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윈딩 레픈 2 - 피어 X//푸셔 2

나는 이제까지 그를 6번 만날 수 있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1970년생이다.

 

 

4. 피어 X  Fear X  (2003) :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굳이 반복할 필요도 없겠지만,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철저히 남성적이다.

마초적이라는 단어보다 본편에 어울리는 것은 여성은 무시되거나 소멸된다는 표현일 것이다.

 

독자는 본편의 오프닝에서 존 터투로가 맡은 대형쇼핑몰 경호원은 자신의 부인의 살해 사건을 풀기 위해 분투하고

살해범인 경찰 내 일종의 부패척결 자경단원인 살해범인 경찰관 역시 자신의 부인인 데보라 카라 웅거의 의심을 받지만,

죽은 여인이나 산 부인 모두 결말에 가면 특별한 해제 없이 사라져버린다고 할 때

감독이 오직 남성의 심리와 선택에 집중하는 특성을 초기 이후 최근까지 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편의 분위기와 색감에서 데이비드 린치와 코엔 형제를 연상함은 당연하겠지만,

특히 존 터투로가 그 해 깐느의 선택을 받은 <바톤 핑크>와 

데이비드 린치의 직인이라 할 붉은 색조의 방과 커튼 등은 선명하게 재현된다.

감독이 이 두 선배의 스타일에서 가져온 것은 공간의 심도화를 통한 인물의 몽환성인데,

본편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눠서 후반부가 마치 하나의 꿈인 것처럼 간주하게 하는 것도 이같은 작법 때문이다.

 

만일 오프닝과 엔딩을 변형된 수미쌍관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주제의 교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프닝에서 남자의 한쪽 손이 천천히 커튼의 양쪽을 하나씩 걷어내고 난 이후에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 결국 꿈의 한 부분이고

엔딩에서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는 CCTV 카메라의 분할 화면으로 프레임이 가득찰 때 영화는 내러티브의 허무함과 더불어

지금 당신이 무언가를 봤다고 혹은 할 수 있다고 믿는가에 대한 의문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후반부 존 터투로가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다른 마을의 음식점에 들릴 때 그를 경계하는 경찰관 뒤로

거대한 미국 성조기가 그려진 것을 굳이 덧붙여서 미국 자체의 정체성으로 몰아갈 수도 있도록 반복 강조하고

그것이 경찰 내 부패척결 자경단의 희생양 논리가 뒷받침할 때 영화가 잠시 미국 내부의 정체성으로 추적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본편의 전반적인 테마는 그같은 사회적 시선이 아닌 존 터투로 개인의 심리와 좌절감을 쫓는 데 집중하는데

카메라는 반복해서 존 터투로의 머리 뒷편에서 접근하여 붉은 색감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서

전술했듯, 미국 작가 선배의 필름 터치를 쫓아가면서 일종의 오마쥬를 삽입한 다음 자신의 엔딩을 추구한다.

 

두 남자, 존 터투로와 제임스 레마가 붉은 복도에서 서로를 껴안듯 죄책감과 진실의 추구를 대면시킬 때

영화는 이 모든 살인 사건과 추적 일체가 결국 당사자를 비롯한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악몽처럼 그리고

유일한 탈출구로서 승강기 저 너머의 어둠과 핏빛 이미지로 갈음으로서 다소 도망가는듯한 서사를 취한다.

 

무엇보다 본편의 서사로서의 엔 딩에 대해서 불만족스럽다고 제기할 관객이 많겠지만,

기실 영화가 두 남자가 대치하는 긴 복도의 심도화가 제시되는 순간에 정리되었음을 상기하자면

다시금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자신의 원형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남자의 초상을 반복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선배들이 그랫듯이, 그 역시도 할리우드적인 복수극의 쾌감 따위는 제시하지 않고 사라지는데,

이는 근작 <발할라 라이징>이나 <드라이브>와는 간극이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전술했듯이, 위 두 근작들마저도 완전한 회복이나 생환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남자들의 시간은 정리될 수 없는 미로의 길 위에서 영원히 중지될 것만 같다.

 

 

<피어 X>는 자신의 멈춰진 시간을 되살리려는 남자(들) 의 불구스런 회복기이지만,

악몽같은 붉은 복도의 낯선 공간 안에서 결국 진실을 넘어설 수 없는 준비된 망각의 정신분열극이다.

 

 

6. 푸셔 2 Pusher II With Blood on My Hands (2004) : 아무도 존중하지 않은 자의 재귀

 

지금은 감독의 데뷔작이자 유명세를 가져온 <푸셔>가 기억나지 않는다.

20003년 3월에 비디오테이프로 관람한 <푸셔>는 당시에는

그저 타란티노의 아이들 혹은 트레인스포팅의 후예들 정도로 정리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1970년생 일군의 작가군들 중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세겨넣은 

최근의 수상과 출품 등을 고려한다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지난 시기는 다소 무시되었던 면도 있다. 

얼마전 모 국내 영화제에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감독전이 기획되어 소개된 초기작들을

아직 접하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흔히 거의 한 줄로 줄여도 될 정도로 단란하다.

 

여자와 아이,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을 거의 배제한 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아버지라는 윗세대 울타리가 삭제된 자리에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오직 도저히 탈출 수 없는 험로에서 발버둥치는 남성에 주목한다.

 

<발할라 라이징>, <장기스 브론슨의 고백>, <드라이브>으로 이어지는 마초 연작에서는

그나마 주인공들이 통제 불능의 힘과 광기'라도' 소유하고 있었고 그것을 실제로 표출했는데,

이는 위 <피어 X>와 본편의 시점으로 봤을 때 어쩌면 일종의 진전이거나 캐릭터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곤경에 처한 남성의 허약함에 머무르지 않고, 그에게 돌파력이나 항거의 힘을 부여한 것에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40대 이후의 관점 변화를 추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러티브가 있으되, 실제로 아무런 이야기도 들은 것 같지 않고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도대체 그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왜 살아나가는지 알 수 없는

전형적인 패배자 영화 장르로서 본편을 안치하는 것은 손쉬운 평가가 될 것이다.

 

문제는 전술했듯이 감독의 초기작들이 모두 고행길에 갇힌 남자에 주목하는 이유에 있는데,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가능한 여기에 덴마크의 정치 사회적인 시선을 삽입하기를 꺼리고

생래적으로 도피할 수 없는 실존으로서의 몸부림과 허약함을 자신의 주제로 삼고자 한다.

 

관객이 본편에서 가장 많이 듣게되는 반복적인 대사는 "패배자"라고 할 때

매드 미켈슨이 맡은 주인공이 왜 스스로 성장하거나 아버지-아들 되기, 가족 구성원으로 제몫찾기.

심지어는 자동차 절도 갱단의 일원 혹은 마약 매매원의 일원으로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영화는 그같은 주인공의 미흡함에 대해서는 어떤 해설도 하려는 의지가 없다.

 

가령, 극 중반에 어머니의 죽음을 주인공이 알게됨에도 불구하고

혹은 갱단의 보스인 아버지의 지나친 억압에도 불구하고 이제 서른은 넘은듯한 주인공이 성장사 안에서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는지는 차라리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이 친절하다고할만큼 무관심하게 배제한다.

 

오프닝 이후 주인공이 하거나 겪는 거의 모든 행동과 사건들은

오직 주인공 토니의 무계획성, 능력 부실을 조명하기 위해 일렬로 나열되어 있을 뿐인데,

그것들은 그가 아버지의 살인 지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아버지를 살해할 때까지

그를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카메라는 붉은 색감과 배우의 연기력에 의존해

영화 저변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끝까지 지탱하는 것에만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위 <피어 X>에서도 반복해서 프레임을 장악했던 주인공 남성의 뒷머리를 카메라가 담는 장면은

본편에서는 다소 친절하게도 RESPECT 라는 단어를 제시함으로서 선명한 의미를 제시한다.

누군가 그를 존중하고 경의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시간들이야말로 본편의 생략된 속내다.

 

문제는 그 길로 들어서기에는 본편은 지극히 비 휴머니즘적인 경로를 철저히 마약 중독의 반복으로 인해 탈락시킨다는 데 있다. 

어쩌면 주인공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인간적이라는 표현에 적합하지 못할 때

곤경에 처해 탈주해야만하는 주인공의 좌표는 지극히 장르적으로 정상성을 획득한다고 할 수도 있다.

 

불가해한 폭력집단으로서의 주변 배경과 그 속에서 이탈하려는 주인공이라는 이분법,

구조와 주체라는 오래된 서구의 난제 앞에서 본편은 아직은 자신을 웅크리고 있다.

엔딩에서 주인공 토니가 자신과 거의 비슷한 대머리의 아들을 안고 버스를 타고 떠날 때

그것을 승리라고 믿을 관객은 아무도 없겠지만, 비로소 스스로를 존경한다는 의미 정도는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프레임이 그의 머리 뒤  RESPECT 라는 글자에서 멈춰진 것에는 그같은 맥락이 존재한다.

 

 

<푸셔 2>는 왜 밀려나가는지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남자의 실존기이며

결국 인간을 살해하기를 거부하고 살부의식을 거친 이후에 탈주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흔한 패배자 장르의 부속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