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 준수한 정치 스릴러(약스포)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김에 리뷰 한편 더

작년 말에 봤던 영화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영화는 단연 강철비입니다.

우선 이런장르를 좋아합니다. 이른바 '잭라이언'시리즌데 80~90년대 영화를 좋아하셨던 분들은 아실거예요.

붉은 10월이나, 긴급명령, 페트리어트 게임, 그리고 썸오브올피어스 까지(그 뒤에 나온 잭라이언 뭔가는 인정 안해줌)

냉전시대와 그 유물을 바탕으로 한 정치 스릴러는 꽤 재미있는 장르인데 강철비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꽤 준수하게 뽑아낸 정치 스릴러였습니다. 우선 한반도의 현 시국을 그대로 반영한 이야기 흐름이 좋았어요.

특히 이런 영화는 내용이 복잡할수 밖에 없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사안들을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죠. 한쪽에서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와중에 또 하나의 일이 터지기 때문이죠.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남과 북에서 서로 땜빵으로 들어온 철우들이 각자의 진영에 얽혀서 사건을 만들고 또 둘을 통해 그 이야기를 교차시키는겁니다.

즉 남쪽 철우는 남쪽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계속 얽히고, 북쪽 철우는 북쪽에서 일어나는 일에 계속 얽히고, 마지막으로 둘이 얽혀서 하나의 큰 이야기 흐름이 완성되는거죠.

그런데 여기서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 드러납니다. 아마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서도 제일 고민했을 부분인거 같아요. 배우들의 대사에서도 그 부분이 나오거든요. 바로 두 철우를 만나게 하는 것 입니다. 두 주인공이 만나야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흘러 가는데, 이 양쪽 철우는 사실 크게 교집합이 없습니다. 쉬리처럼 공수를 하는 입장도 아니고, 한쪽은 북측 퇴역 요원 한쪽은 청와대 외교안보 실장인데 두 사람이 직접 만날일이 없죠. 그런데 만나야 이야기가 진행되는 이 어려움.

영화는 여기서 '우연이다'라고 해버립니다. 아... 이건 사실 반칙입니다. 모든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사건 해결방법을 '우연'으로 처리해 버리면 누가 머리 싸매고 시나리오를 쓸까요? 최근 우리나라 스릴러 라는 것들이 이 '우연'을 남발해서 보다가 한숨이 나올때가 많은데 강철비도 둘의 만남을 '우연'으로 처리해 버립니다. 그래서 인지 자꾸 대사에서 '야~ 이런 우연이 다 있냐~'라면서 스스로도 이게 뭔가 꺼림직 하다는 걸 자꾸 드러내고 있죠. 북쪽 철우가 처음간 병원, 그리고 그 병원장의 친구, 친구의 남편 등등 우연의 우연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건 조금 비겁한 수법이죠. 사실 더 합리적인 방법이 있었을 것 같긴 한데 뭔가 사정이 있었을것 같습니다.

암튼 그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좋았습니다. 우선 액션이 좋은데 무술감독이 누군지 몰라도 칭찬받을만 하더군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폼을 재지도 않죠. 북측요원 조우진과 정우성은 부딪힐때 마다 액션신을 만드는게, 군더더기나 텀이 전혀 없습니다. 관객에게 긴장을 주는 시간은 액션이 터지기 전으로 충분하고 막상 터질땐 화끈하게 탬포를 밀어 붙입니다. 두 배우들의 동작에 쓸데없이 폼을 주지 않아서 무척 멋진 장면들이 나옵니다. 특히 관객의 타이밍을 뺏는게 좋았어요.

액션장면은 관객이 눈으로 상황을 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령 주인공이 테이블 위에 놓은 볼펜으로 반격을 한다고 하면, 편집 장면에서 주인공이 볼펜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고, 또 카메라로 한번 비춘 후 그걸 집어서 싸우게 합니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무척 타이트하게 만들어 놨어요.

그리고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는건, 조우진이 북한 1호를 확인하는 장면에서도 나오는데. 쓸데없이 얼굴을 확인하고 긴장을 주려는 거 없이 바로 방아쇠부터 당기죠. 액션신에서 각 배우들의 행동에 컨샙이 확실해서 좋았습니다.

또 좋은점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 곽도원은 원래 잘하고 정우성도 잘했어요. 북한 사투리도 잘하고 특히 표정연기가 좋았습니다. 남쪽 철우와 이야기 하면서 머리속은 무척 복잡했을 건데 말없이 잘 표현하더군요. 정우성이 배우로서 약점은 연기력보다 목소리에 있다고 생각 합니다. 목소리가 약간 웅웅거려서 대사가 귀에 잘 안들어 오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아예 알아먹기 힘든 북한 사투리리 덕분에 표정연기가 더 살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칭찬하자면 위에 언급한 잭라이언 시리즈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정치 스릴러물은 이야기를 어디까지 몰아 붙일지 결정해야 합니다. 전쟁이 터질지 말지, 핵미사일을 쏠지 말지, 그 간당간당한 긴장감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가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죠. '썸오브올피어스'는 작정하고 핵을 터뜨려서 약간 충격이었는데 강철비도 갈때까지 가 버리더군요. 상황전개나 몰아붙이는 정도가 좋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정치 스릴러물로 아주 훌륭했어요. 위에 언급한, 사건의 큰 줄기를 우연으로 처리해 버린 반칙... 그리고 후반부 어이없는 캐릭터를 가진 북한 해커 등 쫌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크게 흠잡을건 아니었어요. 그냥 조금만 더 신경 써 줬으면 좋았을거 같다 싶었죠. 재미도 있고, 두 배우 호흡도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남쪽 철우가 CIA와 대화 하면서

'내일 모레 전쟁난다고 하는데 사람들 밖에서 커피나 마시고 있다'라는 대사를 하죠. 무척 좋은 대사였습니다. 영화의 현실감을 확 끌어 올린 대사였어요. 약간 소름이 돋는건, 우리도 뉴스에서 날마다 북한이 미사일 쏘고 난리 부르스를 할때 '아 또 저러네?'하며 싱겁게 넘기지만, 그 뒤에선 정말 영화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질거 같더군요.

'이 영화가 완전 뻥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