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들을 17번 만날 수 있었다.
조엘 코엔은 1954년생, 에단 코엔은 1957년생이다.
2017년 112번째 영화
5. 허드서커 대리인 The Hudsucker Proxy (1994) : 틀니는 완전한 원이 될 수 없다.
이상한 점이 둘 있다. 하나는 명명이고, 다른 하나는 시기다. 본편의 제목은 '허드서커 대리인'이다. 하지만, 주인공 이름은
'노빌 반스'다.
곧바로 등식은 노빌 반스=허드서커 대리인이 되니, 안심해도 좋다 판정한다면 엉뚱하고 저열한 오독을
범함으로서 반론하련다.
자본주의는 몇몇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인해 발전한다는 것이 본편의 경제학적 위상이 아니라는 것에
이론의 여지를 발견하기 힘들다.
겨우 두 개의 아동용 놀이기구가 자본창출 발상의 기반이라면 48년동안 우편물을 분류하고
배달하는 늙은 노동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영화는 여기에 대답할 여력이 아닌 태도가 부재하다. 이건 장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디즈니 월드가 떠올려진다는 것에 이의를 표하고 싶지 않다. 결말부에서 허드서커의 천사가 등장하고
수미상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스며들 때 본편이 코엔 형제의 세계인지조차 의문스러웠다. 그것은 <크라임웨이브>을 상기시키는 샘 레이미의
각본참여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감쇄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본편을 쉬어가는 작품 따위의 회피로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관객은 언제든 작품에 임함에 있어 감독의 상상력과는 결이 다른 자신의 위치에서의 감상이 필수적으로 뿜어져나와야한다.
그것은 망작이든 걸작이든 상관없고 평론가든 일반 관객이든 가릴 바가 없다. 항시 우둔한 독자의 혼자만의 방은 나름 즐겁다.
오프닝에서 뉴욕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카메라와 나레이션은 적극적인 성인들을 위한 동화 전략을 표명한다. 동화는 흔히
그렇듯 교훈을 필수적으로 함유하고 그 교훈이랑 살벌한 리얼리즘이라기보다 환타지의 출구를 장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환타지란 결국 살아있는 인간의 생동감어린 자유의지의 소산과는 거리가 멀기 마련이다. 여기서 틈입 가능한 반론은 감독의
불가지론으로서의 세계다. 코엔 형제는 데뷔작 <블러드 심플>에서 이미 '아무도 모른다'를 선언하고 전체로서의 조망 불가를
천명한 바 있고 이후 전작 <바톤 핑크> 등의 몇몇 작품을 예외(?)로 하고 의외의 종교성으로 설명될 기조를 여전히 지속한다.
불가지론은 이율배반적으로 주체의 져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체는 세계 속에서 사투함으로서 자신의 상위법인
아버지를 파괴/이탈하거나, 스스로의 분신을 생산함으로서 주체로서의 존재론을 폐기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한다. 코엔형제의
세계는 바로 그 과정을 중계하는 장르의 스펙타클의 세련됨으로 주목되어진다. 이제 논점은 불가지론의 품격으로 옮겨진다.
기존 작품들에서 이른바 '물자체'로서의 라이터<분노의 저격자>, 아기 아리조나<아리조나 유괴사건>, 모자< 밀러스 크로싱>에
이어 바다 저멀리<바톤 핑크>로 기호화되었지만, 한번도 스스로 자신을 말하는 육체로서 성인 인격화를 가장한 적은 없었다.
본편에는 바로 이 지점을 배반한다. 건물의 거대 시계 관리인인 모세스와 허드 서커는 현실 저편에 거주하면서도 주인공을
추락으로부터
구출한다. 이 선명함이 본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성인 동화의 도식성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지만, 오직
그 지점만이 본편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여성 캐릭터 에이미 아처(제니퍼 제이슨 리 역)의 어색한 스크루볼 코미디로부터
막 도달한듯한 남성 압박을 가장한 순수한 순종은 배우 자신에게도 본편에게도 손익분기점을 넘는 패착이다. 노빌 반스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과 저널리즘의 정글에서의 진실 보도와의 상관 관계라는 낭만적 착각은 자본주의 기업에 대한 허무한 망상이다.
가령, 노빌 반스가 허수아비 사장이 되고 훌라후프 제품을 생산한다해도 지하층 우편부들의 근무 여건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는 자본/노동의 대립 전선이 아니라, 기이하게도 노인/젊음의 구도에서 발견되어져야할 것이다. 본편의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남성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기이하다. 1950년대말이라는 한국 전쟁
후라는 기점에도 불구하고 성인동화의
무대 위에 남성 노인만 가득하다는 점은 납득 불가하다. 그중 특히 지하층 우편부와 최상층 임원진 모두가 남성 노인인 상황은
성차를 넘어 본편을 쪼그라든 성인 동화로 좌천시킨다. 구원자들인 모세스와 천사조차 남성 노인일 때의 불구성은 의도된 바다.
반어와 조롱의 맥락으로 되짚어 볼 수도 있다. 즉, 전작들에서 노출되었던 아버지 자리의 귀환으로 여전히 아버지에 의해
구원
/속박되는 아들의 좌표를 언급함으로서 불가지론으로 우회도착하기 위해 무려 196 cm의 팀 로빈스를 순박한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음을 해설할 수도 있다. 그는 늙은 배우들 특히, 코엔 형제의 절대악으로서 자본주의를 구현한 폴 뉴먼의 177 cm 보다도
월등히 커 보인다. 두 배우가 한 프레임에 놓일 때 이같은 설정을 위해 그들을 소환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편 속
누구보다 크지만 오히려 가장 순박한 존재로서 결국 천사 허드서커의 낙점을 받는다는 서사는 동화가 아닌 비틀기 어법이다.
이제 관객은 이 키크고 아이디어 쌈박한 사내를 가련하게 품어야하는 서사의 유혹에 저항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언론을 비롯
본편 내내 커다란 구호나 광고처럼 반복되는 '천치'라는 단어의 이데올로기의 소모성을 배제할 때 가능할 것이다. 왜 그토록
영화는 노빌 반스를 천치로 호명해야 직성이 풀리는지는 전술한 본편의 불가지론 하의 성인 동화적 작법의 노골성과 연관된다.
이쯤되면 본편은 영화로서 관객에게 당신은 정말 이 기이하고 허무한 상황 자체를 용인하고 신뢰합니까라는 저차원적 전략을
구사함을 은폐할 의향이 부재한대, 이야말로 본편의 존재론이다. 천치의 스크린 위에 천치를 전시하여 천치 아니기를 말함.
상황은 뒤집어진다. 남성 노인들의 동성 사회에 가까운(그들의 아내는 풍만한 몸집이다.) 자본주의의 노동/자본을 가리지 않는
위/아래를 급속 상승하였다가 추락할 뻔한 젊고 가장 키 큰 순박 남성의 환타지 자체는 성공 신화를 희화화함으로서 애도의
묵념의 시간조차 임금에서 소거하는 자본주의를 폐기하려는 목적을 무난히 달성했을까. 그같은 의미에서 노빌 반스를 구출한
모세스의 틀니보다 노빌 반스의 두번재 발명품 원반 던지기의 복원성에 주목해도 좋은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본편에서 가장
각인될 훌라후프의 자발적인 속박의 쾌감을 응시하자. 아동용 놀이기구와 남성 노인들의 노동/자본의 대립은 또한번 우화다.
적어도 세 편의 영화에서 코엔 형제는 1920년대말, 1940년대초 그리고 1950년대말의 미국사를 등장시킨다. 본편에서는
성인 동화의 저렴함과 동급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통화와 비트 세대의 아지트, 성조기, 주식 실황기 등이 배경화된다.
엘로우 페이퍼 언론의 호들갑 정도는 무시한다해도 코엔 형제가 해당 시대를 이데올로기의 칼날로 단면을 추출하기보다
20세기 전반기의 미국사 전체가 결코 주연화될 수 없는 불구성이 내재해있음을 증언하는 데 주력한다. 전술했듯 코엔 형제에게
미국(영화)사는 장르의 정통성을 올곧이 지켜내야할 찬란한 유산이기보다 각 장르의 빈틈 사이로 스며들어가 무력한 인물을
생성하는 무대이긴 했지만, 본편의 남루한 디즈니 월드와의 유사성은 이같은 기조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동화적이다.
훌루 후프와 원반과 천사의 영혼의 공통점인 원을 신뢰하기에는 시간을 멈춘 틀니의 조악함이 자꾸만 시야를 가린다.
첫 문장에서 언급했던 시기가 크리스마스로도 새해전야로도 특별히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내내 마음에 걸린다.
뱀다리)
하나.
<크라임웨이브>에서 주인공은 허드서커 교도소에 수용되었고,
<밀러스 크로싱>의 결말에는 'Barton Arms'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처럼 코엔 형제가 자기 복제의 흔적들을 앞으로도 드문드문 허용할 것인지 주시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둘. 스티브 부세미는 <밀러스 크로싱> 이후 <빅 레보스키>까지 동년배 에단 코엔의 5편의 작품에 얼굴을 보인다.
<허드서커 대리인>은 여전히 신/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는 키만 큰 순진한 아들의 발육 성장기이며
자본의 축적은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소외 노동의 답변 대신 아이디어맨이라는 신화의 가식을 조롱하는 성인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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