본편은 미스터리 로맨스의 기색도 감추지 않는다.

주인공 키요코(타카미네 히데코 역)가 우유부단한 남편과 무능력한 시댁 식구로 인해 겪는 심적 부담은

기실 본편의 기본 골격이면서 조연 배우들이 그들만의 캐릭터를 성실히 연기함으로서 관객을 흡입하지만,

실상 영화가 지시하는 결은 그 아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역과 선명하지 못한 로맨스에서 발생한다.

키요코의 남편 신지가 자주 찾은 술집에서 만나는 게이샤 후쿠의 자살이 전자라면

은행 융자 때문에 만나는 친구의 오빠인 켄키치(미후네 도시로 역)와의 몇 번의 조우는 후자로서 일종의 증폭이다.

즉 본편은 여성 수난극으로서 나루세 미키오 세계 속 남성 폐인으로서의 인물이 중심에 자리잡지 않지만

주인공 키요코의 남편인 신지와 그의 형인 젠이치는 무책임, 무능력으로 공약화하지 못할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가령, 신지는 자신의 아내 키요코와 켄키치의 사이를 의심하면서도 자신의 무능으로 인한 부채 역시 인정하고

언제든지 키요코를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으로 인해 자살한 후쿠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도 등의 명확한 좌표로 스스로를 이동하지도 못한다.

애시당초 신지는 후쿠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은연 중에 무시하는 쪽을 택함으로서 영화를 불투명하게한다.

기실 질문은 왜 후쿠-신지의 하위 로맨스 장르가 본편 안에 삽입되어야하는가로 변형되어야할 것이다.

불투명에서 존재론으로 상승하는 신지-후쿠의 로맨스는 기능적으로는 키요코-켄키치의 보충 요소로서 자리하는데,

후쿠가 죽음으로 신지와 헤어진다면 키요코는 마치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듯이 제자리로 돌아와 삶의 의지를 재생시킨다.

게이샤라는 신분의 문제가 작용했다기보다 마치 후쿠는 키요코를 위한 제의물, 대속의식이 된 듯 하다.

후쿠의 죽음 소식을 남편 신지가 접한 이후에 키요코와 켄키치의 우중산책 장면이 접합된다.

이는 관객의 입장에서라면 후쿠의 죽음과 키요코의 불륜 일탈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대하거나 의심하게된다.

아닌게 아니라 이제까지 그저 감정의 주위를 맴돌던 키요코와 켄키치가 산책 중 잠시 들리는 찻집의 간판은

'작은 쉼터'를 뜻하는 한자어를 통해 이미 복선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영화는 그들의 대화 선을 파열시키는

찻집 종업원의 움직임을 노골적인 사회적 시선의 대리자로서 첨가시킴으로서 찰나의 열정을 냉동시킨다.

이제 남은 것은 왜 키요코는 자신의 삶을 재출발시키려는 선택을 하지 못하는가에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소환되어야할 것은 게이샤 후쿠의 죽음인데, 후쿠는 왜 신지에게 고백하지 않았는가를

참조하면서 동일 선상에서 켄키치가 키요코에게 정확히 애정을 고백하지 않은 것을 비견할 수 있다.

아니, 꺼꾸로 켄키치에 대한 키요코의 내심은 도대체 무엇이었나를 묻는 것이 본편의 중핵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적어도 후쿠는 사후에라도 신지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본편 겉면에 드러낼 수 있다면

키요코는 켄키치에 대해 어떠한 태도였는지 스스로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종결된다.

여기에는 물론 남편 신지의 솔직한 고백과 죄책감으로 빚어진 토로가 한 몫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편이 기존의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 수난극이나 로맨스물에 비해 은폐된 결이 있다면

차라리 죽은 게이샤보다도 못한 키요코의 부인과 며느리로 돌아가버린 선택 하에 삭제된 감정일 것이다.

즉, 본편은 수난극 자체의 수난에 집중했던 다른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들과 달리 기꺼이 헤피엔딩을 선택함으로서

관객에게 보수적 안정으로서의 쾌감을 선사하지만, 내심 그것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는가를 반문하려한다.

오프닝과 엔딩에서 클로즈업을 통해 비춰지는 약국이라는 장소와 신지-키요코 부부가 개업하려는 카페라는

공간적 의미를 일차원적으로 간편하게 해독하자면 오프닝과 엔딩의 약국은 동일하면서도 다른 치유와 봉합의 의미라면

그들 부부가 길에서 두 번 발견하게되는 한참 건축 중인 다른 약국의 존재는 게이샤 후쿠, 은행원 켄키치일 것이다.

산뜻한 성장극이라는 형식이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에 부재한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 안에는 내재된 불안이 있었다면

본편 역시 과연 후쿠의 죽음과 키요코의 재정착이 극적 안정감의 쾌감 너머에서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된다.

신지-키요코 부부에게 없는 아이 대신에 신지의 형 부부의 딸이 집에 남고 결국 카페는 연기되는 등의 서사는

이같은 의심의 밑둥으로서 슬쩍 부담없이 삽입되어 힘차고 밝은 내일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서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키요코는 계속해서 카페의 여주인이 되고자하는 예비 수업을 이어갈 것이고 남편 신지는 약국을 지속할 것이지만,

그것이 한 때의 소나기처럼 지나간 죽음과 로맨스의 순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인지는 '자유'라는 단어 앞에서 물어야한다.

적어도 관객으로서는 나루세 미키오의 이같은 봉합이 그다지 선선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다고 하면 과문일까.

<아내의 마음>은 일상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 통과해야할 의식에 대한 전형적인 서민 위기극이지만,

과연 지층 이하에 끊임없이 흐를 수 밖에 없는 불안으로부터 탈주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평범한 로맨스 존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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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윤미래I 2017-03-31 (금)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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