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들을 17번 만날 수 있었다.
조엘 코엔은 1954년생, 에단 코엔은 1957년생이다.
2017년 117번째 영화
10. 참을 수 없는 사랑 Intolerable Cruelty (2003) : 단 한순간도 진심인 적 없었어요.
장르적으로 실패한 필름이다. 본편의 원안이 코엔형제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님과 각본과 감독을 코엔 형제가 담당했다는
사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의 부재가 작동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감독이 스튜디오를 위해 각색했다고 밝힌다고 해도
여전히 영화사에 본편은 코엔 형제의 이름으로 상재됨은 불변이다. 돈가방이 주요한 맥거핀이자 모티프이며 해제해야할
자본주의와의 한판 숙제로 지속적으로 기호화되었던 감독의 세계 내에서 본편은 머니 환타지 자체를 주저없이 승인해버린다.
표현이 다소 상스럽지만, 여기서 '승인'이란 주인공 마릴린(캐서린 제타-존스 역)의 위자료를 위한 허위 결혼을 지시한다.
즉, 본편은 머니 환타지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경이적인 비약을 인증한다. 문제는 인증 자체를 고백하는 어법의 모호함이다.
마릴린은 이 방면의 선수일진대 단 한번의 패소 판결 이후에 슬쩍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친구의 집에서 머문다는 설정을 슬쩍
끼워놓는다. 물론 그것은 본편의 주제로 우회하기 위한 감정적 통로의 역할도 겸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굳이 마릴린이 친구의
집에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서사의 연약함은 풀리지 않는다. 돈이 곧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라는 그것은 그저 자신을 둘러싼
성채에 불과하다라는 한가한 폭소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치고는 참으로 빈곤하다. 마치 근육맨 정원사의 능글맞은 웃음처럼.
두 인물은 과연 용서가능한 자들인가? 한 사람은 위자료를 위해 언제든 가식 결혼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명백한 이혼 사유에
해당하는 고객을 위해 판 뒤집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법률가라면 여기에 동정의 여지는 누구에게도 없다.
설사 주인공 마일즈가
이혼전문 변호사협회 모임에서 한바탕 감동의 연설을 늘어놓고 동료 변호사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변신의 해방감을 잠시나마
착각 속에 젖어든다해도 애당초 그것이 장르의 도식임을 인지함과는 관계없이 그가 즉각적으로 자신을 우롱하여 허위 결혼한
마릴린을 살인 청부할 때 이는 그저 B급 코메디의 순발력으로 웃어넘길 수만은 급격한 밑바닥 인격의 은폐 해체에 다름 아니다.
본편은 철저하게 서사를 뒤집어보기를 거부한다. 가령, 청부 살인을 실행하러 와서 우연하게도 자신의 총에 죽음을 맞게된
'쌕쌕거리는 조'의 상황은 도대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영화는 환타지적으로 생략한다. 물론, 이는 크게 문제 삼을 바가 아닐 수
있지만, 그 과정마저 삭제할 수는 없다.
'쌕쌕거리는 조'는 분명 총을 소지했음에도 겨우 마릴린의 경호견들에게 위협당하여
청부 전모를 고백한다. 그는 거구의 인상과는 달리 너무 무기력하다. 그는 겨우 경호견 퇴치용 스프레이를 가진 두 얼치기 남성을
당해내지 못함은 물론이고 천식 치료기와 권총을 혼동하여 스스로 머리를 관통한다. 무엇보다 그는 천식, 즉 말과 호흡이 어렵다.
말과 얼굴로서 상대방을 미혹하는 대가들인 두 주인공에 비하여 죽음을 관장하는 비대한 신이어도 좋았을
'쌕쌕거리는 조'의
과도한 조롱이 함유된 무기력함은 소동 막장극의 해제를 위해 희생양으로 소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코엔 형제의 세계 내
절대악으로 등장했던 캐릭터들의 소통과 근접 불가의 면모와 비견할 때 제대로 그 아우라를 뿜어내지도 않은 채 장르 밖으로
밀려나는 건 치명적 흠결 중 하나다. 그에게서 '말'이자 '호흡'을 제거한 설정은 장르를 위한 잔혹함 이상이다. 천식 치료기의
마지막 투약의 방향이 마일즈의 안명을 향했음으로서 그를 각성하게 했다는 전술은 안이함을 떠나 초라하다는 비난이 마땅하다.
또다른 흠결은 누구나 인지하고 예상하는 바의 그것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본질적인 화두 앞에 본편은 얼마나 떳떳한가?
물론, 대답에는 두 인물이 진실한 사랑으로 진입했다는 화해 이데올리기에 대해 반박하지 말라는 강압이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서 이는 이미 부인된다. 원제는 '참을 수 없는 사랑'이 아닌 '참을 수 없는 잔인함'이다. 반어적인 어법을 허용한다해도
잔여물은 '잔인함을 경유하고서야 가능할 사랑' 정도로 추출될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왜 '잔인함'이 필요한가에 달려있는데,
이에 대한 해답은 응당 두 인물의 저주받을 자본주의적 삶의 충실도와 직결된다. 이를 뒤집으면 사랑은 자본주의의 벽 바깥이다.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다시 묻자. 마릴린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 마일즈를 만나겠지만, 여전히 그녀의 삶은 호화로울
것이며 마일즈 역시 자신의 직장인 이혼 전문 로펌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 이전과 다르지 않은 삶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둘이 화해를 하는 장소가 하필 마일즈의 사무실 내부라는 점은 무척 위태로워 보인다. 협회로부터 탈퇴했다는 마일즈의 연설과는
달리 여전히 그가 생명 유지 장치에 둘러싸인 채 고립된 호흡을 영위할 뿐인 노인남성 대표가 경영하는 로펌에서 일하고 있을 때
도무지 이 영화의 화해 키스는 진실과 밀착되지 않는다. 여전히 연필깍기는 작동하고, 수북히 쌓인 접대용 빵들은 거슬릴 뿐이다.
무엇보다
'쌕쌕거리는 조'의 청부 살인이 죽음의 고약한 해프닝으로 종결된 이후 마일즈의 사무실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홀연
진실한 사랑의 화신으로 변형되는 순간의 설득력은 거의 부재하다. 왜 마릴린은 마일즈의 진심을 믿게되는지 서사는 고의적으로
생략한 기색마저 감지된다. 중요한 것은 마일즈라기보다는 마릴린이다. 마일즈는 지속적으로 고용주 노인을 거울로 하여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기회가 엿보이지만, 마일즈에게 복수를 다짐하여 그것을 통쾌하게 실행한 마릴린은 왜 마일즈를 사랑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마치 그것은 마릴린에게 결말에서 장르의 도식을 위해서 희생당하기를 압박하는 결과물의 잔인함처럼 보인다.
정작 잔인함은 수미상관에 있음을 진술할 시점에 도달했다. 오프닝에서 TV쇼 제작자 도노반 도널리(제프리 러쉬 역)는 아내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이혼 소송에 패소하는 인물로 추정된다. 실제로 그는 중반부 마릴린의 복수 도구로 노숙자 신세를 면한다.
문제는 엔딩이 그에게 배정되었다는 것인데, 그는 이제 자신의 아픔과도 같은 불륜의 현장을 시청율로 환산하는 '이혼 비디오'
쇼를 연출하는 PD가 되어있다. 즉, 작품의 골격은 기실 마일즈-마릴린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도노반 도널리의 기사회생에
놓이고 그것은 대중은 누구나 배신을 상업화하는 장소에 초청되기를 원한다는 사회적 고백에 있다. 이것이 진정 '잔인함'이다.
이쯤되면 단 두사람이 진실한 사랑에 접속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는 그저 장르의 환영일 뿐이고, 다수는 '갈라선다'.
그간 코엔 형제의 서사적 외피였던 불가지론이 디제시스 외부에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영화의 골격인 주인공의
로맨스는 그저 마약 가루에 불과할만큼 핍진성이 결여되어 있을 때의 고의성은 결국 '이혼 비디오 쇼'로 재기한 연출자 면모처럼
당신이 이제까지 감상하신 최상류층 위자료 이혼쇼는 가진 자들만의 환각 로맨스에 불과할 분이며 실제의 자리는 어디까지나
전혀 접촉할 수 없는 진실한 사랑이라는 저 너머에 있다는 고백이야말로 코엔 형제의 비틀어지지 않은 장르 비틀기의 진심이다.
그러므로, 70년 발표된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당대를 부정했던 것처럼 관객은 본편을 결코 신뢰해서는 안된다.
<참을 수 없는 사랑>은 이토록 연약한 서사의 조직력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감동할 수 있습니까를 반어법화 한 장르 조롱극이며
자본주의 상류층의 허위성에 대해 믿을 수 없는 로맨스와 제대로 숨쉬지도 못하는 절대악을 희생시킨 사랑의 불가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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